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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들-101화 (1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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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림은 침대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케노피에서부터 바닥까지 물결이 흐르듯 흘러내려온 투명한 하늘색 천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창문은 열려있었고 서늘한 바람이 들어와 항을 쓰다듬으며 아무 것도 걱정할 것이 없다고 위로하는 것 같았다.

서림의 표정은 낯설었다.

항이 손을 쓰지 못하는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시간의 강이 그들 사이에 놓여버린 것 같았다.

그것 때문이었다.

문득 슬픔이 북받쳤다.

“흑!”

항은 자신의 목구멍에서 터져나온 울음 소리에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은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당황한 항은 얼른 눈물을 훔치고 서림에게 다가가 변명이라도 하려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 첫, 한숨같은 울음소리는 댐을 무너뜨리는 작은 구멍같은 역할을 했다.

앞을 볼 수도 없었다.

항의 눈 앞은 그저 부옇게 흐려지다가 붕 떠오르기만 할 뿐이었다.

겨우 눈물을 털어내면 그 다음 것이 기다리고 있다가 곧바로 다시 차올랐다.

서림이 그를 향해서 팔을 벌렸다.

항은 더듬듯 다가가서 서림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서림에게 기대는 순간 참고 참았던 울음이 폭발하듯 터져나왔다.

서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항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항은 혀가 뽑아져 나오고 몸 안의 모든 기관들이, 심장까지 전부 다 뽑혀 나올 것처럼 울었다.

으허허허허헉!!!

고통스럽게 몸부림을 치면서 울었다.

서림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서러움.

그 오랜 기다림 속에 다시 만나게 된 서림에게 거리낌없이 다가갈 수 없도록 준이 늘어놓은 저주의 말들.

아이에 대한 의심.

사랑하던 사람을 되찾는 순간 다시 빼앗겨버린 것 같은 느낌에 항은 부들부들 떨었다.

분노의 감정이 더 큰지, 상실감과 괴로움이 더 큰지 가늠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서림은 왜 우는지를 묻지도 않고 조용히 항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만 했다.

생존에 꼭 필요한 수분까지 다 빠져 나가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이 들만큼 원없이 울었을 때 항은 훌쩍이다가 슬며시 울음을 그쳤다.

서림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한없이 맑았다.

눈물에 모든 티가 다 떠내려간 것 같았다.

“어떻게 기다렸어.”

항이 서림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서림이 미소지었고 항은 서림의 입술에 격렬하게 입술을 맞추었다.

그가 흘려보낸 눈물은 그의 얼굴에 들러붙은 먼지만 씻어낸 것이 아니었다.

준이 내린 저주.

항이 지금껏 준의 아이를 키웠던 건지도 모른다는, 그 사실을 확실히 증명할 수 있다는 이야기마저 씻어내 버렸다.

항의 기억 속에 그 부분의 정보는 완전히 사라진 후였다.

심장을 토해낼 것처럼 오열한 후에, 서림의 손길 아래에서 한없이 울어댄 후에 그는 그를 질식시킬 것 같던 저주스런 기억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 일을 이룬 사람이나 당한 사람이나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항은 한없이 미안한 마음에 서림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그러나 서림은 의연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어요. 당신이라면 반드시 나를 데리러 올 거라는 거 알았거든요.”

서림의 말에 항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어. 당신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도 말이야.”

“내가 말하지 말아달라고 했어요.”

“말하지 말아달라고? 누구한테?”

“희영씨가 먼저 나를 찾아냈죠. 희영씨가 나를 봐줬어요. 그리고 말을 걸어줬죠. 그리고 기선씨가 다시 나를 일으켜줬고.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었던 건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 때문이었어요.”

서림이 말했다.

항은 혼란스러웠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서림을 다시 만났다는 사실에만 집중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수 해 동안 살을 섞으면서 같이 아이까지 만든 사이였지만 –눈물과 함께 상처를 흘려보낸  항은 이제 그 사실을 전혀 의심하지도 않았다- 떨어져 있던 기간이 긴만큼 어색함이 있었다.

한 단계, 한 단계를 나아가려고 할 때마다 두 사람은 서로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나 서로를 향한 열망을 가릴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항이 먼저 일어서서 셔츠를 벗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가 서림의 손목을 붙잡고 손을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조용히 눈을 감고 서림의 체취를 마셨다.

눈으로 보지 않고도 서림을 가려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서림이 윗단추를 푸는 동안 항은 성급하게 아래 단추를 풀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서림의 냄새를 맡았다.

서림의 피부를 지나가면서 그 향기에 자신의 영혼을 맡겼다.

다시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소망조차 하지 못하던 것을 허락받은 감격에 또 울고 싶어졌지만 눈물이 눈을 흐려지게 만드는 것이 싫었다.

이제는 한 순간도 서림에게서 눈을 떼고 싶지가 않았다.

항은 서림의 몸을 자신의 것으로 덮었다.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 실감이 나질 않아. 이렇게 당신 향기를 맡고 당신의 감촉을 느끼는데도.”

그렇게 말하면서 항은 서림의 머리 위에 자기 얼굴을 올리고 열기가 피어오르는 가슴에 서림을 가득 끌어안았다.

서림이 고개를 들어 그의 목에 입술을 맞추었다.

항이 옆으로 비스듬히 몸을 굴렸다.

그리고는 서림의 등으로 손을 미끄러뜨리더니 서림의 몸을 자신에게 바짝 밀어붙였다.

서림의 벗은 가슴이 항의 맨가슴에 닿았다.

항은 자기가 그 감촉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그리워했는지를 깨달았다.

어쩔 수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서림이 훔쳐내 주었다.

“눈물만 늘었네, 당신. 못 보는 동안. 아이가 돼버렸어.”

서림의 말에 항이 비로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바보 같지?”

서림은 고개를 저었다.

“항상 꿈꿔오고 그리워했던 바로 그 모습이야.”

서림이 항의 팔을 자기 목에 둘렀다.

그리고 항의 가슴에 쏙 안긴 채 그를 올려다 보았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믿을 수가 없어.”

“꿈꾸고 있는 게 아니에요. 이게 당신의 현실이야. 당신과 나의. 우리의 현실.”

서림이 항의 목과 턱에서부터 키스를 해오더니 항의 입술에 이르자 오랫동안, 아주 깊은 키스를 했다.

서림의 팔을 쓰다듬던 항의 손이 천천히 서림의 갈비뼈를 지나 허리로, 그리고 다시 허벅지를 쓸고 가다가 다리로 내려갔다.

항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릴 틈도 없었다.

항은 자기가 먼저 침대 아래로 내려가더니 단번에 서림을 들어올렸다.

서림의 엉덩이와 허리 아래로 손을 넣고 서림의 몸을 허리 위로 안아들자 자연스럽게 벌어진 서림의 두 다리가 항의 엉덩이를 감쌌다.

서림은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항은 서림의 목과 쇄골에 키스를 했다.

서서히 서림의 몸을 내리면서 항은 꿈에서만 실현시킬 수 있었던 상상을 이루어갔다.

서림은, 자신의 몸 안에 항의 분신이 들어오자 몸을 움찔했다.

항은,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은 그렇게 용을 쓰고도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이질감도 만들어내지 못한 듯했다.

깊은 삽입에 서림은 눈을 감았다.

항의 목에서 작은 신음이 터져나왔다.

그는 눈을 떴다.

전율하는 서림을 놓치지 않고 전부 보고 싶었다.

서림의 입이 벌어졌다.

그녀는 항을 꼭 끌어안은 채 헐떡였다.

항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서림은 참지 못하고 항의 입술에 격렬한 키스를 했다.

서림에게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었다.

서림을 원할 때 그가 짓는 표정.

그의 얼굴 색.

항도 서림의 표정으로 알 수가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잊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항이 침대 위에 서림을 드러눕혔고 조심스럽게 서림의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로 들어갔다.

그의 허리가 움직임에 따라 바닥에 쏟아진 서림의 긴 머리카락이 물결쳤다.

두 사람의 신음이 서로 열렬하게 뒤섞였다.

그가 힘을 주어 깊이 들어온 순간, 마침내 서림의 몸 안에 따뜻한 기운이 퍼졌다.

항은 한동안 서림에게서 몸을 빼지 않고 한없이 입을 맞추었다.

완전한 결합. 완전한 재회. 완전한 소망의 실현. 완전한 충족이었다.

“사랑해. 너를 위해서 죽는 게 두렵지 않을 만큼.”

항의 말에 서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미소가 말했다.

안다고.

그 말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아노라고.

항의 등을 바람이 쓰다듬었다.

그는 그렇게 그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원했고 서림은 그렇게 되리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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