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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들-71화 (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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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이 길 가로 차를 붙이고 차를 세우고서 운전석에서 내렸다.

“이제부터는 정인이가 운전 좀 해라.”

정인은 군소리 없이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명은 지강은의 옆에 탔고 아주 아주 길게 이어지는 얘기를 했다.

지강은은 몇 번, 놀란 눈으로 소명을 바라보기는 했지만 소명이 자기를 놀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조용히 소명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소명은 자기 팔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강은은 소명의 팔 어딘가에 금속체가 들어있다는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나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면 누나가 나를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래. 그렇겠지.”

“그 사람들을 나도 만나볼 수 있는 거예요? 그럼 혹시 이 분도 능력자중 한 명인 거예요……?”

지강은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정인을 바라보았다.

“저 애는 정인이야. 안타깝겠지만 이미 남자친구가 있어. 그러니까 정인이한테는 마음이 기울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좋을 거야."

소명이 말하자 정인이 그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지강은도 시트에 붙이고 있던 등을 떼면서 고개를 숙였다.

기분 좋은 웃음이 오갔다.

소명을 매개로 하니 금방 신뢰관계가 형성되는 듯했다.

"정인이는 사람의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읽어낼 수 있는 것 같아. 유준열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아냈어. 유준열이 있던 사건 현장에 들어가서 피해자가 무슨 일을 겪고 죽었는지도 알아냈고 가해자가 누군지도 알고 있어.”

“정말요? 그럼 그 사건의 범인은 벌써 잡힌 거예요?”

지강은이 물었다.

“아니. 우리는 그 사람이 너하고 같은 피해자라고 생각해. 리벳에게 조종당한 거겠지. 몽타쥬를 그리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사건을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정인이는 자기가 본 걸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지 않았어.”

지강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

“혹시 말이죠. 누나.”

“응?”

“그 사람을 제가 만나볼 수는 없을까요?”

“그 사람이라니?”

“리벳한테 조종당해서 다른 사람을 죽였다는 사람요.”

“그 사람을 만나서 뭘 하려고?”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알 수 있을까 해서요. 왜 리벳이 우리를 목표로 삼았는지, 왜 우리한테 들어왔는지 알 수 있을까 해서요.”

소명이 정인을 바라보았다.

정인이 소명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 없어요. 그 사람이 입고 있던 옷에 건설업체 마크가 있었거든요. 수해신 건설이라고. 그게 그 사람이 다니는 회사일 거예요.”

소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그 사람이 단독으로 계획하고 저지른 범행이라면 회사 유니폼을 입고 범행을 저지르지는 않았겠지. 사람들한테도 발각될 수도 있을 텐데 말이야.”

지강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우리한테는 시간이 별로 없어. 곧 다같이 미국으로 출발해야 하거든.”

“저도 같이요? 그건 아니죠? 알다시피 저는.”

“그래. 귀휴중이지. 하지만 너도 가야돼. 거기에 같이 가 줬으면 해서 너를 빼온 거거든.”

“저도 물론 가고 싶지만 안 될 거예요. 체류장소가 한정돼 있어요. 출국도 허락되지 않을 텐데요?”

“몇 사람이 너를 도울 수 있을 거야.”

“비행기로 바뀔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는 거예요?”

지강은이 웃었다.

“너, 정말 구리다. 다시는 그딴 농담은 시도하지 마라.”

소명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네.”

지강은이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궁금증을 참기는 어려웠는지 소명에게 다시 물었다.

“도대체 또 무슨 능력을 가진 건데요? 저를 어떻게 데려갈 수 있다는 거죠?”

“그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알았지?”

“누나가 가진 능력은 뭐라고 했죠?”

“내가 가진 건 그냥 좀 무식하게 넘쳐나는 힘 정도야. 특히 오른 팔에 집중돼서 그 힘이 나타나.”

“뭐에요, 그게? 간지라고는 전혀 안 나잖아요.”

“나도 알아. 그러니까 네가 그렇게 지적해 줄 필요는 없다고.”

소명이 인상을 썼다.

그게 웃겼는지 지강은은 자갈자갈 웃어댔다.

그런 지강은을 돌아다보면서 정인이 웃었다.

그리고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희영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그들과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지만 감격에 겨운 목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책망이 담긴 것 같은 목소리라고 해야 할지.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희영이 말했다.

“뭔데?”

소명이 물었다.

“리벳이 누군지 시영 변호사님한테 들었는데. 그 리벳이 사람을 죽일 거예요.”

소명은 그 말을 듣고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왜 그렇게 멍청했을까.”

소명은 그 말만 두어번을 반복했다.

“어딘줄 알 것 같아요. 제가 아는 장소거든요.”

“말해줘. 거기가 어딘지.”

희영은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지강은이 옆에서 듣고 있다가 자기가 그곳을 안다고 했다.

“언제 일어날 일이야?”

소명이 물었다.

“언니. 정확한 시간이 언젠지 그것까지 알지는 못해요. 하지만 이건, 아주 가까운 시간 안에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에요. 이 느낌이 정확한 건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지강은이 소명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빨리 간다고 해도 시간 안에 거기에 도착할 수는 없어요. 길이 막히지 않는다고 해도 세 시간은 더 걸릴 텐데.”

“어쩌지?”

소명이 근심스런 표정을 짓자 정인이 소명을 바라보았다.

“유 형사님한테 전화를 해 봐요.”

소명은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든 듯 희영에게 물었다.

“혹시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줄 수 있어?”

“머리가 약한 곱슬머리고 아주 약간 귀를 덮었어요. 턱선이 날렵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우울한 인상에 한 때는 잘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만한 얼굴이에요.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고 길을 가다가 마주쳐도 길을 비켜줘야 할만한 사람도 아니에요. 아무도 의심하지 못할 사람이고 범죄자 상이라는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요.”

“젠장.”

정인이 소리쳤다.

“정인이가 뭐라고 한 거예요?”

희영이 물었다.

“그 사람. 무슨 옷을 입고 있어?”

“마크가 보였는데. 수해신 건설?”

소명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리벳은 아직 그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소명은 자신의 오판으로 애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정인도 고통스러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정인이를 바꿔줄 테니까 둘이 통화하고 있어. 나는 유준열한테 전화를 해 봐야 할 것 같아.”

소명이 말했다.

하지만 지강은이 전화를 받았다.

정인이 통화중이어서 그게 낫겠다는 생각이기도 했지만 그는 리벳에게 빙의된 남자에 대해서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어했다.

왜 그 남자가 선택된 건지 알 수 있냐는 질문에 희영은 아무 것도 대답해주지 못했다.

그건 희영의 영역이 아니라고 소명은 말해주고 싶었다.

그것은 철저히, 그저 리벳의 영역인 거라고.

유준열은 소명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을 알고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전화를 받자마자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사과해야 되는 거지?”

“뭐?”

소명은 웬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듯 묻더니 곧장 자기가 할 말을 시작했다.

유준열은 놀란 표정으로 달리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손짓을 했다.

“먼저 가 줘야겠어.”

“그걸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건데?”

“그건 알 것 없고. 사과는 내가 해야 될 것 같아. 내가 판단을 잘못했어. 리벳이 저지른 일이기 때문에 도구로 쓰인 사람은 잘못이 없다고 멋대로 생각했어.”

“그런데?”

“그 사람한테 책임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나중 문제고 리벳에게 조종당하는 한 그 사람은 여전히 위험한 인물이라는 걸 간과해버렸어. 내 실수야.”

“일단 그리로 가고 있어. 어느 정도나 확실한 거야?”

“100퍼센트야.”

“증거는?”

“그건 유준열이 찾아야지.”

“어떻게 하지?”

“잘 하는 거 있잖아?”

“잘 하는 거?”

유준열은 잠깐 표정이 떴다가 아,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지강은은 검거할 때 유준열이 수배중이던 지강은을 향해 다가가며 말했었다.

“왜 그랬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던진 그 한마디가 지강은의 모든 심리적인 저항선을 한 순간에 무너뜨렸다.

믿어주지 않을 말을 반복하는 것도 포기하게 했고 어떻게 하면 설득할 수 있을까 하면서 신경을 곤두세우던 것마저 그만두게 만들었다.

그는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다, 라는 생각에 지강은은 순순히 두 손을 유준열에게 내밀었었다.

이번에도 그게 통할까.

유준열은 그것이 다시 통해 주기를 바랐다.

신림동 복개천에는 슬슬 어둠에 내려 깔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가볍게 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아이 손을 붙잡고 느리게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거기에서 곧 사건이 일어날 거라고 소명이 말했다.

일이 일어나기 전에 수해신 건설 마크가 부착된 옷을 입은 남자를 찾아야 했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흩어졌다.

“수해신 건설이야. 찾아!”

유준열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그리고 그때 그들이 절대 듣고 싶어하지 않던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다.

유모차를 끌고 오던 여자가 두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가린 채 비명을 질렀다.

아기의 울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유준열은 계단을 세 개씩 뛰어 내려갔다.

폭 좁은 계단을 그렇게 내려가는 것은 위험천만했지만 마지막으로 여덟 개가 남았을 때는 아예 바닥으로 한꺼번에 뛰어 내렸다.

“거기 서. 리벳!”

그가 소리쳤다.

남자가 유준열을 돌아보았다.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아기를 살펴. 유모차를 살펴!!”

유준열은 뒤따르는 형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자신은 리벳이 빙의된 남자를 뒤쫓았다.

남자는 아기의 따뜻한 피가 묻어 흐르는 칼을 던지고 달렸다.

아기의 어머니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비명만 질러대고 있었다.

“거기서, 리벳! 네가 누군지 알아!!”

이제는 증거를 찾는 것도, 왜 그랬냐고 급소를 치듯 물을 필요도 없었다.

현행범이었고 놀란 표정의 목격자가 열 명도 넘었다.

리벳이 갑자기 돌아섰다.

***

속보가 전해졌다.

신림동 복개천 주변 일대가 충격과 경악에 휩싸였고 유모차에 타고 있던 아기를 찌른 남자가 달아나면서 닥치는대로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그 와중에 두 명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한 명은 병원으로 옮겨진 직후에 숨을 거두었다.

범인은 주저하는 몸짓도 없이 목을 깊이 그어버렸고 그의 방식 때문에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사람들의 눈 앞에서 평화로운 휴식을 즐기려고 나왔던 사람들이 쓰러지고 피가 튀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황망하게 자신의 삶에 범죄와 비극이 뛰쳐 들어온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고 용납할 수 없다는 완고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달아나는 남자를 쫓는 형사가 그를 리벳이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전해졌다.

리벳이라는 이름은 어김없이 그 뒤에 지강은이라는 이름을 끌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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