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들-73화 (7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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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의 지명은 한 사람 한 사람과 못다 나눈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그쪽 사람들은 이미 히나타의 지명에게 마음을 더 쏟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았다.

희영이 웃으면서 정인의 지명을 다독였다.

“편 가르려고 하지 마. 저 지명이도 너야.”

지명은, 그러니까 줄곧 한국에 있던 정인의 지명은 기선의 소개로 히나타와 인사를 나누었다.

자기가 히나타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 이상했다.

정확히 말해서 자기와는 다른 존재지만.

여하튼.

이상한 것들 투성이었다.

사람들은 소명과 정인을 기다렸지만 막상 그들이 왔을 때는 자기들이 왜 두 사람을 그렇게나 기다렸던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등장은 혼돈의 결정체였다.

말할 수 없는 이질감.

형용하기 힘든 불쾌한 기분.

치미는 분노.

소명은 그들 모두에게 그 날이 견디기 힘든 날이었다고 선포했다.

“그렇지만 정말, 이렇게 다시 만나게 돼서 너무 기뻐. 특히 오빠. 오빠가 돌아와서 정말 기뻐요. 말 안 듣는 애들 데리고 대장 노릇 하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항이 소명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애썼어.”

“강은이를 소개할게요. 몇 명을 더 생각해 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강은이가 제일 나을 것 같더라고요. 여러 사람을 달고 가는 것보다 강은이가 나을 것 같았거든요. 강은이는 귀휴 중이라서 출국을 할 때 선우 형 도움을 받아야 할 거예요.”

“딴지를 걸려는 건 아니지만 다른 수족 같은 사람들을 놔두고 지강은씨를 택한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항이 물었다.

하지만 소명은 빙그레 웃더니, ‘아뇨.’라고 간단하게 대답을 하고서 질문을 피해버렸다.

항이 용기 내서 질문을 했는데 답을 얻어내지 못했다면 다른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오늘은 일단 쉬고 내일이 되면 준 맥브라이언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작전을 세우자고요. 지금은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 일본에서 여기 오는데 시차 적응할 일이 생길줄은 몰랐는데.”

연우가 말했다.

“그러게. 머리가 너무 아프네요. 기내에서 움직이지 않고 짱박히다 와서 그런가.”

시영도 말을 덧붙였다.

선 사장은 이들이 감격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선 사장이 준비한 요새를 보고 크게 감격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방은 충분한지 그것만 확인을 했고, 어느 방으로 들어가면 되느냐고 물은 후에는 전부 흩어져버렸다.

나중에는 또다시 지강은과 소명만 남게 되었다.

정인도 그들과 남아 있으려고 하다가 지명에게 붙잡혀서 끌려가다시피 했다.

“정인이는 가서 놀아줘라. 지명이가 지금 제 정신이 아닐 거야. 저를 봤잖아. 도플갱어를 본 것도 아니고. 도플갱어를 본다면 죽는다는데 쟤는 얼마나 겁이 나겠니?”

소명이 놀리자 지명은 소명의 성질을 알아서 화를 내지도 못하고 혼자서 펄펄 끓었다.

“좋은 사람들 같네요.”

강은이 말했다.

“그래. 그런 것 같아.”

“오랫동안 안 사람들은 아니죠?”

“오래? 그건 꽤 상대적인 말이지.”

“그렇죠.”

“각 사람을 알만큼 충분히 오래 알았던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누나가 아무나 믿을 사람은 아니니까 알아서 잘 하셨겠죠.”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저도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왜 저를 데려오신 거예요? 누나는 저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잖아요. 제가 싸우는 걸 본 적도 없고요.”

“글쎄다.”

“혹시. 리벳이 다시 빙의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아니면 내가 리벳을 소환해서 그 힘을 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거나.”

“그런 생각을 했을 리가 없잖아.”

소명이 말했다.

하지만 강은은 확실히 의심을 거두지는 못하는 눈치였다.

“정말 그런 거라고 생각해?”

“아니면 정확한 다른 이유를 알려주세요.”

“그냥 나를 믿어봐. 나는 조건 없이 너를 믿었잖아.”

“믿음을 동원하려고 하는 건 궁지에 몰렸다는 뜻이죠.”

“냉정하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내가 냉정해진 걸 탓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걸요?”

“그래. 그렇다고 하자.”

소명은 자리에서 일어섰고 지강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유를 말해줄까?”

“네.”

“내가 아끼는 다른 녀석들이 죽으면 내가 입는 정신적인 데미지가 너무 클 것 같았어. 하지만 너에 대해 생각했을 때는. 그렇지 않더라.”

지강은이 웃음을 터뜨렸다.

“멋진 거짓말이네요.”

“속아준다면 고맙겠다.”

소명이 윙크를 했다.

“수작 거는 거예요?”

“어.”

강은이 웃었다.

“방에 들어가서 자라. 내일 얘기하자.”

“네.”

강은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소명은 오랜만에 진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한도 걱정이 가득한 채 소명의 소식을 궁금해 하다가 깜짝 반가워했다.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 미치는 줄 알았다. 네가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멋대로 전화를 하지도 못하고. 어떻게 된 거야? 신림동 복개천에서 일어난 사건에 관련된 건 아니지? 지강은은 네가 전에 도와주려고 애썼던 리벳이라는 그 살인범 아니야? 왜 그 사람 이름이 다시 들리는 거야?”

“여러가지로 복잡해. 유준열 형사가 죽었어.”

“뭐? 어쩌다가? 누구한테?”

“리벳.”

“지강은 말이야?”

“아니. 리벳은 누구한테든 빙의될 수 있는 것 같아.”

“뭐?”

“어디야?”

“어디긴. 내일 본부 사무실에 들어가 봐야돼서 오늘은 일찍 집에 들어왔어.”

“보고 싶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그냥 보고 싶다고 말하면 안 되는 거야?”

“소명아. 무슨 일 있는 거지?”

“그래. 네가 보고 싶어졌어. 그거면 대단한 일인 거지.”

“나한테 말하지 않은 거라도 있어?”

“올 수 있어? 나를 보러. 지금.”

“…….”

“됐다. 미안해. 이렇게 구는 게 아닌데. 본부에는 무슨 일로 들어가?”

“…….”

“왜? 화 났어? 말 좀 해 봐.”

“…….”

“야. 내가 한 말은 못 들은 걸로 하고. 신경 안 써도 돼.”

“…….”

“여보세요? 진한. 여보세요?”

뚜, 뚜, 뚜...

‘아, 쪽팔려.’

소명은 멍하니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귀에 뭐가 눌렸는지 전화는 끊어진 상태였고 저 혼자 얼굴을 붉혀가면서 사과를 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깊은 빡침이 밀려왔다.

“아놔!!”

진한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진한 때문에 화가 난 거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짓고 진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한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헐. 안 받어?’

오기가 돋아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진한은 헉헉거리면서 전화를 받았다.

“전화 끊자마자 오입질이냐?”

소명이 빽 소리를 질렀다.

“무슨 소리야? 너를 보러 오라면서. 지금 주차장까지 안 쉬고 내려 오느라고 숨이 차서 그런다. 하여간 머릿속에 돌아가는 생각 하고는. 지금부터 막 달리면 사십 분이면 가겠다.”

“사십 분? 네가 레이서야?”

“레이서? 치, 그 따위에 비교하냐? 내 여자가 불러서 가는 길을 레이서한테 뒤질 것 같아?”

“…….”

“여보…세요?”

“전화 끊긴 거 아냐.”

소명이 말했다.

벽에 등을 기댄 채 오랜만에 여유로운 한숨을 쉬었다.

"너 그렇게 대책없이 나를 좋아해서 어쩔래?"

"그런 경고는 진작 해 줬어야지."

진한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의 웃음 소리를 듣고 있자니 하루의 피곤이 싹 가시는 것 같았다.

그 즈음에는 머리 아픈 것도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기다리고 있어. 근처에 가서 전화할게.”

“알았어.”

“소명.”

“어?”

“네 뒤엔 내가 있어. 알지?”

“내 뒤에서 뭘 하게?”

“겁나면 주저앉아 버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해줄게. 네 싸움을 이어받아 줄 수도 있고. 나한테 넘겨버려도 돼. 알지?”

“…….”

“일단 끊자.”

그렇게 말하더니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외로웠었나?’

유준열의 죽음이 자신을 정신없이 흔들어댄 버린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명이 빼꼼 고개를 들이밀었다.

소명은 막 자기 방으로 건너가려던 중이었다.

“왜? 정인이는 어쩌고?”

“아…….”

지명이 머리를 긁적였다.

“어, 너, 그, 다른 지명이니?”

“네.”

지명이 씨익 웃었다.

다른 지명이거나 말거나 그는 여전히 지명이었다.

“오늘. 힘들었을 것 같아서요.”

지명이 다가오며 말했다.

“힘들었지. 상당히.”

“내가 고맙다고 말해야 할 사람들한테 미리미리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고맙다고?”

“네.”

“그래. 나도 너한테 고맙다.”

소명의 말투가 장난스럽다고 여겨졌는지 지명이 소명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소명이 지명의 손을 붙잡았다.

“선지명.”

“네?”

“네가 지금 혼란스러울 거라는 거 알아.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가늠도 상상도 안 돼. 하지만 너한테 고맙다는 말은 제대로 해야 한다는 거. 그건 알아. 네가 우리가 속해 있는 시간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을 때 네가 포기한 게 뭐였는지 어쩌면 알 것 같거든.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결단해 준 거 고마워. 용기내 줘서. 고마워.”

“누나는 죽지도 않았잖아요.”

지명이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래. 나는 죽지 않았지. 하지만 그 사람들 없이 싸우다가는 나도 죽을 수밖에 없을 것 아냐? 싸움을 피하고 도망다니기만 해도 곧 죽게 될 게 뻔하고. 준 맥브라이언이라는 인간은 포기라는 걸 배우지 못한 것 같으니 말이야. 이러나 저러나 너는 내 목숨까지도 살려준 거나 마찬가지야.”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저도 고마워요.”

지명이 편안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히나타 얘기를 해 줄래? 걔는 어떤 애야?”

“누나도 봤잖아요.”

“봤지. 그리고 첫인상을 보고 쉽게 친해지지는 못할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

“아, 그거.”

지명이 웃엇다.

“그건 히나타의 얼굴이 아니거든요. 유우신이라는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가 히나타에게 다른 사람의 얼굴을 새겨 줬죠. 젠이라는 야쿠자가 있었는데.”

“유우신?”

소명이 그 이름을 되물었다.

“네. 왜요?”

“혹시. 강인이한테도 새 얼굴을 줄 수 있을까, 그 사람이?”

“하지만 그 사람은 귀휴 중이잖아요. 며칠 내로 교도소로 돌아가야 되는 사람인 것 아니에요?”

“그래. 상당히 불리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서 그렇게 됐지.”

“유우신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군.”

소명이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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