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3.
현재 이제르트 자작가의 가주이자, 이제르트 자작령의 영주로 위치한 볼로아스 이제르트 자작은 30대 초반의 사내로 슬하에는 아들과 딸이 둘 있으며, 휘하에는 1개의 기사단과 300명의 사병을 보유하고 있었다.
보통 기사단은 9명의 기사로 구성되지만, 이제르트 자작가의 경우에는 그보다 못 미치는 7명의 기사가 전부였다. 그리고 거신병기 기가스의 등장 이후로는 모든 영지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전력이라는 기가스의 경우에는 단 1대만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것도 1세대 기가스로, 출력은 그나마 개량 덕분에 1.3배 급 출력의 기가스로 그 기가스의 파일럿은 기사단장 엘렉 포비어 경이었다.
이것이 전력의 전부다.
1.3배 급 기가스 1대와 7명의 기사 그리고 300명의 병사.
이제르트 자작가는 이 전력으로 슈페언 백작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드는 테블스 산맥의 몬스터와 맞서 싸워야 했다.
“이제 용병을 고용할 돈도 없군. 하긴, 요즘은 고용하려고 해도 용병들이 오질 않으니, 의미 없는 걱정이겠어.”
당연한 말이지만 정말 이제까지 버틴 게 용할 정도였다.
이제르트 자작은 매주 직접 작성하는 회계장부를 보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런 이제르트 자작의 머릿속에 한 인물이 떠올랐다.
“문수르. 그 자는 이런 영지 사정을 어느 정도 알면서도 직접 두 발로 내 영지를 찾아왔단 말이야.”
일주일 전의 일이다.
이제르트 자작가는 언제나 용병 모집 공고를 낸다. 하지만 그런 공고를 내면 이제르트 자작가를 찾아오는 용병은 하루에 1명이면 많은 수준. 심지어 한 주 내내 한 명도 오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더군다나 그렇게 해서 온 이들도 이제르트 자작가의 상황을 보거나, 계약서 내용을 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떠난다.
그렇다고 그들이 무슨 대단한 실력의 용병들인가? 하면 그것 역시 절대 아니다.
나이를 많이 먹었거나, 아니면 실력이 없는 신출내기들이다.
보통 용병들은 계약을 할 때 고용주가 직접 용병을 찾아보고, 골라가고는 한다. 일단 용병들 자체가 용병대를 꾸려 움직이기 때문에 명성 있는 용병대나 실적 있는 용병들을 고용주가 지명하는 거다. 당연히 실력 좋은 이들은 굳이 용병 공고 모집 따위를 보지 않는다. 알아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정도 실력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번듯한 용병은 일감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용병도 사람인지라, 보수는 그렇다 쳐도 생존율이 높은 의뢰를 하려고 하지, 언제 뒈질지 모르는 의뢰는 꺼릴 수밖에 없다.
보수도 적고, 생존율도 낮은 의뢰는 결국 고용주들이 꺼려하는 늙은 퇴물 용병이나, 어중이떠중이 신출내기 정도가 전부다.
그러나 그런 이들 역시 이제르트 자작령에 오자마자 펼쳐지는 지독한 죽음의 기운에 고개를 떨어뜨린 채 돌아가기 일쑤다.
그런데 그는 너무나도 멀쩡한 허우대를 한 채로 이제르트 자작가의 문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그냥 보통 용병들처럼 처리하려고 했다. 사실 허우대가 멀쩡한 것 외에는 특이점은 없었다. 그는 용병길드가 보장하는 B급 용병이었다. 제법 실력이 있다는 의미지만, 일반 병사들 보다 좀 강한 정도지, 기사들 수준에 비하면 어림도 없는 실력자란 의미다.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따로 만들어 놓은 용병대에 넣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걸로 끝이었는데…….
“느낌이 묘해.”
그와 계약서를 중앙 놓고 대화를 나누었던 이제르트 자작은 문수르란 용병에게서 너무나도 이질적인 어떤 느낌을 받았다.
“평범한 인간은 아니야.”
전장, 그것도 대륙 최악의 전장이라는 테블스 산맥에서 살아온 이제르트 자작의 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문수르, 그 자를 눈 여겨 봐야 한다.
땡땡땡!
그 순간 몬스터의 습격을 알리는 알람 마법이 터졌다.
4.
이제르트 자작령의 전투집단은 크게 3종류로 나뉜다.
기사단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
이제르트 자작의 사병들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
그리고 이제르트 자작가에 고용된 용병들을 중심하는 세력.
사병들은 기사단의 명령을 따르며 그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용병들은 사병들이 채우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이제르트 자작가는 용병들의 세력…… 이제르트 용병대에 대해서는 이러다할 터치를 하지 않았다. 용병들은 나름 용병들의 세계가 있고, 그걸 존중해준 것이다.
물론 말이 존중이지, 그냥 방관이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여하튼 이제르트 용병대는 69명의 용병들이 있었으며, 의외로 이제르트 용병대는 잘 굴러갔다. 보통 경우라면 몇몇 무리들이 용병대를 좌지우지하며 행패를 부리겠지만, 이제르트 용병대는 달랐다.
그 중심에는 유명 용병대 출신의 세 용병이 있었다.
A급 용병 3명, 소피아, 로드게스, 피드릭.
사실 이들은 이제르트 자작이 직접 고용한 인물들로, 이들 덕분에 이제르트 용병대는 사병 집단처럼 어느 정도 확실한 규율이 잡힌 채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규율 확립에 가장 중요한 게 있었다.
바로 신입의 군기를 확실하게 잡는 것이었다. 신입이 좋은 인간이든, 나쁜 인간이든 그건 중요치 않았다. 실력 또한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기사 수준의 전력을 가지지 못한 이상, 실력보다는 집단에 얼마나 잘 융화되는가, 그게 중요했으니까.
신입 용병 문수르는 당연히 이제르트 용병대에 들어오자마자 신고식을 치렀다.
“신입 용병인가?”
말꼬랑지처럼 머리를 뒤로 묶은 190센티미터의 거대한 체격의 험악한 인상의 사내, 로드게스.
A급 용병이기도 한 그는 신입 용병 문수르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어봤다.
문수르의 체격도 작은 편은 아니다. 180센티미터가 넘어가는 키에 제법 벌어진 어깨. 그리고 옷 너머로 보이는 근육질은 터질 듯한 느낌은 아니지만 제법 단련된 느낌이 확실했다.
“신입은 맞습니다만, 무슨 일입니까?”
입고 있는 옷은 보통의 여행객들이 입는 옷. 하지만 등에 차고 있는 두 자루의 창은 여행객이 아닌 용병임을 보여줬다.
‘창이라.’
여기서 로드게스는 창에 관심을 가졌다. 창을 다루는 용병은 많지 않다. 대체적으로 창은 효율적인 전술 훈련 및 운영이 가능한 사병들이 사용하고는 한다.
그런데 창을 주력 무기로 쓴다?
독특한 타입이다.
‘B급 용병이라고? 실력부터 확인해볼까?’
듣기로는 B급 용병이라고 했다. 보통 용병은 S부터 E까지 있는데, E급 용병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냥 전력 외 판정, 용병이 못될 정도라는 게 E급 용병인 거고, 보통 사지만 멀쩡하면 D급 용병. 자기 몸무게 정도 되는 물건을 들어올리면 C급. 그 이후에 무기를 다룰 줄 알면 B급이 된다. 어느 귀족 밑에서 병사로 지내거나, 혹은 2,3년 무기 좀 연마한 이들은 곧장 B급이 된다.
그리고 B급과 A급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A급은 최소 10번 이상의 의뢰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에야 받을 수 있는 등급이니까.
반대로 말하자면, B급과 A급 사이에 실력 차이는 없을 수도 있다. 의뢰를 성공적으로 마친다는 게, 실력뿐만이 아니라 운 덕분일 수도 있으니까.
“신입이라면 신고식을 해야지.”
말과 함께 로드게스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집에서 검을 뽑았다. 갑작스레 공격의사를 드러내는 그의 모습에 문수르란 용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참고로 로드게스는 운이 좋아 A급 용병이 된 인물이 아니었다. 엄연히 실력으로 된 인물이었다.
“여기서 칼부림을 하자는 겁니까?”
“그럼 나가서 할까? 아니면 피하는 건가?”
로드게스는 상대가 당황하기보다 오히려 반응을 살피는 모습에 작게 감탄했다.
‘실력 이전에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다.’
보통 용병들은 살기등등한 상태로 돌아다닌다. 특히 의뢰를 할 때는 신경이 극한까지 곤두서고는 한다. 방심이 곧 죽음으로 연결되는데, 오히려 신경이 유들유들하면 그게 이상한 거다.
때문에 상대가 적의를 보이면, 적의로 보답한다.
생각?
말이 쉽지, 막상 그런 상황이 오면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해버린다. 그리고는 본능적으로 자기의 무기를 꼬나쥐게 되는 거다.
그런데 문수르란 용병은 달랐다.
무기를 꺼내들기 보다는 먼저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면서도 긴장의 끝은 놓지 않았다.
심지어 문수르의 행동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여기서 칼부림을 하든, 나가서 하든, 그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여기서 당신하고 내가 싸워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대화를 시도하는 문수르.
로드게스는 씨익, 웃었다.
“신고식이라니까.”
“하나만 확실히 합시다. 그럼 내가 여기서 당신을 때려눕히면 앞으로 내 처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보복을 당하는 겁니까, 아니면 뭐 거기서 신고식이 끝나는 겁니까?”
“흥. 나를 때려 눕혀?”
여기서 오히려 분노한 건 로드게스였다. 지금 눈앞의 놈이 자신을 얕잡아 보는 건가?
“오냐, 날 때려눕히면, 내가 책임지고 네놈이 뭘 하든 용납해주지.”
로드게스는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눈앞의 놈에게 질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 말에 문수르는 씨익 웃었다.
“준비 땅.”
“뭐?”
순간 문수르가 말을 내뱉고, 로드게스가 의문형으로 반응을 보였을 때.
쉬익!
문수르의 주먹이 화살처럼 날아와.
퍽!
로드게스의 인중에 꽂혔다.
“크헉!”
로드게스는 기겁하며 뒤로 넘어갔다. 엄청나게 위력적이면서도, 정밀한 공격이었다.
쿵!
이윽고 바닥에 쓰러진 로드게스.
움찔움찔!
그런 그의 몸뚱이가 미약한 경련을 보이고 있었다.
츠릉!
동시에 주변에 있던 이제르트 용병대의 다른 용병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전부 일어났다.
하지만 문수르는 그런 그들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반쯤 기절한 로드게스를 향해 말했다.
“준비 땅. 이렇게 말해주고도 반응 못했으면 뒈져도 무방한 거 아닌가? 이런 사람이 내 신고식 담당자라니. 여기 수준도 알만하군. 빌어먹을, 애초에 기가스라니? 한 회장님, 이런 이야기는 없었잖습니까?”
그러나 그 누구도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그가 내뱉는 언어는 그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말, 한국말이었으니까.
“저 자식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욕인가?”
“그보다 우리 어떻게 해야 돼? 로드게스 형님이 쓰러지는 건 예상에 없었잖아.”
“그건…….”
용병들이 그런 문수르의 말에 혼란을 느낄 무렵.
땡땡땡!
“몬스터다!”
몬스터의 침입을 알리는 경고 마법이 이제르트 자작령을 뒤덮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