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3화. 각오>
1.
찰칵찰칵찰칵!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카메라 플래시는 태양이 오히려 가소롭게 보일 정도로 엄청났다.
그 플래시의 중심에는 옷가지를 뒤집어 쓴 사내가 있었다. 사내의 몸은 포승줄에 묶였고, 그 줄은 경찰들의 손에 잡혀 있었다.
“조길철 씨, 아버지의 도움으로 엄청난 변호사 군단을 꾸렸는데 양심의 가책은 없으십니까?”
“피해자 부모 중 한 명이 외압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었다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들은 연신 질문을 던졌고, 그 사이에서 옷가지를 뒤집어 쓴 사내는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를 본 카메라 기자 한 명이 이죽거렸다.
“미친 새끼. 여기서 웃어?”
옆 동료가 거들었다.
“제정신이 아니라니까. 애들을 그렇게 감금하고, 강간한 놈이 무슨 자신이 있다고 변호사를 고용하냐?”
“그것도 보통 변호사냐? 전부 기라성 같은 변호사들이더만.”
“쯧쯧쯧, 아무리 돈 받고 사람 구하는 게 그들 직업이라지만, 저 새끼 같은 놈을 돈 받고 구하고 싶을까?”
“세상이 미쳐가는 거지.”
찰칵찰칵!
온갖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그들의 카메라는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고 있었다. 그들 역시 결국 저런 흉악범 덕분에 이번 한 달 동안은 빌어먹을 수 있는 처지였다. 가끔은 그 기자라는 인간이 범인보다 더 잔인해지기도 하는 법이니까.
2.
사회적으로 성범죄자에 대한 분노는 높아져만 간다. 특히 미성년자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은 나날이 높아져갔다.
매일 어디선가 미성년자성범죄에 대한 뉴스가 끊이질 않았다. 딱히 예전보다 미성년자성범죄율이 증가한 것도 아닌데, 언론에 노출되는 횟수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
그런 와중에 독특한 사건이 일어났다.
“조길철. 아버지는 대형 로펌의 간부 중 한 명이고, 본인은 해외 명문대를 나온 학생이지. 어머니가 차려준 커피숍에서 매달 수천만 원이 넘는 돈을 용돈 삼아 받는 놈이고.”
조길철.
13세, 15세, 15세.
3명의 여학생들을 납치하고 감금한 채 폭력과 강간을 일삼은 놈이다. 심지어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자신의 친구들을 데려와 같이 강간과 폭력을 일삼았고, 나중에는 아이들을 이용해 성매매까지 했다.
세상은 이 사건에 분노했다.
문수도 마찬가지였다.
“미친놈 아닙니까? 더군다나 아버지가 변호사라면서요? 그것도 판사 출신 변호사. 그런 인간이면 자기 아들이 그딴 짓 하자마자 호적에서 파고 때려죽이는 게 도리 아닙니까?”
심지어 조길철은 반성의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가 가진 배경을 이용해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중이었다.
더 웃긴 건 세간에서도 놈이 기껏해야 3년 정도의 징역살이로 끝날 거란 의견이 대다수였다.
녀석이 납치하고, 감금하며, 강간했던 어린 여학생 중 한 명은 결국 계속되는 폭력과 강간에 사망에까지 이르렀는데 말이다.
“보통은 자네와 같은 반응을 보이지. 하지만 말이야…… 이번 일은 의외로 재미난 부분이 많이 있네.”
“이게 재미납니까?”
“잘 보게. 자네가 자기 입으로 말했지? 판사 출신의 변호사인 아버지인 작자가 어떻게 그런 짐승만도 못한 놈을 변호하기 위해 그렇게 힘을 쓰는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아마 다른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 정말 그런 썩어 빠진 로펌은 쳐다보지도 말아야지. 그런 놈들은 그냥 콱 뒈져버려라.”
“그게 정상 아닙니까?”
“정상? 자네 태어나서 법원에 몇 번이나 가봤나.”
“예?”
“말 그대로네. 자네 법원에 몇 번이나 가봤나? 혹은 자네 부모나 친구들 중에 법원에 간 사람이 얼마나 되지?”
“그건…….”
법원.
의외로 단어 자체는 친숙하다. 언론을 통해서 질리도록 보는 곳이다. 심지어 법에 대한 지식을 주는 프로그램들이 넘쳐나고, 법원을 소재로 한 드라마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주변에서도 이야기는 많이 듣는다. 누가누가 이혼을 위해서 법원에 갔다더라, 누가누가 사기를 치다 걸려서 법원에 갔다더라…….
하지만 막상 주변인들 중에서 법원에 갈 만한 경우가 얼마나 될까?
본인이 법원에 가는 경우는?
‘의외로 없다.’
생각해보면 법원에 문제가 생겨서 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법원에 가는 걸 꺼려한다.
하물며 변호사를 선임하기 위해 변호사를 찾아가는 경우는…….
“한국에서 변호사하면 일단 돈부터 떠오르지. 변호사 본인이든, 변호사를 선임하려는 사람이든 말이야.”
한석균의 말에 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조금 생각을 달리 하지. 자네는 지금 아주 중요한 법정 다툼을 하고 있네. 소송이라고 하지. 이 소송에서 지면 알거지가 되는 상황이야. 하물며 자네 재산이 수백억이 넘는다면? 이 돈을 지키기 위해선 뭐라도 하겠지. 그리고 지키기 위해선 누가 필요할까?”
“변호가 필요하겠죠.”
“자, 그럼 실력 있는 변호사를 찾겠지? 온갖 로펌들을 찾아다닐 거야. 자, 그럼 여기서 지나가는 길에 돌에 맞아 죽어 마땅한 놈을 징역 3년 정도로 끝나게 만든 로펌이 있네. 실력 하나는 끝내준다는 소리지. 그럼 자네는 그 로펌에 의뢰를 하겠는가?”
“그야…….”
문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굳이 대합해야 했다면, 예, 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한석균은 고개를 끄덕였다.
“법이 사업 아이템으로 쓰이는 세상이네. 노이즈 마케팅도 훌륭한 마케팅 방법 중 하나지.”
“그렇다면 이 강간범의 아버지란 작자가 자기 이익을 위해서 아들 변호를 한다는 겁니까?”
“그래도 자기 핏줄인데, 뭐든 해야지. 대한민국의 자식사랑은 세계가 인정하지 않은가?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더군다나 이번 일 같은 경우에는 모두가 욕을 하더라도, 일부에선 이런 이야기도 나오겠지. 그래도 부자의 정은 어찌하지 못하는 거다. 아들을 위해서 모든 체면을 불사하고 그렇게 하는 모습이 정의롭진 못하지만 이해는 된다. 뭐, 일부이긴 하겠지만 일부라도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가지는 의미는 다르지.”
한석균의 이야기를 들은 문수는 고개를 숙였다.
“정말 돌에 맞아 죽어도 시원찮을 놈이 이런저런 이유로 살아남는다는 거군요.”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나?”
“예?”
“그 놈이 정말 죽어 마땅한 놈이라고 생각하나?”
“당연한 거 아닙니까?”
문수는 무슨 그런 질문을 하느냐, 그런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한석균은 입가에 짓고 있던 미소를 싹 지웠다. 그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했다.
“그럼 놈을 죽이라면 죽일 수 있는가?”
“예?”
“자네 말대로 죽어 마땅한 놈이라면,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죽여도 괜찮은 거 아닌가?”
“그게 무슨…….”
“자네는 반년 만에 노크 센터에서 나오면서 의심했을 거야. 대체 무슨 이유로 세상에 나왔을까? 대체 어떤 훈련을 받으려고, 어떤 수업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교육을 받았으니까요.”
“맞네. 난 훈련을 위해서, 앞으로 있을 거사를 위해 가장 중요한 수업을 준비해두었네.”
“그 수업이란 게…….”
“죽이게.”
꿀꺽!
문수는 침을 삼켰다. 동시에 문수는 한석균이 하는 말의 저의를 이해했다. 너무나도 완벽하게 이해했다.
그럼에도 문수는 되물었다.
“누구를 말입니까?”
“조길태. 그 놈을 죽이게. 그 어떤 무기도 쓰지 않고, 맨손으로 때려서 말일세. 머리통을 깨부수든, 눈알을 파든, 불알을 부수든 이빨을 전부 뽑든 맨손으로 놈을 죽이게.”
툭툭!
한석균은 말과 함께 지팡이로 문수의 몸을 건드렸다.
“지금 자네라면 적어도 맨손으로 인간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닐 걸세. 아마 이제까지 한 육체적 훈련 중에선 가장 쉬운 일이겠지.”
톡톡!
이윽고 한석균이 지팡이로 제 머리를 두드렸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일이겠지. 그렇기에 이번 훈련이 필요할 걸세.”
“아…….”
문수는 이해했다.
“이제부터 자네가 케르빈 월드에 가게 된다면, 자네는 좋든 싫든 무수히 많은 자를 죽여야 하네.”
이번 훈련은 바로 그것이다.
“그래, 맞아. 자네는 살인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어.”
3.
소설을 쓸 때면 언제나 한 번쯤 집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었다.
그건 바로 주인공이 첫 살인을 할 때, 그 부분을 어떻게 서술해야하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진중한 분위기를 선호했던 문수는 그 부분에 대해 자세한 서술을 하곤 했다. 주인공이 첫 살인에서 고뇌하고, 동시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많은 혼란을 겪도록 말이다.
‘세간의 평가는 별로였지.’
하지만 그런 내용을 삽입하면, 편집부와의 이야기 도중 삭제되거나 축소되고는 했다. 혹여 제대로 나온다고 해도 독자들은 그 이야기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때로는 그 부분이 찌질하다고 여기고, 비판을 하기도 했다.
문수는 그런 독자들의 시선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그는 나름 당위성을 부여한다고 그런 내용을 집어넣고는 했지만, 사실 소설의 전체적인 틀을 봤을 때 살인에 대한 주인공의 고찰 따위는 무의미했다. 까놓고 말해서 소설이 진행될수록 주인공은 정말 무수히 많은 살인을 하게 되니까. 오히려 어설프게 살인에 대한 고찰을 넣으면, 가식으로 변하고는 했다.
그래서 점점 작품수가 많아질수록, 그런 부분은 삭제했다. 오히려 첫 살인에도 무덤덤한 표정을 짓게 만들었다. 주인공이란 특별한 존재니까 그 정도쯤은 당연한 거 아닐까, 라며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덜덜덜!
그러나 역시 현실과 소설은 다른 모양이다.
‘내가 사람을 죽인다고?’
살인.
소설 속에서는 질리도록 표현하고, 서술했던 것이다. 어느 장면에서는 한 번에 수만 명이 죽기도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소설은 소설이다. 활자로만 이루어진 세상 속에서의 결과물은 아무래도 좋겠다.
‘젠장.’
문수는 긴장했다. 아니, 긴장상태라기보다는 그는 이제 패닉 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사람을 죽인다니, 내가 그걸 어떻게 해?’
이성은 말한다.
살인은 절대 할 수 없다고!
하지만 반대로 이성이기에 반문한다.
‘그 놈은 죽어도 싸지 않나?’
길 가는 보통 사람을 죽이라고 한다면 결단코 거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조길태란 놈은 죽어 마땅한 놈이다. 오히려 그런 놈이 살아남는다는 사실 자체가 오류고, 부조리한 거다.
그런 놈이라면 살인이 싫어도, 기회가 있다면 죽이는 게 낫지 않을까?
놈의 손에 당한 아이들의 부모들도, 세상 사람들 대부분도 그의 죽음을 기뻐할 텐데?
‘죽여?’
더군다나 문수는 조만간 케르빈 월드로 가야 한다.
일이 잘 풀리면 좋겠지. 하지만 꼭 일이 잘 풀릴까? 문수, 그의 소설만 봐도 그렇다. 주인공의 행보가 언제나 꽃밭이었고, 햇빛이 가득했었나? 아니다. 온갖 고뇌와 역경이 있었다. 케르빈 월드에서의 생활도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오히려 살인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전쟁이 일상다반사인 세계다. 그런 세계에서는 어쩌면 삶보다 죽음이 더 친숙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만약 한석균의 가문이, 이제르트 자작가가 어떠한 일로 몰살을 당했다면?
‘피의 복수.’
한석균은 누누이 말했다.
부흥시킬 가문이 없다면, 피의 복수를 하라고.
그 피의 복수를 위해서 무수히 많은 이들을 죽여야 한다고.
‘젠장.’
여기서 갈등이 생겼다. 케르빈 월드 사람들은 죽여도 좋고, 지구 사람들은 죽이면 안 된다?
우스운 소리다.
‘어떻게 하라고?’
이성적으로 생각할수록, 오히려 놈을 죽이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오히려 케르빈 월드에서 어설프게 하다가 위기에 빠질 바에는 그곳으로 가기 전에 제대로 각오를 다지는 게 나을 것 같다.
덜덜덜!
‘빌어먹을!’
그러나 이성적으로 납득하려고 해도, 문수의 온몸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은 도무지 어떤 방법으로도 멈출 것 같지 않았다.
한석균이 그런 문수에게 말했다.
“못하겠는가?”
“자, 잠깐.”
문수는 떨면서도 말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그리고 몇 분 후.
“어떻게 죽이면 되는 겁니까?”
문수의 떨림이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