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3 / 0101 ----------------------------------------------
그가 뭔가를 알아낸 것일까.
감히 칸트를 향해 품은 마음을?
하지만 그럴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충분히 조심하기도 했고, 남의 눈에 띄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두 사람 사이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괜히 혼자 찔릴 필요도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그럼 칸트는? 칸트는 어떻게 된 거지?’
갑자기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는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칸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서 에단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준은 에단이 스스로를 괴롭히며 스스로 지옥을 파는 것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실험실을 나가버렸다.
***
여전히 서림의 방은 사람들로 가득찼다.
사람들은 그림을 보면서 희망을 품었고 서림의 처지에 비해서 자신들은 얼마나 나은가 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동정심은 이상한 방법으로 사람의 마음을 다독였다.
비열한 우월의식이 그들의 병든 마음을 치유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림은 그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그들이 어떻게 느끼건 서림은 자신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준이 그 방에 들어온 것은 네 시가 훨씬 못 되어서였다.
준은 별다른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고 사람들을 내보냈다.
서림을 찾아와서 서림의 신성한 치유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붉은 번개의 틈'에 입교를 하곤 했다.
서림이야말로 붉은 번개의 틈이 교세를 확장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맡아온 장본인이었다.
그래서 제단만큼이나 사람들은 서림의 방을 신성하게 여겼다.
그랬기에 준의 난폭하고 즉흥적인 행동에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면서 당황했지만 결국은 준의 기세에 눌려서 방을 비우고 모두 나가버렸다.
방에는 이제 서림과 젊은 행동보조사만 남아 있었다.
“이름이 뭐지?”
준이 행동보조사에게 물었다.
“카렌.”
영어가 서툰 스페인 출신의 여자였다.
준은 별다른 설명도 없이 카렌을 욕실쪽으로 밀었다.
카렌은 처음에는 버티다가 몸을 밀치는 준의 손길이 꽤 단호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그때부터 순순히 앞장을 섰다.
준은 욕조에 물을 받았다.
카렌은 그가 무엇을 의도하는지 알지 못했다.
“속옷 벗어.”
준이 말했다.
카렌은 놀란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준이 바지를 벗는 것을 보고 자기도 서둘렀다.
그러는 사이에 물이 어느 정도 차 올랐다.
카렌은 무슨 일을 당하는지 알지 못한 채로 욕조에 처박혔다.
허리가 기역자로 꺾였다.
그런 상황에 처할 거라는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면 숨이라도 깊이 쉬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카렌은 허우적거렸다.
카렌은 겨우겨우 가슴으로 숨을 버티고 있었다.
카렌의 붉은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준이 카렌의 머리를 물 속에서 꺼냈다.
카렌은 탐욕스럽게 숨을 몰아쉬었다.
내쉬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계속해서 숨을 들이쉬기만 했다.
준은 다시 카렌의 머리를 욕조에 박았다.
카렌은 이번에는 꽤 오래 버텼지만 결국 다시 숨이 차기 시작했다.
준은 카렌이 버둥거리는 것을 보면서 스커트를 걷어 올렸다.
준의 페니스가 갑자기 찌르고 들어가자 카렌은 흡, 하고 비명을 질렀다가 입을 다물었다.
기포가 올라왔다.
준은 셋까지 세다가 다시 카렌의 머리채를 잡아 꺼내주었다.
카렌의 얼굴에는 눈물이 맺혔지만 어차피 물 때문에 표시가 나지도 않았다.
준이 다시 카렌에게 자신을 채워 넣으며 밀고 들어갔다.
카렌의 몸은 꽤 만족스러웠다.
큰 파동을 일으키면서 준이 욕조로 들어갔다.
카렌은 단단해진 페니스가 눈 앞에서 출렁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준이 손가락으로 카렌의 턱을 잡아 내렸다.
카렌의 입이 조심스럽게 벌어졌다.
“더 벌려.”
준이 말했다.
카렌은 그를 바라보며 어정쩡하게 입을 더 벌렸다.
준은 더 말하는 대신에 카렌이 받아들이기 벅찬 크기의 페니스를 카렌의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후읍!!”
고통당하는 모습, 그것도 자신으로 인해서 고통당하는 모습이 준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그 모습에 그의 공격성이 자극되었다.
물에 젖어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휘어잡으며 준은 카렌의 입 속으로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카렌이 움직이는 속도는 그의 성에 차지 않았다.
카렌은 필사적으로 입을 벌렸다.
깊이 들어오는 페니스에 목구멍이 간질거려서 기침을 하기도 했고, 구토를 할 것 같아서 머리를 뒤로 빼기도 했지만 점점 준은 그렇게 반복되는 상황에 인내심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준이 두 손가락으로 카렌의 입을 벌렸다.
억지로 넓게 벌려진 입안에 그가 다시 페니스를 깊이 밀어 넣었다.
카렌은 자신의 불편한 상황을 호소하고 싶어 그를 바라보았지만 눈물마저 맺힌 카렌의 눈을 보면서 준은 그저 쾌감을 느낄 뿐이었다.
“카렌!!”
준의 움직임이 점차 거칠어졌다.
준이 더 깊이 밀어넣을수록 카렌은 뒤로 밀려났다.
카렌은 비틀거렸고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그대로 넘어지며 욕조에 풍덩 빠져버렸다.
어푸거리면서 고개를 들려고 했지만 준은 카렌을 일으켜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몇 초만.
몇 초만이라도 더.
카렌은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두 팔이 물 속에서 버둥거렸다.
이제는 죽는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준이 카렌의 고개를 처들었다.
카렌은 거의 실성한 사람 같았다.
카렌은 거칠게 숨을 토해내면서 준을 할퀴려고 했다.
하지만 준은 가볍게 카렌의 두 손을 뒤로 모아 쥐고는 카렌의 몸을 벽으로 돌려세우고 카렌의 몸 안에 거칠게 밀고 들어갔다.
“흐으윽!!”
카렌이 그를 향해 돌아서려했지만 준은 카렌의 아랫배를 꽉 끌어안고서 더 깊이 밀어 넣었다.
“흐으윽!!”
카렌이 소리쳤다.
준은 카렌의 안에서 점점 속력을 냈다.
준은 카렌의 입에 혀를 밀어 넣었다.
카렌은 제 몸에 그의 것이 뜨겁게 퍼지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 움직임까지 필사적으로 마쳐놓고 준이 카렌을 가득 끌어안았다.
카렌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울었다.
“쉬이. 내가 설마 널 죽이겠어?”
준이 카렌의 눈물을 손가락 끝으로 닦아 주었다.
그 말에 카렌은 더 소리를 높여서 울었다.
“서림을 도와주는 사람인데. 너는.”
서림이 아니라면 너 같은 건 그냥 죽일 수도 있다는 뉘앙스에 카렌은 흠칫 몸을 떨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서림은 내가 돌볼 테니까 돌아가 봐.”
“하지만 아직…….”
카렌은 시간이 되지 않았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준의 눈초리가 사나워지는 것을 보고 서두르기 시작했다.
그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서림은 어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처음이었다.
[누구세요?]
여자는 그렇게 물었다.
서림은 여자를 바라보았다.
멀리에서, 자주 서림을 들여다보는 여자였다.
여자는 서림의 고통을 슬퍼했다.
서림이 당하는 고통 때문에 울기도 했다.
서림은 왜 자신의 눈에 여자가 보이는지 알지 못했다.
여자의 형상은 흐리고 희미했다.
사람처럼 보이는 구름 같다고 해야할까?
바람이 불면 그 형체가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집중해서 오래 바라보면 그 형체는 왜곡되곤 했다.
하지만 서림은 그녀가 자신을 걱정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구세요?]
첫 시도 후에 여자가 다시 물었다.
서림은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임서림요.]
[왜 거기에 계신 거예요?]
[납치당했어요.]
[납치요? 준 맥브라이언한테요?]
[네. 그 사람을 알아요?]
[알죠. 아주 잘 알아요. 그 사람이 보낸 사람한테 한 번 죽기까지 한 것 같거든요.]
[죽었던 것 같다고요?]
[우리 중엔 시간을 거슬러가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과거로 돌아가서 우리를 구출해 줬어요.]
[…….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어쨌든 다행이네요.]
[믿기 어려운 얘기를 하나 더 해드릴까요?]
[더 놀라게 될 것 같지도 않으니까.]
[벽에 걸어둔 그림 있죠? 꽃이 핀 나무 그림요. 그 나무가 사당 앞 마당에 있어요.]
[사당요?]
[우린 지금 신사에 머물고 있어요. 준 맥브라이언이 우릴 죽이라고 보내는 사람들을 피해서요.]
[거긴. 안전한가요?]
물으면서 서림은 그 단어 때문에 괜히 슬퍼진다고 느꼈다.
안전하다는 단어에는 너무나 많이 그녀의 남편이 묻어있었다.
[다른 곳보다는 안전할 거라고 믿고 있어요.]
[그렇군요. 다행이에요. 무사하길 빌게요.]
[꽃송이가 매달린 것까지 똑같아요.]
[정말요? 어떤 나무죠?]
[그건…….]
나무신의 현신이라고 말을 하면 믿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희영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제가 하는 말들을 믿기가 힘드실 거예요.]
[모르겠어요. 나는 내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가사의한 일들을 받아들일만큼 겸손해졌다고 생각하거든요. 나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 내가 이해할 수 없다고해서 다른 신비로운 일들을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서림의 말에 희영은 용기를 냈다.
[사당은 나무신을 섬겨왔어요. 그리고 수백년을 산 나무가 죽은 후에 사람으로 태어났고 시간을 거슬러 온 남자를 사랑하게 된 나무신이 그 시간에 사로잡힌 채 나무가 됐어요. 이번에 꽃을 피운 나무는 바로 그 나무에요.]
[그 나무신은, 지금 살아있나요?]
[네. 하나는 나무의 형상으로, 하나는 사람의 형상으로.]
[사람의 형상을 한 나무신은 그 남자를 다시 만났나요?]
[네. 두 사람은 정말 성실하게 서로를 사랑하고 있죠.]
[다행이에요. 두 사람이 열심히 사랑하길 바란다고 전해줄래요?]
[그럴게요.]
[결국엔 기억만 남아요. 그리고 이름만 남죠. 나한테도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을 만질 수도 없고 사랑을 나눌 수도 없지만 그 이름을 늘 기억하죠. 기억이 그 사람이고 기억이 나인 것 같아요. 어느 순간에는 기억이 존재가 되죠. 남편이 그리울 땐 그의 이름을 혼자서 불러보곤 해요.]
[그 분은 서림씨가 거기에 있는 걸 모르나요?]
[내 남편은 내가 죽은 줄 알아요. 나는 그 사람이 내 옆에서 내 죽음을 애도하는 걸 들었어요. 그 사람은 정말 슬프게 울었죠.]
[살아 계시다는 걸 제가 알려줄 수 있을 거예요. 누군지 알려주세요. 제가 알려드릴게요.]
[아뇨. 그러지 마세요. 그렇게 큰 고통을 안은 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겨우 자기 삶을 찾았을 거예요. 아이 때문에라도 그 사람은 강하게 버텨야 돼요. 이제와서 내가 이런 몸으로 갇혀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건 불치병에 걸린 것보다 더 끔찍하게 그에게 절망을 안길 거예요.]
[하지만…….]
[그 사람은 내가 늘 그림에 너무 많은 열정을 쏟아 붓는다고 했죠. 그의 말이 사실이었을지도 몰라요. 내 전부를 쏟아 부은 그림에 그의 이름을 새기면서 나는 우리가 여전히 같이 있다고 생각해요.]
[……. 네?]
[내 그림을 보지 않았나요?]
[그림에 이름을요?]
[항. 그게 그 사람 이름이죠. 장 항.]
[……!!]
멀리에서 네 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네 시에요. 마법이 풀릴 시간이죠.]
서림이 말했다.
서림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희영은 멍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중에 아미와 지명과 마주쳤지만 두 사람이 건네는 인사를 제대로 받지도 못했다.
히나타는 희영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물었고 히나타의 말에 기선이 희영에게 다가왔다.
“희영아. 왜?”
하지만 희영에게는 그런 소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희영에게는 단 한 사람만 보였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 희미한 웃음을 입가에 걸친 채로 자연스럽게 창 밖의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