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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들-60화 (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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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서림이 최면에 걸려드는 시간이었다.

기선과 희영은 멀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서림이 침대 위로 올라가는 것을 바라보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안타까워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서림은 희영에게 인사를 건넸다.

[또 와 줬네요.]

[네. 지금은 다른 사람이랑 같이 보고 있어요. 혹시 이 사람도 보이나요?]

[아뇨.]

희영이 기선을 바라보았다.

“소리가 들려요?”

“아니.”

“또 와줬다고 말하기에 기선씨가 보이냐고 물었더니 기선씨는 보이지 않는데요.”

“으응.”

[이 사람은 제 남자친구에요.]

[부럽네요.]

[다른 사람들은 언제쯤 들어오나요? 행동보조사나 방문객들요.]

[이십분이나 삼십분이 지나면 그때부터 오기 시작할 거예요.]

희영은 자기가 들었던 말들을 다시 기선에게 들려주었다.

“누나.”

갑자기 기선이 서림을 불렀다.

“들리지 않을 거예요.”

희영이 말했지만 뜻밖에서 서림은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말했다.

[들려요. 나를 누나라고 부르네요. 누나라고 부르는 소리는 정말 오랜만에 들어봐요.]

서림이 말했다.

“들린데요. 기선씨가 부르는 소리가요. 신기하네요.”

희영이 말했다.

그러면서 희영은 기선이 뭔가 달라 보인다고 생각했다.

“기선씨.”

희영이 불렀지만 기선은 깊이 생각에 잠긴 것 같은 표정을 지을 뿐 희영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가 희영만 두고 다른 세계로 가서 거기에서 존재하는 것 같다는 망상이 들어서 희영은 고개를 저었다.

희영이 슬그머니 기선의 팔을 붙잡았을 때 기선이 말했다.

“누나.”

[네.]

“언니가 대답했어요.”

희영의 말에 기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하는 말. 이상하게 들리겠지만요. 제가 말하는대로 해 보면 안될까요?”

[어떤 걸요?]

두 사람의 대화에는 희영의 통역이 필요했지만 어느덧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저도 제가 뭘 하려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만약 저를 믿어주실 수 있다면 제 말대로 해 주세요.”

[말해보세요. 그렇게 할게요. 두 분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두 분을 믿어도 된다는 건 알 수 있거든요.]

“누나.”

[네.]

“지금부터 누나가 누나 몸에 대한 통제권을 전적으로 다시 회복한다고 믿어보세요.”

[하지만.]

“알아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거. 하지만 믿음을 바꿔보세요. 부탁할게요.”

[알았어요.]

“누나는 이제 누나 몸에 대한 통제권을 온전히 다시 취득했어요. 그렇게 믿어보는 거예요.”

[네.]

“시간과 상관없이. 멀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와 상관없이요.”

[네.]

“그렇게 선포해도 좋아요.”

[그럴게요. 나는 시간과 상관없이, 멀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와 상관없이 내 몸에 대한 온전한 통제권을 다시 취득했어요.]

“이제 누나는 다시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어요. 그건 종소리가 울리기 전처럼이 아니라 장 항 형이랑 같이 살던 그때처럼 완벽한 통제예요. 누나를 완전히 이해해 주던 사람, 누나의 영혼까지 볼 수 있었던 사람과 같이 있을 때처럼 누나는 완벽해져요. 아무 것도 누나를 막을 수 없고 누나가 누나의 몸을 움직이고 자유를 선포하는 걸 방해하지 못해요. 준 맥브라이언이 누나에게 하는 말은 권세를 얻지 못해요. 그가 하는 말은 누나한테 다가가지 못할 거고 누나는 이제 그 말에 묶이지 않을 거예요.”

서림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서림은 울고 있었다.

우는 서림을 보는 희영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을 아는 것처럼 말하네요. 그 사람은 정말 그랬어요. 정말 내 영혼까지 볼 수 있는 사람 같았어요. 아, 울고 싶지 않은데. 미안해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려서. 이런 거 정말 싫어하는데.]

서림이 눈물을 닦았다.

그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였다.

세 사람 중 그 사실, 서림이 방금 눈물을 닦았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달은 사람은 기선이었다.

“누나. 방금 움직였어요.”

[……?]

“움직였다고요, 누나. 눈물을 닦았잖아요.”

서림은 놀라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서림이 말했다.

“언니가 세상에 라고 말했어요.”

희영이 말했다.

하지만 기선은 희영을 보고 전했다.

“이제 말해주지 않아도 돼. 누나가 입을 열어서 말했잖아. 그 말은 나한테도 들려.”

“세상에!!”

이번에는 희영이 그렇게 말했다.

서림의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린 것은 그때였다.

서림은 당황한 채 침대에 다시 누웠다.

“어떻게 하죠?”

“누나가 할 수 있어요. 누나의 몸에 대한 통제권은 온전히 누나한테 있어요. 희영이도 그랬어요. 준 맥브라이언이 나를 죽이라고 희영이한테 명령했을 때 희영이는 자기 생체에 명령을 내렸어요. 생명 유지 기능을 멈추도록 명령을 내리고 희영이는 저를 살리려고 했어요. 누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누나가 필요에 의해서 그런 상태를 유지해야 할 때는 누나가 그렇게 명령하세요. 누나가 깨어나기 위해서 준 맥브라이언의 명령이나 제 말이 필요하지 않을 거예요. 누나가 명령해 보세요.”

서림은 미심쩍어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곧 기선의 말대로 했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서림은 생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모습으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카렌은 발랄한 소리로 인사를 건네며 통나무처럼 딱딱하게 굳은 서림의 몸을 돌리느라 기운을 썼다.

“어떻게 된 거예요?”

희영이 기선에게 물었다.

“모르겠어.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

“희영이 너를 생각했어. 네가 네 몸에 명령을 내렸던 걸.”

“그게 기선씨의 능력이었을까요?”

“몰라. 나는 신비로운 남자잖아.”

희영이 웃었다.

그러더니 기선을 바라보았다.

“왜?”

“던칸 상원의원. 그 남자한테 걸린 최면도 기선씨가 풀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죠?”

“내가?”

“다를 게 없잖아요.”

“…….”

“그러면 선우 형 오빠는 문 밖에서 애절하게 상원의원을 불러대지 않아도 된다고요.”

희영이 말했다.

기선은 여전히 의문스럽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희영은 확신에 찬 듯했다.

그 시간에 선우 형은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느라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다.

히나타의 도움을 받아서 신사에 기거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문 밖에서 이런 저런 것들을 요구해 보는 중이었다.

히나타의 사촌 오빠에게 상의를 벗고 머리를 묶고서 문을 열어 달라고 말했을 때 그는 정말 그렇게 했다.

다른 사람은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문을 열어 달라는 말에 대성통곡을 했다.

그가 문을 열어 주었을 때 그의 눈은 정말로 퉁퉁 부어 있었고 선우 형이 돌아가고 나서도 한참동안 감정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흐느꼈다.

“확실하네요. 문이 있건 없건 상관 없어요.”

히나타가 말했다.

선우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기선이한테 말해줘야겠어요.”

선우 형이 말했다.

“이 얘길 들으면 좋아할 거예요.”

히나타도 같이 들떠서 말했다.

히나타와 선우 형이 기선의 방으로 향할 때 기선과 희영도 방에서 나왔다.

“할 말이 있어.”

“형, 할 말 있어요.”

두 사람은 동시에 외쳤다.

“그래? 뭔데?”

선우 형이 물었다.

희영은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로 선우 형을 바라보았다.

“오빠. 기선씨가 최면을 풀었어요. 서림 언니한테 걸린 최면을요.”

“뭐?”

선우 형뿐만 아니라 히나타도 놀라며 그게 정말이냐고 물었다.

“네. 서림 언니가 팔을 움직여서 눈물을 닦았어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곧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서림 언니는 스스로에게 명령해서 다시 최면에 빠질 수가 있었어요. 언니는 이제 준 맥브라이언한테 조종당하지 않는다고요.”

"그게 사실이야?"

"네. 우리가 지금까지 확인한 사실이에요."

"그렇다면 정말 굉장한 거잖아."

"서림 언니가 팔을 움직이는데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정말 전혀 기대하지 못했는데. 언니는 산 송장이나 다름 없었는데. 세상에. 식물인간이 다시 움직인다고 그렇게 놀랐을지."

희영은 열에 들떠 마구 떠들어대다가 선우 형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았다.

“왜… 그래요?”

희영이 선우 형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선우 형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항이 있었다.

항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히나타도 그를 바라보았다.

항은 서림이라는 이름을 듣기는 했지만 그 서림이 자신의 아내라고 확신은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제발 항이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냥 넘어가주길 모두는 바라고 있었다.

항이 묻는다면 거짓을 말할 수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항은 그들을 하나씩 쳐다보았다.

그는 머릿속에서 갈등을 일으켰다.

‘방금 서림이라고 하지 않았나? 최면?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 순 없는 거겠지. 서림인 죽었는데. 내가 말도 안 되는 걸 상상하는 거야. 서림이가 사라졌다면 모르지만 죽은 사람인데.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누군가의 최면을 받고 있는다는 건. 내가 너무 많은 걸 기대하고 있는 거야.’

그는 결국 아무 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인지의 부조화가 너무나 엄청나서 그는 그것을 차마 극복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선우 형은 책망하는 듯한 눈빛으로 희영을 바라보았고 희영도 자기가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닫고 자책을 했다.

자칫 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다.

“자. 자.”

기선이 다시 주의를 환기시켰다.

“소명이 누나한테 전화를 해서 알려줘야겠어요. 소명이 누나한테 예쁨 받을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으니까 이번 기회에 점수나 왕창 따 놓을 생각이에요.”

기선의 말에 장 항과 선우 형은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던칸의 환영을 희영이가 불러내고 희영이가 던칸과 얘기를 나눌 수 있는지 알아본 후에 내가 던칸에게 걸린 최면을 풀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기선이 설명했다.

“그래. 소명이한테 알려주면 소명이도 좋아하겠다. 나머지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될 테고.”

항이 말했다.

기선이 전화를 했을 때 소명은 정인과 함께 서울을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운전을 하는 소명을 대신해서 정인이 전화를 받았다.

“아, 정인이가 받네? 반가워.”

기선이 말했다.

“네, 저도 반가워요.”

정인이 웃었다.

여기 저기에서 인사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정인은 활짝 웃으면서 일일이 대꾸를 해 주었다.

지명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자리에 없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지명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가 두고온 세계에 남겨진 정인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문득 그것도 궁금해졌다.

“스피커폰으로 돌려서 누나도 들을 수 있게 해 줘.”

기선이 말했다.

“누나. 들려요?”

기선이 요란하게 물었다.

“그래. 들려. 맨날 사십 점만 맞던 애가 어쩌다 80점을 맞아서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목소린데? 그래. 자랑하고 싶은 일이 뭔데?”

소명의 말에 기선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80점짜리 성적표가 아니라니까요? 100점을 줘도 모자랄 걸요?”

“꽤 시끄럽게 구는 걸 보니까 뭔가 대단한 게 있는 것 같은데? 뭐야? 준 맥브라이언의 목을 이미 네가 가지고 있다는 얘기라도 하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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