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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들-52화 (5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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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떠난 복도에 준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칸트의 방 문을 두드렸지만 칸트는 나오지 않았다.

에단이 가지 않고 문을 두드리는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다. 칸트. 문 열어.”

준이 말했다.

급하게 걷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준!”

놀란 얼굴을 한 칸트를 바라보며 준은 말없이 칸트를 안았다.

“준…….”

칸트는 더 이상 그를 부르지 못했다.

뜨거운 준의 입술이 칸트의 입술을 덮고 그의 혀가 그녀의 입안을 어지럽게 휘저었다.

곧 문이 닫혔고 복도에는 더 이상 사람의 그림자가 오가지 않았다.

“칸트……. 너한테 사과해야 한다는 거 알아.”

준이 말했다.

칸트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준…….”

준은 어떻게 시작을 하는 게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는 것은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칸트. 나는 너하고 같이 있을 때만 완전해 질 수 있어. 네가 나한테 소원하게 구는 동안은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어. 온통 너한테만 신경이 쓰여서. 괴로웠어.”

“준…….”

“용서해 줄 수 있어?”

“준. 나는 준을 용서할 수 없어요. 내가 나를 미워할 수 없는 거랑 마찬가지에요. 준을 미워하는 게 불가능해서 나는 준을 용서할 수도 없어요. 준에게 화가 나지도 않아요. 준은 내가 화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나는 준이 나라고 느껴요. 나는 준이 나랑 같은 사람이라고 느껴요. 우리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내가 밉고 나한테 수도 없이 화를 내는데."

"그러지 말아요. 준."

칸트의 말에 준은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칸트가 머뭇거리며 준의 목에 팔을 감았다.

준은 주저하지 않고 칸트의 입술에 깊은 키스를 했다.

“던칸을 찾아갔던 일은 잘 됐어?”

“잘 못 될 게 없었잖아요.”

“‘붉은 번개의 틈’을 향해서 사법당국이 제재를 할 것 같아?”

“던칸이 알아서 해결할 거예요. 그동안 충분히 놀고 먹었으니까요.”

“던칸한테는 확실히 얘기한 거지?”

“네.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던칸이 유일한 카드가 아니라는 점은 말했으니까요.”

“그럼 지금 필요한 건 뜨거운 목욕이겠군. 그렇지?”

준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녹아들 것 같아서 칸트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을 받아 놓을게요.”

칸트는 욕실로 들어가면서도 연신 그를 돌아보았다.

준은 차곡차곡 옷을 벗어두고 칸트가 기다리는 욕실로 들어갔다.

칸트는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에서 두 눈을 감고 서 있었다.

그러다가 준이 들어오는 기척에 눈을 떴다.

칸트가 미소를 지었다.

칸트가 짓는 나른한 표정을 보고 있으려니 준은 기분이 금세 나아졌다.

자신의 앞에서는 누구도 저렇게 무방비한 표정을 짓지 못한다는 것을 준은 알고 있었다.

오직 칸트만이 그럴 수 있었고 오직 칸트에게만 그러도록 허락했다는 것을 준은 기억하고 있었다.

준은 물 줄기 안으로 들어갔다.

따가울 정도로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에서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는 칸트의 눈두덩에 입을 맞추었다.

욕실 안에는 수증기가 가득했고 칸트의 머리와 몸에서는 부드러운 물줄기가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준이 먼저 욕조로 들어가자 칸트가 물을 잠그고 얼굴의 물기를 손으로 닦아내며 그에게 다가왔다.

짙은 갈색의 음모가 준의 앞에 놓였다가 부드럽고 순수한 속살을 드러냈다.

칸트는 준이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자신의 비부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에 온몸을 긴장시켰다.

준이 칸트의 손을 잡아 주었다.

칸트는 돌아 앉으며 준의 품 속에 안겼다.

준은 오랜만에 충만한 평온을 느꼈고 따뜻한 물을 손에 담아 칸트의 몸에 끼얹었다.

칸트는 간간히 고개를 돌려 준의 목덜미와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준의 시선이 아주 잠깐 동안 선반에 놓인 작은 병에 닿았지만 수증기가 가득차 있는 실내에서 앞이 잘 안 보이기도 했고 다른 데에 정신을 분산하고 싶지도 않고 자세히 보려던 것을 그만두었다.

준이 칸트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칸트를 일으켰다.

칸트는 준이 원하는대로 그의 위에서 다리를 벌리고 칸트의 페니스를 품은 채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준의 입에서 더운 신음이 밀려나왔다.

칸트는 아랫 입술을 깨문채 칸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하으으읏.”

“으윽.”

두 사람의 신음이 얽혀들어갔다.

긴장 상태에서 끝까지 들어가고 나자 칸트가 허리를 움직이면서 제대로 그의 페니스를 편하게 품었다.

준은 연신 칸트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러고 싶었는지 말하고 싶었다.

칸트의 가슴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유두를 혀로 핥았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사라진 아이가 떠올랐다.

잠시 준의 움직임이 멈춘 동안 칸트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준.”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당신의 곁에서 당신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도 말을 하지 않은 것은 그 말을 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믿어서였다.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준은 이미 그 마음을 알 거라고 칸트는 생각했다.

준이 천천히 칸트를 밀었고 칸트는 욕조의 반대쪽 끝을 짚고 허리를 들었다.

준은 무릎으로 기어가 칸트의 벌어진 속살에 혀를 밀어 넣었다.

“주우운…!”

칸트의 비명이 뜨겁게 터져나왔다.

준은 칸트에게만 집중하려고 했다.

하지만 선반 위의 병이 한층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그것이 뭔지 보려고 했다.

안개같은 수증기가 그의 시야를 가렸다.

“칸트. 선반 위에 있는 게 뭐야?”

두 사람의 몸이 촘촘하게 맞닿아 있었기에 칸트가 움찔하는 것이 그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칸트.”

준은 다시 재촉했다.

하지만 칸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를 돌아 보았다.

준이 일어섰다.

“준…….”

그때라도 설명을 하는 것이 좋았을까.

하지만 칸트는 기회를 잃고 말았다.

준은 일어서서 선반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병 안에 든 걸쭉한 액체 속에 담긴 것을 바라보았다.

망할놈의 수증기가 빠져나가게 하려고 욕실 문과 창문을 모두 열어버렸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수증기를 밀어냈고 준의 시야는 점점 명확해졌다.

“……!”

손가락.

다리였을 것들.

작은 발.

그런 것들이 액체 속에서 정지되어 있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그것이 누구의 몸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준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을 체험했다.

에단.

왜 그가 칸트의 건강을 염려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칸트의 몸에서 준의 아이를 긁어낸 것이 에단이었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칸트가 에단을 향해서 두 다리를 활짝 벌리고 있는 동안에.

준은 미친 듯이 칸트를 노려 보았다.

칸트는 어떻게든 설명하려고 했다.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당연히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칸트는 생각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어떻게 쏟아내야 할지 칸트는 알지 못했다.

더더군다나 미친듯이 화를 내는 준의 앞에서 자기가 어떤 생각으로 그런 부탁을 에단에게 했는지를 차근차근 풀어놓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했다.

“뭐야, 이게!”

준의 목소리는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그가 그렇게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를 내는 것은 기선의 무리가 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처음인 것 같았다.

“준…!”

칸트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준. 나는……, 내가 설명할 수 있어요. 준을 위한 거였어요. 준의 곁에 남아 있고 싶었으니까요. 준을, 지켜주고 싶었다고요!”

칸트는 한 마디 한 마디를 쥐어짜내듯이 말했다.

“나를 지키고 싶었다고?”

“준. 믿었던 실험체들이 사라지고 있어요. 그들은 죽은 거라고요. 이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잖아요. 우리가 계획한 일이 어긋나는 일 말이에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한테 패배가 익숙해지고 있잖아요. 준. 내가 바꿔야 했다고요. 준을 위해서 나서려면 임신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고요!”

겨우 그렇게 설명을 마쳤을 때 칸트는 준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의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준은 싸늘하게 칸트를 노려볼 뿐이었다.

“내가 나를 스스로 지키지 못할 것 같아서 내 아이를 제물로 삼았다는 말이지? 그걸 여기에 뒀다는 거야? 차라리 버리지 그랬어? 이 녀석은 왜, 대체 왜 이런 모욕까지 당해야 되는 거지? 왜냐고!!”

준이 팔을 내저어 선반 위의 병을 쓸어버렸다.

병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서 깨졌고 걸죽한 액체가 바닥으로 흘렀다.

액체를 따라서 팔과 다리들이 마치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기어나왔다.

너무나 작아서, 기형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너무 작기만 해서 더 참담했다.

준과 칸트 모두 눈 앞에서 펼쳐지는 참혹한 모습에 할 말을 잃고 있었다.

그러다가 칸트는 준의 팔에서 솟구치는 피를 보았다.

“준!”

다른 것을 생각할 틈도 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굵은 유리 조각이 발바닥 중앙에 정통으로 박혔지만 칸트는 개의치 않았다.

“손대지 마. 칸트. 너를 죽일지도 몰라.”

준의 목소리가 한없이 가라앉았다.

“준. 내가 왜 그런 건지 정말 모르는 거예요?”

“왜 그런 건지? 어떤 거에 대해서 말하는 거지? 에단 앞에서 다리를 벌린 거? 그 에단이랑 웃으면서 방문 앞에서 흥분하던 거? 에단이 네 몸 속에 있는 내 아이를 긁어내줘서 그렇게 고마웠던 건가 보지?”

“준!! 당신은 그렇게 말할 권리가 없어요. 절대로 그렇게 말할 수는 없어요. 당신도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잖아요!!”

“아니. 칸트.”

준이 칸트를 노려 보았다.

벌거벗은 두 사람 사이에 애정의 기색은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를 죽여. 칸트. 너를 용서해 주려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 명령이야. 그리고 너는. 이제 어떤 방법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을 거야.”

준이 말했다.

그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고 자석에 끌리듯 어쩔 수 없이 바닥에 쏟아진 태아의 잔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순간 눈물이 고였다.

칸트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칸트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아이를 원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준!”

칸트는 발을 내딛으려다가 끔찍한 고통에 발을 절뚝거렸다.

바닥에 피가 흥건했다.

하지만 지금은 고통 따위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준을 이대로 놓쳐버린다면 다시 그를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칸트는 미친 사람처럼 준을 쫓아갔다.

하지만 준은 이미 복도 끝으로 멀어진 후였고 칸트에게는 그가 남긴 마지막 말만이 떠올랐다.

‘그를 죽여. 명령이야. 칸트.’

칸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떤 대답도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칸트는 아이의 잔해를 그러모았다.

'날 도와줘. 나한테 답을 줘.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 거야!!!'

칸트의 방을 나선 준은 곧장 제단 아래의 실험실로 향했다.

모든 연구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의 앞에 도열했다.

준은 그저 멀리에서 에단을 지켜볼 뿐이었다.

에단은 불편한 마음으로 그의 시선을 견뎌냈다.

무슨 일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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