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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맨-15화 (15/293)

15화

<5화. 오크 대혈투>

1.

성문은 열리지 않았다. 기가스가 현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최후의 보루는 성문이었다. 굳이 그 성문을 열고, 오크랑 싸울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일단 궁병들이 열심히 화살을 날렸다. 50명의 궁병들은 쉴 새 없이 활시위를 잡아 당겼고, 그들이 쏘는 화살들이 미약하나마 하늘 곳곳에 검은 수를 놓았다.

피잇!

궁병들도 나름 단련된 덕분에 적중률이 제법 높았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가 오크라는 점이었다.

“빌어먹을 화살 한두 개로는 끄덕도 안 하네.”

“눈깔을 맞춰! 눈깔을!”

또투 부족 오크들의 무장은 떠돌이 오크들에 비해 제법 준수했을 뿐더러, 애초에 오크라는 놈들은 화살 서너 방을 맞으면 아파하기는커녕 오히려 눈에 불을 켜는 족속들이다.

“우어어! 인간 싫다!”

“죽여라! 고기 먹는다!”

지껄이는 대륙 공용어는 어설프기 그지없지만, 그 말에 담긴 살기와 적의는 나름 백전노장이라 부를 만한 이제르트 자작가의 병사들도 떨게 만들 정도였다.

“흥!”

“아주 지랄들을 하는군.”

그러나 기사들은 오히려 가소롭다는 듯이 오크들의 외침을 평가절하하며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어차피 성벽은 넘지 못한다.”

“착실하게 한 놈씩 처치해라!”

이제르트 자작가가 테블스 산맥과 전쟁을 벌인 게 한두 해도 아니고, 이미 기사들은 몬스터에 대해선 이골이 난지 오래였다. 몬스터가 보내는 살기와 적의? 솔직히 이제 그런 걸 느끼면 다리가 후들거리기보다는 머리가 지끈거린다. 공포와 두려움 대신에 짜증과 귀찮음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한편 궁병을 제외한 나머지 병력들은 성문 위와 성문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오크들이 제대로 된 공성무기를 가져올 리 만무하지만, 놈들의 무식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더군다나 최근 계속되는 오크의 공격으로 성벽 일부분은 이미 한 번 무너진 뒤다. 임시방편으로 처치를 했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 분명 무너진 부분을 노리고 들어올 것이고, 그런 놈들은 결사항쟁을 벌여서라도 막아내야 했다.

“여기서 네놈들이 막지 못하면 어차피 몰살이다. 그러니까 목숨을 걸고 막아!”

“누누이 말하지만 도망치는 자는 탈주병으로 처리할 것이다.”

용병대를 이끄는 A급 용병 둘이 긴장한 용병들을 정리했다. 원래는 세 명이 하는 일이었지만, 그중 한 명은 문수르의 주먹에 맞고 뻗어 기절한 상황이었으니까.

때문에 A급 용병들이 말을 할 때마다 용병들은 움찔하면서도, 문수르란 용병을 곁눈질했다.

‘제가 걔야?’

‘저 녀석이 로드게스를 한 방에 처치했다고?’

‘대단한 놈이 왔군.’

‘대단한 놈은 무슨…… 얍삽하게 기습을 했다던데. 실력으로 싸우면 로드게스가 이기겠지.’

‘기습이라도 로드게스를 한 방에 처치할 만한 인물이 있긴 하나/’

일약 스타가 된 문수르를 향해 쏟아지는 온갖 종류의 시선들. 이 정도 시선을 받으면 사람이 어떤 반응이라도 보일 법한데, 문수르는 무감각했다. 심지어 그는 전장에도 별 관심이 없는 느낌이었다.

쿠웅!

그때 지진이 난 것마냥 땅이 울렸다.

지진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울림은 지진보다 더 좋지 못한 울림이었다. 그리고 이미 이제르트 자작령의 모든 이들이 몇 번 경험해본 울림이기도 했다.

“맙소사.”

“성벽이 무너졌어!”

높게 쌓인 성벽이 무너지면서 생기는 울림이다. 그 육중한 돌무더기가 무너지면서 생기는 울림!

오크 놈들이 기어코 성벽을 또 무너뜨린 것이다.

“젠장!”

“A부대! 전부 성벽이 무너진 쪽으로 달려가!”

용병대와 사병들 그리고 기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단 한 명만이 이 난리법석 속에 조용하게 있었다.

“여긴 정말 지옥이네.”

자신 스스로도 지옥 속에 있으면서, 지옥을 보고 푸념을 내뱉는 인간의 정체.

바로 문수르였다.

그런 문수르의 모습에 용병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야! 넌 왜 가만히 있어?”

“난 신입이라서 아직 부대 배정 안 받았는데?”

이제르트 용병대는 상황에 따라 대처를 하기 위해 A,B,C 세 개의 부대로 나뉘었다. 말 그대로 세 명의 A급 용병대장이 각각 한 부대씩을 맡는 것이다. 보기에는 그저 단순하고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유사시엔 그 무엇보다 빠른 대처가 가능하다.

하지만 문수르는 방금 막 들어온 신입 용병이다. 신고식을 고작 몇 분 전에 치른 인간이다. 부대 배정 따윈 받지도 않았다.

“미친 새끼! 따라와 새끼야!”

그러나 그런 문수르를 보고 ‘아 그러십니까? 그럼 좀 쉬세요.’ 할 만큼 용병들의 세계가 가소로울 리 만무하다. 하물며 지급은 긴급 상황이다. 고양이 손이라도 필요할 정도로 말이다.

용병은 문수르를 끌고 갔다. 문수르는 별 다른 저항 없이 용병을 따라갔다.

2.

성벽은 형편없이 무너져 있었다. 잔해들은 사방에 굴러다녔고, 무너진 성벽의 잔해 위로는 녹색 피부를 가진 괴물, 오크들이 서있었다. 온몸에서 피가 흘리는 그들의 모습은 괴기스럽고, 무시무시했다.

“크오오오!”

“인간이다!”

“인간 죽인다!”

놈들은 굳이 자기들 언어가 있는데도 대륙공용어를 지껄였다.

“빌어먹을!”

“막아! 막으라고! 오크 새끼들 죽여!”

용병들과 병사들은 그런 오크들이 주는 공포를 어떻게든 물리치기 위해 언성을 높였다. 소리라도 질러서 자신들의 심장을 옥죄는 공포심을 몰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오크가 공용어를 쓴다?’

문수르.

그는 오크들의 외침에 의문부터 가졌다.

- 오크들의 구강구조상 인간의 말을 따라는 건 문제 없습니다.

로이드가 곧바로 문수르의 의문에 답변을 해줬다. 그러나 문수르가 의문을 가지는 건 그게 아니었다.

‘나도 알아. 단지 문제는 자기들 언어를 가지고 있는 놈들이 왜 하필 인간들이 쓰는 대륙공용어를 쓰냐, 이거지.’

- 공포를 주기 위해서라고 추측됩니다. 모르는 말을 지껄이는 괴물보단 자기 말을 지껄이는 괴물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그래, 공포를 주기 위해서. 그건 나도 알고 있는데, 보통 오크는 모르지 않나?’

공포심을 주기 위해 일부러 대륙공용어를 쓴다.

인간들 기준에서는 충분히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오크들 기준에서 본다면?

‘아무래도 그냥 오크가 아닌 것 같아.’

천재 중의 천재, 오크 역사를 뒤집을 천재가 아니고서야 이런 전술이 나올 리 만무하다.

‘혹시 모르니까, GPS위성 기능으로 이 근처의 오크들만 확실하게 포착해봐.’

- 알겠습니다.

로이드가 곧바로 문수르의 명령에 따라 위성을 이용한 정보수집을 시작할 무렵.

“야! 너 이 새끼 멀뚱히 뭐해? 가서 싸워!”

용병들이 문수르를 향해 소리쳤다. 문수르는 대답 대신 등에 메고 있던 창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문수르는 곧바로 움직였다. 그는 수비진을 치고 있는 용병들과 병사들을 지나쳐서 움직였다. 잽싼 움직임이었지만, 용병들이나 다른 이들의 눈에는 미친 짓으로만 보였다.

“야이 병신 새끼야!”

“전열에서 이탈하면 어떻게 해! 돌아와! 개죽음 당하고 싶어?”

오크는 강한 놈들이다. 더군다나 무리로 싸울 줄 아는 놈들이다. 쉽게 말해서 다굴을 칠 줄 아는 놈들이라는 거다. 여기에 테블스 산맥의 오크들은 질이 더 안 좋다. 보통 오크들을 서너 마리는 혼자서 박살을 내는 게 테블스 산맥의 오크들이고, 그 오크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세를 자랑하는 게 지금 이제르트 자작가를 습격한 또투 부족이다.

그런 놈들에게 혼자 몸으로 달려들다니?

정말 몹쓸 자살방법이다.

“빌어먹을! 저 녀석은 포기해!”

“진열을 정비해라! 작은 틈도 보여주지 마!”

결국 병사들과 용병들은 문수르를 포기했다. 문수르를 구한답시고 지금 간신히 구축한 진열을 깨고 움직이는 건 더 멍청한 짓이었다.

그때였다.

쉬익!

단숨에 성벽의 잔해들 위로 올라간 문수르가 창을 휘두르자.

서걱!

“크어어억!”

단숨에 두 마리의 오크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건 놈들의 마지막 유언이기도 했다.

“인간 잡아라!”

“창 든 인간이다!”

한 번의 공격에 두 마리가 죽었다. 전투 본능이 강력한 오크들은 단숨에 문수르를 강력한 인간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오크들의 그런 행동은 무의미했다.

“아직 오러에는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문수르.

이계에서 온 자.

그리고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창술가 중 한 명이며, 이제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페르수스의 창술을 익힌 자.

그 앞에서 제 아무리 강력한 오크들도 결국은 몬스터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한 방 정도는 쓸 수 있지.”

문수르의 손아귀에서 창이 거세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총에서 발사된 탄환의 그것처럼, 나선으로 움직이는 창은 강력한 바람을 일으켰다.

이윽고 문수르가 자신의 손아귀에 잡힌 창을, 폭풍을 날렸다.

쿠구구!

마치 대포가 쏘아진 듯, 엄청난 위력이 단숨에 성벽 잔해 위로 올라온, 그리고 올라오려는 오크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크어어!”

“피, 피한다! 우리 피한다!”

엄청난 위력의 공격이었다. 문수르는 휩쓸려간 오크들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래, 이제 시작이다.’

이제르트 자작가 부흥작전.

그 장대한 계획의 첫 발을 디뎠다.

3.

여러 계획이 있었다. 이제르트 자작가의 사정에 따라, 그에 맞는 계획을 고르기 위해서 말이다.

이후 케르빈 월드로 넘어온 문수르는 이제르트 자작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 정보수집을 하면서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기가스? 그게 뭐야?”

한석균으로부터 일언반구도 듣지 못했던 병기의 등장. 심지어 그 병기에 따라 대륙의 정세가 좌지우지된다고 했다.

그 병기에 대한 정보도 없고, 당연히 대처법이나 매뉴얼도 없는 문수르는 살짝 고민했다.

“차라리 여기서 그냥 다시 어스 월드로 돌아갈까?”

예상 외의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무리해서 일을 진행하기보다는 다시 숨을 고르는 것이다.

“아니야.”

그러나 그건 괜찮은 방법이지, 최선의 선택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특히 어스 월드로 곧장 돌아간다고 해서 기가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즉, 케르빈 월드 내에서 기가스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수집한 후에 돌아가야 했다.

“가만, 이제르트 자작가에도 기가스가 있다고 했지? 그럼 여기서 곧바로 작전에 들어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이런저런 생각 끝에 문수르는 곧장 이제르트 자작가로 향했다.

그의 목표는 크게 세 단계였다.

용병으로 이제르트 자작가에 들어간 다음.

그곳에서 엄청난 활약을 해서 이제르트 자작과 관계개선을 진행시킨 후에.

기가스에 대한 정보 수집 및 이제르트 자작가 내에서의 활동을 시작하는 것!

때문에 문수르는 자신의 실력을 어설프게 숨기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처음부터 전력이다.’

케르빈 월드로 넘어오면서 문수르의 능력은 어스 월드 때보다 곱절 이상 향상됐다.

마나 덕분이었다.

케르빈 월드에는 어스 월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마나가 충만했으며, 무엇보다 한석균은 진즉에 문수르에게 마나 호흡법을 가르쳐줬다. 어느 정도 개발된 문수르의 단전은 빠르게 마나를 흡수했다.

물론 아직 마나를 다뤄본 적이 없었기에, 마나를 실질적으로 구현했을 떄의 힘, 오러라 불리는 힘은 쓰지 못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이미 강력해진 신체능력만으로도 문수르는 웬만한 기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함을 손에 넣었다.

이런 계산 끝에 나온 문수르의 결정.

그 결과물은 대단한 것이었다.

“장난 아니군!”

“저게 B급 용병이라고?”

“대체 정체가 뭐야?”

무너진 성벽 잔해. 그 위를 넘어 성 안으로 침입하는 수백 마리의 오크들.

하지만 그 오크들은 고작 한 명의 사내, 문수르 앞에 가로막힌 채 공포에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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