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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들-35화 (35/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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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는 희영에게 다시 그 일이 시작되었음을 깨달았다.

이제는 그가 희영의 곁을 지켜주었다.

내일은 비행기가 뜰 거라는 지명의 말에 사람들은 돌아갈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기선도 그 일로 지명과 함께 나간 후였다.

희영은 환영이 사라졌을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미에게는 낯선 풍경이었다.

“뭐에요? 뭘 봤어요?”

아미가 허겁지겁 희영에게 물었다.

알려주지 않고 버티면 궁금해서 파닥거리다가 죽어버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내가 말해도 믿지 않을 걸?”

희영이 말했다.

“내가 얼마나 열려있는 남잔지 알면 깜짝 놀랄 걸요?”

희영은 자기가 본 것을 알려주었다.

히나타의 손에서 자라난 나뭇잎에 쇼스케가 질식해 죽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희영은 아미가 자신을 놀려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미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뭘까요? 유전자 조작일까요? 양수천자로 나무의 DNA를 넣은 걸까요? 아니면 히나타는 정말 신일까요?”

“아미. 내 말을 믿는 거니?”

“꾸며내는 이야기는 훨씬 그럴 듯 하게 지어져요. 거짓말하려고 했으면 이보다는 훨씬 재미있는 얘기를 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네 말은 지금, 내 얘기가 재미없어서 믿는다는 거야?”

“꼭 그런 건 아니지만요.”

아미는 완전히 열에 들뜬 표정이었다.

“지명은 언제 돌아올까요? 지명이랑 이 일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 싶은데.”

“그래. 네가 기다리는 그 지명은 너를 한국으로 데리고 돌아가자마자 네 뇌를 열어보고 싶어서 벼르는 중인데 말이지.”

“지명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는 과학자잖아요. 내 뇌를 보고 싶을 거라는 건 이해할 수 있어요. 아마 내 뇌량이 작거나 할 거예요. 나도 내가 다른 사람들이랑 다르다는 걸 알거든요. 감정을 저장하고 적절한 반응을 보이는데 미숙하다는 거 알아요. 뭐, 상관은 없어요. 뇌에는 신경이 없어서 아프지도 않거든요. 머리카락이 나는 선 가까이로 절개해 달라고 하면 되겠죠. 사실 내가 부탁하지 않아도 잘 할 거라고 믿고 있어요.”

“으으윽. 끔찍해.”

“끔찍해요? 뭐가요?”

“너는 그럼 그런 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거야?”

“실험실에서 수도 없이 그런 일을 했는데요?”

“그래도 사람한테 그런 짓을 하진 않았을 것 아냐?”

“무슨 소리에요? 당연히 사람한테죠. 붉은 털 원숭이는 인간과 94퍼센트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어요.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94퍼센트는 붉은 털 원숭이, 나머지 6퍼센트는 인간이라는 거죠. 계통 발생도에서 더 올라가보면 인간의 약 98퍼센트는 오랑우탄이고, 99퍼센트는 침팬지에요. 이건 인체의 극소량만이 순수한 인간이라는 뜻도 되지만 그 극소량이 인간을 인간이게 한다는 거예요. 인간과 유전자를 아무리 많이 공유해봐야 그것들은 인간이 아니에요. 그들이 보이는 반응은 절대로 인간과 완전히 같을 순 없죠.”

“그래서 지금. 그런 이유로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고 말하는 거야?”

경악하며 희영이 말했다.

“케익이 있는데 그걸 놔두고 바게뜨를 먹을 이유는 없다는 거죠.”

“아미. 너랑 같이 있다가는 나까지 이상해져 버릴 것 같아.”

“그럼 뭐가 문젠지 누나 뇌도 봐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

“왜요? 여기에 메스를 가져다 대고.”

아미가 스스럼없이 희영의 이마에 손가락을 가져다대자 희영은 정말로 그것이 메스라도 돼서 자기 머리를 가르는 것 같은 느낌에 비명을 지르면서 달아났다.

준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불쾌한 기색이 가득했다.

쇼스케는 죽고 기선 일행은 사라졌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건지.

아무도 준의 곁으로 오고 싶어하지 않았다.

칸트조차도 두려워했다.

준의 얼굴은 몇 시간째 어떤 표정의 미동도 없이 그대로였다.

온기나 인간미라고는 전혀 느껴지지가 않았다.

“내일은 비행기가 뜨겠지?”

준이 물었다.

칸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저 아니면 대답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럴 거라고 짧게 대답을 했다.

준은 자신과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숨도 못 쉴 정도로 긴장하게 만드는 것을 즐기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즐길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쇼스케 말고 믿을 사람이라면 누가 있겠어, 칸트?”

칸트는 예상하고 있던 질문이었다는 듯이 몇 사람의 이름을 읊었다.

“기습이라 성공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칸트가 말했다.

“어떻게 알았을까요? 마치 쇼스케가 호텔로 들이닥칠 걸 미리 알고 있다가 달아난 것 같잖아요?”

칸트의 말에 준은 불만족스런 표정으로 칸트를 바라보았다.

쇼스케는 자기가 처리해야 할 사람이 몇 명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히로시에게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달아난 사람은 쇼스케에게 맡겨진 수보다 한 명이 더 많았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준은 곧바로 지명을 떠올렸다.

그가 돌아온 것이다.

처음에는 한국에 있던 그가 일본으로 건너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다시 공간이동 능력을 각성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테오의 정보통에 의하면 지명은 여전히 한국에 있었다.

그것은 준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는 뜻이 되었다.

일본에 있는 지명은 미래에서 날아온 지명이라는 것.

그렇게 일본과 한국에 두 명의 지명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칸트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미래의 지명이 돌아와야 했다면 미래에서는 분명히 쇼스케가 그 일을 성공했을 것이다.

쇼스케는 기선과 일행들의 생명을 거두었으리라.

그런데 일이 한 번에 흐트러졌다.

이것은 불공평했다.

굉장히. 아주아주 끔찍할 정도로 불공평했다.

힘을 들여서 성공을 시켜놨는데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은 걸로 만들어 버리다니.

준이 갑자기 일어나는 바람에 칸트가 놀라며 그의 뒤를 따랐다.

준은 곧장 제단으로 향했고 길게 내려온 두꺼운 벨벳 커튼 뒤를 더듬어 버튼을 눌렀다.

바닥이 갈라지듯 열리면서 눈을 부시게 만드는 환한 조명이 보였다.

준은 주저하지 않고 지하에 마련된 실험실로 내려갔다.

칸트도 그 뒤를 따르면서 리모콘으로 버튼을 눌러 문을 닫았다.

잠시 후에 찢어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딱히 비유라고 할 것도 없었다.

준의 손아귀 안에서 찢어지면서 실험체 하나가 내지른 비명이었으니.

칸트는 그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이 준의 기분을 더 나빠지게 만들었다.

준은 피가 잔뜩 묻은 손으로 칸트의 턱을 치켜들었다.

칸트는 형용하기 어려운 표정을 가득 담아 준을 바라보았다.

“그를 죽여. 이번에는 실수 없이. 선지명을 먼저 죽여. 그가 다시 돌아와서 망치게 두지 말고!!”

칸트는 그제야 무슨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깨달았다.

***

지명은 기선에게서 잠시도 떨어지려고 하질 않았다.

한 번 사람을 완전히 잃었다가 다시 찾게 되면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기선은 그냥 단순히 잃었다가 찾은 것도 아니고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아닌가.

지명은 기선을 꽉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애써야 했다.

도저히 그 충동을 참을 수가 없어서 한 번 끌어 안았을 때 기선의 주먹에 한 방 맞고 그 다음부터는 참으려고 애썼다.

기선은 자기가 도대체 어떤 꼴로 죽었기에 지명이 이렇게 감격을 식히지 못하는 건지 궁금했다.

솔직히 자신의 죽음이 궁금하긴 했다.

그래서 물었다.

지명이 그렇게 적나라하게 조목조목 설명해 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쇼스케가 그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를 알게 되고 기선은 역겨워서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했다.

가만히 있는데도 항문과 엉덩이가 아파오는 느낌이었다.

“그런 일이라면 내가 묻는다고 해도 말하지 말았어야지!”

“게다가 형은 희영이 누나를 직접 죽였어요.”

“그만 말해. 그만 말해. 잠깐. 내가? 내가 왜?”

정인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알아낼 수 없었을 일을 지명은 기선에게 말해주었다.

“누나가 농락당할 게 뻔했으니까요. 형은 누나가 농락당하지 않도록 편하게 죽게 해 주고 그 일을 형이 스스로 당한 거예요.”

“…….”

“나라면 형처럼 하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그 얘기 희영이한테도 말해줬어?”

“아뇨. 왜요?”

“말하지 마. 괴로울 것 같아.”

“나라면 정인이한테 떠벌이고 싶었을 것 같은데. 하긴. 이제 정인이한테는 접근할 수 없게 될지도 몰라요.”

“왜?”

“선지명 그 개새끼가, 그러니까 이 시간을 선점하고 있던 그 녀석이 나를 적군 취급을 하고 있어요. 정인이도 명백하게 나를 거절했고요.”

“헐. 그런 일이 있었어?”

“네.”

지명은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히나타랑 잘 해 보지 그래?”

“히나타요?”

“원래 너는 지고지순이랑은 좀 거리가 있던 녀석 아니었어?”

“히나타요?”

지명의 눈에 드디어 다시 생기가 돌았다.

희영은 기선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히나타와 몇 번 마주쳤을때 히나타가 살갑게 웃음을 먼저 건네는데도 히나타를 보기가 무서웠다.

기선은 지명과 함께 돌아왔고 오자마자 지명을 놔두고 희영을 따로 불렀다.

“비행기는 뜰 것 같아요?”

기선의 행동을 의아해 하면서 희영이 물었다.

“그렇긴 할 것 같은데 문제는 다른데 있어. 지명이가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지 그걸 모르겠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한국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지명이가 있잖아. 우리한테 온 지명이는 시간을 거슬러 돌아온 녀석이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지명씨가 지금 방황을 하고 있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응, 게다가 지명이는 아주 냉정할만큼 단호한 녀석이잖아. 바로 그런 자기 자신한테 공격을 당하고 있어. 게다가 정인씨까지 협공을 하고 있고.”

“어떻게요?”

“이 세상의 지명은 한국에 있는 지명이라는 거지. 몇 개의 우주가 겹치든 자기들한테는 상관이 없지만 그걸로 인해서 지금의 평온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인 것 같아. 그러니까 그 생각을 하는 건 한국에 있는 지명이지.”

“우와, 지명씨가 상처 받았겠는데요?”

“그래서 말인데. 지명이가 마음을 단단히 할 수 있을 동안만 여기에 있는 건 어떨까 해.”

“다른 사람들 생각은 어떻데요?”

“아직 물어보지 않았어.”

“나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 모두는 지명씨한테 생명을 빚졌잖아요.”

“그래. 맞아. 그리고 나는 히나타랑 지명이 잘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고 있어.”

“아, 히나타…….”

희영이 말을 흐렸다.

“왜?”

희영이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동안 노크 소리가 들렸다.

지명이 고개를 들이밀고는 두 사람에게 바쁘냐고 물었다.

“아니. 괜찮아. 들어와.”

지명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는 것 같았다.

희영의 말대로 갑자기 방황을 시작한 것이다.

“네가 준비될 때까지 당분간 여기에서 체류하자고 말해볼 생각이야.”

기선이 말했다.

“준비요?”

“너를 만날 준비. 아주 냉정하고 단호한 너, 한국에 있는 선 지명을 만날 준비 말이야.”

“아, 그 녀석요. 스트레스긴 하죠.”

“히나타는 만났어?”

기선이 물었다.

“잠깐만요. 나, 두 사람한테 할 말이 있어요.”

희영이 말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할 말은 아니고. 보여줄 거라고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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