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크맨-2화 (2/293)

2화

<1화. 면접>

1.

꿀꺽!

침을 삼키는 순간 박문수는 아차 싶었다.

‘이, 거 잘못하면 딸국질 올라오겠다.’

침이 목에 걸리면서 허파가 들썩이는 느낌. 마치 탄산음료를 마시고 난 다음에 트림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의 그 느낌이다. 이럴 때면 가끔 딸국질을 했다. 평소는 한두 번에 불과하겠지만…….

딸꾹!

“읍!”

문수는 지금 극도로 긴장한 상황이었다.

‘젠장!’

문수는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시간은 있다. 일단 물 한 잔 마시면서 천천히 생각하는 거다. 그래, 안정을 취하면 된다. 어차피 단발성에 불과할 테니까.

딸국딸국!

하지만 딸국질은 오히려 심해졌다.

“미친!”

쓴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런 문수의 눈에 정수기가 눈에 들어왔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잽싸게 종이컵을 뽑아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1컵, 2컵, 3컵…….

“딸꾹!”

……4컵, 5컵, 6컵.

“꺼억…….”

배가 불러왔다. 트림이 나올 지경이었다. 문수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괜찮아졌나?’

딸꾹!

미치겠다. 제대로 걸렸다. 1년에 한두 번 경험하기도 힘든 딸꾹질 제대로 걸리는 날이 하필 오늘 찾아왔다.

‘왜 하필!’

129곳에 낸 지원서 중 유일하게 서류전형에 통과해 면접기회를 얻었다. 그 기회가 지금 몇 분 후에 오는 상황에서, 왜 하필 이런 빌어먹은 경우가 생긴단 말인가?

‘진정해! 진정! 아직 몇 분 남았어. 보통 딸꾹질은 2∼3분이면 충분히 멈추잖아? 아니, 딸꾹질을 인식하지 말자. 그래 난 딸꾹질을 하는 게 아니야. 그냥 허파가 춤을 추는 거지.’

딸꾹!

“빌어먹을!”

문수는 비명을 내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비명을 내지를 여유 따위는 없었다.

“221번부터 225번까지, 면접 시작하겠습니다.”

223번, 그것이 문수의 번호였다.

2

세상을 바라보면 값비싼 거 천지다. 길을 걷다보면 빼곡하게 들어선 아파트 단지. 저 아파트 한 구석이 4∼6억 원. 비싼 것은 10억 원을 훌쩍 넘기고는 한다. 아파트 한 채에 사람을 가득 채우기 위해 필요한 돈은 수백억 원이다. 그런 아파트 수십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사람들은 그걸 마을이라고 부르고, 그런 마을이 도시 하나에 수백여 개가 있다.

도시 하나만 둘러봐도 세상은 참 값비싸 보인다. 지금 눈으로 보는 것들만 해도 수천억 원이 넘어가니까.

“빌어먹을, 내 수중엔 3천 원이 전부인데.”

소주 1병.

안주는 못 샀다. 돈이 없었으니까. 벌써부터 포장마차 주인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문수는 그 눈매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 주인의 눈매를 보니, 어설프게 술주정이나 눈싸움이라도 했다간 회를 썰던 칼에 혀가 썰릴 것 같았다.

‘차라리 혀가 없었으면 장애인 전형으로 합격했으…… 에라이, 미친놈아.’

무언가 생각을 하던 문수는 술을 들이켰다.

“미친놈. 사지육신 멀쩡하게 태어난 걸 감사해야지. 복에 겨운 새끼가 지랄이 풍년이네.”

미친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예전에는 이런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었다.

“크으…….”

술기운 때문일까? 아니다. 예전에도 제법 거하게 취해본 적은 있지만, 취하면 그냥 진상만 부렸을 뿐이다. 세상을 이런식으로 바라본 적도,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래, 세상 때문이지.”

이런 꼴이 된 건 결국 면접 결과 때문일 것이다.

“빌어먹을 놈의 딸꾹질.”

간신히 통과한 서류 전형. 그 이후 치러진 면접. 면접 전에 시작된 딸꾹질은 면접 도중에도 멈추지 않았다.

분위기는 좋았다. 면접 도중에 누군가 딸꾹딸꾹 거리니 면접관들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하, 이 친구 긴장했나보군.”

“물 한잔 마시고 오게.”

“딸꾹질에는 약도 없지.”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를 대하듯 따스한 면접관들의 행동에 절로 얼굴이 붉어지고 고개가 숙여질 정도였다. 적어도 같이 면접을 봤던 4명의 지원자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였던 문수는 면접관의 눈동자 속에서 그들의 속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담이 약하군.’

‘자기 관리에 취약한 건 감점 대상이지.’

‘위기를 기회로 만들지도 못하는군.’

그때 3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마지막 책을 쓰며, 푸른 하늘 앞에서 소설가란 직업을 포기하던 때에, 그때 느꼈던 절망감과 그 절망감을 뒤이어 몰려오는 허탈함에 서있을 힘도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딸꾹질은 멈췄다.

“흥.”

면접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다음 기회에…….

“복권도 아니고…….”

말을 뱉던 박문수는 피식 웃었다. 복권? 하긴 요즘 취업은 복권이라고 하지 않던가?

솔직히 말해서 이제 취업의 기준도 잘 모르겠다. 누군가는 스펙을 부르짖고, 누군가는 융통성을 부르짖고, 누군가는 재능을 부르짖는다. 어느 기업은 스펙을 중시한다고 나서면서도, 막상 뽑는 이들의 면면을 보면 스펙보단 실력이고, 반대로 실력만 있으면 스펙은 아무래도 좋다는 곳은 제법 스펙 좋은 인간들도 서류 전형부터 떨어지고는 한다. 한편에서는 고졸자를 우선고용한다고 한다.

꿀꺽!

술잔을 기울였다.

머릿속을 채우던 실타래 중 하나가 술잔에 섞여 풀렸다.

“내 앞길을 모르니까, 표지판만 눈에 들어오는구나.”

우습게도 문수는 자신의 처지를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처지가 아니라 주제파악이라고 해야 할까?

그의 눈에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길이 보이지 않으니, 표지판만 보고 길을 잡는다. 당연히 그 길이 맞는 길인지, 아닌지 모른다.

어째서일까?

“반지의 제왕…… 나도 그런 세계를 만들고 싶었는데.”

자신이 소원하는 진짜 길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 길을 놔두고 다른 길을 가려고 하니, 길이 제대로 눈깔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그저 남들 따라가는 대로, 멀쩡한 표지판이 가리키는 대로 향할 뿐이다.

“후우.”

술병이 바닥을 보일 무렵, 얼굴이 화끈거렸다. 맥주는 질릴 때까지 먹어도 취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소주는 몸이 받질 못하는 문수였다. 문수는 초록색 술병을 바라봤다.

문득 떠올랐다.

“황금기사는 기적 앞에 술잔을 따르며 말했다.”

그것은 그가 섰던 소설의 내용이었다.

마지막 챕터.

주인공을 지독하게 괴롭혔던 위대한 기사는 주인공이 마지막에 보여준 용의 기적 앞에서 이끌고 온 1만 명의 기사들을 뒤로한 채 주인공과 술잔을 나누었다.

치열하게 싸워왔던 그 둘은 그 술잔을 통해 대화를 나누었고, 황금기사는 기적 앞에 말했다.

“나는 나를 포기할 순 있어도, 저들을 포기할 순 없다.”

황금기사는 기적 앞에 굴복대신 항전을 표했다.

그리고 치러진 결렬한 전투…….

‘그 전투를 최소한 1권 이상의 분량으로 쓰고 싶었다. 그 전투 속에서 그동안 싸워왔던 이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들의 삶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본래는 길게 기획됐었던 장대한 서사시.

“전쟁은 황금 기사의 패배로 끝났다.”

그러나 그것은 조기완결이란 벽 앞에서 고작 한 구절로 정리되었을 뿐이었다.

“킥킥.”

웃음이 나왔다.

“나만 아는 이야기군.”

세상 천지에 오직 박문수, 그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

꿀꺽!

그러나 술 한 잔 마시면, 이제 박문수조차 모르게 되고 먼 훗날에는 문수조차 잊어버리게 될 이야기다.

“크아……!”

문수는 등짝이 후끈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내일부턴 다시 취업준비생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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