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17화 (17/293)

17화

4.

그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아니, 저들이 왜!”

오크들을 상대하던 기사들은 오크들의 후방에서 등장한 아군의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성벽이 무너졌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저쪽에서 등장하는 거지? 성문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두 곳의 성벽이 무너졌다. 그렇기에 이제르트 자작가는 병력을 둘로 나눠 성벽이 있는 곳으로 보냈다.

그런데 지금 방금 막 무너진 성벽을 지켜야 할 병력들이 성 밖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당황하지 마라!”

“오크를 포위했다. 포위망을 좁히면 일망타진할 수 있다! 지금은 그것에 신경 써라!”

기사들은 당황했지만, 그건 잠시 동안에 불과했다. 그들 역시 이곳, 이제르트 자작령에서 한두 해 버틴 이들이 아니다. 긴급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호기였다.

성벽을 가운데 두고 두 병력이 오크를 포위하는 형식이 됐다. 전술적으로 봤을 때 최고의 포메이션이었다. 오크들은 앞뒤로 공격 받지만, 성벽 사이에 끼인 탓에 좌우로는 도망칠 때가 없다.

“인간 주변에 있다!”

“오크, 도망칠 곳이 없다.”

오크들은 당황했다. 기사들이 곧장 그런 오크들 무리를 향해 난입했다. 당황한 오크들이 굼뜬 반응을 보이는 사이, 그들은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며 오크들을 죽였다.

그 와중에 두 기사가 대화를 나눴다.

“여긴 어떻게 온 건가?”

질문을 받은 기사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전투가 끝났네.”

“전투가 끝나? 그게 무슨 소리인가?”

“성벽을 무너뜨렸던 오크들 전부를 해치웠네. 그 후에 자네들을 도와주기 위해 곧장 움직였네. 그냥 도움을 주러 오는 것보단 차라리 오크 놈들의 후방에서 공격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아니, 그걸 묻는 게 아니라, 어떻게 그렇게 단시간 만에 전투를 끝낼 수 있었나?”

“그건…….”

거기서 기사는 말이 막혔다.

과연 그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이 전투가 끝나면…… 그때 제대로 말해주겠네.”

말을 뱉던 기사는 몇 분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문수르의 창은 장대비처럼 쏟아졌다. 창 수십여 개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쿠에엑!”

“인간 무섭다!”

제 아무리 질긴 생명력의 오크들도, 몸뚱이에 주먹 만한 크기의 구멍이 뚫리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기사들과 용병들은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문수르는 단숨에 백여 마리의 오크들을 시체로 만들었다. 여전히 수십여 마리의 오크들이 살아남았지만, 놈들은 대부분 공포에 질려 눈빛이 맛이 간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문수르는 상황을 전부 끝장내지 않았다. 갑자기 전장을 이탈한 그가 넋을 잃고 전장을 보던 기사 앞에 왔다.

“성함이 어찌 되십니까?”

문수르의 갑작스런 물음에 기사는 대답 대신꿀꺽!

일단 침부터 삼켰다. 기사는 도무지 인간 같지 않은 무위를 보여준 문수르의 존재가 스스로도 겁을 먹었다.

하지만 기사는 기사인 건가?

“푸벌스 헤인이라 하네.”

“헤인 경. 이렇게 불러도 되겠습니까?”

“마, 마음대로 하게.”

기사 푸벌스 헤인. 그는 문수르가 주는 위압감에서도 아주 조금의 흐트러짐만 보여준 채 문수르를 대했다.

“아무래도 전장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무슨 말인가?”

“오크들 수가 적습니다. 적어도 처음에 온 놈들이 오백여 마리쯤 된다고 들었는데…….”

“그야 나머지 놈들은 다른 쪽을 공격하겠지.”

헤인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문수르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헤인에게 말했다.

“지금 남은 병력을 이끌고 오크들 잔당을 소탕한 다음에 다른 전장으로 지원을 떠나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지금 문수르는 로이드가 실시간으로 보내준 정보를 받고 있었다. 때문에 눈치 채고 있었다.

오크 놈들이 땅굴을 파고 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헤인 경 입장에서는 알 리가 없는 이야기다. 하물며 오크가 땅굴이라니? 어림도 없는 소리 아닌가?

“자세히 설명하게.”

“죄송합니다.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자네!”

이쯤 되자 헤인 경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 자, 정체가 뭔가! 의도가 뭐지?’

이렇게 강한 실력자가 용병으로 이제르트 자작가를 찾아오다니? 의중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실력이 뛰어난 건 뛰어난 거지만, 그게 이제르트 자작가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위협이 될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혹시 상대가 좋지 못한 의도를 품고 이제르트 자작가에 들어온 거라면? 그걸 걸러내는 게 이제르트 자작을 주군으로 섬기는 기사들의 역할 중 하나였다.

“정체가 뭔가?”

헤인 경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여차하면 검이라도 뽑을 기세였다.

실력이 부족하다고?

그렇다고 해서 포기한 채 목숨을 내어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기사의 긍지란 그런 거니까.

문수르는 그런 헤인 경을 보며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상황이 급해서 자세한 설명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문수르는 말과 함께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그가 자리를 떠나며 말했다.

“이제르트 자작가를 돕기 위해 왔습니다.”

그 말을 들은 헤인 경은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용병대를 보며 소리쳤다.

“남은 잔당을 처치하고, 곧장 다른 전장을 지원하러 이동한다!”

그는 일단 문수르를 믿기로 했다.

5.

땅굴을 파고 등장한 오크 무리들. 영지민을 상대로 학살을 벌이는 오크들의 모습에 문수르는 이를 꽉 물었다.

‘지금 중요한 건 저 놈들이 아니다.’

마음 같아선 오크 놈들부터 도륙을 내버리고 싶었지만,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바로 땅굴을 파괴하는 일이었다.

‘로이드, 땅굴 위치는?’

문수르는 말과 함께 준비해온 안경을 착용했다. 온갖 기능이 탑재된 속칭 멀티 글라스!

안경을 쓰자마자 곧바로 선글라스처럼 검게 변하더니, 이내 안경 위에 온갖 정보들이 출력되기 시작했다. 주변 건물들, 도로들, 몬스터들에 대한 정보들은 물론, 곧바로 GPS 시스템을 기반으로 원하는 위치로 향하는 동선이 표시됐다.

문수르는 그 동선을 따라 빠르게 이동했다.

“인간이다!”

“오크 인간 먹는다!”

그 와중에 오크들이 문수르를 보고 덤벼들었지만, 문수르는 그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쉬익!

창을 두 번 휘두르며.

푸홧!

오크들의 목을 베어버렸다. 케르빈 월드에는 존재치 않는 강력한 절삭력을 가진 것이 바로 문수르의 창날이었다. 기교가 아니더라도, 힘만 있으면 오크들의 목을 통째로 베는 건 일도 아니었다.

사실 방금 전 일백 마리의 오크를 처치할 수 있었던 것도 창의 도움이 컸다.

보통 창이라면 내구성이나, 창날의 예리함이 부족해 문수르도 그렇게 엄청난 위용을 보여주진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단숨에 두 마리의 오크를 처지한 이후에도 문수르는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문수르의 시선 위로 이상한 발자국이 생겨났다.

“응? 이건 뭐야?”

갑작스런 발자국의 등장에 문수르가 놀라는 사이.

- 보다 효율적인 프로젝트 성공을 위한, 보법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뭐?”

- 말 그대로입니다. 실전에서 보법 연습을 같이 하는 겁니다. 이제부터 마나를 느끼고, 오러를 사용하게 될 주인님은 제대로 된 보법 수련이 필요합니다.

로이드의 그 말에 문수르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보법?

사실 배우긴 했다. 하지만 어스 월드에선 보법 연습은 그냥 이론적인 부분만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게, 어스 월드에는 마나의 양이 턱없이 부족했고 때문에 마나를 느끼고, 오러를 사용할 줄 알아야만 제대로 쓸 수 있는 보법의 연습이 불가능했다.

케르빈 월드에 온 이상 보법 수련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좀 그렇지 않은가?

‘대단하군. 사람이 지금 죽어나가는데, 이런 상황에서 수련을 하게 되다니.’

남들은 목숨 걸고 싸우는 전장이 문수르에게는 경험치를 쌓는 전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섬뜩한 소리다.

하지만 동시에…….

- 앞으로의 프로젝트 진행에서 가장 필요한 건, 그 무엇도 아닌 효율성이라고 사료됩니다.

“그래, 알고 있어.”

아주 냉철하고, 합리적인 소리이기도 했다.

솔직히 문수르가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런데 고작 감정이나, 연민 따위에 그 귀중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각오는 다졌다.

‘사람도 죽여 봤다.’

심지어 어스 월드에선 사람도 죽여 봤다. 죽여 마땅한 인간이었지만, 그렇다고 살인이라는 사실이 바뀌는 건 아니다.

“오냐, 다 해주마!”

문수르는 곧바로 안경 너머로 보이는 발자국을 따라 자신의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둥둥!

보법을 따라하자 문수르의 몸속에 미약하게나마 모인 마나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보통 마나를 운영할 때 가장 필요한 건 안정이다. 책을 읽는 거랑 같은 거다. 조용하고, 편안한 자세일 때 책이 더 잘 읽히는 것처럼, 반대로 차를 타거나, 달리면서 책을 읽는 게 힘든 것처럼 마나를 운영하는 것도 가부좌를 취한 상태에서 하는 게 제일이다.

그러나 마나를 전투에 써먹으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 격렬하게 움직이면서도 마나 운영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게 바로 보법이다. 보법을 하면서 마나 운영이 자유로워지면, 신체능력도 자연스럽게 상승하게 되고, 그렇기에 보법을 밟으면 움직이는 속도도 훨씬 빨라지는 것이다.

미약한 마나지만, 마나를 운영할 수 있게 된 문수르의 움직임은 훨씬 날렵하고, 세련되어졌다.

이윽고 문수르는 오크 놈들이 뚫은 땅굴을 보았다.

땅굴에선 아직도 몇 놈의 오크들이 나오는 중이었다.

“인간이다!”

“인간 죽인다!”

땅굴에서 나오던 오크들은 문수르를 향해 어금니를 드러내며 살벌한 소리를 토해냈다.

퍽!

그 순간 가장 선두에 있던 오크놈의 머리통에 문수르의 창이 박혔다.

푸욱!

창을 뽑자, 오크놈의 머리통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그와 함께 오크가 뒤로 밀려났고, 막 나오려던 오크들도 덩달아 휩쓸려갔다.

동시에 문수르가 창으로 땅을 후려치듯, 두드리기 시작했다.

쿵쿵쿵!

“땅굴 무너진다!”

“도망쳐야 한다!”

운이 좋아 그나마 버티는 땅굴이었다. 결코 체계적인 설계로 만들어진 땅굴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문수르는 지금 로이드가 출력해준 정보를 토대로 땅을 두드렸다. 그 정보란 땅굴에 가장 취약한 부분에 대한 것이었다.

결국 땅굴은 너무나도 빠르게,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오크들이 땅굴 속에 매몰됐다.

이내 문수르가 땅굴로부터 관심을 끊었다.

“다음은?”

- 현재 영지 내에서 활동 중인 오크들의 위치를 표시해드리겠습니다.

이제 남은 건 오크 잔당들!

문수르가 그 놈들을 처치하기 위해 잽싸게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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