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4화 (4/293)

4화

“차라도 한 잔…….”

“됐네. 손 씻는 소리가 들리질 않았어.”

“아, 그럼 손 씻고 차 한 잔 타드리겠습니다. 커피가 좋으신가요, 아니면 녹차가 좋으신가요?”

“맹물로 하지.”

“어…… 그럼 수돗물로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따로 물을 사서 먹는 편이 아니라서.”

“정수기 없나?”

“있었는데 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 그냥 수돗물 받아다가 며칠 놔두고 먹습니다. 의외로 괜찮습니다.”

“침만 삼키는 걸로 하지.”

대화를 나누면서 문수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내가 지금 무슨 지랄을 하는 거야?’

세계 최고의 대부호를 모셔두고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짓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솔직히 문수는 그 말 외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가 초대한 손님도 아니고 제멋대로 들어온 손님이다. 목적을 가진 건 한석균 쪽이지 문수 쪽이 아니란 소리다.

“저기 그럼 여기 앉으셔서…….”

“휠체어에 앉아있네. 자네나 앉을 자리를 찾아보게.”

“그냥 서서 듣겠습니다.”

촌극은 끝났다. 이제야 서로가 진지한 대화를 나눌 분위기가 됐다. 그러나 대화는 곧장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석균은 뜸을 들였고, 문수는 침만 삼켰다.

‘가만.’

순간 당황하는 문수.

‘또 침 삼키다가 딸꾹질 나오면?’

며칠 전에 침 삼키다가 인생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그런데 여기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뻔했다. 했다면 정말 천하의 병신 새끼, 신이 도와줘도 안 되는 새끼가 됐을 것이다.

‘아, 진짜. 그렇다고 침을 뱉을 수도 없고.’

침은 나오는데 삼키질 않으니 입 안에 침이 고였다. 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이윽고 한석균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갑작스레 찾아오게 되서 당황하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담담한 반응을 보이는군. 심지어 똥이라니. 내가 돈 좀 번 이후로 내 앞에서 그딴 소리를 지껄인 건 자네가 처음이네.”

초로의 노인이다. 그러나 그 노인이 내뱉는 말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담겨 있었다.

“자네 이름이 박문수 맞는가?”

한석균이 그 힘을 담아 말했다.

“어버…….”

그 순간 박문수의 입에서 고였던 침이 흘러내렸다.

“카악, 툇!”

박문수는 거의 반사적으로 바닥에 침을 뱉었다. 초면에 다짜고짜 똥 싼다고 했을 때도 놀라지 않았던 한석균이 살짝 놀랐다. 문수가 기겁하며 손을 저었다.

“이, 이건 고의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일부러 침을 뱉은…… 일부러 뱉은 건 맞은데 절대 그쪽을 얕보려고나 비난하려는 아주 비도덕적인 이유로 배은 게 아니라…… 아 젠장, 침 뱉는 게 비도덕적인 일이었지. 아! 젠장이란 건 어디까지나 저한테 한 소리고요, 그러니까…… 아 씨발…….”

당황하니까 말이 절로 꼬인다.

“허허.”

한석균은 그런 문수를 보며 묘한 웃음을 흘렸다.

“진정하게.”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제가 지금! 설마 이거 몰래카메라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죠?”

“그런 예능에 나올 인간은 아니네.”

“그렇죠?”

문수는 헤픈 웃음을 흘렸다. 그 헤픈 웃음 속에서 문수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있었다.

한석균은 그 눈빛을 읽었다.

“웃음 속에 비수를 숨겼군. 젊은 놈이 젊어 보이지가 않아.”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혹시 제 장기 같은 게 필요하신 겁니까?”

똥 싸면서 문수는 자신의 처지를 배경으로 소설 한편을 썼다.

별 거 아니다. 어느 재벌가 총수가, 엄청난 부를 쥔 총수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후계자구도는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의사는 말한다. 아주 팔팔한 심장만 구한다면 총수님은 살아나실 수 있습니다! 그 총수는 자신의 모든 돈과 인맥을 이용해 자신에게 맞는 심장의 소유자를 찾으려 했고 그중에 박문수란 청년에 적격자로 뽑힌 거다.

“간입니까? 신장입니까? 혹시 심장? 뭐 십이지장, 대장 이런 건 아니시겠죠?”

한석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노인은 묘한 미소를 입가에 그었다.

만족의 미소일까, 아니면 음흉한 속내를 드러내는 미소일까?

그 미소를 바라보는 문수는 예전 일을 떠올렸다. 그는 글을 쓰고 있었다. 글 속에서 주인공은 거대한 권력을 쥐고 있는 실세와 단판을 지었다. 그 단판 끝에서 그 권력자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고 썼지.’

한 문장으로 권력자의 미소를 표현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만약 그 권력자가 그때 미소를 지었다면 지금의 한석균과 같은 미소를 지었을 것 같다.

‘그때…… 걔가 어떻게 했지?’

이후 그 미소를 지었던 권력자는 자신의 군대를 주인공에게 위임했었다.

‘호의.’

문수는 확신할 순 없지만, 한석균의 미소에 호의가 깃들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재미난 놈이야.”

이윽고 한석균이 입을 열었다.

“그래, 자네 심장이 필요하네.”

역시나!

문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알다시피 난 그냥 자네 심장을 가지고 싶은 게 아니네.”

“거래를 하자는 거지요?”

“그래, 내게는 엄청난 부가 있네. 필요하다면 얼마 기간 동안 자네가 원하는 만큼의 돈을 줄 수도 있다네.”

돈!

요즘 시대에 사람 목숨도 돈에 거래된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사람 목숨은 그다지 비싸지 못했다.

비싸게 팔려봐야 10억 짜리 보험금이겠지.

전쟁 속에서 죽어간 젊은이들의 목숨, 열심히 일하다가 산업현장에서 죽은 이들의 목숨들, 나라를 위해 일하다 죽은 여러 사람들의 목숨값은 결코 10억 원보다 비싸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문수는 행운아다. 보잘 것 없는 목숨을 그는 정말 어마어마한 액수에 팔 수 있으니까.

‘웃기는 소리지.’

문수는 웃음이 나왔다.

주룩…….

그러나 한쪽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한석균이 그 눈물을 보자 물었다.

“슬픈가?”

“목숨이 소중한 건 알겠는데, 그러면 그냥 이 거래를 저버리면 되는데…… 웃긴 게 지금 고민하게 되네요.”

살고 싶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문수는 고민하고 있었다. 자신의 명줄이 비싼 값에 팔린다면, 파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고민 말이다.

“빌어먹을…….”

돈이 없어서 하는 고민이다.

돈만 충분히 있었다면 이런 고민은 조금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이 웬수네요.”

“그렇지, 돈이 웬수지.”

“그쪽은 돈이 은인 아닙니까?”

세상에서 가장 많은 돈을 가졌고, 때문에 물질만능주의사회를 가장 제대로 누리는 인간에게 돈이 웬수라니?

“흐흐, 나는 맨바닥에서 여기까지 올라온 인간이라네. 적어도 돈에 대한 추억은 자네보다 곱절은 많을 거야.”

“그렇다고 합시다.”

문수는 잠깐 생각했다.

“아, 역시 못하겠습니다.”

그런 그가 답을 내렸다.

“정말 심장이 2개면 하나쯤 무상으로 드릴 수도 있겠는데 정말 심장만큼은 드리지 못하겠네요.”

“그런가?”

“응?”

한석균의 반응이 묘했다.

“의외로 간단히 포기하시네요? 아니, 포기가 아니라 혹시 강제로 제 심장을 적출하시려고?”

스스로 겁을 주고, 스스로 기겁하는 문수. 한석균은 그런 문수의 모습에 씨익 웃었다.

“내 몸뚱이가 정상은 아니지만, 심장은 멀쩡하다네. 더불어 심장이 필요하다고 해도 자네 건 나랑 안 맞아. 자네랑 나는 혈액형부터가 다르니까 말일세.”

“예?”

이게 무슨 소리지?

“그, 그럼 저를 찾아온 이유는…….”

“긴 이야기네. 여기서 이야기하기에는 좀 그렇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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