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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맨-30화 (30/293)

30화

이리아의 수술을 위해 그녀의 건강을 최고조까지 올릴 필요성이 있었던 문수르는 매일 그녀를 찾아가며, 그날에 맞게 준비해 온 약을 섞어 건네줬다. 이리아는 그런 문수르의 방문을 즐겼다.

“문수르 경!”

“몸은 괜찮으십니까?”

“네. 문수르 경 덕분에 매일 좋아진 것 같아요.”

“다행이군요.”

말과 함께 문수르는 오늘 복용할 약을 건넸다. 이리아는 그 약을 받아들며 조금은 울상을 지었다.

“약이 너무 써요.”

이리아의 그 말에 문수르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여자 아이는 여자 아이군.’

처음에 이리아를 봤을 때, 문수르는 그녀가 나름 강한 소녀라고 생각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평생을 병상에서 지내면서 버틴다는 것 자체가 보통 의지로는 안 되는 일이니까. 더군다나 문수르가 무례하게 옷을 벗어 달라 부탁했을 때도, 문수르가 그녀의 온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주물렀을 때도 그녀는 싫은 소리 한 번 내뱉지 않았다. 평민들보다 훨씬 나은 교육을 받아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게 아님에도 그녀는 버틴 것이다.

하지만 요즘 그녀는 문수르에게 사근거리기도 하고, 칭얼거리기도 했다.

사실 이리아에게 문수르는 처음으로 기댈 사람이었다. 비단 이리아 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제르트 자작가의 모두가 그렇다. 그들은 이제까지 내일보단 그저 오늘만을 살아가던 자들이었다. 기댈 곳조차 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 그들에게 문수르는 기괴하지만, 충분히 기댈 수 있는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자였다.

‘오히려 그 점을 노리고 들어오긴 했지만.’

그리고 문수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때문에 그 사실을 역으로 이용했다.

세상에서 사람이 가장 잘 속는 건, 무언가가 간절할 때 혹은 무언가가 부족할 때다.

힘든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에 잘 빠지는 것도, 반대로 사이비 종교가 그런 이들을 타깃으로 삼으며 제 이익을 취하는 것도 그 점을 노리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제르트 자작가가 문수르를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납득한 것도 문수르가 그 점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서로 좋으라고 하는 거니까.’

그렇다고 사이비 종교처럼 그들을 등쳐먹을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문수르는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렇게 생각했다.

“자, 오늘 사탕입니다.”

어쨌거나 약이 쓰다고 하는 이리아에게 문수르는 준비했던 것을 건네줬다.

그녀가 칭얼거린 이유도 바로 지금 문수르가 건네주는 사탕 때문이었다.

사탕을 본 이리아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녀는 보석을 받듯, 사탕을 받으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문수르 경, 이 사탕이란 건 대체 어떻게 만드는 건가요?”

“저도 잘은 모릅니다.”

“정말 신기해요. 이렇게 작은데, 이렇게나 달콤하다니…….”

혹시나 해서 가져온 사탕 한 봉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문수르가 자기 쓰려고 가져온 거다. 문수르가 단 걸 즐기는 성격은 아니지만, 정말 미친 듯이 머리를 쓰고, 노동을 하다 보면 단 게 그렇게 먹고 싶어진다. 하지만 케르빈 월드에는 모든 음식들이 거기서 거기다. 사람들이 달다고 먹는 것도 문수르가 먹으면 덜 익은 과일 같은 맛이다. 과일도 죄다 맛이 없다.

그래서 사탕을 가져온 것이다. 단 게 끌릴 땐 하나씩 먹으려고.

그런데 약을 먹고 쓰다고 하는 이리아를 본 문수르가 그녀에게 사탕을 줬고, 그때 이후로 그녀는 사탕에 빠져들고 말았다.

꿀꺽!

약을 먹은 이리아가 곧바로 사탕을 입 안에 넣었다.

“이제 푹 주무십시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문수르가 방 밖으로 나갔다. 이리아는 그런 문수르를 보며 섭섭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그녀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문수르는 시간이 없었다. 지금 당장 불스 백작과 담판을 지을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전에 이리아의 수술도 해야 한다. 그뿐인가?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때로는 전선에도 나가야 한다.

여기에 또 하나.

최근 하는 게 하나 더 늘었다.

‘지금 병사들은 제대로 구르고 있으려나?’

3.

병사들이 연무장에서 10명씩 나뉜 채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일부는 연무장을 뛰고 있었고, 일부는 전투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연무장 한 구석에는 모든 훈련을 보고, 체크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일부 병사들은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39번 병사 부상입니다.”

“뒤로 빼고, 139번이 들어가도록.”

“5번 부대 훈련이 끝났습니다.”

“곧바로 식사를 시작한다.”

일주일 전.

문수르는 우연찮게 병사들이 훈련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제르트 자작가의 병사들은 꽤나 강군이다. 실력도 좋고, 실전 경험도 많으며, 전술적인 움직임도 가능하다.’

솔직히 문수르가 딱히 이제르트 자작가의 사병들을 어떻게 할 이유가 없었다. 충분히 강한 군대에 문수르가 참견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위화감만 생기지.

하지만 훈련장면을 보자마자 생각이 달라졌다.

“방패를 들어라!”

“구토를 하면서 들어! 정신력이다! 정신력으로 승부를 보는 거다!”

교관들은 그저 무조건 시키기만 했다.

당연히 부작용이 생겼다.

“다, 다리가 아픕니다.”

부상자가 생겼다. 딱 봐도 다리가 크게 부은 게, 치료가 시급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부상병에 대한 대처 방법이기가 막혔다.

퍽!

“어디서 꾀병이야! 몬스터 밥으로 던져 줄까? 응? 혼자서 성벽 밖에서 훈련 해볼래?”

“아, 아닙니다.”

부상당한 병사의 부상 부위를 발로 찼고, 부상병은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맙소사…….”

그 광경을 본 문수르는 그저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었다.

강한 훈련의 필요성은 확실하다. 어설픈 훈련 같은 건 문수르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힘든 훈련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선이 필요한 법이다. 무엇보다 인간의 몸이란 건,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다. 굴린다고 해서 성장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휴식과 안정이다.

그런데 이제르트 자작가에는 그런 게 없었다. 그저 무조건 훈련만 할 뿐이다.

부상?

오히려 꾀병 취급을 한다. 정신력이면 다 극복할 수 있다고 여긴다.

물론 정신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솔직히 문수르 입장에서 이제르트 자작가의 병사들이 정신력 쪽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신력이 부족했다면 진즉에 탈영해서 다른 곳으로 도망쳤겠지. 정신력이 강하니까 테블스 산의 몬스터 앞에서 무기를 들고, 방패를 들 수 있는 거다.

‘이건 문제가 있다.’

이때부터 문수르가 전면으로 나섰다. 물론 그는 당장 강한 훈련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의 휴식과 안정 그리고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사들을 찾아갔다. 병사들의 훈련과 관리는 기사들의 임무 중 하나였으니까.

그런 기사들에게 새로운 훈련 매뉴얼을 설명했다. 문수르는 처음에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도 그가 제시한 훈련 매뉴얼은 타당성이 충분했으니까.

“안 됩니다.”

“다른 건 몰라도 병사들의 훈련에 대해서는 지금 방법을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기사들의 반응은 문수르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이제까지 다른 일이라면 쉽게 수긍해줬던 기사들이 병사들의 훈련법에 있어서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들의 훈련 방식이 조금 무식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테블스 산의 몬스터를 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휴식이나, 안정 따위를 누리게 되면 딴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러면 탈영병이 생기는데…… 현재 영지 사정상 탈영병이 생기면 어떻게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들에게도 나름 고충이 있었다.

틈만 나면 탈영을 할 게 뻔한 사병들을 가혹하게 굴리지 않으면, 병력을 운영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문수르와 기사들의 생각의 차이가 다른 건, 생활 문화의 차이 때문이기도 했다.

아직 인간의 본질과 본성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케르빈 월드와, 그 반대나 다름없는 어스 월드에서 살아오던 문수르. 이 둘이 바라보는 인간의 본질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문수르는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지?’

사실 그는 자신이 있었다. 훈련을 좀 더 부드럽게 바꿔도, 병사들이 도망치지 않으리란 자신이. 병사들을 충분히 믿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설득이 가능할까?’

그러나 이건 말로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때 나선 인물이 있었다.

“헤인 경?”

“아니, 벌써 움직이셔도 됩니까?”

병상에 누워있어야 할 헤인 경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의 등장에 다른 기사들은 놀랐다.

반면 헤인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문수르 경의 말을 따르도록 하게.”

“예? 그건…….”

“어차피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는 영지 아닌가? 문수르 경을 한 번 믿어보게. 하물며 이제까지 문수르 경을 믿어서 손해 본 적은 없지 않았던가? 영지를 위해 애써주시는 분이네. 필시 다른 무언가 생각이 있으신 거야.”

헤인이 그렇게 나오자, 다른 기사들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문수르는 살짝 놀랐다.

‘의외로 헤인 경의 입김이 세군.’

단순히 성격이 좋아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푸벌스 헤인, 그에게는 사람들을 이끌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쨌거나 헤인의 등장 덕분에 문수르의 훈련 매뉴얼은 곧바로 시작될 수 있었다.

물론 문수르의 고생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혹시 모를 문제가 발생할 지도 모르는 만큼, 수시로 연무장을 찾아와 병사들의 훈련을 지켜본 것이다.

그게 일주일째다.

“어떻습니까?”

문수르의 질문에 훈련을 총괄하던 기사 한 명이 어깨를 으쓱했다.

“잘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일주일 만에 결과가 나올 리가 만무하다. 문수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적어도 병사들 사이에서 볼멘소리는 줄어들었습니다. 탈영 시도도 없었습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조금씩 변화는 보이고 있었다. 문수르는 그 긍정적인 변화를 반겼다.

‘조금씩 바뀐다.’

느리지만, 분명히 변하고 있다.

‘불스 백작과 담판을 지어야 이 변화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런 모든 변화도 결국 거대한 변화 앞에서는 태풍 앞의 작은 소용돌이에 불과할 것이다.

불스 백작의 의중이 어떻건, 그로부터 확실한 대답을 이끌어 내야 한다.

그리고 이 확실한 대답을 위해서 현재 문수르가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은 단 한 가지였다.

‘하루 빨리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서야 한다.’

그건 바로 문수르 본연의 힘을 키우는 일이었다.

문수르는 현재 오러 나이트 수준이다. 사용할 수 있는 오러의 양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오러를 쓰는 방법에도 익숙해지고 있다. 특히 오러 나이트인 포비어 경과의 대련을 통해서 그 습득 속도는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문수르 경의 실력이 나날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포비어는 자신보다 강하면서도, 계속해서 발전하는 문수르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러는 포비어 경도 보법에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이제 뛰면서도 오러 운영은 무리가 없는 듯보입니다.”

“다 문수르 경 덕분입니다.”

동시에 포비어 역시 문수르로부터 배운 보법을 빠르게 익혔다. 가장 갈망했던 것을 얻은 포비어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보법에 매달렸다.

이내 훈련을 마치고, 담소를 나누기 시작한 그 둘.

거기서 문수르는 넌지시 물었다.

“오러 마스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갑작스런 문수르의 질문에 포비어는 잠시 고민했다. 문수르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가, 그걸 고민한 건 아니었다. 포비어는 문수르에게 해줄 대답을 고민했다.

“보통 오러 나이트와 오러 마스터를 구분하는 기준점은 오러 소드의 유무입니다만…….”

오러 블레이드. 오러를 쓸 수 있는 자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쓸 수 있는 기술이다. 무기에 오러를 부여해 날리는 수법이다. 오러 나이트들의 트레이드 마크다.

오러 소드. 오러 블레이드보다 더 상위의 기술로, 자신의 무기에 오러를 부여하는 기술이다. 오러 블레이드만 해도 웬만한 건 다 베어버릴 수 있지만, 오러 소드는 그런 오러 블레이드도 사정없이 베어버린다. 절삭력, 파괴력 등 모든 면에서 오러 블레이드보다 강력하다. 오러 마스터는 이 오러 소드를 쓸 수 있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칭호다.

때문에 오러 마스터와 오러 나이트를 구분하는 기준점은 오러 소드라고 봐야할 터.

하지만 이건 일반적인 대답이다.

“문수르 경의 질문은 아무래도 오러의 운영 방법에 대한 것이겠지요? 솔직히 저보다 더 오러를 다양하게 쓰시는 문수르 경에게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창피합니다만…… 오러 나이트와 오러 마스터의 차이는 오러가 느끼는 친숙함 같습니다.”

오러를 다루는 자들에게서는 다른 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오러가 느끼는 친숙함?”

“그러니까 우리가 오러에게 느끼는 친숙함이 아니라, 오러가 우리를 보고 느끼는 친숙함을 말하는 겁니다.”

“오러에게도 호불호가 있다는 이야기입니까?”

“오러는 강력한 생명의 기운이기도 합니다. 하물며 몸의 컨디션에 따라서 오러를 운영할 때의 느낌이 달라지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확실히 그렇다.

똑같이 오러 블레이드를 날려도 어느 날에는 긁힌다! 라는 느낌이 드는 반면, 어느 날에는 이상하네? 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오러 자체는 딱히 변함이 없을 텐데, 그걸 느끼는 것에 차이점이 있다는 건…….”

말을 뱉던 포비어는 씨익 웃었다.

“솔직히 잘은 모릅니다. 단지 어렴풋한 느낌이지요. 오히려 제가 묻고 싶습니다. 문수르 경이 생각하는 오러 나이트와 오러 마스터의 차이점은 뭡니까?”

포비어는 문수르가 자신보다 훨씬 강한 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그건 정답이 아니었다. 오러에 대해서는 적어도 포비어가 문수르보다 훨씬 상급자다.

그렇기에 문수르는 잠시 당황했다.

‘뭐라고 대답해주지?’

여기서 밑천을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 문수르는 대충 그럴싸한 대답으로 얼버무리듯 말했다.

“저는 반대입니다. 오히려 오러 나이트와 오러 마스터에는 차이점이 없다고 봅니다. 그 경계의 구분을 짓는 게 무의미한다고 봅니다. 오러 마스터가 된다고 오러 블레이드를 쓰지 않는 것도 아니고, 오러 소드를 쓴다고 굳이 오러 마스터라고 부를 필요가 있습니까? 어차피 강함의 구분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거늘.”

“명답이십니다.”

포비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포비어의 모습에서 문수르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문수르에게 로이드가 대답했다.

- 참 잘 속는 인간입니다.

‘닥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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