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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호수의 중앙이 아니라도 상관이 없지 않겠는가 하는 초조한 생각이 든 것도 그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왜 대열에서 이탈해서 돌아가는 건지 알아야 했다.
그 문제는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고 크레이그는 생각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내서 준에게 보고를 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준은 가까이에 있던 남자를 사요에게 보냈다.
사요와 채영 두 사람을 곧바로 데려오라는 명령이었다.
남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단 앞을 지키면서 시영과 얘기를 나누기도 했던 바로 그 남자였다.
제단과 제단 아래의 실험실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라면 사요를 꺼리는 것이 당연했다.
준은 그의 얼굴에 두려움이 일렁이는 것을 불쾌한 듯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네 명령에 복종할 거야. 다른 사람의 부름도 아니고 내가 부르는 건데 오지 않을 리가 없잖아.”
남자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두 사람을 데리러 갔다.
이탈의 속도는 더 빨라졌다.
대단한 폭식을 준비하고 있던 괴물 같은 물고기의 몸통이 중간부분부터 사라져버리는 것 같은 형국이었다.
준은 천천히 대열의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준은 그들에게 추앙받는 존재였다.
준이 지나가면 한 사람이라도 더 준의 옷자락이나 손을 만지려고 다가왔다.
준은 그들과 손끝으로 접촉하면서 강력한 주술같은 최면을 걸었다.
초반에는 그게 제대로 되었다.
제대로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준도 느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곳으로 향할수록 준은 자신이 뭔가 강한 결계 같은 것에 튀어나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일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준이 아주 싫어하는 형국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통제하고 상황을 장악하기를 원했다.
이런 식으로, 그를 불안에 떨게 하는 상황이란.
아주 좋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를 향한 공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앉은 자리에서 날린 3조 달러.
거기에도 어떤 막강한 힘이 버티고 있었다는 것을 준도 알고 있엇다.
그 일에 이어서 벌써 두 번째였다.
준과, 후미에 있던 소명 일행 사이에는 불과 40여미터의 차이도 나지 않았다.
시영과 선우 형의 작업 역시 점점 만만치 않아졌다.
그들 역시 결계를 느꼈다.
앞 쪽에 자리한 사람들일수록 준에 대한 믿음이 견고했다.
준에 대한 믿음, 구원에 대한 소망이 그들을 요지부동으로 만들었다.
선우 형과 시영이 노력을 기울였지만 번번히 실패를 하고 말았다.
“이쯤 해서 그만둘까? 그래도 반 이상은 구했잖아.”
선우 형이 말했다.
“우리가 저 옹고집들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지 않아?”
시영도 그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두 사람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기선도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때 희영이 나섰다.
“제가 해 볼게요.”
“뭘 어쩌려고?”
선우 형이 물었지만 그는 이내 입을 다물지 못하고 경악스런 표정으로 호수를 바라보았다.
충분히 단련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단지 희영이 보여주는 환시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쉽지 않았다.
주위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하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채찍처럼 얼굴을 후려치는 빗줄기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들은 머리를 더듬었다.
갑자기 소나기인가?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하지만 곧 그것이 그들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희영의 일행조차도 깜빡 속아버렸던 것은 희영이 보여준 것이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영향을 끼친 탓이었다.
희영이 보여준 물줄기가 직접 그들을 적셨고 그들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며 머리카락을 젖게 만들었다.
그것은 빗줄기가 아니었다.
거대하게 일어선 해일같은 파도에서 날아오는 물줄기였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정도의 참혹한 어둠인 것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불길한 어둠이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어떻게 된 거야?”
“이게 무슨 일이야?”
사람들은 대상도 정하지 않고 질문만 퍼부었다.
“저, 저, 저기!!”
누군가 외쳤다.
그들은 호수를 가리켰다.
기선도 그것을 보았다.
처연하고 창백한 표정으로 서 있는 희영의 뒤쪽에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희, 희영아!”
기선은 희영을 도망치게 하려고 했지만 희영은 짧은 시선으로 그에게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기선은 그것이 희영이 만들어낸 환영이라는 사실을 짐작했다.
온통 주위를 검게 물들이고 있던 완전한 어둠을 뚫고 거대한 하얀 것이 몸집을 키우며 희영의 뒤에서 일어섰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많은 사람들은 살 길을 찾아 달아났고 어떤 사람들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들은 이대로 붉은 번개가 칠 거라고 믿는 것 같았다.
달아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몇 명이 넘어졌고 바닥에 넘어진 사람들에 걸려서 그 위로 사람들이 켜켜이 쓰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인간성이라는 것이 남아 있어서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고 거대한 파도가 주춤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나서 넘어진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그들을 일으켜 주었다.
호수에서 해일 같은 파도가 만들어진다니 상식적으로 갸웃거려지기는 했지만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두고, 이건 상식에 어긋나니 너는 없어지라고 말을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단숨에 호수의 비탈을 넘어온 거대한 파도가 우물쭈물하고 있던 무릎 꿇은 남자를 데려가 버린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것도 희영이 만들어낸 환영이었지만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것을 보고 그와 동참하려 했던 사람들 중 몇이 서둘러 일어서서 달아났다.
파도는 단 한 번의 포식으로 허기를 달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와중에도 의지를 꺾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순교자처럼 두 손을 가슴에 꼭 그러모으고 혀를 낼름거리는 큰 파도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포말을 흘리는 하얀 괴물이 그들을 막 사로잡으려 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의연했다.
눈 앞에 펼쳐지는 그 모든 것들이 가짜라는 사실을, 소명과 진한도 모르고 있었다.
준도 겁에 질린 표정으로 한참 멀리까지 달아나서 그 광경을 어안이벙벙한 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갑자기 생겼던 파도는 갑자기 사라졌다.
한 여자가 기진맥진해서 쓰러지듯, 곁에 있던 남자의 품에 기댔지만 준은 그 모습을 놓쳤다.
그 모습을 설사 놓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여자가 이 모든 일을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알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형, 희영이를 데리고 가 주세요!”
기선이 선우 형에게 말했다.
선우 형 역시 자기가 거기에 남아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너무 기력이 쇠한 상태였고 희영 역시 빨리 안전을 확보해 놓지 않으면 무슨 일을 겪게 될지 장담할 수가 없었기에 선우 형은 두 말도 하지 않고 기선에게 고개를 끄덕인 채 희영을 부축했다.
희영은 미안한 표정으로 기선을 한 번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했는지 봐.”
기선이 말했다.
“아무 일 없이 돌아올 거죠?”
희영이 말했다.
“당연하지. 우리한테 무슨 일이 생기겠어?”
기선이 말했다.
이미 그때는 재난의 현장에서 달아나려는 사람들이 차고 넘쳤기에 선우 형과 희영이 그 행렬에 동참한다고 해서 이상해 보일 것은 없었다.
기선은 두 사람이 탄 차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확실히 줄어든 대열을 다시 바라보았다.
“형.”
기선이 시영을 불렀다.
“형을 보내지 않아서 실망한 건 아니죠?”
그러자 시영이 웃었다.
“형을 보냈잖아. 방금 간 사람, 선우 형 형 아니야?”
그리고 시영은 기선을 향해 가볍게 잽을 날렸다.
“나,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느낌이야. 태어나서 이런 기분은 처음이야. 다시 태어난 것 같고 완전히 새로워진 느낌이야.”
“다행이에요.”
기선이 웃었다.
이제 남은 사람들은 칠 팔십 명 정도로 보였다.
이들이야말로 교단의 핵심 멤버이자 골수였다.
“우리는 준 맥브라이온만 해치워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이 정도 했으면 충분하다고 보는데.”
시영이 말했다.
기선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떨거지들이 저항하지 않고 사라져준다면 우리가 일하는 것도 편해지긴 할 거예요.”
기선이 말했다.
“아, 그런 뜻이었던 거야?”
시영이 전혀 몰랐다는 듯 기선에게 말했다.
“저, 그렇게 마냥 착하기만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기선이 웃었다.
크레이그의 동요는 심했다.
거의 미칠 것 같았다.
그가 탄 보트에서는 희영의 환영이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저 사람들이 무언가에 놀란 듯 경악하다가 자기들끼리 넘어지고 깔리면서 도망치는 것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무릎을 꿇었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잠시 후에는 꿈에서 깬 것처럼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엄청난 믿음을 보여줄 것 같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그들은 차를 타고 속속 달아나버렸다.
크레이그는 멀리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준을 보았다.
준도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역시 놀란 표정이었다.
크레이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보트에서 일어섰다.
그 바람에 보트가 약간 기울었지만 그는 기술좋게 균형을 잡았다.
보트에 있던 사람들의 동요는 크레이그만큼 격렬하지 않았다.
강한 최면 상태 때문이었다.
강한 최면 상태 때문이었다.
“자, 한 사람씩 뛰어내리는 거야. 주저하지 마. 여기에서 어떤 모습으로 뛰어내리는지, 거기에 따라서 상급이 달라지는 거야. 억지로 떠밀려 내려가는 사람한테는 지옥이 준비될 거야. 당신들은 붉은 번개의 틈에 선택받은 순교자들이잖아. 이게 얼마나 값진 일인지 모두들 알 거야.”
보트에 탄 사람들은 여전히 준의 최면에 걸린 상태였고 몇 명은 클로로포름에 취해 있었다.
크레이그는 약에 취해서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 몇을 손수 일으켜서 뱃전에서 밀어버렸다.
풍덩, 소리와 함께 그들의 몸이 가라앉았다.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였기에 제대로 허우적거리지도 못했다.
첨벙거리는 소리는 오래 들리지 않았다.
한 사람, 한 사람, 겁에 질린 표정이기는 했지만 이내 결심을 하고 이를 앙 다문채 보트에서 뛰어내렸다.
크레이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가 손 써야 할 귀찮은 일은 생겨나지 않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단 물 속에 빠지면 허우적거리고 살려달라 아우성이라도 칠 줄 알았다.
그런데도 조용했다.
그는 해초 때문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생각을 많이 할 때가 아니었다.
많은 생각은, 이렇게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는 독약과 다름이 없었다.
그는 준에게 돌아가서 그의 곁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 그때 준에게 다가가는 수상쩍은 사람들이 크레이그의 눈에 포착되었다.
“젠장. 함정이었어!”
그는 그 자신조차 그 뜻을 알지 못하는 말을 내뱉었다.
어느 사이에 해가 높이 떠올랐다.
밝은 해는 그림자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는 보트 위에 새겨지는 그림자들이 무엇인가 했다.
나뭇가지에 커다란 열매가 하나씩 하나씩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