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들-89화 (8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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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까워. 강은이를 저쪽에 주고 히나타를 우리 팀으로 끌어들이면 안 돼?”

진한이 말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었는지 씨익 웃었다.

“장항 형은 어느 쪽으로 가는 거지?”

진한이 다시 물었다.

“항이 오빠도 서림 언니 쪽으로.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우리 쪽으로 와 줘. 기선이는 항이 오빠 쪽으로 가야 되겠지. 그쪽에서 최대한 시간을 줄이고 언니를 구해내야 돼. 그리고 우리 쪽으로 와 줘. 아무래도 어려운 쪽은 우리일 거야.”

소명이 말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내일이면, 항이 형은 서림 누나랑 재회를 하게 되겠네요.”

기선이 말했다.

“형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얼마나 좋을까요?”

기선은 희영의 어깨를 안은 채 말했다.

희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는 모습을 보면 나, 눈물이 날 것 같아.”

희영이 말했다.

“어이, 한가하게 감동받을 시간이 없다니까? 준 맥브라이언이랑 싸우고 있는 우리를 잊지 말라고. 너희가 감상에 젖어있는 동안에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고.”

소명의 말에, 그 자리에 찬물이 끼얹어진 듯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시영인 저쪽으로 가야 되겠구나. 순례자들을 설득해서 무혈입성을 하려면.”

소명이 자꾸 한 사람, 한 사람씩을 저 쪽으로 퍼주려는 것 같았는지 지강은이 소명의 팔을 잡았다.

“어지간히 퍼줘요. 누나는 우리를 너무 믿는 것 같아요.”

지강은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작은 웃음소리가 퍼져갔다.

“소명이가 우릴 믿어서 그러는 것 같아? 우리한테 엿을 먹여주고 싶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아?”

진한이 말했다.

“아니야. 나는 두 사람을 믿어. 나보다도 더.”

어째 농담조로 들리기는 했지만 농담을 가장해서 소명의 진심이 묻어나는 말인 듯했다.

“좋아. 오늘은 푹 쉬고. 내일. 해 보는 거야. 재미있을 거야.”

소명이 먼저 손을 내밀자 그 위에 사람들이 손을 하나씩 하나씩 올렸다.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진 않지만.”

소명이 말했다.

그리고 머리를 굴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살아남자!”

“살아남자!”

“살아남자!”

“살아남자!”

그 황당한 구호를 한 사람씩 따라했다.

하긴.

살아남는 것 말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이겠는가 싶었다.

모두가 식탁 앞에 모여 앉았다.

분위기는 자뭇 숙연했다.

다시 이 멤버 모두가 식탁 앞에 모일 수 있을 것인지 긴장이 흘렀다.

“기분 좋게 하자고.”

항이 말했다.

“그러게요. 긴장할 것 없어요.”

진한이 말했다.

“도무지 걱정할 게 없잖아요. 여기에는 괴물들 투성이니까. 설사 누군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되면 지명씨가 게임을 리셋해 버리면 되는 거잖아?”

진한은 일부러 가볍게 말했다.

싸잡아서 괴물이라고 불린 사람들도 가볍게 웃었다.

“오빠.”

소명이 항을 불렀다.

“응?”

항이 소명을 바라보자 소명이 항의 손등 위에 손을 올렸다.

“오늘은 오빠의 생애에서 가장 감격스런 날이 될 거예요.”

“왜? 오늘 죽을 계획이냐?”

항이 뻔뻔하게 말을 하자 모두들 한 템포 늦게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죽어야 감격하시는지는 몰랐는데요?”

소명이 웃자 항도 능청스런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감격할 일이 있어? 맞선이라도 보게 해 주려고? 그러기에는 오늘 우리가 좀 바쁘지 않나?”

“그냥 제 말을 기억하고 계시기만 하면 돼요.”

소명이 말하자 항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소명이 너도 긴장하면 헛소리를 하는 타입인 모양이구나?”

“네, 얘가 이래요.”

진한이 가운데에서 수습을 하느라 애를 썼다.

제대로 음식을 넘기는 사람이 없었다.

남기로 한 지명과 사이크는 한 사람, 한 사람을 포옹하고 격려해 주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히나타의 지명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아무래도 같이 가야 할 것 같아."

그의 말에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히나타였다.

리셋을 하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가 될 거라고 히나타도 예감하고 있었다.

지명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히나타를 바라보았다.

"히나타. 게임이 끝난 후에 리셋하고 싶지 않아. 내가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이 사람들이 전부 죽어 널부러진 모습을 보고서. 나한테 새겨진 상처는 잊히지 않아. 다시 그 모습을 보고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어."

히나타는 고개를 숙였다.

다른 사람을 보내면 안 되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정인과 정인의 지명은 난처해 했다.

지명도 정인만 아니라면 자기가 가겠다고 말하고 싶었고, 정인도 차라리 자기가 가야하는 거라면 나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히나타의 지명은 그들을 바라보았다.

"고민할 것 없어. 미안해 할 것도 없고. 히나타, 나도 너한테 미안해 하지 않을 거야. 나는 반드시 돌아올 거니까. 내가 왜 내가 왔던 시간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지 알고 있잖아. 그걸 안다면, 내가 왜 여기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지도 알잖아. 여기엔 네가 있잖아."

"......."

히나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게 해 줄 거지?"

히나타는 원망스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희영이 히나타의 등을 쓸어 주었다.

히나타의 등에서 울컥,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던 것이다.

한 사람씩 밖으로 향했고 마침내 여러 대의 차가 한꺼번에 이동을 했다.

도시는 ‘붉은 번개의 틈’이라는 신흥 교단이 들어와 갑자기 세력이 커지는 것과 발을 맞추어서 갑자기 커진 것 같았다.

도시의 흥망성쇠가 교단의 흥망성쇠와 맥을 같이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너, 이 도시가 이제 어떻게 될 것 같아?”

진한이 소명에게 물었다.

“무슨 상관이야. 오늘 이후로 다시 이 곳에 올 일은 없을 텐데.”

소명이 말했다.

“에잇, 냉정하긴.”

진한이 말했다.

“쓸데없는 생각으로 머리를 복잡하게 하지마.”

소명은 주의를 주었다.

“뭘 그렇게 긴장해? 가볍게 하자고. 가볍게.”

지나가다가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추었을 때 도로가의 카페 문이 열린 틈으로 TV 화면이 보였다.

던칸 의원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우연처럼 한 번 카메라에 잡힌 이후로는 자신의 공백을 만회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뻔질나게 얼굴을 비쳤다.

준 맥브라이언이 숨을 쉴 틈을 주지 않으려는 못 박기라는 것을 소명은 이해했다.

“준 맥브라이언도 지금쯤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소명이 말했다.

“자기가 건 최면이 풀려 버렸다는 것을 그 사람도 깨달았을 거야. 오늘 새벽에 갑자기 이사를 한 건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사람들을 수장시키는 것 말이야. 오늘 하려는 건 아닐까?”

“그러거나 말거나.”

진한은 관심이 없다는 듯이 굴었다.

하지만 지강은은 소명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끔찍하겠네요.”

“그렇지.”

“그런데 만약에 그 사람이 사람들한테 최면을 걸어서 물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고 해도 기선이란 사람이 그 최면을 깰 수 있는 거잖아요.”

지강은이 말했다.

“최면에 의해서 움직이는 건 막을 수가 있겠지. 하지만 신념에 의해서 움직이는 건? 그건 장담하지 못할 거야.”

“신념.”

지강은이 그 말을 따라했다.

“그 사람들의 믿음. 그 사람들은 붉은 번개의 틈에 속한 신도들이잖아. 그 사람들은 구원만을 믿고 있는 사람들인데 맥브라이언의 명령을 거절할 수 있을까? 맥브라이언은 그들에게 신적인 존잰데.”

“그런 미치광이를.”

지강은이 분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사람을 구할 거죠? 그렇죠, 누나?”

지강은이 말했다.

소명은 준비하지 못한 질문을 받고 당혹스러워햇다.

“……왜? 그리고 어떻게?”

“그 사람들이 바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잖아요. 안 그래요?”

지강은은 점점 절박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수가 있는데?”

소명이 물었다.

진한도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것봐. 강은씨. 우리는 지금 영웅 놀이를 하자는 게 아니지 않아? 부당하게 감금돼 있는 사람을 구출하러 가고, 그리고 소명이랑 여러 사람들의 목숨을 노리는 준 맥브라이언을 처단하러 가는 거지. 그 외의 다른 것들로 미션을 늘리려고 하지 말자고.”

진한이 말했다.

“저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강은이 말했다.

소명은 복잡하게 됐다는 듯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나는 그런 공명심 싫어. 나는 나한테 맡겨진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주고 싶어. 그러자면 우리랑 상관없는 사람들의 죽음에는 눈을 감아야 돼.”

“누나!”

“왜!! 왜!! 왜!! 어쩌라는 건데? 우리쪽 사람들 한 사람을 포기할 때마다 저쪽 사람들 백 명씩을 구할 수 있다고 하면 너는 우리쪽 사람들을 내 주자고 할 거니? 이 미친 새끼야!!”

“그건 아니지만.”

“그건 아니지만이라고? 그러면? 아무런 희생도 없이 그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너는 우리가 뭐라고 생각하는 건데?”

“충분히 힘이 있잖아요.”

“충분한 힘? 웃기지 마. 지강은. 웃기지도 않아.”

“누나. 나도 우리 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요. 이 사람들이 가진 특별한 능력들은 절대로 그 사람들의 안위를 위해서 부여된 능력은 아닐 거라고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누나!!”

“됐어. 토론할 시간은 없어. 하고 싶었다면 그 얘기는 미리 끝냈어야 되는 거였어.”

소명은 그 후로 지강은에게는 눈을 맞춰주지도 않았다.

지강은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소명의 말을 곱씹어보는 듯했다.

백명을 구할 수 있다고 이쪽에 속한 사람의 안전을 담보로 내 줄 수는 없었다.

그도 마침내 포기하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뒤를 바짝 따르는 차안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기선은 희영의 표정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서림은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실험실의 사람들이 희영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것은 수동적으로 보여지는 환영이 아니었다.

오히려 희영이 그들을 파고들어가서 일부러 보고 있는 중이었다.

희영은 충돌되는 가치의 문제를 쉽게 해결하지 못했다.

그들은 절대로 적이 아니었다.

그들은 어쩌면 자신들과 같은 부류일 수도 있었다.

기선도 희영도, 처음에는 자기들도 그 실험실에서 실험대상으로 누워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꾸준히 들어왔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 중 몇 사람에게는 도움을 받는 일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수 해를 거치며 실험 대상이 되어 살아오는 동안 그들의 공격성과 반사회성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을 거라는 것을 희영은 알았다.

지금 그들에게 동정을 베풀자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 것인지도 알았다.

희영의 눈에는 지금도 잔인한 실험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연구원들 몇은 순전히 심심풀이로 그들에게 고통을 가하고 있었다.

남자의 성기에 견디기 힘든 전류를 흘려보내며 낄낄거리는 남자도 있었다.

의식을 가지고 있는 실험체의 머리카락에 불을 붙이는 연구원도 있었다.

이제 그만 들여다보라고 기선이 말을 해도 희영은 중독이 된 것처럼 환영에서 쉽게 빠져나오지를 못했다.

이윽고 장항이 희영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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