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오러가 사용된 이후의 전투 양상은 오러를 쓰지 않을 때와 확연하게 달랐다.
일단 공격 유효 거리가 달라졌다.
쉬익!
거리가 벌려지면 오러 블레이드가 날아왔고, 그렇게 날라오는 오러 블레이드는 일반적인 공격보다 곱절은 더 위력적이었다.
카앙!
오러 블레이드를 창으로 쳐낸 문수르가 이죽거렸다.
‘이거, 예상보다 더 위력적인데?’
- 현재 창의 내구도가 빠르게 소모 중입니다. 오러 블레이드의 방어는 피하심이 좋으실 듯합니다.
‘말은 쉽지!’
문수르의 창은 어스 월드의 과학력이 만들어낸 기술력의 결정체다. 보통은 공업용 다이아몬드 절삭기라도 가져와야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런데 오러 블레이드는 그런 문수르의 창에 흠집을 낼 정도로 강력했다.
‘역시 이 세계에선 오러를 써야 살아남을 수 있다.’
사실 문수르의 창이 그렇다고 급수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
보통 케르빈 월드에서 오러 블레이드를 순수하게 버텨내는 검은 무조건 명검 반열에 든다. 보통 장인의 검은 오러 블레이드를 한 번조차 견뎌내지 못한다. 그나마 드워프 정도가 만들어낸 검이 어느 정도 버티는 거다.
지금 문수르의 창은 명창 중의 명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문수르가 오러를 더 능숙하게 쓰게 되고, 무기에 오러를 부여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동급 실력자를 상대할 때 문수르는 거의 백전 중 구십구승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결국 나중의 이야기다.
카앙!
오러 블레이드를 다시금 쳐낸 문수르가 승부를 걸었다.
‘길어지면 결국 나만 손해다!’
파바밧!
보법을 밟으며 단숨에 포비어와의 거리를 좁혔다. 포비어는 그런 문수르의 돌진을 피하기 위해 스텝을 밟았다.
여기서 차이가 생겼다.
“흐읍!”
포비어의 실력은 제법이다. 나이에 비하면 충분히 뛰어난 실력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결코 명문가 출신도, 뛰어난 기사의 수제자도 아니었다.
재능이 있어 오러를 익혔지만, 그것뿐이다. 오러를 다루기 위한 체계적인 공부는 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그가 가지게 된 최대의 단점은 바로 보법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보법을 배우지 못한 건 치명적인 단점이다. 스텝을 밟는 와중에 오러를 쓸 수 없다는 의미니까. 움직이는 와중에 오러에 대해서는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이다.
반쪽 짜리 오러 나이트다.
문수르는 그런 포비어의 단점을 이미 진즉에 파악했었다. 단지 그의 기량을 좀 더 확인하기 위해 적당히 맞춰서 싸워줬을 뿐이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파밧!
보법을 밟으며 오러를 끌어올린 문수르가 무기에 오러를 담았다. 당장 오러 블레이드를 날리는 건 힘들겠지만, 적당한 수준의 오러를 머금은 것만으로도 문수르의 공격은 위력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창 자체가 가지는 능력이 워낙 뛰어났으니까.
반면 스텝을 밟느라 오러를 쓰지 못했던 포비어는 움직임을 멈춘 후에야 오러를 끄집어냈다.
“큭!”
당연한 말이지만 포비어의 반응은 한 타임…… 아니, 두 타임이나 늦은 거였다.
후웅!
문수르의 창이 날아갔고.
포비어는 검을 들었다.
까앙!
충돌이 났고.
“윽!”
포비어는 검을 놓치고 말았다.
대련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으음, 포비어 경이 지다니.”
“대단한 실력자로군. 더군다나 오러 블레이드를 제대로 쓰지도 않았다니?”
다른 기사들이 그 둘의 대련을 보며 감탄을 시작했을 때.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포비어에게 문수르가 다가갔다. 그는 포비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이겼습니다.”
“예, 당신이 이겼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저를 따르는데 조금의 반대도 없으신 겁니까?”
“이제르트 자작님이 말씀하셨을 때부터 그 누구도 당신을 반대하지 않았을 겁니다.”
“좋습니다.”
문수르는 말과 함께 허리를 숙였다. 문수르의 입이 포비어의 귓가 근처로 갔다.
“보법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보법이란 말에 포비어의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대신에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은…… 오늘 밤에 이야기해드리지요. 제가 포비어 경의 저택으로 찾아가겠습니다.”
포비어는 대답 대신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대련이 끝이 났다.
6.
‘포비어의 실력이 괜찮았다.’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온 문수르는 멀티 글라스를 착용 중이었다. 멀티 글라스를 통해 오늘 있었던 전투를 다시금 돌려봤다. 로이드가 가진 카메라 기능을 이용해서 영상을 찍었으며, 로이드는 그 영상을 실시간으로 가공했다.
덕분에 문수르는 그 짧은 시간 만에 포비어의 특징과 약점 대부분을 파악할 수 있었다.
- 이런 식의 훈련 시스템이 괜찮을 듯합니다.
“그래? 그럼 그런 식으로 훈련 매뉴얼을 짜지.”
심지어 로이드는 포비어에게 딱 맞는 훈련 매뉴얼까지 만들어냈다.
이래서 문수르는 로이드 시스템을 버릴 수가 없다. 로이드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게임으로 따지면 공략본을 가지고 하느냐, 그냥 맨땅에 헤딩을 하느냐의 차이였다. 그것도 그냥 공략본이 아니라, 아주 제대로 된 게이머가 만들어낸 완벽한 공략집!
‘빌어먹을 로이드에 대한 의존조가 높을 수록 내 자유도는 떨어지는 건데.’
- 걱정 마십시오. 저는 주인님의 자유를 존중합니다.
“젠장 이런 게 마음에 안 든다는 거야. 내가 뭘 생각해도 그냥 파악해버리잖아!”
- 어쩌겠습니까? 시스템이 이런 걸.
“씁! 그렇다고 노크 클락을 풀 수도 있고…….”
로이드가 문수르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건, 노크 클락 때문이다. 노크 클락은 단순히 신체적으로 접촉된 시계가 아니다. 문수르의 정신과도 공명한다. 그것이 가능한 건 과학의 기술력과 대마법사라 불렸던 한석균의 마법이 합쳐졌기 때문이다.
애초에 노크 클락은 순수한 과학문명의 기술체가 아니라, 오히려 마법을 과학이 서포트하는 식으로 만들어진 물품이었으니까.
- 시간 됐습니다.
“아 벌써?”
로이드의 말에 문수르는 멀티 글라스를 벗었다.
밤이 됐다.
이제 약속대로 포비어를 만나러 갈 차례였다.
포비어의 저택으로 갔을 때, 저택의 불은 전부 꺼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저택 앞에는 포비어가 문수르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수르는 그런 포비어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문수르를 발견한 포비어가 직접 문수르에게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왜 안에서 기다리지 않고 밖에서 기다린 겁니까?”
“사실 이 저택은 평소에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안보단 밖이 편합니다.”
말을 뱉던 포비어가 넌지시 말했다.
“무엇보다 문수르 경…… 경이라 부르겠습니다. 문수르 경께서 제 저택에 볼 일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포비어의 말에 문수르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머리가 굴러가는군.’
포비어는 문수르의 의중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단순히 실력만 좋은 게 아니라, 눈치도 있고, 전세를 바라볼 수 있는 시야도 충분하다는 의미였다.
“맞습니다. 제가 보고 싶은 건 기가스였습니다.”
“그렇군요.”
포비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제르트 자작가에서 포비어가 가지는 최고 가치는 그 무엇도 아닌 바로 기가스였다.
기가스 파일럿!
때문에 포비어는 대부분의 생활을 저택보다는 기가스를 보관하고 있는 정비실에서 보냈다.
혹자는 정비 따위는 다른 전문가에게 맡기면 되지 않느냐, 말하겠지만 사실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기가스의 정비사는 몸값이 매우 비쌀 뿐더러, 기가스의 정비에는 기가스 파일럿이 꼭 필요하다. 어디까지나 기가스 파일럿이 탑승해서 사용하는 거니까. 물론 출격 횟수가 적은 기가스라면 한 번 조정을 하면 다음 출격까지 그 상태만 관리하면 되겠지만, 이제르트 자작가의 사정은 그게 아니다.
정비가 끝나면 곧장 출격하고, 다시 정비를 하고, 그게 끝나면 출격하고…….
이런 상황이니, 포비어는 정비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포비어의 안내를 받아 정비실에 갔을 때, 정비실 내부는 꽤나 분주했다. 그러나 문수르의 눈에는 그런 분주함 따위는 티끌만큼도 들어오지 않았다.
‘와우.’
5미터의 신장을 가진 거인.
‘생각보다 날렵해 보이는군.’
일단 허리는 생각보다 잘록했다. 반대로 가슴둘레는 컸다. 가슴근육이 거대한 보디빌더를 보는 듯하다.
전체적인 느낌은 체격이 훌륭한 사람의 몸 위에 갑옷을 입힌 느낌이다.
‘이런 게 움직인다고?’
현재 케르빈 월드의 모든 전쟁을 좌지우지하는 절대병기 기가스.
문수르는 앞으로 자신의 계획에서 가장 중요할 요소가 될 기가스를 처음으로 본 것이다.
“보통 파일럿은 가슴 부분에 탑니다. 안에 탑승하게 되면 여러 장치가 있습니다. 그 안에서 파일럿이 몸을 움직이고, 장치를 조작하면 기가스가 움직이게 됩니다. 꼭두각시 인형을 조작하는 느낌입니다만…… 엄청난 힘과 오러를 사용할 줄 알아야 조작이 가능합니다. 그게 인형사와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지요.”
“동력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머리입니다. 때문에 기가스와 싸울 때는 머리나 파일럿이 탑승하고 있는 몸통을 노리는 게 가장 효과적입니다.”
“보통 한 번 탑승하면 어느 정도 운행이 가능합니까?”
“마나동력이 100퍼센트 충전된 상태고, 제 컨디션이 최상이라면 6시간 정도 운행할 수 있습니다.”
“6시간…….”
“그러나 보통은 그렇게 좋은 상황에서 기가스를 운영하지 못합니다. 영지 사정을 생각하면 언제나 그 절반 정도만 운행할 수 있습니다.”
“3시간이란 겁니까?”
“예.”
대화를 나누던 문수르는 곧장 로이드와 대답을 나눴다.
‘어때?’
- 실시간으로 스캔 및 정보 수집 중입니다. 하지만 내부는 복잡해 정보 수집에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그렇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는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문수르는 포비어에게 말했다.
“포비어 경.”
“말씀하시지요.”
“그때 말했던 것처럼 거래를 합시다.”
“무슨 거래 말씀이신지…….”
“보법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대신에 기가스에 대한 정보를 제게 하나도 숨김없이 말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포비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기가스에 대한 정보가 어느 정도 보안으로 치부되는 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지금 이제르트 자작가의 기가스는 그런 수준이 못된다. 초창기 모델, 1세대 기가스를 개조한 놈이다. 보안이란 건, 제국이 사용하는 3세대 모델쯤은 되어야지 할만한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이 기가스의 파일럿은 포비어지만, 기가스의 소유자는 이제르트 자작이었다.
이제르트 자작이 문수르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라고 명령해준 이상, 기가스를 달라고 해도 포비어는 할 말이 없다.
“이 기가스는 자작님의 것입니다. 필요하시다면 얼마든지 조사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뭐, 그래도 파일럿은 포비어 경 아닙니까? 남의 물건을 보는 건데 주인의 허락은 받아야죠.”
문수르는 그저 내던진 말.
하지만 이 말에 포비어는 그 어느 때보다 감동을 받았다.
‘이 사람……!’
보통 기가스는 영주 소유인 경우가 많고, 때문에 파일럿 자리를 두고 기사들은 서로 견제를 한다. 기가스 파일럿이 가지는 의미는 그 정도로 귀중한 것이다.
그리고 포비어는 이제껏 나름 실력은 있었으나, 언제나 다른 파일럿들의 견제 때문에 자신 소유의 기가스를 가지게 된 건 이제르트 자작가에서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포비어는 반쪽짜리가 여겼다.
그런 그를 문수르가 인정해준 것이다.
‘충분히 믿을만한 자이다.’
티끌 정도 남아있던 문수르에 대한 의심. 포비어는 그 의심을 지울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뭐부터 하시겠습니까? 보법부터 가르쳐드릴까요, 아니면 이것부터 조사할까요? 포비어 경에게는 보법이 우선이려나…….”
“아닙니다. 문수르 경의 사정이 더 중요하지요. 지금부터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포비어가 미소를 지으며 문수르를 안내해주기 시작했다.
그 둘의 밤은 이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