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들-66화 (66/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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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전화번호를 찾아냈는데 전화좀 받아. 젠이 너를 죽이러 갔어. 왜 전화를 안 받아. 절대로 신사로 돌아가지 마.]

유우신이었다.

부재중 전화가 서른 통이 넘게 와 있었다.

그것으로써 젠이 왜 그곳에 나타난 것인지는 확실해졌다.

“내년에는.”

히나타가 항을 바라보며 말했다.

“응?”

“나무들이 잘 자라겠네요.”

항은 히나타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했다.

히나타가 차에서 내려 젠과 유키무라를 노려볼 때까지도 항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했다.

그가 차에서 내렸을 때 히나타를 향해 총을 겨눈 젠이 보였다.

그것은 환영인사 방법으로는 적절한 자세가 아니었다.

하지만 부적절한 방법으로 환영인사를 하는 것이 젠만의 전매특허는 아니었다.

젠이 들고 있던 총은 총구를 하늘로 향한 채 연기를 뿜었다.

땅이 갈라지고 있었다.

젠과 유키무라는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균형을 잡고 일어설 틈도 없었다.

한 발의 총성이 다시 울렸다.

유키무라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이 오발탄이었는지, 유키무라에게 편한 죽음을 맞이하게 해 주려는 젠의 호의였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항은 크게 입을 벌린 땅이 붉게 물든 시신들을 삼키는 것을 그저 놀란 눈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히나타가 항을 바라보자 항은 깜짝 놀라며 두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다.

“왜요?”

“나를 보지 말아줘. 내 얼굴도 저렇게 쫙쫙 갈라져 버릴 것 같단 말이야.”

“그건 늙어서 그런 거지 제가 만든 건 아니잖아요.”

히나타가 말했다.

저런 짓을 저질러 놓고도 저렇게 태평하게 말하는 걸 보면 히나타야말로 진짜 괴물인 것 같다고 항은 생각했다.

그곳에서 격전이 벌어졌다는 것을 눈치챌 단서는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부드러운 흙이 어느새 단단하게 다져졌을 뿐 아니라 풀과 작은 나무까지 자라나고 있었다.

퐁퐁퐁, 꽃이 피어났다.

그것이야말로 모욕의 정점으로 여겨졌다.

항과 히나타는 신사 입구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과 맞닥뜨렸다.

나오지 말라고 한다고 말을 들을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야 이미 짐작하고 남음이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는 말에 항은 알아서 보라는 듯 뒤쪽을 가리켰다.

“저건 웬 나무들이에요?”

지명이 물었다.

“저기에 원래 나무들이 있었어요?”

아미도 물었다.

그러더니 모두가 천천히 히나타를 바라보았다.

“몰라요. 내가 나무를 자라게 하는 건 아니에요. 나무가 자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나무가 자라더군요. 어쩌겠어요.”

히나타가 말했다.

“그러게. 그렇게 돼 버린다는 데 어쩌겠어.”

항도 말했다.

“그런데 왜 희영이한테 이 일이 보이지 않은 거지?”

항이 물었다.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것 아니었을까요?”

연우가 말했다.

희영은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아. 희영이한테는 실질적인 위협만 보이는 거군?”

항이 말했다.

“꼭 그렇진 않죠. 서르!”

시영은 서림이라는 말이 튀어나오기 직전에 입을 닫았다.

“응?”

항이 시영을 바라보았다.

“꼭 그렇진 않은 것 같다고요, 하하하하.”

“그 다음에 뭔가 말하려고 하지 않았어?”

“아뇨. 혀를 깨물었어요.”

시영이 또 어색하게 웃었다.

“그렇군.”

항은 꽤 미심쩍어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시영을 바라보았다.

“왜 형은 저한테 설득을 안 당하는지 모르겠어요.”

시영이 기술 좋게 말을 돌렸다.

항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었다.

“내 능력이 여기에 있는 사람들한테도 통한다고 생각해 봐. 버틸 자신 있어? 없잖아. 그렇지?”

항의 말에 여러 사람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연우 형이 가진 능력은 다른 사람들한테도 통하는 것 맞죠?”

기선이 물었다.

“응, 누가 배신할 마음을 품으면 내가 알려줄게.”

연우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우리도 슬슬 떠날 준비를 하자고. 히나타는 신사를 떠나서도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니까 히나타에 대해서는 걱정할 게 없어.”

“그럼 그렇게 하죠.”

기선의 말에 모두들 다시 신사로 돌아갔다.

***

유준열은 건너편에 앉아서 얼음을 와그작 와그작 씹어먹는 소명을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유준열을 바라보는 소명의 눈초리도 곱지만은 않았다.

“이건 절대로 모방범죄가 아니라고. 지강은에게 다시 언론이 집중되게 만들지 마. 유 형사도 알잖아. 이건 리벳이 한 짓이야.”

소명이 다시 한 번 단정적으로 말했다.

정인은 탄산음료만 벌써 두 잔째를 마시는 중이었다.

평상시의 정인이었다면 이런 불편한 기류에 심적인 불안을 느꼈겠지만 지금은 그럴 정신도 없었다.

끔찍하게 훼손된 시신을 본 정인은 그 사람에게 일어난 일들을 모두 알 수 있었다.

몽타쥬 작가에게 몽타쥬를 그리도록 범인의 인상착의를 설명해 줄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정인 역시 소명이 생각한 게 옳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살인범은 리벳의 도구에 불과했다.

지강은에 대한 정신과 의사들의 감정결과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졌어야 했다는 생각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뭐라고 생각해?”

소명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었다.

유준열 덕에 현장에 들어가 시신을 직접 볼 수가 있었다.

소명은 정인의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유준열은 정인이 누군지 물었지만 소명은 시원하게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정인은 시체를 이리저리 살피는 것도 아니었다.

이상한 말이기는 하지만 정인이 시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시신이 주는 어떤 장면들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유준열은 생각했다.

게다가 정인의 표정은 갈수록 일그러졌다.

만약 시신의 처참한 모습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그런 반응은 처음에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정인의 반응은 이해되지 않는 시간 차를 두고 있었다.

“이 사람은 순전히 운이 없었던 거예요. 그렇지만 살인자도 마찬가지로 운이 없었던 것 같아요.”

소명은 정인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았다.

“어디에서 어떻게 당한 건지 알려줄 수 있지?”

소명이 말했다.

“형사님한테 말하시려고요? 우리가 하는 말을 믿을까요? 제가 그런 걸 본다는 걸요.”

소명은 간단하게 고개를 저었다.

“딱 봐도 고집스럽게 생겼잖아. 유준열이 왜 나를 현장에 들어오게 해 준 것 같아? 그동안 유준열이 풀지 못한 사건들을 풀 수 있도록 몇 번 도와준 적이 있었어. 당연히 비공식적이지만.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었을 것 같아?”

“언니가 관련된 일들이었나보죠?”

“[양들의 침묵]을 읽어본 적 있어?”

“네.”

“마찬가지야. 추리하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은 한니발 박사가 살인범한테서 직접 들어서 안 일들이었잖아. 나도 내가 추리한 것처럼 말하는 것 뿐이야. 유 형사는 속아주는 거고.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 되는 거야. 그리고 범죄자의 심리는 유준열보다는 내가 더 잘 알고.”

“혹시 두 분……?”

“잠깐 좋았던 적도 있긴 했지. 진한을 다시 만나기 전 일이었어.”

그때 유준열이 다가왔다.

“저기 커피숍 보이지? 저기에 가서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갈게.”

“알았어.”

정인이 괜히 웃어버리는 바람에 유준열이 눈치를 챘다.

“왜, 웃어요?”

“아뇨. 아무 것도 아니에요.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니에요.”

정인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꽤 수상쩍은 부정이네요.”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니까요?”

“잠깐 나 좀 봐.”

유준열이 소명에게 말했다.

소명은 태연하게 유준열을 따라갔다.

“왜.”

“우리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지?”

“우리? 우리 얘기? 어떤 얘기? 우리 사이에 얘깃거리라고 할 거라도 있나?”

“그러지 말고.”

“가서 일이나 해. 커피숍에서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 알았어. 아무 말도 하지 마. 알았지? 그건 내 프라이버시기도 하잖아.”

“무슨 말?”

유준열은 뭔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고는 소명을 흘겨보다 웃었다.

“마음대로 해라. 그래도 너무 적나라하게 얘기하진 마. 남자가 처음엔 다 그런 거란 말이야.”

“걱정하는 게 그거였어?”

소명이 피식 웃었다.

“긴장되는데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지금이라도 증명해 줄 수 있는데. 오늘 꼭 가야 돼?”

유준열이 발끝으로 땅을 콕콕 찍으면서 물었다.

“오늘 꼭 가야 되는 건 아니지만 그 후에 꽤 의미있는 사람을 만났어.”

“그래? 잘 됐네. 그걸 먼저 물어봤어야 되는 거였는데. 미안해.”

“뭘. 알고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럼.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갈게.”

“천천히 하고 와도 돼.”

유준열이 사람들에게 달려갔다.

여전히 탱탱하게 올라붙은 엉덩이에 저절로 눈이 갔다.

“아. 안되지. 저건 이제 내 엉덩이가 아니야.”

소명은 기특한 생각을 다하면서 정인을 손짓으로 불렀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정인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로 팔꿈치로 소명을 툭 치면서 물었다.

“뭐가 어떻게 돼?”

“에에에에에이. 말해 주실 거잖아요. 그렇죠?”

소명은 어이가 없다는 듯 정인을 바라보았고, 또 못 이기겠다는 듯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우와. 그게 벌써 몇 년 전 일이냐?"

소명이 실눈을 뜬 채로 기억을 더듬었다.

소명이 운전을 하는 동안에도 유준열은 서류 봉투에 가득한 사진을 보고 있었다.

소명에게 전화를 해서 먼저 만나자고 한 사람은 유준열이었지만 데이트라는 것이 데이트 신청을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

소명이 보았을 때 유준열은 그다지 유능한 형사가 아니었다.

그는 툭하면 동기를 따졌지만 살인의 동기는 그렇게 확실히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살인을 하면 우월감이 들었다.

그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지만 힐끗 그를 바라보기만 하고 혀끝에서 맴돌던 말을 다시 삼켰다.

그는 잠이 오지 않는 시간에 소설책을 펴는 것처럼 미제사건의 현장 사진들을 보곤 했다.

현관 대리석 바닥에 무릎 꿇은 채 죽은 노인의 상체는 바닥으로 기울었고 머리는 흥건히 웅덩이를 이루며 고인 핏속에 박혀 있었다.

총알이 뒤통수를 뚫고 나가 얼굴을 박살냈고 얼굴이었던 부분은 그 이전의 상황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피와 뇌수가, 마치 페인트를 잔뜩 묻힌 붓을 누군가가 힘차게 내두른 것처럼 주위의 벽에 튀어 있었다.

그는 아직 총살당한 시체는 본 적이 없었다.

현장에서 그런 시체를 보게 된다면 쉽게 견뎌내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가 맞아요?”

네비게이션은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말을 하는데 유준열은 고개를 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명의 말을 듣고서야 그가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더니 그렇다고 말하며 내렸다.

소명은 차에서 내려 큰 보폭으로 걸었다.

집은 단층 주택이었는데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누군가 잠시 들러 휴식을 취하고 다시 고단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만들어 놓은 휴식처인 것 같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 평범하게 그냥 ‘집’ 같았다.

휴양지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특징적인 분위기가 없었다.

열려진 현관을 통해 유준열은 한 꾸러미의 짐을 들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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