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들-59화 (5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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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칸 상원의원에 대한 테러가 있을 거란 말이지?”

“네.”

“그 정보를 미리 입수한 거고?”

“네.”

“그럼 이제부턴 그 남자에 대해서 탈탈 털어봐야 되겠구나. 누가 악어새였는지, 누가 천적이었는지.”

지명은 아버지를 보고 웃었다.

“왜 웃어?”

“이런 관계라서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런 관계?”

“많은 걸 말하지 않아도 얘기가 통하잖아요. 더 묻고 싶은 게 있을 텐데도 그냥 믿어 주시잖아요.”

“믿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니 더는 못 묻겠구나. 처음부터 그걸 노린 거냐?”

“결과적으론 잘 됐으니까 된 거죠.”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알았다.”

선 사장도 기분 좋게 웃었다.

***

히나타는 물을 마시려고 나왔다가 항이 창가에 서있는 것을 보았다.

지명에게 이미 서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그런 항을 보자 가슴이 아파왔다.

항은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히나타가 그에게 웃어보였다.

“아……!”

항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상하지? 왜 자꾸 저 나무를 보게 되는지 모르겠어. 히나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 저 나무는 히나타라고 했잖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히나타가 웃으며 말하자 항은 다행이라는 듯 창밖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저 나무를 보고 있으면, 정확히는 저 꽃인데, 뭐라고 해야 할까. 내가 꼭 지켜야 할 사람을 아직은 잃지 않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어. 그래서 자꾸 들여다봐야 할 것 같고 그래. 웃기지?”

“아뇨. 웃기지 않아요.”

“내가 더 지킬 수 있는 게 뭐가 남았다고 이러는 건지 나도 모르겠어.”

“지금까지 잘 해 오셨잖아요. 앞으로도 잘 해 나가실 거예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럼 전 들어가 볼 게요.”

“그래. 나도 조금만 더 있다가 들어갈게.”

히나타가 가기도 전에 항은 벌써 창틀에 팔을 얹고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히나타가 들어갔을 때 지명은 아미와 함께 지도를 만들고 있었다.

“여기요. 여기가 제단이에요. 이 아래에 실험실이 있는 거죠. 그리고 제 기억이 맞다면 서림 누나가 있는 방은 아마 이 계단으로 올라가서 여기? 이쯤?”

“아미. 실험체들은 어떤 사람들이야? 위험하지 않을까?”

지명의 질문에 아미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공격성향이 강할 거예요. 대상을 가리지 않고 아마 분노를 표출하려고 들 거고. 어떤 건지 아시잖아요.”

“그래…….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네 생각은 어때, 아미?”

“학습된 무기력, 죽음에 대한 공포, 그런 것들로 인한 좌절감이 분노와 공격성향으로 표출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질 거예요. 우리는 우리를 향해서 사랑스런 미소를 짓는 미녀 살인범에게 동정을 베풀어서는 안 되는 법집행관의 운명인지도 모르죠.”

“그 사람들도 피해잔데.”

“맞아요. 피해자죠. 하지만 피해를 입은 결과 그 사람들은 괴물이 됐어요. 정에 휘둘려서 그 사람들에게 자유를 줘야 한다고 결정을 내리는 순간 그 사람들은 사회에 나가서 원자폭탄처럼 주위의 것들을 말살시킬 거예요. 엄청난 연쇄반응이 되겠죠. 그 시초에는 그들이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을 사회로 내보내기로 결정한 누군가가 있는 거고요.”

“…….”

지명은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두 손으로 머리를 눌렀다.

“머리가 아파요?”

히나타가 지명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응. 너무 지끈거려.”

“조금이라도 마음을 편하게 해 봐요.”

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기선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직 안 자고 있었어? 아미도 여기에 있네. 히나타. 또 방해해서 미안.”

“괜찮아요.”

히나타가 웃었다.

“잠깐 밖으로 나와 봐. 소명이 누나가 전화를 했어.”

“누나가요? 모두들 무사하데요? 잘 있는 거죠?”

지명이 물었다.

“그래. 다 잘 있데.”

아미와 지명이 일어서자 기선이 히나타에게 말했다.

“히나타도 같이 나와줘.”

예상했던 것과 달리 항이 있는 곳으로 기선은 사람들을 모았고 소명의 엉뚱한 계획에 대해 얘기를 시작했다.

“소명이 누나는 준 맥브라이언을 확실하게 없애기 위해서 먼저 붉은 번개의 틈’을 와해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붉은 번개의 틈’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세계로 빠르게 교세를 확장시키고 있잖아요. 누나는 우리가 던칸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걸 이용해 보자고 하는 거예요. 던칸은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잖아요.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사람이죠. 던칸이 칸트를 사주해서 영부인을 살해했다는 게 밝혀진다고 생각해 봐요. 그 파장은 어마어마하겠죠. 저쪽에 있는 지명이랑 사이크가 지금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어요. 던칸이 그동안 어떤 사람들과 손을 잡고 있었는지. 던칸의 후원자들, 던칸과 줄이 닿아있던 로비스트들, 던칸이 영향력을 행사해서 막혀있거나 또는 반대로 승승장구하던 업종과 기업에 대해서도 분석에 들어갔어요. 준 맥브라이언은 이 기회를 날려버리지 않을 거예요.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려고 할 거라고요.”

“그렇겠지.”

항이 말했다.

“그래서 소명이가 하려는 말은 뭔데?”

“던칸을 죽지 않게 하라는 거죠.”

기선이 말했다.

“어떻게?”

항이 피식 웃었다.

“맥브라이언이 이미 최면을 걸었다며.”

“네.”

“소명이도 알고 있는 거야?”

“네.”

“뭐? 그런데도 그런 소리를 하는 거라고?”

“네.”

“도대체 어떻게? 방법은 제시해?”

“소명이 누나를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뭘 그러세요. 그건 우리더러 알아내라는 거죠.”

기선은 별 것 아니라는 투로 웃으면서 말했다.

“맥브라이언이 던칸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기 전에 침입이라도 해서 던칸을 납치해 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선우 형이 말했다.

그러자 기선이 선우 형을 바라보았다.

“형. 형이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문을 열어 달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거고 던칸한테 같이 가자고 말할 수도 있겠죠. 던칸은 저항없이 형이 하는 말을 들을 거예요.”

“그렇긴 하겠지. 아직 문을 사이에 두고 그런 말을 해 본 적은 없지만.”

“문은 그냥 문일 뿐이에요, 형.”

연우가 말했다.

“누가 그걸 몰라?”

“시험삼아 해 봐도 되겠죠. 형의 능력을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연우가 말했다.

“그래. 확실한 게 좋으니까.”

선우 형이 말했다.

“일단 이 말을 먼저 해야 되는데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베리쳐에 지분을 갖고 있잖아요. 베리쳐가 얼마나 위험 선호도가 높은지는 아실 거예요. 하지만 이번의 투자를 생각하자면 그동안 해 왔던 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도 될 거예요.”

기선이 말했다.

“뭔데, 또?”

시영이 물었다.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간단해요. 베리쳐의 모든 자산으로 위험한 도박을 해 보려고 해요. 물론 원하는 사람은 이 일에서 자기 지분과 함께 빠질 수도 있어요.”

기선의 말에 각자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뭘 어떻게 할 생각인 건지 그거나 먼저 말해 봐.”

장 항이 말했다.

“던칸의 죽음은 미국 증시와 채권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거라고 생각할 거예요. 던칸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던 기업과 적대적인 관계를 맺고 있던 기업의 운명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겠죠. 우리는 준 맥브라이언의 예상과 반대로만 움직이면 돼요. 그 남자가 팔려는 걸 사고 사려는 걸 팔면 되는 거죠.”

“돈은 어떻게 충당할 거야?”

시영이 물었다.

“겨우 우리가 가진 돈으로 그렇게 한다고 해 봐야 맥브라이언한테 타격을 입히긴 힘들 텐데?”

“이제 겨우 논의단계에요,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저쪽에 있는 인간들은 소명이 누나 등쌀에 엄청난 속도로 일을 진행하고 있어서 이미 그 방법도 강구를 해 놨더라고요.”

“사이크랑 지명이가?”

기선의 말에 연우가 물으면서 웃었다.

“네. 혹시 타이라라고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타이라?”

지명이 물었다.

“지명이만 아나?”

“타이라가 왜요?”

“타이라가 투자은행가가 됐다는 거 알아?”

“그랬데요?”

“응, 타이라를 통해서 돈을 빌릴 거야. 스크루업도 투자를 하기로 했어. 거기는 뭐. 사이크를 신처럼 떠받들고 있는 곳이니까.”

“만약 잘못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연우가 물었다.

“잘못 된다는 건 던칸이 예정대로 죽는다는 거고 그렇게 되면 준 맥브라이언의 다음 타겟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되겠죠. 그러면 우린 전부 죽을 테니까 잘 안 됐을 때의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다같이 무덤에 누워서 흙냄새나 맡으면 되는 거죠.”

기선이 말했다.

“아니면 황산 농축액의 건더기가 돼서 다 같이 어우러지거나요.”

아미가 말했다.

“그래.”

지명이 아미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이제 대답들 해 줘요. 자기 돈을 어떻게 쓸 건지는 결정들을 해 줘야죠.”

기선이 물었다.

“뭘 새삼스럽게 물어. 나는 돈 굴리는 거 귀찮아. 재능도 없고. 알아서 해.”

항이 말했다.

“컨트롤 씨, 컨트롤 브이. 형이 한 말을 그대로 정확히 복붙하겠어.”

선우 형이 말했다.

여기 저기에서 ‘나도.’ ‘나도.’라는 말이 나왔다.

“자. 그럼 회의 끝. 던칸을 살리는 건 선우 형이 하는 걸로. 아. 던칸을 만나는 건 사이크를 통해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이크의 인맥이 꽤 막강하더라니까요? 그러니까 형은 사이크랑 같이 가서 던칸을 살리고 던칸을 빼돌려요. 그리고 베리쳐의 모든 자산은 준 맥브라이언을 쓰러뜨리는데 쓰일 겁니다.”

서림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모두가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해 보자고.”

항을 시작으로 모두가 일어서서 방으로 돌아갔다.

“드디어.”

방으로 들어간 희영이 기선에게 말했다.

“시작인 거군요.”

“응.”

“좀 겁 나요.”

“나도야.”

“나는 있죠. 그렇게 되고 싶진 않아요.”

“어떻게?”

“죽어야 한다면 고통스럽지는 않게 죽고 싶어요.”

“나도 그래.”

“그런 걱정을 하진 않아도 되겠죠? 지명씨가 있으니까.”

“그래. 소명이 누나가 말한 것처럼 지명이가 둘이나 있으니까 더 다행인 거지.”

“어느 지명씨가 과거로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히나타나 정인씨 중 한 사람은 남겨지겠군요.”

“지명인 돌아오지 않을까?”

“그럴까요? 지명씨가 과거로 가야 한다는 건 우리들중 누군가가 죽었다는 뜻일 텐데. 지명씨가 돌아오고 싶어할까요?”

“여기엔 히나타랑 정인이가 있잖아. 돌아올 거야. 나는 그럴 거라고 생각해.”

“기선씨라도 그럴 거죠? 돌아올 거죠?”

“당연하지. 바보야.”

희영이 웃었다.

힘을 내보려는 듯 팔을 휘휘 저어보기도 했다.

“희영아.”

기선이 부르자 희영이 그를 바라보았다.

“서림 누나. 네가 보고 싶으면 볼 수 있는 거야?”

“모르겠는데. 해 볼까요?”

“응, 해 봐. 그게 수동적으로 보이기만 하는 건지, 아니면 네가 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건지.”

희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침대 위에 편안히 앉았다.

“나도 같이 볼 수 있게 해 줄 수 있어?”

“그럴게요. 그 전에 문 먼저 잠그고 와요. 항이 오빠가 들어올 수도 있잖아요.”

기선은 희영의 말에 부지런히 가서 문을 잠그고 돌아왔다.

“준비됐어요?”

“나야 뭐.”

기선이 웃자 희영이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곧.

환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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