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들-99화 (9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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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는 채영의 어깨를 감싼 채 근심스러운 듯 지명과 아미를 바라보았다.

차례로 그들을 보다가 사요의 시선이 정인에게 다다랐다.

정인의 무엇이 사요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사요는 정인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지금.”

소명이 말하자 사요가 채영을 부축해 일으켰다.

완벽한 혼돈에 영혼을 빠뜨린 채영은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 누군지 알지 못했다.

사요는 걸으면서 채영이 잃어버린 기억을 빠르게 들려주었다.

거기에 덧붙여서 재빨리 아주 위험한 정보 몇 가지를 더해 주어야 했다.

방금 우리를 구해준 사람에게 악령에게 깃들 수도 있고 우리는 저 여자한테서 달아나야 할지도 모른다고.

채영은 사요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죠? 당신은 누구고요?”

채영이 말했다.

“나도 말해주고 싶지만. 우선은 급한 것부터 한 다음에요.”

사요는 뒤를 돌아보면서 채영을 재촉하며 달렸다.

정인은 그들을 기꺼이 등 뒤에 숨겨주고 싶어했다.

소명은 지명과 정인을, 그리고 그 다음으로 아미까지, 한 사람씩 바라보았다.

그 눈이 이별을 고하는 것 같다는 서늘한 느낌에 아미는 눈물이 고인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누나.”

소명의 눈에 칸트가 겹쳐졌다.

다시 동료를 잃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아미의 심장을 조여왔다.

“안 돼요. 누나.”

소명은 각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인사를 대신한 끄덕임이었다.

리벳은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안녕.’

소명은 자리에 우뚝 선 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가 제 머릿속에 들어온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 소리는 자연스럽게 소명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것은 마치,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음성 같았다.

음색이나 감정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전에 없던 무언가가 안에 들어가서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내 소개를 할까? 알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소명은 전력을 다해 호수를 향해 달렸다.

‘나는 리벳이야. 재미있는 아가씨.’

소명이 무엇을 하려는 건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나마 가장 먼저 알아차린 사람이 아미였다.

“젠장!!”

아미는 소명을 따라 호수를 향해 달렸다.

지명과 정인도 달리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은 서로를 지켜주고 있어요. 할 수 있죠?”

정인이 사요와 채영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강은은 바닥에 주저 앉은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곧이어 주위에 쓰러져있는 시체들을 향해 옮겨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는 신음하듯 물었다.

하필 그 질문을 채영에게 했다.

그보다 처지가 나아보이지 않는 채영에게.

아미는 주저하지도 않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죽으려는 거야. 누나는 그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악령에 사로잡혀서 자기 의지를 잃고 노리개가 되느니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미는 소명을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팔을 내저었다.

하지만 소명의 오른 손이 위력을 발하는 것은 주먹을 날릴 때 뿐이 아닌 듯했다.

아미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수위를 높이는데는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그의 진로를 방해하는 일은 아주 효과적으로 해냈다.

정인이 불안한 표정으로 지명을 바라보았다.

지명은 아미를 보다가 모터보트가 놓여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위험해요.”

정인이 소리쳤다.

“아직 언니가 주도적이라면 보트에 오르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만약에 지명씨가 내민 손을 잡으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소명 언니가 아닐 거고요.”

“그래도 이렇게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

리벳이 소명을 완전히 사로잡아 버렸다고 하더라도 소명을 구하고 싶은 것이 지명의 심정이었다.

“리벳이 공격하면 과거로 돌아가요. 죽기 전에요!!”

정인이 소리쳤다.

지명은 정인을 바라보았다.

“히나타를 부탁해도 되겠어?”

정인은 턱이 부서질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보트가 거친 물살을 만들어내며 아미에게 다가갔다.

아미는 지명이 내민 노를 순순히 붙잡았다.

보트에 올라온 아미도 역시 정인이 했던 말을 다시 하고 있었다.

“누나라면 올라오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알아. 아직 누나라면, 노로 머리를 쳐서 기절을 시키고라도 끌어올려야지.”

아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소명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그만큼 버틴 것도 용했다.

몇 사람이나 처리를 하고 나서 다시 어디서 그런 위력이 솟아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소명은 더 나아가지도 못하고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렸다.

“누나. 올라와요.”

아미가 소리쳤다.

소명은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싶은 욕구를 억지로 참아내고 있었다.

살고 싶다는 생존본능과 리벳을 여기에서 끝내버려야 한다는 살해욕구가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 고집스러움에 얼굴이 찡그려질 정도였다.

“누나가 죽는다고 리벳이 같이 죽을 것 같아요? 멍청한 고집은 그만 부리고 올라와요. 강은이 형한테서 떠나듯이 리벳은 그렇게 떠날 거라고요. 개죽음을 자초하지 말아요!!”

지명이 소리를 질렀다.

누구의 생각이 맞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소명을 그대로 죽게 내버려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소명도 더 이상은 고집을 부릴 수가 없게 되었다.

소명의 몸은 점차 소극적인 몸부림만 하더니 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지명이 물로 뛰어들려고 할 때 무언가가 지명을 붙잡았다.

“놔둬. 아미. 누나를 죽게 할 순 없어.”

그러다가 지명은 아미가 자기 옆에서 소명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 호숫가에 선 히나타가 보였다.

긴 백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히나타…….”

“누나!!”

아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명이 보트 위로 끌어 올려졌다.

아미는 소명의 입 안에 들어있던 이물질을 빼내고 소명의 머리 위로 몸을 숙였다.

그리고 그대로 소명의 입에 입을 대고서 공기를 불어 넣었다.

소명의 몸이 팽창하는 것이 느껴졌다.

기도가 막히지 않았다는 것을 감지하며 아미는 소명의 불규칙한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누나!! 멍청하게 굴지 마요.”

모터보트는 빠르게 호숫가로 돌아갔다.

두 사람이 소명을 데리고 내리기도 전에 진한이 보트 위로 올라탔다.

진한은 소명의 몸을 일으키더니 거세게 소명의 뺨을 때렸다.

“이대로 죽기만 해 봐. 가만히 놔두나!!”

“너. 내가 죽을 거라고 꽤나 확신하는 모양인데.”

소명이 말했다.

눈을 뜨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그렇게 말을 했다.

진한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아미과 지명을 바라보았다.

“누가 뭐래도 소명 누나네요. 리벳이 아니에요.”

지명이 말했다.

진한은 격렬하게 소명을 끌어안았다.

“다시는 멍청한 짓 하지 마. 알았어? 다시는. 다시는 안 돼.”

진한의 눈시울이 뜨겁게 젖어들었다.

“리벳은……. 어디로 간 거죠?”

아미가 지명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두 사람의 시선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지강은을 찾게 되었다.

강은은 사요와 채영의 곁에 서 있었다.

두려움에 찬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면서도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그를 보자니 강은도 리벳에게 다시 점령당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안도하게 되었다.

“가까이 왔다가 다시 빙의될까봐 겁내는 거지.”

진한이 말했다.

강은을 원망하거나 탓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감정이 여유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됐어? 준 맥브라이언은?”

소명은, 여전히 힘 없는 목소리기는 했지만 똑똑하게 말했다.

“히나타가 끝내버렸어. 시체도 발견되지 않을 거야.”

“왜? 땅 속에 묻어버렸어?”

“그게 나았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히나타는 같은 패턴에는 쉽게 질리는 성격인가 봐.”

“어떻게 했는데?”

드디어 소명이 눈을 떴다.

햇살이 눈이 부셔 눈을 감자 진한이 옮겨 앉으며 제 얼굴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소명이 다시 눈을 뜨고 진한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한 건데?”

“히나타의 팔이 나뭇가지로 변하면서 길게 뻗어나갔어. 그리고 40미터가 훌쩍 넘는 삼나무 꼭대기에 올려버렸지. 히나타가 맥브라이언의 심장을 꿰뚫으려고 놓는 순간에는 바로 그 삼나무가 맥브라이언을 결박하고 있었어.”

다행히 듣는 사람들 중 아무도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가끔 가다가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위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 제대로 보기도 힘들 지경이었는데. 어쨌든 그렇게 히나타가 맥브라이언을 끝낸 후에 나무에서 울창한 잎이 우거지기 시작했어. 결국에는 아무리 쳐다봐도 맥브라이언의 시신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됐지. 피를 흘렸겠지만 그 피가 바닥까지 내려오지도 못했어.”

“삼나무가 공범이라니.”

지명이 말했다.

“히나타가 때마침 힘을 되찾아서 다행이야.”

소명이 말했다.

“이 얘길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진한이 머뭇거렸다.

소명이 그를 바라보았다.

어서 털어놓으라고 재촉하는 눈빛이었다.

“형의 아이 말이야.”

“누구? 항 오빠?”

“응.”

“아이가 왜?”

“형의 아이가 아닌지도 모르겠어.”

“그건 또 무슨 얘기야? 갑자기 어떻게 알게 된 건데?”

“맥브라이언이 말했어.”

“설마. 자기 아이라고 말한 건……. 아니지?”

소명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형은 불임이래. 아주 자신만만한 태도로 확신하면서 말하더군. 자기 DNA를 가져가서 대조해보라고. 자길 죽인 후에 살덩이를 떼가도 좋다고 했어.”

“개자식!”

“서림 누나도 모를 거야. 두 사람 모두 최면 상태에서 항거불능인 동안 당한 일인 것 같아.”

“안돼. 이제 겨우 두 사람이 다시 만났는데.”

소명이 말했다.

지명과 아미는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형이 어떻게 견딜지 모르겠어.”

소명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 사원에서의 참사가 외부에 알려지기 전에 여길 떠야지. 서둘러야 돼.”

진한이 말하며 다른 사람들을 재촉했다.

소명이 보트에서 내리자 가까이 다가와있던 항이 소명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지강은도 머뭇거리는 태도로 다가왔다.

“그런 표정 지을 것 없어. 네가 잘못한 건 없으니까.”

진한이 말했다.

그 말로도 위안이 되지 않았는지 지강은은 소명을 바라보았다.

“그 말이 맞아. 너를 다시 위험에 빠뜨린 건 나야. 내가 도와달라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으면 네가 다시 리벳한테 빙의되는 일은 없었을 거야.”

“다시……. 다시 또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을까요?”

강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소명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는 자기도 매한가지였지만 확언해주고 싶었다.

“내 맛을 봤는데 구질구질하고 약해빠진 네 몸 속으로 다시 기어 들어가고 싶어하진 않을 것 같다. 더군다나 너는 다시 돌아가야 하잖아.”

강은은 그 이야기에 기뻐해야 할지 어쩔지도 알지 못했다.

항은 말이 없었다.

아미는 잠시도 소명의 곁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소명은 아미가 자신에게서 칸트를 찾고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다시는 바보같은 짓 하지 않을게. 너한테 약속할 테니까 갓 태어난 강아지처럼 쫄랑쫄랑 따라다니지좀 마.”

“……. 알았어요.”

금세 풀 죽은 표정을 짓는 아미의 머리를 진한이 헝클면서 웃었다.

“소명이한테 위험한 감정을 품었다간 따라다니지 못하게 다리를 부러뜨려 놓는다.”

진한의 살벌한 경고에 아미의 얼굴이 흑빛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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