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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앞에 있던 나무가 갑자기 죽은 후 전해져 내려오던 모든 것들의 명맥이 끊겼다고 카즈마는 들었다.
신이 죽은 사당.
신마저 죽어버린 사당에 뭐가 있겠는가 하고 카즈마는 비웃었다.
바람이 부는 방향마저 마음에 들었다.
카즈마는 자기가 완벽하게 숨어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5초 후에 벌어질 일을 정확히 그려낼 수가 있었다.
일단 카즈마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믿었다.
창문을 향해 총을 발사하고 폭우속의 빗방울처럼 유리 조각들이 떨어지면,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겨냥할 터였다.
미래에서 날아온 남자는 자기가 기껏 살려놓은 사람들을 두고 달아나지 못할 거라는 게 카즈마의 생각이었다.
일단 혼자서 과거로 돌아가서 일행을 다른 곳으로 피신시킬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카즈마가 그 생각을 할 수 있었는가 없었는가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어떤 계획을 세웠더라도 그의 계획은 실행되기가 어려웠다.
카즈마가 제대로 공격 태세를 갖추기도 전에 그의 발 아래가 무너졌다.
카즈마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알 수가 없었다.
눈 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차라리 미쳐버리는 쪽
을 택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선택은 옳았을 수도 있다.
서서히 무너져 내리던 땅은 카즈마의 무릎까지를 잡아 삼키다가 다시 빠르게 다져졌다.
가까이에 있던 큰 나무가 순식간에 오 미터쯤은 다가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카즈마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무 뿌리가 저를 휘감는 것을 카즈마는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순식간에 몇 백 바퀴를 감아버린 나무 뿌리는 짓궂은 농담을 건네기라도 하는 것처럼 카즈마의 목을 감은 질기고 가느다란 나무 뿌리에 나뭇잎을 맺어 놓았다.
덕분에 의문 하나는 풀고 죽을 수가 있었다.
조장 쇼스케의 입속을 가득 채웠던 나뭇잎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그것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무신.
그 경이로운 존재가 살아있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창가에 나무신이 서 있었다.
그 텅빈 눈을 바라보면서 카즈마는 알았다.
‘잘 된 거야. 어차피 더 산다고 해 봐야 좋은 날을 기대하기도 힘들었어.’
카즈마는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그의 눈이 충혈되다가 마침내 완전히 감겼을 때 그의 밑에 있던 땅이 갑자기 움푹 꺼져버렸다.
나무 뿌리는 갓난아기를 어르려고 안은 여자의 손길처럼 틈 없이 카즈마의 몸을 감쌌다.
사람들이 죽은 원인을 규명하던 카즈마였지만 그는 죽음의 원인 뿐 아니라 죽었다는 사실마저도 알리지 못할 운명이었다.
그의 죽음을 알고 있는 유일한 목격자는 그 입을 열 이유가 없을테니.
“밖에 뭐가 있어?”
지명이 물었다.
히나타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지명에게 돌아갔다.
지명은 왜 이렇게 몸이 서늘해진 거냐고 말했고 히나타는 이번에도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며 그를 향해 웃어주었다.
***
카즈마까지 실패하고 죽었다는 것은 준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카즈마의 시신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가 준의 연락을 피할 리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확실하게 믿었기에 카즈마가 죽은 거라고 생각한 것 뿐이지 카즈마의 죽음의 징후를 찾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다.
준은 칸트를 불러들였다.
“이제 뭘 해야 할지 알지?”
칸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람씩 보내는 걸로는 소용이 없겠어요.”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 아낄 것도 없어.”
“바로 지시를 내릴게요.”
“땅을 꺼뜨려. 몇 사람이 죽든 상관 없어. 대도시 하나가 사라져도 상관 없어.”
“지진이 날 거라는 경고는 꾸준히 있었으니까 의심하지도 않을 거예요.”
“전부 가동해. 전부.”
장 항이 신사의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뒤이어 연우도 그를 따랐다.
“안에만 있으려니까 좀이 쑤셔 죽겠다.”
장 항이 말했다.
“그래도 조심하긴 해야 되잖아요. 우리는 모두 한 번 죽었었다는데.”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죽었다는 게, 지명이 말 뿐이지 우리는 아프지도 않잖아. 지명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얘기야. 그러니까 긴장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도 힘들고.”
마침 기선과 지명이 같이 나오고 있었다.
“슬슬 그런 말들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기선이 웃었다.
장 항은 괜히 지명에게 미안해져서 머리를 긁적였다.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알지?”
지명이 환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형, 약간은 거짓말인 것 같다.”
연우가 짓궂게 말하자 장 항의 얼굴은 더욱 시뻘겋게 달아 올랐다.
“아니야. 지명아. 진짜야. 내 성격 모르냐? 나는 불만 있으면 직접 가서 얘기한다고. 내가 이 나이 돼 가지고 남의 뒤에서 궁시렁거릴 사람처럼 보여?”
연우는 장 항이 쩔쩔매는 걸 보고 킬킬거리다가 장 항에게 기어이 한 대를 얻어맞았다.
밖에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리자 한 사람 한 사람 나와서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시영과 선우 형이 나오도록 희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희영씨는 어디에 있어? 자?”
선우 형이 물었다.
기선은 대충 지명을 바라보면서 대답을 피했다.
기선이 대답을 하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선우 형은 집요한 질문은 포기했다.
“담배… 피워도 되려나? 사당 안에서 그러는 건 아무래도 실례겠지?”
시영이 지명에게 물었다.
“히나타한테 물어볼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나가서 피우는 게 나으려나?”
“히나타한테 물어볼게요.”
일은, 지명이 히나타를 찾으러 들어간 순간에 일어났다.
그럼 나도 한 대만, 나도 한 대만, 하면서 담배 동냥이 확산될 즈음 니코틴 충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타오르는 눈빛으로 우연히 해변가쪽을 바라보던 선우 형이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껑충 뛰어 올랐다.
“머, 므, 머, 뭐야!! 저게!!!”
선우 형의 말에 모두가 일제히 그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해일이었다.
거대한 해일이 멀리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집채만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족히 몇십 미터는 되는 것 같은 높은 파도가 거침없이 사당을 향해 밀려 왔다.
“모두 차에 타!! 어서. 사람들을 대피시켜. 모두 차에 태우라고!!”
장 항이 말했다.
자기가 가진 능력이라는 것도 자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시영이 달렸다.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기선이 느긋하게 시영을 불러세웠다.
기선이 그러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기선의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따귀라도 갈길 기세였다.
하지만 기선은 다시 제대로 보라면서 손가락을 가리켰다.
몇 십 초만에 해안까지 밀고 들어와 사당까지 집어삼킬 것 같던 해일이, 영상을 되감기해서 다시 돌리는 것처럼 뒤로 멀어졌다.
모두들 자기들이 뭘 본 건지 의아해했다.
“뭐, 뭐야? 저게?”
처음에는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던 사람들이 이제는 기선을 향해 분노를 내뿜었다.
“네가 그런 거야? 하지만 네가 어떻게? 기선이 네가 가진 능력이라는 게……. 희영씨구나!”
이제는 모두들 희영을 찾아서 두리번거렸다.
희영은 여유롭게 창가에 기대서 창문 밖으로 상체만 내밀고 있다가 그들을 바라보았다.
희영이 언제 그곳에 와 있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희영씨 정말 그럴 거야?”
선우 형은 아직도 심장박동이 제 속도로 안정되지 않아 가슴을 움켜쥐고 희영을 노려보았다.
진짜로 많이 놀랐고 그만큼 화가 났다.
하지만 가장 큰 감정은 경이로움이었다.
“이제 그 정도로 조절할 수 있게 된 거야?”
선우 형이 묻자 희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이건 일어나지 않은 일이에요. 그리고 이제부터는, 어제 우리가 피한 일이 뭔지 희영이가 보여줄 거예요.”
기선이 말했다.
그때 히나타도 지명과 함께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 난데없이 카즈마가 나타났다.
히나타는 카즈마의 살의를 읽었다.
자기 앞에 보이는 것이 허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히나타는 놀란 사람들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하긴.
모든 것이 이상하긴 했다.
왜 카즈마의 형상이 중력에 구속받지 않는지.
왜 땅을 무너뜨리는데도 그것에 맞춰서 카즈마가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인지.
놀란 것은 히나타 뿐만이 아니었다.
환시를 일으킨 희영 조차도, 기선과 지명 조차도 히나타가 벌인 일을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애꿎은 카즈마는 환영으로 나타나서까지 공격을 받았다.
환시 속의 나뭇가지는 카즈마를 효과적으로 질식시켜 땅 속으로 끌고 들어갔지만 히나타가 현실에서 날린 나뭇가지는 아무 것도 잡지 못하고 땅 위로 솟아오르다가 먹이를 찾으려는 촉수처럼 두리번거렸다.
그 날카로운 끝이 갑자기 달려들어서 살을 파집기라도 하면 그대로 죽겠다는 생생한 공포가 전해져서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사람들의 목구멍으로 침만 가득 넘어갔다.
희영은 환시를 거두었다.
히나타는 뒤늦게 그것이 희영의 능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동안 아무도,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으음…….”
“흐으음…….”
말을 잃은 사람들처럼 그냥 끙끙거리는 소리만 내다가 갑자기 아하하하 하면서 웃기도 하고, 하여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깜빡 잠이 들었던 아미가 방에서 나왔을 때 사람들은, ‘아, 쟤도 있었지?’ 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미는 눈을 비비면서 히나타에게 물었다.
“히나타. 밥은 언제 먹어요?”
히나타는 그곳을 떠나게 만들어준 아미에게 하염없이 고마워했다.
“곧 식사 준비를 하라고 할게요.”
“저, 히나타. 우리 밥 먹은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지명이 말했지만 아미와 히나타는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배가 고프면 다시 먹어야죠.”
히나타가 총총 사라지자 모두들 한데 모여서 머리를 맞댔다.
“히나타가……. 뭘 한 거야?”
연우가 물었다.
“희영씨가 제대로 말해줘 봐. 희영씨가 보인 게 뭐고 히나타가 한 일이 뭔지 모르겠어.”
“제가 보인 것도 어차피 히나타가 한 일이에요. 지명씨를 노리고 사람이 왔던가 봐요. 방금 모두가 본 것처럼 히나타가 처리를 했고요. 나도 그 일이 전부 끝난 다음에야 알았어요. 요즘엔 자꾸 한 발 늦는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면 정인이랑 아주 비슷해 지는 것 같은데?”
지명이 말했다.
“나는 아주 지난 일은 못 봐. 이래저래 잉여인간이 돼 가는 것 같은 기분이야.”
희영이 우는 소리를 하면 보통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위로해 주려고 했지만 이번만큼은 각자가 청산해야 할 충격이 아직 너무 커서 그럴 생각들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명은 정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후부터 우울해 보였다.
기선이 어깨를 두드려 주었을 때는 작게 한숨을 쉬었을 뿐이었다.
***
“신기하네요.”
소명이 말했다.
퓨쳐 컨트롤이 일단 매입에 나서기만 하면 주식이든 외화든 할 것 없이 그 가치는 예외없이 예쁜 빨간색 화살표를 달고 상승세를 탔다.
“신기하다는 말을 들을 사람들은 따로 있는 것 같은데요?”
선 사장이 말했다.
그날 오전에 지명은 엄청나게 두꺼운 서류철을 가지고 선 사장을 찾아왔었다.
“이게 다 뭐냐?”
선 사장이 묻자 지명은 씨익 웃었다.
그렇다고 꼭 편해보이기만 하는 웃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