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3.
한석균과 함께 이동한 것은 강원도 산골이었다. 요즘 시대에 산골이라고 하면, 그냥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여기겠지만 한석균과 향한 산골은 그런 종류의 산골이 아니었다.
“여기 대한민국은 맞습니까?”
우거진 숲이 가득한 산세는 등산객이 오고가는 종류의 그것과는 질이 달랐다.
“일단은 군사지역이라네.”
“군사지역이요?”
“민간인의 출입을 막기에는 그게 가장 좋더군. 아무래도 내가 하는 일이 세간에 알려져서 좋을 건 없지 않은가?”
“그렇긴 하죠.”
어느 순간 자동차는 멈췄다. 길이 사라진 것이다. 문수는 살짝 당황했다.
“길이 없는데…… 도보로 가야합니까?”
문수의 머릿속에 휠체어가 떠올랐다. 솔직히 문수야 아직 팔팔한 이십대 청춘이니까 이딴 산쯤이야…….
‘솔직히 이 산, 나도 힘들겠다.’
차문 밖으로 보이는 산세를 보니까 벌써부터 현기증이 났다. 등산을 그다지 즐기는 성격은 아니지만, 등산을 즐긴다고 해도 여긴 사람이 탈만한 산이 아니었다.
이런 산을 휠체어를 탄 한석균이 이동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자네는 내가 도보로 갈 수 있을 것 같나?”
한석균은 말과 함께 옅은 미소를 지었다. 기세등등한 그 미소에 문수는 반성했다.
‘그래, 이 자는…….’
한석균, 그가 누구인가?
1천조 원이 넘어가는 거부를 소유한, 세계 제일의 거부다. 대한민국에서는 황제, 그 이상으로 군림하는 자다.
그런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런 산쯤은 1년 만에 전부 번지르르한 스키장이고, 골프장으로도 만들 수 있다. 그런 그가 수십여 년에 걸쳐 무언가를 준비했다면, 그 결과물은 보통이 아닐 터.
“이미 도착했네.”
쿠구구구!
한석균의 말과 함께 자동차 앞의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건, 어디론가 향하는 통로였다.
통로를 타고 몇 분을 내려갔을까?
‘10분? 12분?’
지하 통로는 길었다. 자동차의 속도가 결코 느리지 않았음에도 10분 이상이 넘어갔으니, 통로 길이만 최소 5킬로미터는 훌쩍 넘을 듯했다. 이런 통로를 개인이 만들다니? 돈도 돈이지만, 이 정도 대규모 공사를 하는데 들키지 않았단 말인가?
“아무래도 보안이 중요해서 말이지. 통로가 길면, 외부에서 누군가 몰래 들어와도 들킬 확률이 높아지지.”
“대체 어떤 걸 준비하셨습니까?”
“말했잖은가? 자네를 훌륭한 내 대리인으로 만들기 위한 장소라고. 모든 게 준비되어 있네.”
문수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덜덜덜!
이윽고 과속방지턱이 등장하더니.
끼이익!
계속해서 일정하던 자동차의 속도가 감속하기 시작했다. 문수는 거의 도착했음을 직감했다.
‘뭐지?’
대체 무엇이 준비되어 있는 걸까?
꿀꺽!
침 한 번 삼킨 문수는 조심스럽게 차문 밖을 보았다. 많은 것들이 문수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문수의 감상은…….
“마치 항공모함을 보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여긴 항모 위가 아니라 지하일 테지만…….”
“자네 말이 맞네. 항공모함과 비슷한 구조를 띄고 있지. 하지만 설비는 지금 운행 중인 항공모함보다 훨씬 최신이네. 더불어 모든 에너지는 자체적인 원자력 발전을 통해 공급하지.”
“힉!”
문수는 여기서 질릴 수밖에 없었다.
개인이 사적인 용도로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고, 사용한단 말인가?
“너무 놀라지 말게. 전 세계에 원자력 발전소가 몇 개인지 알고 있나? 적어도 외우는 게 벅찰 정도는 되네. 반대로 이제부터 자제는 어쩌면 지구 인류 중에는 최초로 차원 이동을 통한 다른 세계로 넘어갈 걸세. 원자력 발전 같은 건 아주 사소한 일이네.”
“그런 의미로 사소한 일 같지는 않습니다만…….”
“일단 오늘 하루는 앞으로 있을 계획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지.”
상황을 빠르게 진행됐다. 한석균은 시간을 허비하고 싶은 생각이 티끌만큼도 없었으니까.
그는 곧장 지하에 마련된…… 노크 센터(Knock Center)라고 명명된 곳에 마련된 컨퍼런스 룸으로 문수를 안내했다. 문수는 왜 이 장소가 노크 센터인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진 않았다. 지금 그걸 물어보는 것보다는 입을 다누는 게 낫다는 것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으니까.
컨퍼런스 룸에는 이미 대부분의 준비가 끝난 상황이었다. 한석균은 리모컨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준비된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의 설명은 무려 5시간 동안 이어졌다. 대부분의 주요내용들은 생략, 생략, 생략으로 넘어갔음에도 말이다. 그 모든 걸 보고, 듣던 문수는 설명만으로도 질릴 정도였다.
하지만 문수는 단 한 번도 졸거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꿀꺽!
오히려 그는 설명이 끝나기 직전까지 긴장된 기색이 역력했다.
‘대단한 계획이구나.’
한석균의 준비는 엄청나게 철두철미한 것이었고, 그가 그렇게까지 준비하면서 이루고자 하는 숙원은 엄청난 스케일을 지닌 일이었다.
솔직히 여기서 문수는 걱정이 생겼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한석균에 요구하는 대리인은 말 그대로 초인이었다. 반면 문수는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거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대체 왜 나일까?’
몰려오는 자괴감.
‘왜 그는 나를 선택했을까?’
동시에 이렇게까지 준비한 한석균이 자신을 택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문수가 손을 들었다.
“첫 질문이로군.”
처음으로 하는 그의 질문을 한석균은 받아들였다.
“말해보게.”
“제가 이 모든 걸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일세. 만약 불가능했다면 애초에 자네를 만나러 오지도 않았을 것이야.”
“알겠습니다.”
문수가 각오를 다졌다.
“그럼 곧바로 시작해봅시다.”
4.
문수가 차원 이동에 앞서 익혀야 하는 건 크게 4가지였다.
하나, 케르빈 월드의 언어, 문화, 특징 등을 숙지하는 것.
둘, 육체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
셋, 앞으로 계획을 진행함에 있어서 필요한 전술, 전략, 경영 등의 공부를 하는 것.
넷, 한석균이 준비한 온갖 기괴한 장비들의 이용법을 숙지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은 매우 조밀한 매뉴얼로 만들어졌고, 문수의 모든 생활은 그 매뉴얼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문제가 많았다.
“우웩……!”
문수는 매뉴얼을 따라 하고 싶었는데, 처음부터 매뉴얼에 나온 훈련양은 근성이나 의지로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 훈련 전에는 언제나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약물이 투입됐다. 약물의 효과는 엄청났는데, 반대로 눈에 띄는 부작용도 있었다.
“헐.”
자고 일어나면 머리털이 1/10씩 빠져나갔다. 반대로 자고 일어날 때마다 온몸에는 스스로가 체감할 정도의 근육이 붙기 시작했다.
더불어 수면 시간이 줄어들었고, 집중력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구토를 하는 숫자는 덩달아 들어갔다. 식사만 하면 일단 게워내고 시작했다. 신기한 건 토하고, 토해도 지쳐 쓰러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목이 헐 정도로 구토를 해도, 다음날 일어나면 몸은 멀쩡했다.
그리고 배우는 모든 것은 마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정보를 저장하듯, 문수의 머릿속에 쏙쏙 주입됐다.
결과적으로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문수는 매뉴얼을 따라가는데 조금도 무리가 없었다.
오히려 여유마저 생길 정도였다.
그리고 한 달 동안 문수에게 생긴 변화는 엄청난 것이었다.
“아홉……!”
스쿼트가 뭔지도 모르던 청년. 그런 청년이 한 달 만에 200킬로그램이 넘는 중량을 어깨에 짊어지고 스쿼트를 하기 시작했다.
그뿐인가? 스쿼트를 비롯한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를 포함한 3대 운동의 중량이 단숨에 500킬로그램을 넘겼다.
아마 파워 리프터들이나, 프로 보디빌더들, 올림픽 급 운동선수들이 보았다면 놀라움보다는 절망했을 것이다. 그들이 수년에 걸쳐 이룩한 성과가 약물의 도움을 받으면 한 달 만에 달성된다는 걸, 맨정신으로는 납득할 수 없을 테니까.
놀라운 점은 이러한 중량 운동들의 중량은 조금의 정체기도 없이 매일 늘어난다는 점이었다.
더 놀라운 점은 따로 있었다.
“오늘 체중이 몇인가?”
“운동 전에 쟀을 때는 78킬로그램이었습니다.”
“어제보다 오히려 줄었군.”
한 달 동안 먹는 것마다 게워냈던 문수인데 이상하게도 체중은 매일 늘어났다. 한때는 100킬로그램을 훌쩍 넘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반대로 매일 체중이 2,3킬로그램씩 줄더니 이제 78킬로그램이 된 것이다. 그런 주제에 중량 운동의 중량은 매일 올라가는 것이다.
근육의 질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매뉴얼대로 진행되는군.”
한석균은 이런 문수의 변화에 만족했다. 지금 문수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신체강화 따위가 아니었다. 그건 일종의 진화였다. 보다 뛰어난 형태로의 변화!
“운동이 끝나면 곧장 명상에 들어가고 명상이 끝나는 즉시 공부를 시작하겠네.”
“알겠습니다.”
더군다나 문수의 변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문수가 매일 운동 후에 하는 명상은 보통 명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케르빈 월드의 모든 무인(武人)들이 익히기를 꿈꾸는 마나 호흡법이었다. 마나의 양이 극도로 적은 지구 세계, 어스 월드에서는 무가치하지만 반대로 마나가 충만한 케르빈 월드로 간다면, 문수는 마나 호흡법을 통해 단숨에 단전을 개발할 것이다.
더불어 현재 문수에게 투입되는 약물들 중에는 그 단전개발을 가속시키는 것들도 있었다.
‘부작용은 탈모뿐인가?’
단지 마음에 걸리는 건 탈모였다. 계속되는 신체 변화를 모근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다.
‘뭐, 탈모 정도야 가발이라도 씌우면 되니까.’
탈모는 예상 내의 부작용이었다. 그렇기에 한석균은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반면 훈련 중간에 휴식 타임을 가질 때마다 문수는 가장 먼저 거울 앞에 섰다.
한 달 동안 단숨에 몸짱 연예인들은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수준의 근육질이 된 자신의 몸을 보기 위해서?
아니다.
“아, 진짜 이거 눈썹도 다 빠지고, 거기 털까지 빠지네…….”
머리털은 이곳에 오고 매뉴얼대로 훈련을 시작한지 열흘 만에 다 빠졌고, 그 다음에는 눈썹, 그 이후에는 아주아주 소중한 부위의 털까지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당연히 다리털이나, 팔에 난 털도 멀쩡할 리 만무했다.
그리고 털이 빠져나갈 때마다 문수의 생김새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괜히 연예인들이 머리빨, 머리빨 하는 게 아니었네.”
딱히 헤어스타일을 통해 외모를 가꾸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정말 온몸의 털이 다 빠지고 나니 사람이 참 없어보였다.
“이거 어떻게 안 되나?”
한석균의 후계자도 좋고, 인류 최초라고 할 수 있는 차원이동도 좋다.
그런데 머리털 다 빠지고, 이런 없어 보이는 모습이면 그런 호사도 호사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미치겠네.”
길게 한숨을 내쉬는 문수.
삐익!
그 순간 휴식시간이 끝났다. 문수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다시 중량 운동을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다음 날…….
“으아악! 결국 다 빠졌어!”
문수의 소중한 곳은 무주공산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