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들-43화 (4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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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이 찾는다는 전언을 듣고 칸트는 잠시 머뭇거렸다.

크리스를 바라보았지만 크리스는 어떤 동요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 기억은 완전히 잃어버린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칸트는 안심했다.

“연구실에 내려가서 사람을 한 명 찾아와.”

칸트는 믿을만한 녀석을 시켜 지난 밤에 크리스를 챙겨주었던 연구원을 데려오게 했다.

크리스는 에단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아는 사람을 보는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지금 맡고 있는 일에서 잠깐 빠질 수 있으면 당분간 크리스를 살펴봐줘. 약을 먹여서 기억을 지웠어. 다른 기억들은 손상되지 않고 실험실에 내려가서 겪은 일만 잃은 것 같아. 우선은 이 일에 매달려줘. 약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볼 필요도 있었잖아.”

말은 그렇게 해도 칸트가 크리스를 신경쓰고 있다는 것은 명백해 보였기에 에단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에단이 말을 하자 칸트가 그를 바라보았다.

“몸 조심하십시오. 지난 밤에는 좀 걱정스러웠습니다.”

에단이 말했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칸트가 그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말했다.

“……예.”

“그리고 혹시 내가 돌아오지 못하면.”

“…….”

“크리스가 나에 대한 기억을 잊게 해 줘.”

“…….”

“크리스한테 약속 한 게 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그래.”

"약속한 장면의 기억을 지운다고 약속을 지킨 사람이 되는 건 아니죠. 최선을 다해서 아이와의 약속을 지켜주세요."

"만약의 경우를 말하는 거야. 만약에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리고. 건방지게 자꾸 말 걸지 마."

“돌아오실 겁니다. 돌아오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요.”

“아무 근거도 없이 격려할 수 있는 패기가 있어서 좋겠다.”

칸트가 웃었다.

남겨진 사람은 웃지 못했다.

“부탁한다. 내 부탁을 들어주기는 쉽지 않을 거야. 정확히 그 기억이 저장된 공간을 찾아내야 할 테니까.”

칸트가 말했다.

“저는 꽤 유능한 사람입니다.”

“그렇겠지. 그래야 될 테고.”

칸트는 크리스가 놀이에 집중한 틈을 타서 문을 열고 나갔다.

크리스가 감당하기 어려울 이별을 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준은 메마른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면서 칸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칸트는 무거운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에게 다가가기 훨씬 전부터 칸트가 오고 있다는 것을 준도 알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을 보고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할 길이 없었다.

“제가. 사과해야 합니까?”

칸트가 말했다.

“왜? 하고 싶어?”

“아뇨.”

“내가 심했다고 생각해?”

“…….”

“응?”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떤 일?”

“실험실에서의 일도 그렇고. 애초에 달튼이 배신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하고요.”

“너도 내가 무서운가?”

“왜 그걸 물으시죠?”

“솔직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그건 중요한 게 아닐 텐데요.”

“그래? 중요하지 않은 건가?”

준이 칸트를 바라보았다.

“왜지?”

“제가 준의 곁에 있고 싶어하는 건 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니까요.”

“…….”

준이 칸트를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다고 칸트는 생각했다.

“언젠가. 우리가 걷는 길이 달라질 수도 있겠는지, 너한테 묻고 싶었다.”

준이 말했다.

“준은 어떤데요?”

칸트의 말이 당돌하다고 생각했는지 준이 웃었다.

의자에 깊이 몸을 묻고 있던 준이 칸트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칸트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준은 칸트의 손을 잡아 끌어 당기고 칸트의 배에 귀를 가져다 댔다.

귀를 바짝 대지 않아도 이제 아이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너를 미워해보려고 했어.”

준이 말했다.

“그런데 안 되던가요?”

“그래. 그래서 화가 나.”

“준이랑 다른 길을 가고 싶지는 않아요.”

“나는 쉽게 변하지 않아, 칸트.”

“그러게요. 그래서 무서워요.”

칸트는 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너를 보고 싶지 않다.”

준이 칸트를 밀었다.

"거짓말이잖아요."

칸트의 말에 준이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어떤 면으로는 안도하는 것 같기도 했다.

칸트만큼은 언제까지라도 준을 믿고 기다려줄 거라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에서부터 따뜻한 물결이 밀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가라. 다시 부를 때까지는 내 눈에 띄지 않도록 해. 어쨌든 지금은 이게 명령이니까.”

칸트는 슬픈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혼자 남은 달튼의 새끼 원숭이를 보살피든지 뭘 하든지 그건 네가 알아서 해.”

그렇게 말하고 준은 피곤하다는 듯이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칸트는 이번에야말로 준의 말을 따르지 않고 싶었다.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 준을 두고 가는 것은 싫었다.

하지만 칸트가 나갈 때까지 준은 더 이상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칸트를 바라봐 주지도 않았다.

칸트가 방을 나가자 준은 불안이 담긴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당분간은 두 사람의 아이가 들려주는 심장 박동 소리 대신 그를 위로해 줄 것을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준은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깨닫게 되었다.

***

“하루토 선배. 잠깐만요.”

여리여리하게 생긴 남자 아이가 하루토를 부르며 그의 뒤를 쫓아왔다.

아직 남자다운 선이 갖추어지지 않은 부드러운 얼굴 선에, 햇빛을 받으면 금가루를 뿌려 놓은 것처럼 반짝이는 솜털까지 아주 가지가지를 다 하는 앳된 얼굴이었다.

하긴.

하루토와 그의 동료들이 아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석달이 지나면 어엿한 성년이 된다.

그렇게 항변을 하면 하루토는 그때마다, '그러니까 석달 동안은 아직 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잖아!' 라고 귀찮다는 듯이 대꾸하곤 했다.

"하루토 선배. 하루토 선배. 잠깐만요!!"

녀석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뛰어오면서도 하루토를 부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거참, 귀찮게 구네.’

하루토는 한 번 뒤를 돌아보고 그때부터는 발걸음을 더 빨리 했다.

“하루토 선배. 태워다 주기로 했잖아요.”

“그건 네 생각이지.”

“무슨 말이에요, 하루토 선배. 분명히 태워다 주겠다고 했잖아요.”

건설현장에서 같이 일을 하는 녀석이었다.

이름은 이츠키.

나이는 열 아홉살.

다시 말하지만 성년이 되기까지 아직 석 달을 남겨둔 애송이.

하루토는 이츠키를 떼어낼 생각에 골몰했다.

이츠키가 일을 해 보겠다고 현장에 나타났을 때 하루토는 사람들과 함께 내기를 했다.

여자처럼 가는 팔을 보고 근성이 없겠다고 판단을 해버린 하루토는 이츠키가 그곳에서 버틸 수 있을 시간을 고작 두 시간으로 잡았다.

다른 사람들도 길게 잡지는 않았다.

세 시간, 다섯 시간, 여섯 시간 칠 분.

하루를 다 버틸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츠키는 기를 쓰고 버텼다.

남들이 한 번에 나르는 분량을 두 번에 나눠서 옮기는 것 때문에 반푼이라고 놀림을 받으면서도 이츠키는 버텼다.

"반푼이는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잖아요!!"

이츠키가 그렇게 말을 하면,

"어차피 그거나 그거나 마찬가지야."

라는 시큰둥한 대꾸가 돌아올 뿐이었다.

이츠키가 버티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돈이 급한 것 같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대학 총장이라는 소리도 있었다.

이츠키가 도대체 여기에는 왜 온 걸까라는 질문이 도무지 끊이질 않자,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바꿔보자는 생각으로 온 것 같다고 하루토가 대충 말했다.

그러자 모두들 그 말을 믿는 분위기가 되었다.

하루토는 현장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하루토도 현장 사람들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붉은 번개의 틈’에서 지령이 내려온 날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졌다.

한때 그는 테이저건에 열을 올렸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곧 위험할 정도로 거기에 몰두를 하게 됐다.

이제 손을 떼야지 라고 생각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다시 거기에 또 정신없이 매달리고 있었다.

관련회사에 스카웃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토는 자기가 조직 속에서 정치를 하는 일에 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루토가 개발을 해내면 하루토의 팀장이 그 성과를 채갔다.

거기에는 하루토의 책임도 컸다.

그는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고 승진에도 그다지 욕심을 내지 않았다.

주먹밥을 옆에 두면 참새가 와서 다 쪼아 먹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무심하게 그냥 옆에 두어버리는 사람처럼 그는 그렇게 자신의 권리에 무관심하게 굴었다.

그러다가 하루토가 그곳을 떠난 것은 자기가 만든 제품이 무기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서였다.

그것은 불안한 가능성으로 끝나지 않았고 실제로 하루토가 만든 제품을 사용해서 싸우다가 친구를 죽음에 이르게 한 녀석이 나타났다.

하루토의 성과를 가로채갔던 팀장은 막상 비난 여론이 들끓자 그들의 손가락을 친절히 밀어서 하루토를 향하게 해 주었다.

하루토는 진절머리가 나서 그곳을 떠나버렸다.

죄책감도 남아 있기는 했다.

자기 때문에,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에 그는 오랫동안 제 궤도로 돌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다시 테이저 건을 만들고 있었다.

조직에 소속되지도 않은 채로 그는 점점 전압을 올렸다.

순간 전압이 10만 볼트까지 흐르도록 설계를 했다가 그게 왜 더 높아지면 안 되는지 생각했다.

그가 만든 것은 여러 모로 변형이 이루어져 있었다.

하루토는 몇 번, 거기에 정확히 들어맞는 이름을 지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적당한 이름을 찾지 못하고 포기하곤 했다.

그에게는 적정 수준이나 한계라는 게 사라졌다.

하루토는 급기야, 사고가 났을 때 자기가 느꼈던 감정이 죄책감이 맞았던 건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자기가 만든 제품으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조금은 기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시장에 풀리지 않은 테이저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의 무기였고 그만의 제품이었다.

결국 그는 거기에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언제나 그의 손에 닿았다.

늘 손에 닿는 것에 굳이 이름을 붙여 부를 필요도 없었다.

손가락의 두번째 마디에 따로 이름을 붙여줄 필요가 없는 것처럼 그의 무기도 이름을 얻을 의미를 잃었다.

욕심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자기만의 무기를 만드는 것에 만족을 느끼면서 어찌어찌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팀장을 만나는 바람에 그의 인생이 순식간에 꼬여버렸다.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던 친구가 긴 외국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왔다면서 하루토를 불러냈다.

하루토는 익숙하지 않은 바에 앉아서 지루한 얘기를 듣고 있었다.

바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고 시간이 흐른다고 더 많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을 때 저절로 눈이 갔다.

일행을 인솔해 온 사람이 팀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하루토는 감정을 누르려고 애썼다.

팀장이 아는 척을 할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될까봐 조바심을 냈다.

"어어어이. 하루토!!"

팀장은 전작으로 인해서 취기가 많이 오른 상태였는지 과장된 몸짓으로 하루토에게 다가왔다.

"이봐. 하루토. 우리 천재 사원께서는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렸다지? 하긴. 하루토에게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지. 괜히 사회에 발을 들여서 사람을 죽이는 무기나 만들고. 사람은 자기한테 어울리는 짓을 하고 살아야 돼."

악연인 팀장과 마주쳤고 그의 도발에 넘어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그렇게까지 심한 도발인 것도 아니었는데 하루토에게는 테이저건이 너무 가까이 있었다.

하루토는 자기가 만든 테이저건으로 직접 누군가를 죽여보고 싶다는 욕망이 자신의 안에 늘 숨어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토는 거만한 걸음걸이로 걸어가는 팀장의 그림자에 숨어 그를 뒤쫓아갔다.

팀장은 무시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개구리가 튀어오르듯이 팀장의 몸이 튀어올랐다.

쓰러진 그는 팔을 부르르 떨면서 바닥에 쓰러져 숨을 헐떡였다.

그는 하루타가 들고 있는 금속물체를 원망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루토는 누구도 그가 입은 화상 자국을 보고 자신을 의심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하루토의 장인정신이 빚어낸 예술품이지 공산품이 아니었다.

그런데 하필 그 장면이 ‘붉은 번개의 팀’에 목격되었고 하루토는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끌려갔다.

하필, 이라고 할 것은 아니다.

'붉은 번개의 틈'은 하루토를 손에 넣으려고 계속해서 그를 주시해 왔고 그가 스스로 넘어지기만을 기다리면서 하루토를 뒤따라 다녔으니.

그리고 지금 하루토는 지령이 내려온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어 두고 있었다.

거기에는 기선의 사진이 있었다.

마지막 지령이라는 달콤한 문구도 있었다.

이번 건을 성공하기만 하면 다시는 그 사이비 교단에 휘둘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그는 잔뜩 들떠 있었다.

그런데 하필, 자기가 이츠키를 태워다 주겠다고 약속한 모양이었다.

기억도 안 나는 약속이었다.

하루토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 이츠키에게 택시를 타고 가라고 택시비를 쥐어주었다.

이츠키는 상처받은 사슴 같은 눈을 하고 하루토를 노려보았다.

하루토는 그런 이츠키의 두 눈에 손가락을 찔러 박을 것처럼 험악하게 인상을 쓰고 노려보았다.

“잘해주면 고마워하고 적당히 방실거리다가 꺼져. 이 새끼야.”

하루토는 직격탄을 날렸다.

"하루토 선배!"

이츠키는 자기가 지금 그런 말을 들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루토를 바라보았지만 하루토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못 알아들었으면 한 번 더 말해줘? 더 심한 말로? 알아듣기 쉽게?”

이츠키는 훽 돌아서서 빠른 속도로 걸었다.

그러다가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하루토는 이츠키를 그렇게 보낸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중요한 일을 앞두고서 고작 이츠키 때문에 정신을 흐릴 수는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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