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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죄를 하는 사람은 사건 현장과 피해자, 살인이라는 틀에 구속돼서 벗어나지 못해. 자기 창의력이라는 건 발산할 여지가 없다고. 혹시라도 다른 사람의 것으로 의심받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무기를 뭘 사용할지, 어느 부위를 칠지 그런 것들을 전부 다 기억하고 틀에 박힌 채 그걸 답습해. 하지만 이번 사건은 다르잖아. 내 말이 맞지?”
소명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유준열을 바라보았다.
유준열은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쉽게 가닥을 잡아 보려고 한 것 뿐이지 정말로 그게 같은 건 아니야. 그렇지? 사소한 부분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큰 차이들이 있는 거지? 아니면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부분에서 일치가 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을 거고.”
소명이 다그치듯 말하자 유준열이 제 머리카락을 쥐어 뜯을 듯이 잡았다.
“법원에서 악령에 빙의돼서 저지른 짓이라는 소견을 받아들여 줄 것 같아?”
“법원에서 받아들여 주지 않을 거라고 해서 진실을 주장하지도 않겠다는 말이니?”
“그 후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거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세상에 악령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그 악령에 의해서 사람들이 빙의가 되고 지배를 당한다고 믿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 것 같아? 그런데 경찰이 그런 발표를 하라고? 세상에는 우리의 힘으로 저항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악령이 있고 그 악령이 여러분 중 누구라도 습격해서 사람을 죽이게 할 수도 있다고 그렇게 말하라고?”
“그게 사실이라면 그렇게 말해야 하는 거잖아. 믿기 힘든 사실이라고 해서 그걸 숨겨야 한다는 거야? 그렇게 해서 도대체 누구를 보호하자는 건데?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몇 사람을 희생시켜도 된다는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은 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데?”
소명은 지지 않고 말했다.
“악령은, 자기를 리벳이라고 부르는 그 존재는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어. 거칠 것도 없고 얼마든지 창의적으로 범행을 하고 있는 거야. 지금은 한 사람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르지만 다른 사람 몸 속에 들어가서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어. 리벳이 자기 입맛에 맞는 몸을 찾았다고 생각해 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지.”
소명은 확신에 찬 선지자처럼 예언했다.
“우리는 법적 안정성을 지켜야 돼.”
유준열이 고집스럽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을 희생해서라도?”
“미안해. 지강은은 아마 귀휴를 허락받지 못할 거야.”
유준열이 말했다.
“글쎄요. 제 생각은 좀 다른데요.”
정인이 말했다.
소명은 탁자를 내리치려고 주먹 쥔 손을 들었다가 정인을 바라보았다.
“왜? 뭔가 방법이라도 있어?”
소명이 정인에게 물었다.
“제 생각엔 유 형사님이 저희를 도와주고 싶어하실 것 같거든요.”
“뭐?”
소명이 무슨 꿍꿍이냐는 표정으로 정인을 바라보았다.
“협박은 제 취향이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서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면 협박을 할 수밖에 없죠.”
“대체 무슨……?”
유준열은 기분 나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얼굴을 굳혔다.
소명이 유준열을 바라보았다.
“이 아가씨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결혼을 앞둔 여동생이 두 남자에게 강간살해를 당했고 유 형사님이 그 두 남자에 대한 살해 혐의를 썼었죠. 유 형사님은 자신에게 혐의가 없다는 걸 입증했지만 두 손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하늘이 없어지는 건 아니죠. 유빈. 그게 여동생의 이름이군요.”
“무, 무슨……!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 일을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아니. 지금 그 말을 인정하는 건 아니야. 내 말은, 지금, 아니야. 이건, 이건 뭐지? 함정인가?”
유준열은 거칠게 화를 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정인은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할 뿐이었다.
“정의를 회복하자거나 진실을 바로 세우자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에요. 우리한테는 지강은씨가 필요해요. 이번 일로 언론이 다시 지강은씨 사건을 재조명한다고 해도 어쩌면 지강은씨는 순조롭게 귀휴를 허가받을 수도 있을 거예요. 우리한테 다른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거든요.”
그들에게 시영이라는 무기가 있다는 것을 유준열은 이해할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정인은 자기가 알아낸 사실로 유준열을 압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준열은 불안해 보였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마에서는 땀이 번들거렸고 이를 악물어 입술이 하얗게 질려갔다.
소명도 유준열이 뭔가 숨기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야, 말해봐.”
소명이 말했다.
“뭘 말하라는 거야. 이런 애가 뭘 알 수 있다는 거야. 응? 너도 같이 미친 거야? 너희들 뭐야. 어?”
유준열이 거칠게 나왔지만 소명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소명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소명은 유준열이 정인을 노리지 못하도록 그 사이를 확실히 막아섰다.
“유 형사. 허튼 짓 하지 마. 내 실체를 이제 와서 꼭 알아낼 필요도 없잖아.”
유준열은 멍한 눈으로 소명을 바라보았다.
“말해봐. 정인이.”
소명이 말했다.
“내가 여기에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유준열이 일어섰다.
“듣고 싶지 않으면 듣지 않아도 돼. 네 마음은 지금 충분히 동요하고 있겠지. 진실이 뭔지 너만큼 잘 알 사람은 없을 테니까.”
소명이 말했다.
유준열은 소명을 노려보더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며 성큼성큼 계단 아래로 내려가버렸다.
“뭘 본 거야.”
소명이 정인에게 물었다.
“끔찍한 일을 겪었고 끔찍한 일을 했어요. 동생이 그 일을 당하지 않았다면 유 형사님이 그런 짓을 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알았으니까 네가 뭘 본 건지 알려줘.”
정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신부가 될 거다.”
유준열은 동생을 보면서 말했다.
동생의 결혼을 축하하면서 어떤 선물을 하는 게 좋을지 몰라서 오래 고심을 했었다.
빈의 옆에는 웨딩드레스가 들어있는 커다란 쇼핑백이 있었다.
동생에게 선물을 전해줄 시간이 언제 또 찾아올지 몰라서 유준열은 그때 선물을 내밀었다.
동생은 그곳에서 약혼자를 기다리고 있었고 유준열은 일부러 먼 거리를 돌아서 그곳에 들렀다.
"마음에 든다면 좋겠다."
그가 수줍은 듯 꺼내서 내민 그림을 받아들며 빈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제 이런 걸 준비했어?"
동생은 오빠가 친히 그려준 유화를 감격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마초적인 기질의 오빠에게 그런 재능이 있었다는 것도 미처 알지 못했고 오빠가 자신의 앞날에 펼쳐질 행운을 기원하며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너무 고마워. 오빠가 이런 걸 준비해 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빈이 상상 이상으로 만족해 하는 모습을 보자 유준열도 행복했다.
“이렇게 좋아해주니까 나야말로 고맙다.”
빈은 행복에 들뜬 얼굴에 홍조를 띄었다.
“내 생애, 가장 행복한 날이야.”
“단언하지마. 그 말을 앞으로도 수 없이 많이 하게 될 거야. 네가 아이를 가졌을 때도, 아이를 안았을 때도,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입학을 시킬 때도.”
“정말 그렇겠네. 하지만 오늘까지의 날들 중에는 단연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인 것 같아, 오빠.”
빈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며 유준열은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
단언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수도 없이 더 하게 될 거라고 했다.
그때 선배의 호출이 들어왔다.
“나 가 봐야 될 것 같은데 같이 나갈래?”
“아니. 그 사람이 여기로 올 거야.”
“그럼 그림이랑 드레스는 내가 차로 가져다 놓을게.”
“그림만 가져다 놔줘. 드레스는 그 사람이 오면 보여주고 싶어.”
“그럴래? 그럼 그렇게 해.”
준열은 동생의 볼을 잡고 흔들어댔다.
“그럼 먼저 갈 테니까 매제 잘 만나고 들어가.”
“응.”
동생을 홀로 두고 나오면서 그는 빈에게 웃어 보였다.
빈도 웃으며 그를 보내 주었다.
단언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할 날이 수없이 많을 거라고 했다.
정말 그렇겠다고 빈도 대답했었다.
그날 빈은 오래까지 기다리다가 허탕을 쳤다.
빈의 약혼자는 늦게까지 사무실에 붙잡히게 될 것 같다고 전화를 했다.
결혼식과 신혼여행 때문에 마쳐야 할 일들이 많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라고 빈은 애써 밝게 말했다.
웨딩드레스가 든 쇼핑백을 들고 걸어가는 빈의 뒤를 두 남자가 조용히 밟았다.
그리고 그들은 빈의 들뜬 행복을 조롱하듯이 굳이 웨딩드레스로 갈아 입혔고 그것을 찢어 발기며 그녀를 범하다가 죽였다.
영안실에서 유준열이 빈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비통한 비명을 지를 때도 계속 그 말이 맴돌았다.
단언하지 마. 그 말을 앞으로도 수 없이 많이 하게 될 거야.
유준열은 조용히 화를 숨겼다.
그에게 동료들은 범인을 꼭 잡아주겠다고 약속했다.
자기가 유준열을 불러내서 빈을 죽게 만들었다고 생각한 선배가 가장 열심이었다.
하지만 유준열은 그들을 법의 수호자들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
유준열은 서둘렀다.
자기가 더 빨리 그들을 찾아야 했다.
그 개 같은 자식들이 법의 보호를 받는 것이 싫었다.
그렇게 꼿꼿이 대가리를 세우고 법정으로 들어가게는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며칠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탐문을 하고 돌아다니다가 유준열은 마침내 그들이 숨어든 장소를 알아냈다.
유준열은 조용히 담을 넘었다.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쿵쿵쿵.
다시 문을 두드렸다.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지금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린다.
다시, 조금 더 큰 소리로 문을 두드린다.
쿵쿵쿵, 쿵쿵.
문이 열렸다.
“씨발놈아, 문을 열어주면 어떻게 해.”
깊숙이에 숨어있던 놈이 문을 열어준 놈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문은 이미 열렸다.
옥죄는 손길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 자신의 공포를 통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둘일 때 더 그럴 수도 있다.
옆에 같은 상황의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은 때로 감정을 더 흔들어댔다.
유준열이 들어섰다.
그리고 문을 잠갔다.
이제는 밖에서 누가 문을 두드려도 열어줄 마음이 없었다.
유준열이 같이 있는 한, 방 안에 있는 두 녀석도 이제 문을 열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유준열이 밧줄을 꺼냈다.
“가만히, 있어!”
한 녀석의 몸을 잡아 당겼다.
유준열과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던 녀석이 다리를 움직이자 유준열이 밧줄로 그를 내리쳤다.
밧줄은 꽤 멀리까지 나가서 그의 몸에 뱀 같은 흔적을 남겼다.
불이 지나간 것처럼 무서운 고통에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
“가만히 있어. 다음에는 죽인다.”
그렇게 말할 뿐 유준열은 그를 결박하려고 애를 쓰지는 않는다.
손 안에 든 녀석의 목에 밧줄을 걸었다.
“쉽게 죽지는 못할 거다. 고통은 한 순간에 너를 놔주지는 않을 거야. 뼈가 부러져서 심장발작을 일으키기를 지금부터 간절히 기도해라. 하지만 나는 네 목이 부러지지 않게 너를 도와줄 거야. 단숨에 목이 날아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소망하겠지만 말을 할 수도 없겠지. 네 얼굴은 충혈되고 색이 변하겠지. 눈은 흰자위까지 전부 피로 물든 것처럼 핏발이 설 거다. 입술은 새파랗게 변하고 늘어진 혀가 입술 사이로 빠져 나오겠지."
부들부들 떠는 남자의 눈앞에서 유준열은 무딘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