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2화. 훈련>
1.
어느 마법사의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듣던 문수는 지금 자신이 소설을 쓰는 것인지, 보는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상황을 정리하겠습니다.”
한석균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문수는 담담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제가 그 세계…… 이계로 칭하겠습니다. 그곳에서 당신의 가문을 부흥시키면 되는 겁니까?”
이계에서 온 마법사 한석균.
그는 말년에 고향에 대한 애틋함을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갈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하지만 이미 나약해진 한석균의 몸뚱이는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 즉 차원이동을 버틸 수가 없었다.
그는 포기하는 대신에 자신이 다른 적합자를 찾고자 했다. 차원을 넘나들며 고향에서의 소식을 가져오고,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버리게 된 가문을 부흥시켜줄 대리인을 말이다.
소설 소재로 쓰면 나름 괜찮을 법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게 현실이라니?
보통 사람이라면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이해가 빠르군.
“뭐, 자세히 설명해주셨잖습니까? 대충 이야기만 1시간 동안 내내 들을 것 같은데.”
그러나 문수는 담담하게, 작금의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의문이었다.
“왜 하필 접니까?”
“차원이동을 위해선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네. 하나는 자네가 말하는 이계…… 표현을 정리하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어스 월드, 내가 살았던 세계를 케르빈 월드라고 표현하지. 케르빈 월드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일단 영혼이 강력해야 되네. 영혼이 나약하면 차원이동 순간 버티지 못하고 영혼이 깨져버리지.”
“딱히 제 영혼이 강한 것 같진 않던데…….”
“영혼의 강함과 본연의 능력은 별개라네. 보통은 영혼이 강하든 말든 알 바 없지. 영혼 자체를 부정하는 과학자들도 넘쳐나는데 뭘. 여하튼 대충 보니까, 차원이동에 버틸 만큼 영혼이 강력한 인간은 전 세계를 뒤져도 천 명이 되지 않더군.”
“천 명이나 되는 거군요.”
“뭐,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 여하튼 난 그 천 명의 적합자를 토대로 몇 가지 기준을 놓고 채점을 하기 시작했네. 내가 원하는 건 어느 판타지 소설의 그것처럼, 그냥 다짜고짜 이계로 넘어가서 깽판을 치는 게 아닐세. 어디까지나 그곳에서 나와 관련된 것들의 소식을 모아주고 동시에 내가 떠남으로써 큰 피해를 입게 된 가문을 부흥시켜줄 대리인이 필요한 거지. 본연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나와의 궁합도 중요했고, 성격이나 마음가짐도 중요했지. 참으로 힘든 선별과정이었네. 그렇게 이 사람, 저 사람 치고 보니까 3명이 남더군.”
“저는 몇 번째입니까?”
“3명 중 2명을 골랐네. 두 장의 카드가 생겼지. 그 카드를 놓고 자네의 책을 읽게 된 걸세.”
“제가 첫 번째입니까?”
“아니, 자네는 두 번째였어. 자네를 버리고 다른 적합자를 찾아갔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직접 대화를 나눠보니까 역시 서류상으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것에는 차이가 크더군.”
“저는 어떻습니까?”
“자네? 평가는 똑같네. 서류로 본 것과 직접 본 것에는 차이점이 크다는 건 둘 다 똑같더군.”
씨익!
한석균은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긍정적인 쪽이네.”
“기뻐해야 하는 겁니까?”
“아니네. 기뻐해야하는 건 내 쪽이지. 솔직히 말해서 내 입장에서는 누구든 좋았네. 그저 나의 고향에서 작은 소식이라도 들어야 마음 편이 눈을 감을 수 있었거든. 그런 상황에서 자네는 내 기대보다 훨씬 훌륭했네.”
“고작 몇 시간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닌데, 그렇게 쉽게 파악됩니까?”
“내가 필요로 하는 건, 자네가 어떤 동물을 좋아하고, 어떤 여성타입이 이상형이고, 미래의 자녀 계획은 몇 명이고, 어떤 성적 취향인지 그런 게 아니네. 어느 정도의 틀이지. 자네라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틀. 더군다나 말하지 않았던가?”
한석균은 말과 함께 손가락으로 자기 눈을 가리켰다.
“난 마법사일세.”
“사람 마음을 읽을 줄 아십니까?”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이 세계는 강력한 마법을 쓰려면 무지 힘들거든.”
“소위 마나…… 그런 것 때문입니까?”
“맞네. 젊은 적에는 뭐 무리해서 쓰고 그랬는데, 나이 먹으니까 무리를 해도 안 되더군.”
한석균은 말을 멈추었다.
“결정하게.”
그는 더 이상 길게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었다. 이제 남은 건 결정, 그것뿐이었다.
선택지는 문수에게 넘어갔다.
문수는 피식, 웃었다.
“저라는 인간의 틀을 꿰뚫으셨다면, 제가 무슨 대답을 할 지는 이미 아시는 것 아닙니까?”
“자네의 그런 점이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네.”
한석균은 말과 함께 손을 내밀었다.
문수가 그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2.
보통 사람들은 로또 당첨을 인생 역전으로 여긴다. 맞는 말이다. 갑자기 수중에 수십억이 넘는 돈이 들어오면 그게 인색 역전이 아니고 뭐라고 할까?
굳이 로또가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거금을 손에 쥐게 된 이들이 제법 있다.
하지만 과연 그들 중에 하루아침 만에 1천조 원이 넘는 자산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되는 인색 역전을 경험하게 되는 이들이 과연 인류 역사상 존재했을까?
‘내 소설 속에서도 없었지.’
문수가 한석균의 제안을 승낙했을 때, 문수의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문수에게 직책이 생겼다.
“이제부터 자네는 내 공식 후계자이네.”
“예?”
“난 이번 일을 오래 전부터 계획했네. 하지만 자네 같으면 그룹 총수가 이계 간답시고 회사 자금이나 설비로 자기 멋대로 여행하는 걸 보고만 있겠나? 아니면 태클이라도 걸겠나?”
“그럼…….”
“기업의 사운을 건 아주 중요한 사업이랍시고 일단 멋지게 청사진만 그려 놓고, 보안을 위해 극소수의 인물들만 출입을 가능케 했지. 그런 상황에서 적어도 그곳에서 이제 거의 머물다시피 하는 자네가 그나마 의심을 덜 받으려면 내 후계자가 되는 게 편하네.”
“오히려 더 관심을 갖지 않을까요?”
문수는 살짝 긴장했다. 솔직히 한석균이 쓰러진 이후 그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중이다. 그의 후계자란 자리는 그 정도로 중대한 자리였다. 그런 그 자리에 어디 처음 보는 개뼈다귀가 앉는다?
“뭐, 그냥 그렇게 해야지 자네랑 내가 살갑게 붙어 있어도 주변에서 말이 없다는 걸세. 혹여 경영권 같은 걸 기대하진 말게. 1조 원 정도야 융통성 있게 쓸 수 있겠지만 경영의 경영도 모르는 애송이에게 후계자 자리를 내놓을 정도로 노망이 들진 않았지.”
듣던 문수는 심장이 덜컥거렸다.
“1조 원이면 평생 개처럼 행동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가? 내 금전감각이 좀 그렇지. 억 단위 돈은 사실 의미를 두지 않는 성격이네.”
여기서 문수는 한석균이란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다시금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1조 원이라.’
한편으로는 1조 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고민해봤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고민이었다.
‘영화 한 편 찍고 싶다.’
예전부터 꿈이 있었다. 자신의 소설을 베이스로 쟁쟁한 헐리우드 스타를 데려다가 영화를 찍는 것! 모든 소설가라면 거대한 스크린 속에서 자신이 만든 캐릭터가, 몬스터가, 세계가 펼쳐지는 걸 보는 것이 꿈일 테니까. 단 한 번만이라도 말이다.
‘해볼까?’
1조 원이면 가능은 할 터.
‘근데 내 소설이 먹히긴 할까?’
단지 문제는 문수의 소설 내용이겠지.
‘에이, 그냥 각본가 제대로 고용하면 되잖아? 감독은…….’
그러나 문수는 어느 순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보통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제작비가 보통 1억 달러에서 2억 달러 사이 아닌가? 4억 달러만 되도 최고 제작비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1조 원이면 대충 10억 달러인데, 그 돈의 절반만 투입해도 역대 최고 제작비가 될 터.
‘주연은 역시 브래드 피…….’
“이보게.”
“트?”
“트? 무슨 생각하는 건가?”
“예?”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군. 지금 애인이라도 생각하고 있었나?”
“아, 아닙니다. 전 애인도 없어요. 그냥 딴 생각 좀 했을 뿐입니다.”
“충고하나 하지. 만약 자네가 성공적으로 내 수업과 훈련을 거친 뒤에 케르빈 월드로 넘어갔을 때, 그때도 그런 얼빠진 표정을 짓는다면 목숨은 절대 보장 못하네.”
“모, 목숨?”
“자네 판타지 소설가 아닌가?”
“전직이긴 합니다.”
“그럼 판타지 세계가 안전할 거 같나, 아니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가 안전할 것 같나?”
문수는 입을 다물었다. 소설가들마다 생각이 다르긴 하겠지만, 그는 적어도 판타지 세계가 지금 사는 세계보다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부류였으니까.
“조심하겠습니다.”
“알면 됐네.”
“그럼 이제 앞으로 뭐를 하면 됩니까?”
“말했잖은가, 수업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일단 자네는 케르빈 월드에 대한 모든 공부를 해야 하네.”
“뭐 세계관 같은 겁니까?”
“그런 건 몰라도 돼. 중요한 건 언어와 문화, 예법 같은 거지.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언어지.”
“영어 안 씁니까?”
“아라뜨뤼오 프베 마마누 찌브데?”
“안 쓰는군요…….”
“참고로 자넨 거기 가서 기록 같은 건 할 때 한글을 써야 하네.”
“예?”
“거긴 한글 쓰면 절대 해독 못하거든. 일단 언어 공부가 가장 시급하지. 그 다음에는 전투 훈련을 할 걸세.”
“헉!”
문수는 기겁했다.
“저, 언어 쪽은 좀 자신 있는데 몸 쓰는 건 진짜 자신 없는데…….”
“걱정말게. 자네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몸을 키우거나, 운동신경을 늘리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뭐 단숨에 슈퍼맨으로 만들어주는 마법 같은 건 있습니까?”
“마법보다 더 좋은 게 있지. 자네는 세상에서 가장 운동신경 좋고, 운동 능력 뛰어난 사람들이 뭐한다고 생각하나?”
“그야 올림픽이나 세계대회 나오겠죠?”
“그럼 그런 올림픽이나 세계대회에서 가장 금지하는 게 뭔지도 알고 있겠군.”
“당연히 약물……!”
그제야 눈치를 챈 문수.
“약물을 써서 절 강화시키려는 겁니까?”
“난 제약과 의약 분야에서도 적지 않은 수완과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네. 적어도 지금 인류를 기준으로 했을 때 초인을 만들어내는 건 일도 아니지. 뭐, 부작용은…… 그때 가서 보면 되겠지.”
꿀꺽!
침을 삼키는 문수.
하지만 그의 고생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