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27화 (27/293)

27화

3.

“빌어먹을 피가 멈추질 않아.”

“팔을 잡아. 내가 끈으로 묶겠어.”

“그러면 상처가 괴사할 텐데?”

“어쩔 수 없잖아, 이대로 가다간 출혈과다로 죽을지도 몰라.”

헤인 경.

오우거로부터 살기 위해 자신의 팔을 스스로 자른 기사. 그러나 그가 죽어가고 있었다.

피는 멈추지 않았다. 멈출 리가 없었다. 팔이 깔끔하게 잘려나갔는데, 피가 멈춘다면 그게 웃긴 일이겠지.

다른 기사들이 달라붙었다. 피가 터져 나오는 곳을 압박했다. 뼈가 부스러지도록, 있는 힘을 다해서. 피가 통하지 않아, 상처 절단면이 괴사하는 것은 고려의 대상이 못 됐다.

“젠장!”

단지 고려되는 건 하나의 사실.

“헤인 경. 정신 차리시오! 절대 정신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기사가 팔을 잃었다는 것, 그것은 기사 생명이 사라져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목숨보다 소중한 기사생명을 포기했다. 그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그 목숨만이라도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짜악!

누군가 흐릿해져가는 헤인 경의 눈의 초점을 보자마자 헤인 경의 뺨을 거세게 후려쳤다.

“정신 차려!”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죽는다.

그러나 반대로 여기서 정신을 차린다고 해서 살 수 있을까?

“마법사! 마법사는 없는가?”

살릴 수 있는 방법은 하나. 힐링 마법을 할 수 있는 마법사의 치료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방법일 뿐이다. 살아날 확률은 솔직히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살 수 있는 확률보단 죽을 확률이 더 높겠지.

‘여기서, 여기서 헤인 경을 잃을 순 없다.’

기사들은 지금 이 상황에서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했다.

이제르트 자작가의 기사들은 보통 영지의 기사들과 전혀 다르다.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결국 이제르트 자작령이라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곳까지 온 자들이다.

세상이 섞일 수 없는 이들이 한 데 모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르트 자작가란 틀 안에서 그 어느 누구보다 끈끈하게 섞일 수 있었다. 세상천지에 자신들을 이해해줄 수 있는 이들은 서로 밖에 없었다.

그런 이들 중 한 명을 잃는다는 건, 평생을 함께 했던 친우를 잃는 것, 그 이상으로 슬픈 일이었다.

물론 이제까지 적지 않은 자들이 죽었다. 이제르트 자작령은 삶보다 죽음이 많은 땅이니까. 지금까지 많은 병사들이, 기사들이 죽었다.

그러나 동료의 죽음 앞에 익숙해진다는 건 불가능했다. 익숙해지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누구든 좋으니, 제발 헤인 경을…….’

살리고 싶다.

악마와 계약을 해서라도, 살리고 싶다.

모든 기사들이 그런 염원을 품고 있을 때.

“이쪽으로 오십시오.”

문수르가 등장했다.

괴상한 건물이었다. 마치 옷가지에 바람을 잔뜩 넣은 듯한 느낌. 칼로 찌르면 터질 듯한 느낌의 건물이었다.

문수르는 그 안으로 헤인 경을 데리고 들어갔다. 그러자 다른 기사들이 문수르를 따라 들어가려고 했다.

“잠깐.”

문수르는 그런 기사들을 제지했다.

“여기는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혼자 들여보내다니? 물론 문수르를 의심하는 건 아니다.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혹시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잡다한 일들. 필요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러나 문수르는 단호했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또한 경고했다.

“누군가 제 경고를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오신다면, 헤인 경의 목숨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보통 경우라면, 이 정도 대우를 받은 기사 쪽이 강렬하게 반발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르트 자작가의 경우는 달랐다. 보통 기사들이 아니라, 세상으로 버림받은 그들이기에, 이제르트 자작을 향한 충성은 그 누구와도 비교가 불가했다.

그리고 이제르트 자작은 말했다.

문수르를 무조건 믿고 따르라고.

빠득!

기사 중 한 명이 이를 물었다. 그 소리가 문수르의 귀에 들릴 정도로 말이다.

분노?

그런 건 아니다.

억울함.

그래, 그런 종류의 감정.

가장 친한 전우가 죽어감에도 그 어떤 것도, 심지어 항변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억울함.

그들의 억울함이 문수르의 심장을 두드렸다.

‘이걸 살려야 하는구나.’

거기서 문수르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의무를, 책임을 보다 확실하게,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들을 살려야 한다.’

눈앞의 기사들은 그가 살려야 하는 이들이다. 그들이 결코 몬스터 따위에, 별 거 아닌 이유에 희생당하는 걸 막아야 한다.

“장담합니다. 헤인 경의 목숨을 제가 구할 겁니다.”

문수르가 각오를 다지고 의료키트로 만든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수르는 어스 월드에서 의술을 배웠다.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봉합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거의 봉합만 배웠다. 봉합은 그 정도로 가장 중요했다.

그를 가르쳤던 의사는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은 의료기술이 워낙 좋아졌고, 발전해서 보통 경우에는 매뉴얼 때로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장비가 부족해도, 매뉴얼만 잘 따르면 생존확률은 엄청나게 높아집니다. 응급상황? 대처 매뉴얼을 숙지하면 됩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그 무엇으로도 대처할 수 없어요. 그게 바로 의사 본인의 실력, 개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봉합입니다. 물론 의료기술 중에 중요하지 않은 기술은 없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요즘은 다 좋아져서요. 단지 봉합만큼은 대체할 만한 게 많지 않죠. 뭐, 요즘은 의료용 본드도 좋다고는 하지만…….”

한석균이 챙겨준 의료키트에 포함된 의료장비들은 부피를 줄였지만, 그 효용성이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다.

동시에 매뉴얼에 대해서도 문수르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에게는 그 누구보다 확실하게 매뉴얼을 알려줄 인공지능 로이드가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기본적인 의료실력은 부족했다.

어쨌거나 그 의사 밑에서 정말 미친 듯이 봉합을 연마했다. 실력은 부쩍부쩍 늘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

하지만 아무리 실력이 늘었다고 해도 평생을 의료계에 몸을 담은 이와는 비교하기 힘든 수준.

‘그래도 살려야지.’

그런 문수르 앞에 환자가 있었다.

팔이 잘린 환자였다. 현재 팔의 절단면은 괴사가 진행 중이었으며, 출혈은 계속되는 상황.

그나마 다행인 건 검으로 자른 덕분에 절단면이 깨끗하다는 것.

일단 혹시나 해서, 상황을 보자마자 헤인 경의 잘려나간 팔을 가져오기는 했다.

‘접합수술을 할까? 아니면…….’

여기서 두 가지 선택지가 생겼다.

하나는 접합하는 것. 가장 좋은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반대로 어설프게 접합수술을 했다가는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차후 관리를 못해, 상처나 기타 감염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

두 번째 선택지는 그냥 절단면을 치료하는 것. 하지만 팔을 못 쓰는 기사의 존재가치가 있을까?

‘좋아.’

여기서 문수르가 던진 승부수.

‘팔을 붙인다.’

접합수술을 시도할 것이다. 여러 가지 문제가 많겠지만, 문수르가 이런 승부수를 던질 만한 이유는 있었다.

‘힐링 마법을 쓰면 훨씬 좋은 결과가 나올지도 몰라.’

힐링 마법!

어스 월드의 현대 의학으로는 결코 설명이 불가능한 그것을 이용한다면, 접합수술 후의 결과는 훨씬 좋을 것이다.

“좋아.”

결정을 내린 문수르가 수술도구를 집었다.

“로이드, 지도 부탁해.”

- 알겠습니다.

그리고 수술이 시작됐다.

4.

쿠웅!

기가스의 육중한 몸체가 두 발을 이용해 뛰기 시작하자 대지가 울리기 시작했다.

쿠오오!

오우거는 그런 기가스의 등장에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더 흉포한 외침을 내뱉으며 기가스를 향해 돌진했다.

두 거대한 존재가 서로를 향해 맞달렸다.

이윽고 오우거의 둔기가, 기가스의 검이 서로를 향해 날아갔다.

퍼억!

오우거의 둔기는 기가스의 왼쪽 어깨 장갑을 단숨에 함몰시켰다.

파앗!

하지만 동시에 오우거의 둔기 역시 박살이 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크오오오!”

둔기를 휘두른 오우거의 주먹과 팔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자신의 몸뚱이가 버티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몬스터, 오우거! 그 오우거의 무서움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오우거의 혼신의 일격에 대한 대가를 고작 장갑 함몰 정도로 끝났다는 건, 기가스가 가진 전투력이 그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라는 의미였다.

푸욱!

그리고 기가스의 검은 오우거의 오른팔을 잘라냈다.

“크아아!”

오우거가 비명을 내질렀다.

사실 이번 전투는 기가스 파일럿, 포비어의 실수나 다름없었다. 장갑은 수리해야 하고, 수리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비용이 필요하다. 때문에 되도록 공격을 맞상대하기보다는 피하는 게 낫다.

혹여 회피를 배제한 채 육탄전으로 간다고 했어도, 어깨를 내주는 대가로 오우거의 목을 쳤어야했다.

그러나 포비어는 오우거의 팔을 잘랐다. 그는 뛰어난 파일럿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의 기가스를 제대로 조종할 수 있으며, 전투 시에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실력자였다.

그럼 대체 왜 이런 판단을 내린 걸까?

오판?

아니다.

“헤인 경의 복수다.”

빠득!

이를 가는 포비어.

그의 두 눈이 복수심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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