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포비어와의 대련이 잦아진 건, 문수르가 힘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인간이 한도 끝도 없이 강해질 수 있는 세계다.’
어스 월드에서 인간의 강함은 한계가 있다. 문수르는 특히 그 한계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는 온갖 약물 등을 통해서 육체를 강화했음에도, 어느 순간 한계를 느꼈으니까.
하지만 오러를 쓸 수 있는 케르빈 월드는 이야기가 다르다. 여기에서 인간은 한도 끝도 없이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강력한 인간은 그에 맞는 대접을 받는다. 제 아무리 신분이 나눠진 사회라고 해도, 압도적인 힘 앞에선 그러한 신분도, 작위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작위가 없는 문수르 입장에서 앞으로 불스 백작이든, 누구든 귀족을 상대하려면 그들을 짓누를 힘이 필요하다.
‘성장은 계속 진행 중이지만, 그 속도가 너무 뎌디군.’
그러나 성장이란 게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거였지만, 문수르는 진즉에 그랜드 마스터가 됐을 것이다.
마나 호흡법을 통해 계속해서 단전에 쌓이는 마나의 양은 늘어가며, 마나를 오러로 바꾸어 다루는 능력 역시 날이갈수록 발전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문수르의 수준은 여전이 오러 나이트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오러 나이트도 대단한 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오러 나이트는 보통 귀족 휘하에 한두 명은 있다. 백작 정도 되면 휘하에 네다섯 명 정도의 오러 나이트를 보유할 정도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조만간 불스 백작을 만나 담판을 지어야 하다. 그런데 솔직히 불스 백작 앞에서 문수르가 내세울 만한 게 없다. 고작 해야 이제르트 자작의 대리인 정도가 내세울 수 있는 신분의 전부다. 막말로 불스 백작이 강짜를 부리며 만나주지 않으면 얼굴조차 볼 수 없는 처지인 거다.
‘오러 마스터만 되도 다이렉트인데.’
사실 이것부터가 문제다.
불스 백작이 정말 좋지 못한 의도로 이제르트 자작가에게 돈을 빌려주고 기가스를 담보로 잡은 거라면, 불스 백작 입장에서는 굳이 이제르트 자작과 만날 필요 없이, 서류상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불스 백작은 원하는 대로 일처리가 가능하다. 명분도 확실하다. 계약서만큼 확실한 명분이 또 어디 있겠는가?
만약 그럴 경우엔 문수르의 최우선 과제는 어떻게든 자리를 마련하는 거다. 불스 백작이 관심을 가질 만한 자리를 말이다.
‘뭐가 좋을까?’
불스 백작의 관심을 끌만한 아이템이 필요하다. 그리고 몇 가지 아이템이 있긴 하다. 어스 월드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져온 매우 독특한 아이템들이 있으니까. 케르빈 월드에서 꿈도 못 꾸는 그 아이템들이 먹힐 수도 있을 것이다.
“끄응.”
그러나 모든 게 먹히는 건 아니다.
“불스 백작이 술을 좋아하려나?”
일단 불스 백작에 대한 조사가 먼저다.
4.
문수르가 이리아의 수술 날짜를 잡았다. 그는 그 과정을 이제르트 자작에게 설명해줬다.
“가, 가슴을 가른단 말인가?”
애초에 수술이란 개념조차 확립되지 않는 세계다. 그런 세계의 사람인 이제르트 자작에게 문수르의 설명은 기가 차는 것이었다.
“그게 가능하긴 한 것인가?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사람의 가슴을 가른 다음에 수술을 한다고 한다. 애초에 그 수술이란 개념도 알지 못하겠다. 사람의 몸뚱이를 해하고, 치료한다는 게 과연 말이 되는 소리인가?
만약 헤인 경의 그 놀라운 사건이 아니었다면, 이번 만큼은 이제르트 자작도 쉬이 납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문수르는 그런 이제르트 자작을 납득시키기 위해 몇 가지 설명을 했다.
물론 설명만으로 이제르트 자작이 납득할 것 같진 않았다. 백문의 불여일견 아니던가?
스륵!
문수르는 더 이상 긴 설명을 하기보다는 더욱 간단한 방법을 위해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 신비로운 벽돌의 등장에 이제르트 자작의 눈빛이 빛났다. 문수르는 잠금을 풀고, 몇 번 터치스크린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는 수술 동영상 하나를 재생시켰다.
“오오…….”
벽돌에서 생생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무언가의 등장에 이제르트 자작은 감탄사만 내뱉을 것이었다.
수술 영상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크윽…….”
소싯적에 검을 들고 사람을 베어봤던 이제르트 자작은 그것이 진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의 가슴을 가르면 보이는 모든 것들은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었다.
그것들이 힘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살아있음을 증명하듯 말이다. 그리고 사람의 손이 그것을 고쳐나가고 있었다.
“이게 가능한 것이오?”
“이게 수술이란 겁니다. 제 세계에서는 사람을 치료할 때 사용하는 너무나도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헤인 경도 이 수술이란 걸 통해 팔을 붙인 것이오?”
“물론입니다.”
설명을 들은 이제르트 자작은 눈을 한 번 감았다. 질끈 감은 눈은 쉽게 떠지지 않았다.
스윽.
문수르는 영상을 멈추고, 스마트폰을 껐다. 다시금 검은 벽돌이 되어버린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윽고 이제르트 자작이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보석처럼 빛났으며, 보석처럼 단단하게 굳어있었다.
각오를 다진 것이다.
“내 딸아이를 고쳐주시오.”
이제르트 자작의 허락이 떨어진 이후에는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미 내과적 처방을 통해 건강을 최고까지 끌어 올린 상황이었고, 기타 검사를 통해 이리아의 상태를 확실하게 진단했다. 남은 건 수술뿐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
“헤인 경?”
“내게…… 내게 그 수술이란 걸 가르쳐주십시오.”
수술을 시작하기 바로 전 날 갑작스레 헤인 경이 문수를 찾아와 무릎을 꿇고 사정을 했다.
문수르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왜 헤인 경이 자신에게 와서 무릎까지 꿇으면서 이런 부탁을 하는 걸까?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그때 나는 깨어있었소.”
“예?”
“문수르 경이 수술이란 걸 하고 있을 때, 어렴풋하지만 내 정신은 깨어있었소.”
“그건…….”
그때 수술 상황을 생각하던 문수르는 헤인의 말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마취가 없었다. 이미 인사불성이었던 헤인에게 굳이 마취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수술 도중에 딱히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 마취 없이 수술을 하면 그 고통과 불안감에 공황 상태에 빠지고, 그렇게 되면 혈압이 오르는 등, 수술에 큰 방해가 되고는 한다. 그런 게 수술 과정에는 없었다. 혈압도 일정했다.
때문에 문수르는 수술 당시 헤인이 정신을 잃은 상태였을 거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정신이 든 상태였다니?
“수술을 어떻게 버티신 겁니까?”
잘려나간 팔을 붙이는 수술이었다. 뼈부터 시작해서, 근육, 혈관…… 하는 사람도 진절머리가 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그걸 마취 없이 버텼다고?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소. 아니, 느껴졌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보다 그 신비로움이 더 컸소.”
“신비로움이라니…….”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 처음으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찾은 느낌이었소.”
그런 말을 뱉은 헤인 경의 눈빛은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평생을 기사로 살아왔던 헤인 경. 하지만 무언가를 죽이고, 명성을 쌓기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가 되어주거나, 타인을 돕는 걸 더 보람 있게 생각하던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어쩌면 이제르트 자작가는 지옥이었을 지도 모른다. 가장 뜻이 잘 맞는 전우들이, 동료들이, 부하들이 있는 곳이지만 반대로 언제든지 그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암울한 세상. 행복이 있기에 불행도 큰 세상.
하지만 문수르의 수술을 봤을 때 그는 생각했다.
‘내가 죽어가는 그들을 살려줄 수 있지 않을까?’
문수르는 잘려나간 팔을 붙일 정도였다. 거기에 불치병이라 여겨지던 이리아를 수술을 통해 고친다고 한다.
세상이 포기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능력!
그런 능력이 있다면 앞으로 죽어갈 전우들을, 동료들을, 사람들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헤인 경의 눈에는 더 이상 평생 품어온 검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각오를 다진 그가 문수르 앞에 무릎을 꿇고 부탁을 시작한 것이다.
“내 부탁이 몹쓸 부탁이란 건 알고 있소. 타인의 기술을…… 그것도 문수르 경의 그 놀라운 신기(神技)를 대가 없이 가져간다는 건 도둑놈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오. 하지만…… 문수르 경이기에 염치없이 이런 부탁을 하외다. 부디 내게 그 수술이란 걸, 그 신기에 가까운 능력을 조금이나 가르쳐주시오.”
계속되는 헤인 경의 그 모습에 문수르의 표정은 굳었다.
하지만 속마음을 달랐다.
‘나이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그동안 상황이 꼬이기만 하더니, 드디어 좀 풀리나 보다.
‘헤인 경이 의사가 되겠다고? 나야 나쁠 거 없지. 아니, 솔직히 내가 바라던 일이다!’
문수르는 예전부터 의사를 양성할 생각이 있었다. 솔직히 어스 월드의 의학과 케르빈 월드의 힐링 마법을 섞는다면 정말 죽어가던 사람도 살릴 수 있을 테니까. 당연히 그걸 위해 의사 양성을 위한 계획을 짜놓았다. 수술 관련 동영상을 스마트폰에 넣어 온 것도 그 때문이다. 단순히 이제르트 자작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육용 자료로 쓰기 위해서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예 수술이란 것에 대한 개념조차 희박한 인간이 가득한 세상에서 오히려 사이비 종교 취급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 세계의 사람이…… 그것도, 기사라는 작위를 가진 배운 사람이 이렇게 먼적 고개를 숙인다니?
문수르는 자신의 이념이 이 세계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는 것에 감탄했고, 헤인 경의 읍소에 감사했다.
‘헤인 경은 기사다. 평생 검을 다루고, 사람을 잘라본 자다. 어쩌면 누구보다 빠르게 의술을 익힐 지도 모르지.’
거기에 기사라는 특징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영지에 뛰어난 의사가 있으면, 이제르트 자작가에 대한 신경을 덜 써도 된다.’
특히 만약 헤인 경이 이제르트 자작가의 주치의가 된다면?
언제나 이제르트 자작가의 신변에 의해 발이 묶여 있는 문수르의 행동반경이 넓어질 터.
나쁠 게 없다.
오히려 이쪽에서 기쁜 마음으로 가르쳐주고 싶다.
‘하지만 너무 쉬운 남자가 되면 안 되지. 아무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뻐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뜸 가르쳐준다고 하면 너무 싸보인다.
“헤인 경.”
“예, 말씀하시지요.”
“만약 보통 사람이 제게 이런 부탁을 했다면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헤인 경이기에…… 그리고 직접 제 수술을 받은 당신이기에 고민하게 되더군요. 헤인 경, 수술이란 건 쉬운 게 아닙니다.”
“부족하다면 포기하겠습니다. 대신 포기라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이런…….”
잠시 머뭇거리는 척하는 문수르.
그런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수술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리아 아가씨의 수술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 다음에도 제게 수술을 배우고 싶으시다면…… 그때라면 가르쳐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헤인 경은 대답 대신 고개를 푹, 숙였다.
뚝뚝!
그런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잘 먹혔군.’
그 눈물에 속으로 ‘나이스!’를 외치는 문수르.
- 주인님의 연기력이 나날이 성장하는 듯합니다.
로이드는 그런 문수르에게 태클 거는 일을 빼먹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