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5.
면회실 밖으로 나온 순간이었다.
쿠웅!
굉음과 함께 면회실이 폭발했다. 구치소 전체가 크게 흔들릴 정도로 큰 폭발이었다.
하지만 그 폭발 뒤에 구치소의 관계자들이 움직인 건 몇 분의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였다.
사내는…….
“돈이 대단하군.”
아니, 박문수 그는 자신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폭발의 강력한 위력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 그의 양손은 피로 흠뻑 물들어 있었다. 문수는 그런 자신의 두 손을 바라봤다.
보기만 해도 흉물스러운 핏덩이들이었지만, 문수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제 옷에 피를 닦았다. 하얀색 셔츠가 붉게 물들었다. 문수는 그 상태로 구치소를 나왔다.
이윽고 멋진 세단이 아니라, 큼지막한 컨테이너 트럭이 문수의 앞에 섰다. 컨테이너가 열리자 문수는 그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팟팟!
기다렸다는 듯이 컨테이너 내부에 설치된 전등이 빛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컨테이너 안은 컨테이너의 그것과는 다르게, 아주 멋진 고급 호텔의 내부처럼 꾸며져 있었다. 그 중심에는 텔레비전 한 대가 있었고, 그 텔레비전을 바라보는 노인이 있었다.
“뭘 그렇게 보십니까?”
노인, 한석균은 문수의 물음에 손가락으로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그건 뉴스였다. 속보를 알려주는 뉴스.
뉴스의 아나운서는 말하고 있었다.
- 미성년자성폭행 및 살해 용의자 조길태의 친부가 유서를 남긴 채 자살을 했습니다.
섬뜩한 속보였다.
그러나 문수는 그 속보에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벌써 손을 쓰신 겁니까?”
“이것도 내가 가르침 중 하나네. 뭐가 되었건 간에 일단 한 번 했으면 끝장을 봐야하네. 특히 인간을 상대로 하는 일은 더더욱. 사람 속이란 건 결코 모르는 법이니까.”
한석균.
문수에게 조길태의 살인을 명령했던 그는 문수가 조길태를 고문하며 죽이는 동안, 그의 아버지였던 자를 자살로 몰아넣었다.
소름 돋는 노인이다.
막대한 부를 이룩하고, 그 부를 기반으로 엄청난 권력을 구축한 조길태는 나름 사회의 저명인사 한 명쯤은 가소롭게 죽일 수 있었다.
만약 몇 시간 전의 문수였다면 그런 한석균의 모습에 몸을 떨거나, 침을 삼켰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번 수업은 이걸로 끝입니까?”
담담하게, 작금의 상황을 문수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가소롭게 받아들였다.
한석균은 그런 문수의 모습에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자네의 모습을 보니, 이번 수업이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던 것 같군. 그런 의미에서 채점을 해볼까?”
한석균은 등을 돌렸다. 텔레비전을 보던 그가 이번에는 문수를 바라봤다.
“놈을 어떻게 죽였지?”
“일단 처음에는 손톱부터 뽑았습니다. 보통 소설을 쓸 땐 그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하던데…….”
“오호. 하지만 도구가 없었을 텐데?”
“예. 처음에는 어떻게 했는데 나중엔 힘들어서 그냥 놈의 손가락을 발로 밟고 으깬 다음에 손톱을 뺐습니다. 뭐, 효과는 비슷했다고 봅니다.”
“그 다음은?”
“이빨을 뽑았습니다.”
“그건 좀 쉬웠겠군.”
“쉽긴 했는데…… 서너 개 뽑으니까 피가 줄줄 흘러 이러다 출혈과다로 죽을 것 같아서 그건 거기서 멈췄습니다.”
“그 다음은?”
“사실 그 정도 되니까 거의 죽어가더군요. 그래서 상징적인 공포를 안겨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징적인 공포?”
문수는 말을 하기 전 검지와 중지로 자신의 두 눈깔을 가리켰다.
“눈알을 뺐습니다.”
“오호.”
“의외로 안구라는 게 크더군요. 그리고 무겁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조금 색다른 느낌이긴 했습니다. 그리고 두 눈을 빼고 다니까 놈이 죽어있더군요.”
“생각보다 인상적이지 못하군. 내가 자네 같은 힘이 있었다면 심장을 터뜨린다거나, 뇌를 곤죽으로 만든다거나 했을 텐데 말이야.”
섬뜩한 대화다. 누가 듣는다면 사이코패스 두 명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아니, 사실 그 표현은 그렇게까지 틀린 표현은 아닐 것이다. 한석균과 박문수, 그 둘은 이제까지 또는 앞으로 결국 손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으니까.
“그래서 무엇을 느꼈나?”
“생각보다 살인이 쉽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 나와 생각이 같군. 의외로 사람 목숨이란 건 유리컵보다 약하고는 하지.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하네. 하루에 사람의 실수로 깨지는 유리컵이 많을지, 아니면 사람의 실수로 죽는 인간이 많을지. 흡연자나, 자동차 운전자를 포함하면 왠지 깨지는 유리컵보다 죽는 사람 숫자가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 정도네.”
이것저것 설명을 곁들이던 한석균.
그런 그가 다시 물었다.
“살인은 쉽다. 단지 그것뿐인가?”
“살인이 쉽다기보다는 사람이 참 쉽게 죽는다는 걸 느꼈습니다.”
“오호. 그리고?”
“그리고…….”
문수는 잠시 말을 멈추고, 무언가를 생각한 후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역시 쉽게 죽는 사람이란 걸 자각했습니다.”
한석균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그는 만족했다. 이번 교육으로 통해 문수는 앞으로 가장 필요한 것을 얻었으니까.
“노크 센터로 돌아가지.”
“이것으로 끝난 겁니까?”
“남은 6개월 동안 마무리 작업을 하도록 하지. 그 다음에는 곧바로 케르빈 월드로 넘어갈 걸세.”
그 말을 들은 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에 한숨 자두는 게 좋겠지.”
한석균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문수는 그런 한석균의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지금 졸리진 않았다. 아니, 과연 피곤하다고 해서 잘 수나 있을까?
‘사람을 죽였다.’
그는 처음으로 살인을 했다. 그 놈이 죽어 마땅하고, 다시 똑같은 상황이 온다면 놈을 잔인하게, 고통스럽게 죽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인이란 사실 자체가 부정되는 건 아니다.
문수는 사람을 죽였고, 그것이 처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담담할 순 있어도, 느긋할 순 없다.
“잠이 올 리가 있습니까?”
문수의 말에 한석균은 지팡이로 문수의 두 다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 것치고 자네 다리는 꽤나 흔들리는군.”
“예?”
그 말에 자기 다리를 바라보는 문수. 그런 그의 두 다리를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피로? 긴장? 공포?
모르겠다.
“어? 이게 왜 이러지?”
그러나 문수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심지어 자신조차 느끼지 못하는 이 떨림에 놀랐다.
한석균은 그런 문수에게 짤막한 설명을 해줬다.
“그게 바로 인간의 본능이란 거네. 참으로 우스운 놈이지.”
문수가 잠든 이후 둘을 실은 컨테이너 박스는 노크 센터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한석균은 스마트폰을 통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역시 내 선택이 틀리진 않았군.”
통화를 하는 한석균의 눈빛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 바로 준비하게. 6개월 동안 이리저리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겠지. 좀 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거야.”
시간을 단축한다. 당연히 문수가 케르빈 월드로 향하는 일을 말하는 거겠지.
“여하튼 그를 죽일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군.”
그러나 이어진 한석균의 말은 섬뜩한 것이었다.
“6개월 동안의 시간이 아깝긴 하지만 이번 시험에서 부적격하다는 게 판단됐으면 제거해야 됐으니까. 아무렴.”
만약 이번에 문수가 조금이라도 어수룩한 모습을 보이거나, 반대로 너무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면…….
한석균은 그를 죽였을 것이다.
이미 그가 사람 한둘쯤은 죽여도 무방한 권력과 힘이 있다는 건 증명됐다. 문수를 죽이는 건 더 쉬운 일이다. 노크 센터로 돌아가는 즉시, 그에게 투입되는 약물의 양을, 훈련의 양을 살짝만 과다하게 잡아도 문수는 내일 깨어나지 못할 테니까.
그 정도로 한석균에게 이번 일은 중요한 일이었다.
아니, 일이라는 표현 자체를 쓰는 게 이상한 거다.
그에게 있어 이번 일은 숙명이다. 이 세계, 지구라는 세계, 어스 월드에 오는 순간 언젠가는 기필코 해야 하는 일!
목숨이 다하기 전에 그는 어떻게든 그 일을 해야 했다.
“녀석이 케르빈 월드에서 살아 돌아오면, 일단 그 다음에는 놈을 내 후계자로 공식 발표할 걸세. 그에 맞게 법적인 준비를 마치게. 녀석이 내 숙명을 대신 해준다면, 나 역시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줘야지. 단지 걱정되는 건, 이 목숨이 얼마나 질길지, 그거로군.”
쿨럭!
한석균은 말과 함께 기침을 내뱉었다. 한 번의 기침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너머로는 엄청나게 걱정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리고 한석균은 제 앞섬을 붉게 물든 핏물을 볼 수 있었다.
각혈(?血).
한석균의 기침은 단순한 기침이 아니었다.
“이 목숨이 다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최소한의 결과물은 봐야지. 아무렴. 아아, 괜찮네. 그저 기침일 뿐이네. 어쨌거나 잘 준비해주게. 지금 믿을 건 자네 뿐이니까.”
그것으로 통화를 끝낸 한석균은 두 눈을 감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기 전에 해야지.”
노크 센터로 돌아온 이후에는 매뉴얼에 몇 가지 수정이 있었다. 일단 6개월이던 계획이 4개월로 단축됐다. 당연히 문수의 훈련량과 수업량은 그만큼 늘어났다.
문수는 그런 변화에 투정이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 스스로 훈련량을 늘릴 정도였다.
문수의 발전 속도는 더 빨라졌다. 그는 이미 예전에 인간의 한계를 넘긴 몸뚱이였지만, 그럼에도 그의 발전 속도는 줄어들 기미가 안 보였다. 정체기 따위는 없었다.
한편 새로운 수업 내용도 추가됐다. 그건 바로 경영학에 대한 것이었다. 사실 경영 자체에 대한 수업은 배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케르빈 월드로 넘어간 후에 이제르트 자작가가 명맥을 유지하면 그 영지를 부흥시키는 게 문수의 일이었으니까. 경영을 모르는 놈이 영지를 부흥시킨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새롭게 추가된 경영은 케르빈 월드의 개념을 기반으로 한 게 아니었다.
“이건 요즘 시대에나 쓸법한 경영학 아닙니까?”
“맞네. 보통 요즘 CEO들이 배우는 경영학이지.”
“그게 저한테 필요합니까?”
문수는 이해가 안 갔다. 그에게 필요한 건 어디까지나 케르빈 월드에서 통용되는 지식이니까.
한석균은 그런 문수에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냥 배우게. 배워서 남주나?”
“……알겠습니다.”
문수가 뭐라고 투정을 부릴 입장은 아니었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4개월로 잡혀있던 매뉴얼을 문수는 20일 더 단축시켰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한석균은 준비해두었던 가장 중요한 것을 문수에게 건네줬다.
“이게 그겁니까?”
“맞네. 그게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거지.”
한석균이 건네준 건 시계였다. 그냥 보기에는 나름 세련되어 보이는 손목시계 말이다.
“사용법은 알고 있겠지?”
“한 백 번은 들은 거 같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시 말해주지.”
조금 비싸보인다, 라는 개념을 제외하면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시계. 하지만 이 시계가 바로 케르빈 월드와 어스 월드, 각기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해주는 시계였다.
차원이동장치!
신이 만든 울타리를 뛰어넘는 위대한 발명품!
“시계를 차고, 타이머를 맞춘 뒤에 문을 두드리듯, 허공을 노크하면 되네. 시동어는 노크노크. 2번이네. 현재 시계 내의 에너지양으로는 2번의 차원이동이 가능하네. 어스 월드에서 케르빈 월드로 가고 동시에 케르빈 월드에서 어스 월드로 오고. 하지만 분명한 건 마나가 없는 어스 월드와는 다르게 마나가 풍족한 케르빈 월드에선 특별한 조건이 따르면 노크 클락의 에너지가 찰 수 있네.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만약 자네가 어스 월드로 돌아온 상황에서 실수로 인해 충전 없이 케르빈 월드로 가게 되는 일은…… 결단코 있어서는 안 되네.”
“알겠습니다.”
노크 클락의 등장.
한석균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보관하던 그것이 이윽고 문수의 손목에 차였을 때.
드디어 노크맨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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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부터 이계 케르빈 월드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