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들-70화 (7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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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게 네 혀라는 것도 모를 거다. 저 사람은 웬 것을 입에 물고 죽은 걸까, 그렇게 생각할 거다. 네 변과 정액이 바지를 적시고 바로 이 자리, 네 몸이 뜨게 될 바로 아래인 이 곳에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질 거다.”

남자가 부들부들 떨었다.

“그게 한 시간 후의 네 모습이다.”

유준열이 처형을 하는 동안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저 울었다.

살려달라고 말하면 죽여버리겠다는 경고가 나간 후였다.

“내 동생이 살려달라고 했지만 살려주지 않았겠지. 마찬가지다.”

밧줄로 맞았던 남자는 제 동료가 천천히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옆에 유준열이 앉아 있었다.

문 밖에서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유준열은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남은 녀석에게는 공들일 시간이 없었다.

손 안에서 작게 움직이며 원을 그리던 칼이 그대로 남자의 갈비뼈 밑으로 들어갔다.

뼈에 걸리면 빼서 다시 집어 넣었다.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뼈에 튕겨지면 욕지기를 뱉어내고 다시 집어 넣었다.

남자의 동공이 크게 열렸고 작은 신음이 이어졌다.

저항도 하지 못하고 죽어갈 것들이 왜 빈을 살해한 것인지 유준열은 알 수가 없었다.

“유준열, 너, 그 안에 있지? 허튼 생각하지 말고 빨리 문 열어. 빨리.”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준열은 일어서서 문을 열어 주었다.

선배의 시선이 처음에는 유준열에게 날아 들었다가 두 구의 시체를 차례로 훑었다.

선배가 무릎을 꿇고 주저 앉았다.

유준열은 후회하지 않았다.

그의 선배는 그에게 묻지 않았다.

그가 범행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에게 개전의 정이 없음을 확인만 시켜줄 질문 같은 것은 애초에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선배의 손길이 팔에 닿았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그를 붙잡던 손길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제 밥이나 먹으러 가면 될 것 같았다.

익숙한 사람과 같이 이대로 식당으로 가면 될 것 같았다.

그가 피식 웃었다.

“그림, 정말 마음에 들어 했거든요. 빈이가요. 그림을 보고. 그런데도 그림은 나한테 보내고 웨딩드레스는 자기가 꼭 가지고 있으려고 하더라고요. 그게 자기가 입고 갈 옷이라 그랬던가 봐요, 선배.”

“집에 가 있어.”

선배가 말했다.

어디에서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만큼 흔적을 완벽하게 지울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선배는 가능한 모든 변수들을 집어넣어 사망추정 시간을 왜곡했다.

그리고 그의 의도대로 늦추어진 사망추정 시간에 유준열을 데리고 많은 사람들을 탐문하며 돌아다녔다.

선배는 유능한 사람이었지만 유준열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탐욕을 했다.

결국 그의 탐욕의 결과로 유준열은 법의 구속을 벗어났다.

"나는 후회하지 않아. 너도 후회하지 마라."

선배가 말했었다.

유준열은 혐의를 벗었지만 정인에게서까지 벗어나지는 못했다.

정인에게는 밧줄을 감는 유준열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소명은 정인이 이야기를 마친 후에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정인이 물었다.

“가자.”

“어디로요?”

“그냥 가자.”

“교도소로요?”

“그래. 강은이를 만나러.”

“유 형사님은 기다리지 않을 거예요?”

“나는 유준열이 저렇게 흔들리는 걸 본 적이 없어. 미안하지만 유준열이 내려야 할 결정은 내가 대신 내리게 해 줘.”

“…….”

“우리. 좀 괜찮은 사람들이잖아. 저런 녀석 협박하지 않아도 우리 힘으로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정인은 소명을 잠깐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준열이 돌아왔을 때 자리는 비워 있었다.

소명이 타고 온 차도 보이지 않았다.

유준열은 비워진 자리에 앉아 고개를 떨구었다.

무엇을 향해 지금까지 달려온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전력질주를 하기는 했지만 목표를 잃은 것은 아닌가 했다.

정말, 제대로 뛰고 있기는 했던 건지 그것마저도 확실치가 않았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돕고 지내던 기자였다.

이 인간까지 냄새를 맡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 형사님, 이번 사건이 지강은 사건을 모방한 거라는데 그게 사실이에요?”

기자가 물었다.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해? 달라. 범인은 주도적으로 자기 작품을 만들어낸 거야.”

유준열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정인은 웃음을 지었다.

유준열을 몰아세웠던 것이 무색해질만큼 시영은 일사천리로 일을 끝내 놓았고 소명과 정인은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지강은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시영이를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가 왜 의심했을까?"

소명이 그렇게 말할 정도였다.

"그러게요. 유 형사님을 협박하려고 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이마에서 땀이 다 나려고 해요. 제가 그런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몰랐어요."

"너만의 문제였다면 아마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야. 하지만 너는 알았던 거지. 내가 강은이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를. 그게 너한테 느껴져서 너도 조급하게 굴었던 거야. 그 점에 대해서 나는 너한테 고맙다는 말과 동시에 사과를 해야겠지. 고맙다. 그리고 미안해."

소명이 말했다.

이미 받은 말인데 굳이 괜찮다고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정인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쿨하네. 나한테 사과 받은 사람 많지 않다. 나중에 인생이 지루해지거든 소명이란 여자한테 사과받은 몸이라고 떠벌려도 될 걸?"

"그때도 언니랑 같이 있으면 좋겠어요."

"늙어가는 여자 애 옆에서 뭘 하라고. 일이 끝나는대로 찢어져야지."

소명이 말했다.

정인은 벌써부터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그쪽 사람들은 언제 온데요?"

"곧 출발하겠지. 지명이도 오겠네. 보는 거 괜찮겠어?"

"괜찮지 않다고 해도 봐야 하잖아요. 그리고 저보다 지명씨가 더 힘들 텐데 제가 괜찮네 마네 하는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히나타라는 여자랑 같이 있는 지명이를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을까?"

"모르겠어요. 정말 사람 마음이 간사하죠? 나하고는 상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사람 옆에 다른 여자가 서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또 기분이 이상해져요."

"나는 말이야. 절대로 시간을 돌아다니는 사람이랑은 사랑에 빠지지 않고 싶어."

"저도 그런 사람이랑은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권고하고 싶어요."

정인이 웃었다.

지강인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소명은 좀이 쑤시는지 차에서 내렸다가 다시 차에 타서 라디오를 듣다가 음악을 듣다가 또 갑자기 차에서 내려 단거리를 뛰기도 했다.

"으아아아아아아. 기다리는 건 정말 적성에 안 맞아."

"그래도 별 수 없잖아요."

시트를 뒤로 눕히고 편한 자세를 잡은 정인이 느긋하게 웃으며 말했다.

"주위를 좀 돌아다녀 볼까?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는지 물어보고 후딱 돌고 오자."

"그러다가 어긋나면 어쩌려고요."

"그러니까 얼마나 걸릴지 물어보고."

소명은 일이 잘못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소명은 결국 시간을 확인하고 정인을 태우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야구 경기를 하는 것을 보고 신이 나서 뛰어 들어갔다.

"차에서 혼자 있는 게 심심하면 나와서 구경해도 돼."

소명이 말했다.

소명이 뭐라고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소명은 곧바로 경기에서 뛰게 되었고 정인을 향해서 손을 크게 흔들었다.

타석에 들어선 소명이 오른손으로 배트를 휘휘 돌리더니 그럴듯하게 폼을 잡았다.

제법이라는 소리가 들렸고 성적인 농담도 터져 나왔다.

소명은 그런 소리를 다 무시했다.

소명은 초구를 노렸고 단어 그대로 ‘깡!’ 소리를 내고 공이 3루 베이스쪽으로 날아갔다.

소명은 배트를 던지고 1루를 향해 뛰었다.

그런데 웬걸.

옆으로 날면서 공을 잡은 3루수가 소명을 맞췄다.

소명은 공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언니!”

정인이 발을 동동 굴렀다.

소명이 공에 맞고 그대로 몸을 숙였기에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갔다.

쉽게 일어서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우왕좌왕 했다.

그때 소명이 일어섰다.

“어떤 새끼야.”

소명은 오른 손으로 쥐고 있던 공을 던지며 말했다.

“자, 잡았, 어, 그걸? 꽤 빨랐는데 그걸 맨 손으로?”

투수가 말했다.

“헛소리 하지 말고 안 나와? 어떤 새끼가 던진 거냐니까? 3루수 누구야!!”

서슬퍼런 소명의 기세에 눌려 아무도 자수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 정인이 달려왔다.

“시간도 거의 됐으니까 이제 가서 기다려요. 교도소에서 나오다가 길 어긋나면 안 되잖아요.”

정인의 말에 주위에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걸음을 물렸다.

소명은 자기한테 공을 던진 사람을 꼭 잡고 싶은데 아깝게 되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강은은 소명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소명은 성큼성큼 다가가서 지강은의 손을 잡아주었다.

정인은 지강은을 보자 지강은의 슬픈 역사가 읽혀서 진저리를 쳤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도 있는가 하는 생각에 자꾸만 눈물이 치솟을 뻔했다.

저도 유쾌한 삶을 산 것은 아니었지만 지강은도 만만치 않은 삶을 산 것이 분명했다.

“몸이 좋아졌네.”

소명이 말했다.

“멀리에서 몇 번 봤는데. 그때보다 훨씬 좋아보여.”

지강은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기만 했다.

서울로 올라가는 동안 지강은은 직접 말을 하기보다는 소명이 하는 말에 자주 귀를 기울였다.

소명은 리벳이 다시 나타난 것 같다는 말을 해 주었다.

지강은은 놀란 표정을 짓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안 놀라네?”

소명이 말했다.

“리벳이 죽은 것도 아니었는데 이런 일이 다시 생기는 건 당연하잖아요.”

소명은 지강은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살았어?”

“그렇게 나쁘진 않았어요.”

왠지 처용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그것 먼저 설명할게.”

“유 형사님을 만나러 가는 거 아니에요?”

지강은이 물었다.

“아니.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왜?”

“다시 리벳이 나타난 일로 나를 은밀하게 찾아온 건 줄 알았어요.”

“그렇게 생각했구나. 하지만 나는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야.”

“확실히 그런 것 같긴 해요.”

지강은이 웃었다.

소명은 힐끗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모진 일을 겪은 사람치고 저렇게 부드러운 인상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신부복을 입혀 놓으면 신부처럼 보일 것 같았고 성가대 가운을 입혀 놓으면 그대로 성가대원처럼 보일 것 같았다.

“나를 좀 도와줬으면 해.”

소명이 말했다.

“왜요? 곤란한 일이라도 생겼어요?”

“도와줄 거야?”

“장난해요? 누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연히 도와줘야죠. 누나가 어떤 어려움을 감수하고 나를 도와주려고 했는지는 전부 알아요. 리벳이 한 일이라는 걸 믿은 사람도 거의 누나 뿐이었잖아요. 유 형사님을 설득하려고 애쓰셨다는 것도 알고요.”

“그래봤자 설득하지도 못했는데 뭘. 나는 제대로 일을 해내지도 못하고 너한테 힘든 부탁이나 할 사람이야. 그러니까 나한테 괜히 감동받을 필요 없어.”

지강은이 피식 웃었다.

“무슨 일인데요? 무슨 일을 부탁하고 싶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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