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들-94화 (9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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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보트에 그런 그림자가 생기는 건가 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뒤를 돌아볼 생각을 했다.

크레이그는 깜짝 놀라서 뒤로 넘어질 뻔했다.

허공에 사람들이 매달려 있었다.

죽지 않은 사람들이 물에 젖은 채 허공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몸은 나무 줄기 같은 것으로 얽혀 있었다.

물에 들어갔을 때 몸에 묻어 그곳까지 따라 올라간 검은 해초도 있었다.

크레이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이 좀비가 되어서 자기를 공격하려고 하는 건줄 알았다.

그들은 보트를 따라서 천천히 다가왔다.

그들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나무줄기. 사람들을 하나씩 휘감은 나무줄기의 몸통이 한 발, 한 발 크게 내딛는 것처럼 보트를 따라오는 중이었다.

크레이그는 그대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나뭇가지들이 크게 휘어지더니 사람들을 거칠게 던져놓았다.

내가 여기까지는 하지만 힘이 남아도는 건 아니다! 라고 성질을 부리는 까탈스런 마녀를 떠오르게 하는 장면이었다.

사람들은 목숨을 건졌으면서도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사실에 분노하며 엉덩이며 허리나 등을 두드려대며 일어섰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며, 뭍에 서서 그들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다가와 물었다.

그들은 물에 빠지자마자 나뭇가지에 휘감겨진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준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준은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준의 곁에는 이제 사요와 채영이 있었다.

크레이그는 준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준 역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준이 통제권을 상실했다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어서 크레이그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사람들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 자기가 호수 저편에서부터 왔기 때문에 그의 눈에만 보일 수 있는 것을 확인했다.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서 이것이 구원의 기회인지 재난인지를 알아 내려고 눈을 굴리는 사람들과, 어서 이 유황구덩이를 빠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전혀 다르게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포착되었다.

“준, 저 사람들이 누군지 아세요?”

크레이그가 말했을 때 하필 준의 눈에 가장 먼저 아미가 들어왔다.

“허, 아미로군. 재미있는 일인데?”

크레이그는 아미 외에도 몇 사람,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명과 함께 서 있는 진한과 지강은을 가리키고 후미에서 전진해 오고 있는 시영과 기선을 가리켰다.

아미는 다행히 그 순간에 혼자 있었다.

잠깐동안 사람들을 놓쳤다가 서둘러서 정인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정인은 히나타와 함께 있는 지명의 옆에 서 있었다.

지금은 두 사람 사이에 오묘한 기류 같은 것이 흐를 틈이 없었다.

“뭐지? 저 사람들.”

크레이그가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한은 준 맥브라이언의 시선이 뱀처럼 자신들을 훑는 것을 발견했다.

“드디어 저쪽에서도 우리 존재를 눈치 챈 모양이군.”

진한이 말하자 지강은이 긴장한 표정으로 준을 바라보았다.

“왜? 겁나?”

진한이 형처럼 지강은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무리하지 않아도 돼. 알지?”

“네.”

지강은이 말하는 동안 장항이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소명은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것처럼 안심했다.

“이렇게 된 이상, 이제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겠죠?”

“그래야지. 그러려고 온 건데. 그리고 저 자식, 웬만하면 내 손으로 목을 부러뜨려 버리고 싶어. 서림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히나타가 말해줬어.”

역시 히나타였나 하고 소명은 생각했다.

말하지 않는 게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히나타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뭐, 어쩔 수 없게 된 일이다.

소명은 쓸데없는 생각으로 정신이 분산되는 걸 막으려고 애쓰며 자기 머리를 툭 쳤다.

“일단은 전부 다 살아서 여길 빠져나가는 게 가장 중요해요. 이미 몇 사람은 기진해서 떠났어요. 오빠가 힘을 아껴야 돼요.”

소명의 말에 장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쯤은 나도 알아.”

사요는 얼굴을 일그리며 한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런 상황에서조차 자기 편을 괴롭히는 준을 정인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요는 적의나 살기 대신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저 사람들.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

정인이 말했다.

히나타는 눈을 움직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조금도 힘을 쓰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다.

호수에서 사람들을 건져내는데 너무 많은 힘을 쓴 탓이었다.

정작 중요한 일을 앞에 뒀으면서 쓸데없는 일에 너무 많은 전력을 낭비해 버린 게 아닌지 히나타는 후회가 되었다.

히나타나가 구해낸 사람들 중 몇 명은 준 맥브라이언에게 다가가 준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들은 막연히 불안한 분위기를 감지했고 자신들의 몸을 바쳐서 준을 구하려고 했다.

누가 적인지도 판단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두려움도 없이 움직이는 그들을 보고 있으려니 짜증이 치밀었다.

“쓸데없는 동정을 베풀었다가는 일만 복잡해질 거예요.”

히나타가 말했다.

“바보 같은 짓을 한 건 저 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주면 고맙겠어요.”

정인은 지명을 바라보았다.

지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정인이 몸을 옆으로 기울였다.

아무도 정인이 왜 그러는 건지 알지 못했다.

정인은 자기 앞에 실체를 가진 어떤 물건이 날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정인에게 날아들기 시작한 기억의 파편들은 그만큼이나 강력했다.

그 영상들은 정인의 눈을 찌르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왜 하필 이때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알지 못하겠다고 생각했지만 눈 앞에 펼쳐지는 장면을 보았을 때는 곧 그 이유가 명확해졌다.

어린 남자 아이는 분명히 준이었다.

그 옆에는 냉혹해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준의 비현실적인 미모는 준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게 틀림없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정인에게 보이는 준의 나이는 불과 너 댓 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준은 푸릇푸릇한 곰팡이가 피어난 아이스크림 통을 들고 있었다.

먹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준은 이미 여러 대를 심각하게 맞은 후였다.

준의 어머니는 얼음이 떨어질 것 같은 얼굴을 위로 쳐들고 준을 내려다보았다.

“먹어.”

“싫어.”

“그래? 그럼 다른 걸 줄까? 소금 같은 거? 그게 더 낫겠니?”

준이 움찔했다.

준의 바지가 젖었다.

하지만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준의 머리를 움켜쥐고 억지로 고개를 젖혀놓고는 상한 아이스크림을 퍼 먹였다.

준은 머릿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이것들이 내 몸을 상하게 할 수 없어. 내 몸은 나한테 통제되고 있어. 이 따위 상한 식품에 굴복할 내 몸이 아니야. 너희들은 강해. 훨씬 강해. 너희들은 전부 다 이겨낼 수 있을 거야. 그래야만 돼!’

준이 구토를 하려고 하면 준의 어머니는 아이의 고개를 뒤로 젖혔다.

정인은 그 끔찍한 장면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저었고 아미가 정인의 뺨을 때려주었다.

“정신 차려요.”

정인은 휘청이다가 아미의 팔을 잡았다.

“지금은 정말 이런 것들을 보고 싶지 않아.”

그렇다고 준에 대한 동정심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준의 곁에는 준이 주는 직접적인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요가 서 있었다.

“형이 어떻게 해 볼 수 없어요?”

기선에게 아미가 물었다.

준이 아미를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생쥐처럼 잘도 빠져나가 비루한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라고 비아냥거리는 표정이었다.

아미는 그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애썼다.

칸트를 죽인 것은 준이라는 것을 아미도 알고 있었다.

자살을 하기는 했지만 자살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세운 것이 준이라는 사실을 아미는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

칸트는 한때 아미가 의지할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이었다.

속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기도 했고 아미가 위해주고 싶은 단 한 사람이기도 했다.

지금은 칸트가 서 있던 자리에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 들어서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칸트가 아미에게 가졌던 의미가 퇴색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런 칸트를 아미에게서 빼앗아 간 사람이었다.

아미는 자꾸만 감정이 동요하려는 것을 애써 눌렀다.

지명은 아미가 준의 시선에 직접 놓이는 것을 막으려고 그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기선의 입에서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듯한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잘 안 되는 거군.”

소명이 말했다.

“힘을 너무 많이 써 버려서 그런가 봐요.”

지강은이 기선을 바라보더니 소명에게 말했다.

사요의 눈은 순식간에 충혈이 되었다.

지금 그 여자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거라고 모두의 생각이 일치했다.

정인은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준의 과거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쳤다.

정인의 눈에는, 친모로부터 당하는 학대로부터 스스로를 구해 내려고 제 몸을 향해 명령을 내리는 작은 준의 모습이 보였다.

준은 몇 번이나 쓰러졌다.

피골이 상접했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럴 때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준의 어머니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찍어냈다.

왜 자꾸 이런 시련이 자기를 찾아오는 건지 모르겠다는 그 여자를 많은 사람들이 위로했다.

이 시련은 반드시 지나갈 거라고 격려를 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시련이 지나가는 것이야말로 그 여자가 끔찍하게 싫어할 결말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여자의 어깨를 쓸면서 위로를 하는 남자.

정인은 그가 [붉은 번개의 틈]을 창시한 초대 교주라는 것을 알았다.

은밀한 곳에서 두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칼 맥브라이언은 그 여자를 곁에 두며 즐겼다.

여자는 꽃과 같았다.

꽃처럼 자리를 빛냈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경외했다.

이제 그녀는 사람들의 관심을 구걸하기 위해서 준을 괴롭힐 이유가 없게 되었다.

한때 두 사람을 불균형한 관계에 두었던 시간은 이제 부지런히 흘러서 다른 식으로 두 사람을 불균형하게 만들었다.

준은 강성해져갔지만 여자는 쇠락을 향해 내몰리는 방법 밖에 없었다.

“어머니. 칼이 죽으면 사람들은 다시 어머니를 위로할 거예요. 어머니가 좋아하던 거잖아요. 그 다음에는 최고의 순간이 남아 있죠. 어머니의 장례식요. 사람들이 어머니를 위해서 눈물을 뿌려줄 거예요.”

그 일을 꾸밀 때, 준은 스무 살도 되지 않은, 그저 순수해 보이기만 하는 미소년에 불과했다.

“우린 조용히 싸워야 돼. 판을 키워서 좋을 게 없다는 얘기야.”

소명이 말했다.

“여기에 있는 사람 중에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진한이 말했다.

“그럼 저 인간을 막아.”

소명이 말했다.

크레이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제단 쪽으로 가는 거라는 것에 모든 것을 걸어도 좋다고 소명은 생각했다.

“좀비들을 데려오려는 거야!”

진한이 말했다.

진한이 전력으로 크레이그에게 달려갔지만 그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한테 맡겨.”

항이 말했다.

그는 자신이 크레이그를 굴복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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