소설리스트

노크맨-32화 (32/293)

32화

5.

수술이 시작되기 전, 문수르는 헤인 경에게 몇 가지 교육을 시켜줬다. 동영상을 통한 교육이었다.

당연히 처음에는 문제가 많았다.

“헉! 이게 대체 뭐요?”

스마트폰을 본 헤인 경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반질거리는 벽돌에서 사람이 움직이다니!

거기에 소리까지 난다. 도무지 헤인의 가치관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현상이었다.

‘이거 의외로 너무 잘 먹히네. 나중에 무기로 써볼까?’

보는 사람마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 보니, 필요할 때 스마트폰을 써먹으면 상대를 기겁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쨌거나 문수르는 적당한 설명 후에 헤인 경에게 동영상을 베이스로 한 몇 가지 교육을 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헤인도 동영상 내용과 문수르의 설명을 듣더니, 점차 표정이 굳어졌다.

“죄송하오, 그 부분의 설명을 다시 한 번만…….”

수술이란 걸 배우는 게 힘든 일인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문수르가 가르쳐주는 내용은 단순히 난이도의 고하를 떠나서, 가치관에 큰 혼란을 주는 종류의 것이었다.

사람을 고치기 위해 사람의 몸을 가른 후에 그 안에 있는 장기들을 이리저리 만지다니?

아니, 차라리 그것뿐이라면 혼란이 덜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수르의 말에서 세균이니, 감염이니, 하는 말이 나왔을 때에는 그 자체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당연한 반응이었다.

‘사람 몸속에 장기가 있는 건 당연하게 받아들이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 같은 건 아마 존재자체도 몰랐겠지.’

이 세계는 천년이 흘러도 납득하지 못할 이야기일 것이다.

어스 월드의 문명은 필요에 따라 발전해왔다. 의술이 발전한 것 역시 필요에 의해서다.

하지만 케르빈 월드는 그 필요가 부족하다. 인간의 지성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걸까?

그 부분에 대해서 한석균은 말했다.

“마법이 문제지.”

마법.

도무지 보통 사람들은 납득할 수 없는 신묘한 기술. 그것이 케르빈 월드의 문명 발전을 저해했다.

마법 같은 게 없다는 걸 알게 된 어스 월드의 사람들은 마법이란 걸 무시한 채 과학을 다루면서 원하는 걸 얻었다.

그러나 케르빈 월드는 반대다. 마법이란 게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원하는 게 있으면 마법을 통해서 이루려고 한다.

불노불사. 케르빈 월드의 인간이든, 어스 월드의 인간이든 모두가 꿈꾸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접근 방식은 다르다.

어스 월드의 사람들은 의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 불노불사에 다가가려고 한다.

하지만 케르빈 월드의 사람들은 불노불사를 이룩하는 마법을 찾으려고 하는 거다.

여하튼 이러한 이유로 마법이 존재하고, 그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케르빈 월드가 어스 월드 수준의 과학 문명을 맞이하려면 아마도 수천 년이 넘게 걸릴 것이다.

어쩌면 수천 년 후에도 이 모양 이 꼴일지도 모르지.

그런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문수르가 다뤄야 한다는 거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되는 반복 학습을 통해서 깨닫게 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리아의 수술은 당장 내일이다.

‘어쩔 수 없지.’

마음 같아선 헤인 경에게 제대로 된 지식을 심어주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는 지금 문수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였다.

“헤인 경, 지금 당장 제가 알려주시는 모든 사실을 꼭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몇 가지 매뉴얼을 작성할 테니, 그걸 준수해주시면 됩니다.”

고뇌하던 헤인 경은 문수르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헤인에 대한 기초 교육이 끝났을 무렵이었다.

- 과연 헤인 경이란 자가 주인님의 말을 곧이대로 받아들이겠습니까?

이제까지 잠자코 있던 로이드가 말을 걸어왔다. 보통 로이드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물어보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의 역할은 문수르의 도우미이자, 감시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의견을 물어보는 건 그 만큼 중요한 사항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르지.”

실제로 문수르는 로이드의 질문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헤인에게 알려준 지식은 보통 지식이 아니다. 헤인, 개인에게는 신천지의 지식일지 모르겠지만 케르빈 월드 전체로 놓고 봤을 때 이 세상에 쌓아온 지식과 이념을 부정하는 이야기다.

너무 뛰어난 지식은…… 그것이 진실이라고 해도 오히려 사도(邪道)로 받아들여지고는 한다.

어스 월드에서도 그랬다. 뛰어난 과학자들이, 지식인들이 앞서 간 지식과 정보를 내놓았을 때 누군가는 선각자(先覺者)란 영광을 얻었지만 누군가는 사이비란 추명을 얻었다.

케르빈 월드라고 해서 다를까? 아니, 오히려 여긴 심하면 더 심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르트 자작가엔 종교가 없어서 크게 개의치 않았는데 이것도 좀 문제가 있을지 모르겠군.”

특히 과학에 가장 맞서는 존재가 있다.

바로 종교!

신을 부르짖은 그들에게 합리란 무의미하다. 심지어 과학이 극도로 발전한 어스 월드에서도 종교와 과학의 충돌은 일상다반사다.

특히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문수르가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사실이다. 이 세계의 종교인들이 부르짖는 신이 그 신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석균이 말해줬다.

세상을 만들고 다루는 신은 존재하며, 신의 섭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 자신도 그 신의 울타리를 넘어서 차원 이동을 했다는 사실을.

당장 지금 문수르의 손목에 있는 노크 클락만 하더라도 신의 이치가 존재한다는 증거의 하나이기도 했다.

‘신이 두려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신이 무서워서 벌벌 떤다, 그런 건 아니다.

단지 그 신을 추앙하는 종교가 무서울 뿐이다. 힘이 없는 이에게 종교라는 이름의 폭력은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매우 가차 없는 것이니까.

만약 문수르의 이념이 케르빈 월드에 존재하는 몇 개의 종교들…… 그 중에서도 주류라 불릴 만한 것들과 충돌하게 된다면?

가뜩이나 상황이 좋지 못한 이제르트 자작가의 사정은 더 괴팍하게 변할 것이다.

로이드가 걱정하는 부분도 바로 그 부분이었다.

-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긴.”

로이드의 걱정스런 물음에 문수르는 몇 번 고민하더니, 이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종교를 이용해먹으면 되지.”

비열하기까지 보이는 웃음.

종교를 모르고 케르빈 월드에 왔을 리가 없다. 아니, 오히려 이제르트 자작가의 부흥 프로젝트를 짜면서 종교라는 것을 아주 주요하게 다뤘다.

그리고 종교는 잘만 이용하면 매력적인 아이템이다.

“그래, 이번 기회에 불스 백작가에 가면서 교단 하나를 적당하게 잡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그 매력적인 아이템을 쓰기 위한 방법은 너무나도 많다.

“그보다 테블스 산에 대한 지도는 어떻게 됐어?”

- 현재 42퍼센트 정도가 완성됐습니다.

“꽤 넓나보네? 왜 그렇게 진행이 느려?”

- 넓다기보다는 지형이 독특합니다. 특히 동굴이나, 땅굴이 많아 그 부분에 대한 조사가 거의 진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땅굴? 그런 것도 있었어?”

- 생각 이상으로 복잡합니다.

“그래?”

몬스터들 중에서 땅굴을 파고 살아가는 종류도 있으니 딱히 이상할 건 없다.

단지 아쉬울 뿐이다.

“지도가 완성되면 어느 지역부터 토벌을 할지 확실하게 계획을 잡을 수 있는데…… 쩝.”

불스 백작 일만 끝나면 곧바로 농지 확보를 위한 계획을 시작할 것이다. 이제르트 자작가에서 농지를 얻을만한 땅은 결국 테블스 산을 기점으로 펼쳐진 땅이 될 수밖에 없다.

“그건 그렇고 테블스 산이라고 하지만 이 정도면 거의 테블스 월드에 가깝군.”

더불어 테블스 산을 기점으로 펼쳐진 몬스터들의 세상은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였다.

흔히들 테블스 산 또는 테블스 산맥하면, 그냥 삐죽삐죽 솟아오른 산만 생각하겠지만 그게 아니었다. 테블스 산에서 밀려난 몬스터들은 산에서 내려오고, 그러면 그 아래 땅들이, 평지들은 몬스터의 세상이 된다. 그런 식으로 몬스터가 자꾸 밀려 나오다 보니, 테블스 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넓은 영토 전부가 테블스 산으로 취급 받게 된 것이다.

만약 테블스 산 전부를 개척할 수 있다면, 이제르트 자작령의 크기는 공작령에 가까워질지도 몰랐다.

어마어마한 크기라는 거다.

반대로 말하면 그 정도로 몬스터가 득실거린다는 소리다.

‘기가스라는 무지막지한 병기가 있으면서도 테블스 산을 정복하지 못한다는 건, 다른 무언가 있다는 의미야.’

솔직히 이 부분에 대해서 문수르는 몇 가지 의심도 하고 있었다.

‘지도만 완성되면 뭐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겠지.’

그러나 지금 당장 급한 건 두 가지다.

‘내일이 수술인가?’

이리아의 심장 수술.

‘수술이 끝나는 직후 GPS시스템의 기능 중 일부는 테블스 산 대신에 불스 백작가를 탐색하는데 써야겠어.’

그리고 불스 백작과 단판을 짓는 것이다.

6.

이리아의 수술이 시작됐다. 감염을 막기 위해 철두철미한 준비를 끝낸 후에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에는 헤인이 참가했다. 헤인의 역할은 딱히 없었다. 그가 하는 건 수술을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 그뿐이었다.

수술 과정은 무리 없이 진행됐다. 문수르가 준비해온 의료장비들은 어스 월드에서도 보기 힘든 것들이었다. 가격으로 따지면 수백억이 훌쩍 넘는 것들이다. 애초에 상업적으로는 가치가 없어서 보통 사람들은 접할 수 없는 것들…… 한석균이 금전적인 부분을 도외시한 채 최대의 편의성과 효율성만 고려한 채 만든 장비들이었기 때문에 솔직히 장비 부족으로 인한 곤란함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무엇보다 로이드가 이미 몇 차례에 걸친 검진을 통해 완벽한 신체 지도를 만든 상황이었다. 로이드가 모아놓은 신체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든 신체 지도는 MRI나 CT보다 훨씬 자세한 것이었고, 그런 신체 지도를 멀티 글라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며 수술을 준비했던 문수르에게 문제될 건 없었다.

덕분에 수술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끝났다. 개흉수술 치고 너무나도 쉽게 끝난 것이다.

그리고 수술이 끝난 직후…….

털썩!

수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헤인이 문수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조금…… 정말 조금이지만 나는 문수르 경을 의심했었소…….”

“제 수술이란 게 사이비가 아닌지 말입니까?”

“맞소. 솔직히 문수르 경이 보여주는 모든 것은 이제까지 내가 살아오며 보아왔던 것과는 너무 다른 것이었소. 신천지 같은 느낌이랄까? 너무 허무맹랑해서 손에 잡히지 않는 느낌이었소. 하지만……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두 손으로 만지는 걸 본 이상 더 이상 의심한다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되오.”

“그럼 됐습니다.”

문수르는 헤인 경의 말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헤인 경의 표정은 그렇지 못했다.

“문수르 경, 그대가 가진 기술과 지식은 위험하오. 나는……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소. 확답은 못 하오. 내가 진정으로 문수르 경의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없을지는……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는 문수르 경을 악마라 부를 것이고, 문수르 경의 모든 것을 사이비나 사도로 취급할 것이오. 이건 확신할 수 있소. 이 세상은 문수르 경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너무나 미숙하오.”

헤인 경의 그 말에 문수르는 살짝 웃었다.

그러나 문수르는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오려던 눈물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나를 이해해주는구나.’

어떤 의미에서 문수르의 진실을 가장 깊은 곳까지 본 헤인 경. 그런 그는 문수르를 사악한 악마 따위로 취급하기보다는 진심으로 이해했고 동시에 걱정해줬다.

알고 있다.

문수르에게 케르빈 월드는 타지고, 다른 세상이다. 그는 이 세계의 주민이 될 수 없다.

이방인이란 거다.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다. 한석균도 그에게 언제나 가르쳐줬다. 이방인은 아무리 치장을 해도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물며 이방인으로 선각자 행세를 해야 하는 문수르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을 거라고.

그 때문에 언제나 합리적인 판단을 해왔다. 감성보다는 이성에 의미를 두고자 했다. 이성으로 생각하면 무슨 결과가 나오든 납득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역시 사람 사는 곳은 사람 사는 곳인 모양이다.

“헤인 경. 솔직히 난 내가 가진 지식으로 세상 모든 이들을 이롭게 만들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장 헤인에게 마음을 주진 않을 것이다.

“까놓고 말하면 난 이런 지식이 괜히 외부로 나가는 걸 원치 않습니다. 내게 이러한 지식이 필요한 건, 이제르트 자작가를 돕는데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것뿐입니다.”

문수르의 말에 헤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수르는 그런 헤인에게 말했다.

“그러니 나를 무슨 대단한 선인(先人)이나, 선각자 취급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헤인은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그건 그렇고, 조만간 이런저런 일로 영지를 비우게 될 겁니다. 그동안 이 의료키트는 헤인 경이 사용하십시오.”

문수르는 여전히 감성적인 판단보다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렸다.

헤인이 자신에 대한 무한한 호감을 보인다면, 그걸 이용해야 한다. 보다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말이다.

“그리고 수술을 위해선 잘린 팔이 제 역할을 해야 할 겁니다. 아직 손가락이 마음대로 안 움직여질 텐데, 조만간 재활 훈련을 하겠습니다.”

헤인 경의 이 무한한 호감, 존경심을 조금만 각색하면 절대적인 충성심으로 바꾸는 건 금방이다.

배신하지 않는 자.

지금 헤인에게는 마음을 나눌 친우보다 더 중요한 존재다. 친구 대신 충성을 받칠 수하를 얻는다면 뭐든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헤인 역시 그런 문수르의 마음을 이해한 듯.

“알겠습니다.”

그는 말투를 바꾸었다.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