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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맨-16화 (16/293)

16화

문수르가 성벽 잔해 위에서 오크를 막고 있는 사이.

사실 문수르가 보는 오크는 이제르트 자작령을 습격한 오크들 중 일부에 불과했다.

이제르트 자작령을 습격한 오크는 5백여 마리였다. 그중 몇 마리는 궁병의 공격에 쓰러졌지만, 그 수치는 미미했다.

남은 5백여 마리의 오크들은 3개의 부대로 나누어져 움직였다. 그중 한 부대는 새롭게 성벽을 무너뜨리는 작업에 투입됐다. 문수르가 막는 오크 부대는 바로 그들이었다.

그럼 나머지 두 부대는?

그중 하나는 이미 예전에 무너뜨렸던 성벽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성벽이 무너진 이후 임시방편으로 처리한 했던 곳이기에 몇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돌파가 가능한 곳이었다.

물론 반대로 그 점 때문에 이제르트 자작가는 그곳에 병력을 집중했다. 심지어 5명의 기사들이 그곳에 버티고 서 있었다.

“더러운 오크 놈들! 단 한 마리도 내 뒤로 가는 걸 용납지 않을 것이다!”

쿠구구!

임시방편으로 막아두었던 성벽이 무너졌고, 기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먼저 전선 가장 앞줄에 서서 오크들을 상대했다.

쉬익!

기사들이 휘두르는 검은 병사들이나, 용병들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소리부터가 달랐다.

기사들은 무거운 검을 한 손으로, 마치 나무 몽둥이 다루듯 휘둘렀다.

“크엑!”

“이 인간 강하다! 오크 무섭다!”

그리고 기사들의 검이 한 번 춤을 출 때마다 오크들의 사지나 목이 잘려나갔다. 오크들의 그 두텁고, 질킨 근육과 뼈대도 기사들의 연마된 검 앞에서는 무색했다.

더군다나 오크들의 무장은 기사들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크아악! 이 인간한테 갑옷 소용없다!”

“방패 필요 없다. 방패 쓸모없다!”

기사들이 평생 수련하면서, 대적상대로 두는 게 누구일까? 일반 사병? 용병? 몬스터?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기사들은 그들을 적수로 보지 않는다. 기사들이 훈련을 위한 적으로 삼는 존재는 단 하나다.

같은 기사!

명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투구를 쓴 그들을 적으로 삼고 평생 검을 연마해온 이들이 기사들이다. 그런 기사들에게 오크들의 무장이란 건 너무 가소로워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제 아무리 오크가 방패를 들어도, 기사들의 검은 마치 유령의 그것처럼 방패에 단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꾸에엑!”

“덮쳐라! 인간 몇 명 없다! 덮치면 오크가 이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기사들의 기세등등한 모습에 오크들이 후퇴를 했다면, 애초에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선두에 선 오크놈들은 겁에 질렸지만, 반대로 그 뒤에 오는 수백 마리의 오크들은 흉흉한 기운을 내뿜으며 기사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때 기사들은 가소롭다는 듯이 소리쳤다.

“창 들어!”

그 외침에 뒤에서 대기 중이던 병사들이 화답했다.

“창 들어!”

병사들의 외침은 하모니가 되어 주변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철컹!

동시에 병사들이 양손으로 잡은 긴 창을 앞세운 채 느릿하지만 굳건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쿵쿵!

마치 지진이 난 듯, 병사들의 보폭은 일정했고, 발을 내딛는 속도, 타이밍도 전부 똑같았다.

기계가 움직이는 듯한 그들의 모습은 그들이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훈련을 받았는지,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반면 오크 무리들은 기사들만 잡기 위해 그저 떼거리로 달려들었다. 오크들에게 전술이나, 전열이란 상상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그런 오크들을 향해 전진하는 병사들.

그 두 무리가 충돌했다.

푸욱, 푸욱!

병사들의 창이 단숨에 오크들의 사지를, 머리통을 꿰뚫었다.

푸푸푸!

피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사방이 단숨에 피로 가득차고, 홍수가 나는 바람에 물이 넘칠 때처럼 맨 땅 위로 피의 강이 넘쳐났다. 그 이후에도 병사들은 이미 꿰뚫은 오크들의 몸을 다시 창으로 꿰뚫었다. 머리통을, 두 눈알을, 주둥일, 고간을…… 보이는 족족, 창을 뽑는 족족 다시 창을 꽂아 넣었다.

“크에엑!”

“아, 아프다!”

오크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으악!”

하지만 그렇다고 병사들에게 전혀 타격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크들의 신체능력은 병사들을 압도했고, 일부 몇 놈은 병사들이 구축한 전열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투박한 검을 휘둘렀다.

퍽퍽!

이가 다 빠진 검은 몸뚱이를 제대로 썰지 못했다. 그래서 더 고통스러웠다.

“비, 빌어먹을!”

“인간 잡았다!”

퍽!

오크들은 마치 도끼질을 하듯, 검으로 병사들의 몸뚱이를 몇 차례 내리찍었다.

“흐에에…….”

병사들 중 일부는 고통에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렇게 정신을 잃은 병사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오크들의 식사거리가 됐다.

“인간 먹는다!”

“인간 맛있다!”

우걱우걱!

그 자리에서 잘라낸 병사들의 사지를 그 큼지막한 입 안으로 쑤셔 넣으며 피를 음미하고, 살점을 음미하는 오크들.

쉬익!

기사들은 그런 오크들의 뒤통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전열을 가다듬어라!”

“절대 밀리지 마라!”

병사들이 몸으로 성벽마냥 오크들을 막는 사이, 기사들이 오크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오크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한 편 그 시각.

3번째 오크 부대는 다른 동료들이 열심히 성벽을 무너뜨리고, 병사들과 싸우는 사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들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니라 땅속이었다.

“계속 땅을 파라.”

“좀만 파면 인간 먹을 수 있다.”

이미 예전부터 오크들은 이제르트 자작의 성벽 아래로 통하는 땅굴을 파고 있는 중이었다.

보통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크들이 땅굴을 파다니? 그런 전술적인 생각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물론 사실 이 부분엔 몇 가지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었다.

공성전을 할 때 땅굴을 파서 성 안으로 침입하는 건, 공성계 중 하나다. 하지만 막상 이 땅굴을 파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일단 어설프게 땅굴을 팠다간 오히려 땅굴이 무너지는 바람에 투입한 인력 전부가 매장되는 경우가 잦았다.

토질 등 땅에 대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후에 파야 하는 게 땅굴이란 놈이고, 당연히 공성전에 땅굴을 파는 전략을 취하는 건, 매우 뛰어난 기술력과 정보분석력을 가진 군대만이 가능했다. 고급 전략이란 의미다. 전략이란 단어 자체와 이미 거리가 먼 오크들이 떠올릴 만한 전략이 아니었다.

하지만 반대로 오크기에, 그들은 땅굴을 팔 수 있었다.

토질? 지반? 매몰?

오크들에게 그런 걸 생각할 여유는 없다. 그냥 무식하게 파는 거다. 될 때까지 파는 거다.

그리고 만약 운이 따라준다면, 정말 운만 제대로 따라준다면 무사히 성 안으로 침입하는 것도 가능했다.

“크오!”

“뚫었다! 오크들 땅 뚫었다!”

두터운 성벽 안쪽. 그 안에서 백여 마리의 오크들이 화산에서 용암이 분출되듯,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꺄악!”

“오크다! 오크가 땅 속에서 나타났다!”

심지어 오크들이 모습을 드러낸 건, 영지민들이 사는 거주지였다. 아직 대피를 하지 못한 이들 앞에 그 사납고, 게걸스러운 오크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 다음 결과는?

“오크, 인간 먹는다!”

“약한 인간들이다! 마음껏 먹는다!”

오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무장 하나 하지 않은 영지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퍽!

오크들의 검이 날아다니며, 영지민들의 사지를 잘라냈고.

우걱우걱!

그 자리에서 오크들은 바로 인간들의 사지를 입 안에 넣었다.

“으아앙!”

그리고 오크들에게는 남녀 그리고 노소의 구분 따위가 없었다. 어린 아이를 보고는 오히려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휘둘렀다.

푸홧!

어린 아이의 몸뚱이가 세로로 반으로 잘려나갔다.

“반은 내가 먹는다.”

“인간 아이 부드러워서 더 맛있다.”

그리고는 마치 자른 케이크를 나눠먹듯, 다른 오크와 같이 어린 아이의 몸뚱이를 나눠 먹기 시작했다.

사람이 죽고, 그들이 먹히는 광경!

“으아악, 여긴 지옥이야!”

“난 이 지옥에서 나가겠어!”

소름 끼치는 광경 속에서 맨 정신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사태를 이제르트 자작가 내의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는 점이었다.

일반 병사들보다 청각이 예민한 기사들인 영지민들이 머무는 거주 지역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가 무언가 일이 틀렸음을 직감했다.

“무슨 일이지?”

“젠장, 설마 저쪽으로 습격이 온 건가?”

“그게 말이 돼? 성벽을 넘어온 놈은 없다고!”

하지만 상식적으로 성벽을 무시하고 오크가 넘어올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혹여 오크가 날아서 성벽을 넘어왔다고 쳐도 기사들의 눈이 그걸 놓칠 리 만무하다.

더군다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빌어먹을, 전선에서 이탈이 불가능한데.”

“지금 승기를 잡아야 돼.”

한 번 구축한 전열, 심지어 우세한 전열이다. 이런 전열을 망가뜨리면서 영지민들을 도우러 가는 건, 어떤 의미에서 소탐대실의 결과로 나올 가능성도 있었다.

아직 내성까지 침입이 당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반대로 여기서 어설프게 싸워 전열이 무너진다면?

내성도 위험하다.

그러면 이제르트 자작령 자체가 위험해지는 것이다.

“칫!”

기사들이 결론을 내렸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전선을 이탈해서는 안 된다고. 지금 이 전쟁을 끝내고 가야 한다고.

반면 영지민들의 비명 소리를 파악하고, 움직이는 이가 있었다.

“로이드.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 오크 무리들이 땅굴을 파 성 내부로 진입했습니다.

“젠장, 오크들이 이제 땅굴도 파나? 일단 그 땅굴 위치는 정확히 어디지?”

- 안내 시스템을 작동하겠습니다.

문수르.

그가 영지민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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