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들-26화 (26/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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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돼?”

희영이 물었다.

정인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이제 이십 초도 안 지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을 전송해 줄 테니까 뭔가 알아내도록 해 봐.”

희영은 제대로 열이 받아서 닦달을 했다.

“확실히 파란만장한 여행이 돼 가고 있긴 한가봐요.”

“그걸 말이라고 해? 이보다 더 스릴 넘치기는 힘들 거야. 거긴 어때? 다들 잘 있어?”

“나만 잉여인간이 된 기분이에요. 지명씨랑 사이크는 실험실에서 잘 나오지도 않고 나는 밥순이. 소명 언니는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 가끔씩 출장을 가시고요.”

“해결해야 할 일이라. 거참 살벌하게 들리는데?”

“언니가 없는 동안 우리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된다고 언니가 없을 땐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있으라고 성화에요.”

“안 봐도 선하다.”

“소명 언니, 은근히 장 항 오빠한테 라이벌 의식 가지고 있는데 일본에서 사건이 터졌다고 하면 좋아할 것 같아요.”

정인이 말하며 웃었다.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 남자 애는 위험하지 않아요?”

“이 변호사님이 생각보다 유용해. 이건 뭐, 강한 최면술사보다 막강한 것 같아. 그리고 잔인한 구석도 있어서,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앉아 있으라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고. 이 남자, 이름이 아미라는데 아미는 지금 네 시간 넘게 이 자세로 있어.”

“일어서려는 시도도 안 해요?”

“시도? 모르겠어.”

희영이 아미를 바라보았다.

“안 하는 것 같은데?”

“시도하면 일어날 수 있긴 할까요?”

“이 변호사님이 오면 해 보자고 해야겠어.”

“저도 이 사람에 대해서 보이는 게 있으면 바로 전화할게요.”

“그래. 내가 너무 부담 주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애써줘. 우린 절박해.”

“네. 그럴 게요. 저도 정말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것은 정인의 진심이었다.

하지만 아미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지명은, 정인의 능력이 직접 대면한 사람에게만 한정되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플라스틱 폭탄이라니.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점점 살벌해지는군.”

사이크가 말했다.

“린다를 어떻게 죽였는지 생각해 봐. 우리를 제거하는 건 아무 것도 아닐 걸?”

지명이 얘길 하는 동안에도 정인은 사진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사심이 있는 건 아니지?”

지명이 정인을 쿡 찔렀다.

“네? 아아. 그렇죠? 잘 생기긴 잘 생겼죠? 보고만 있어도 좋네요.”

“큰일이다. 하여간 여자들이란.”

아미는 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외국어를 습득하는 거야 아미에게는 전혀 어려운 일이었다.

한국으로 가야 할 거라는 말을 듣고 그때부터 한국어를 익혔다.

마지막에 목적지가 일본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어려울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심심하던 차에 익힐 말이 하나가 더 생겨서 좋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국어를 완벽하게 익혔다고 생각했는데 이들이 하는 말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영이, ‘너는 우리가 하는 말을 듣더라도 이해하지 못해.’라고 말한 것은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후부터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

아미가 말했다.

손이나 다리를 묶어 둔 것도 아니었는데 아미는 시영의 말에 묶여 조금도 움직이질 못하고 있었다.

“가. 가면 되잖아.”

연우가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아미에게 어떤 해방감도 가져다 주지 못했다.

“형, 저 녀석의 생체에도 명령을 내릴 수 있을까요?”

기선이 물었다.

시영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래. 그렇게 명령을 내려 봐.”

선우 형도 거들었다.

“너에게는 요의가 느껴지지 않아. 배변욕도 없어. 당분간은.”

시영이 아미에게 말했다.

아미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평안한 상태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기선은 혀를 내둘렀다.

“형이 가진 능력은 정말 대단한 거잖아요? 역사에서 소리치는 걸 봤어요. 한번에 여러 사람한테 명령을 내리는 것도 가능하다는 거잖아요. 그 사람들을 한 번에 제압하고 전혀 엉뚱한 방향을 향해서 쫓아가게 만들고.”

기선이 시영에게 말했다.

“통제실에서는 기록을 삭제하도록 명령하기도 했어.”

선우 형이 말했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나한테 귀기울이지 않는 사람한테는 이 능력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아. 일단 사람들이 나한테 주목할 수 있어야 말이 먹히는 것 같거든. 장 항 형이 사람들을 통제해 놓은 후에 말할 수가 있었고 선우 형 형이 통제실에 들어가서 경계를 풀어 놓은 후에 얘길 할 수 있었어. 만능은 아니라는 거지.”

시영이 말했다.

“모두의 능력이 예리하게 발달하고 있는 것 같아요. 희영인 이제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까지 정확하게 보는 것 같거든요. 희영이가 아미에 대해서 미리 묘사해 알려주지 않았으면 나는 지하철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

기선이 말했다.

“그래. 그런 것 같아.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걸 저 녀석이 어떻게 안 거지? 준 맥브라이언이 보낸 녀석인 건가?”

선우 형이 말했다.

“저 녀석한테 뭐든 물어봐요.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내가 알아낼게요.”

연우는 드디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는지 활짝 얼굴을 폈다.

질문자가 선우 형이 돼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아미조차 이견을 갖지 않는 것 같았다.

“안녕.”

선우 형이 그를 보고 웃자 아미도 형을 보고 웃었다.

“몇 가지 물어볼 텐데 사실대로 말해주면 좋겠어요.”

“좋아요.”

아미가 말했다.

“준 맥브라이언이 보냈나요?”

“네.”

“당신도 ‘붉은 번개의 틈’ 일원입니까?”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 말에 대해서 설명해 줄래요?”

“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소속감이 없어요. 그 사람들의 가르침이라는 것도 믿지 않고요. 그게 다 거짓말이라는 걸 아니까 어차피 바보들만 그걸 믿어요. 말단에 속한 교인들이나.”

“우리를 노리고 여기에 온 겁니까?”

“네, 사진을 보여줬어요.”

“누가요?”

“칸트요.”

“칸트? 그게 누구죠?”

“‘붉은 번개의 틈’의 실세죠. 준을 대신해서 칸트가 많은 일들을 직접 처리해요.”

“칸트가 누군지 알 것 같아요.”

희영이 말했다.

아미는 이상하다는 듯 희영을 바라보았다.

“칸트를 안다고요? 어떻게요?”

희영과 선우 형은 마주 바라보았지만 아미에게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죠?”

“테오가 알려줬어요.”

“테오? 그 사람이 누굽니까?”

“서울에서 실험체들에게 미래신문을 전달해 줬다고 하더군요.”

“실험체라고? 우리가? 테오라는 남자가 그럼 그, 중절모를 쓴 남자?”

“네. 테오는 항상 그걸 쓰고 다니죠.”

선우 형이 연우를 바라보자 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미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테오는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안 거죠?”

“칸트가 테오에게 알아내라고 했으니까요.”

“도청을 한 건가요?”

“그럴 수도 있고요. 그건 자세히 몰라요.”

기선은 밖으로 나가서 지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래신문을 전달하던 남자가 우리에 대해 알고 있어. 도청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기선이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일본 여행에서 뜻밖의 성과를 많이 얻네요. 도청 문제라면 앞으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새로 짓는 건물에 입주하고 나면 도청이 어려울 거예요. 특수하게 개발된 전파 흡수물질이 어떤 종류의 전자장비라도 무력화시킬 수 있을 거거든요.”

“그래. 새로 알게 되는 게 있으면 더 알려줄게.”

“네. 나랑 사이크 생각엔 한국으로 서둘러서 돌아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미라는 남자에 대해서 우리가 조사해 보고 싶은 게 있거든요.”

"조사?"

"네, 정인이가 유전자 조작이라는 말을 했어요. 정인이는 자기 입에서 왜 그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랑 사이크는 그게 아미라는 남자의 출생에 관련된 비밀이라고 생각해요."

"충분히 가능한 문제야. 이 녀석은 정말 비상한 것 같거든. 너나 사이크랑 같은 종류의 천재가 아니야. 이 녀석한테서는 뭔가 다른 냄새가 나."

"어떤 거요?"

"사람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다른 사람이 느끼는 고통에 전혀 동조하지 못해. 이해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철저하게 객관화하기 때문에 애초에 죄책감이라는 걸 느낄 여지도 없어."

"준 맥브라이언이 수술로 그걸 담당하는 곳을 건들었는지도 모르겠군요."

"사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 녀석도, 만들어진 괴물인 거군요. 그 녀석도 희생자일 수 있는 거예요."

지명이 말했다.

"그렇다고 뭐가 달라질까?"

"일단 이쪽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대로 알아볼 테니까 최대한 빨리 돌아오도록 하세요."

"그래. 좋아."

기선은 전화를 끊고 방으로 돌아갔다.

“일정을 조정하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기선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 화장실은 갔다 오게 해 줬어요?”

기선이 물었다.

“괜찮다고 했잖아.”

연우가 말했다.

“우와, 이런 잔인한 사람들을 봤나. 그렇게 암시를 걸어 놓은 거지 실제로 괜찮아 진 건 아니잖아요.”

“그런가?”

시영이 아미를 바라보았다.

아미는 편안해 보였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

시영이 묻자 아미는 오히려 당황하는 것 같았다.

줄곧 지시를 내리기만 하던 시영이 제 의견을 묻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진 모양이었다.

“질문은 아무래도 형이 하는 게 낫겠어요.”

선우 형이 아미를 바라보았다.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갔다 와.”

아미는 멀뚱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히 요의를 느꼈는데 이제는 그것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어떻게 한 거예요?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고요!!”

아미가 갑자기 소릴 질렀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해 줄 말이 많은데. 간단히 TV를 켜기만 해도 네가 한 짓이 나오거든. 어때. TV를 켜줄까?”

연우가 윽박질렀지만 아미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죽은 사람들보다 당신들 인생이 더 풍요롭다고 자신할 수 있어요? 그 사람들은 생을 끝낼 수 있었지만 당신들은 그러지 못했잖아요. 여전히 여기에 이렇게 살아 남아 있잖아요. 준 맥브라이언이 타겟으로 삼기로 정한 순간, 당신들한테 평화로운 삶이란 이미 다 끝난 거예요. 좀 우습네요. 누굴 애도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설쳐대는 모습이요.”

아미가 하는 말에서 감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그저 무감동하게 기술적인 서술을 해 나가는 것 뿐이라는 것을 모두가 느낄 수가 있었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어?”

연우가 물었다.

“곧 준도 알게 되겠죠. 내가 실패했다는 걸요. 그 후로는 나도 타겟이 될지도 모르고. 쓸모를 다한 도구가 어떻게 버려지는지는 분명하니까요. 일본에도 실험체들이 있어요.”

“네가 실험체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한테서 능력이 나타났다는 보고 같은 게 있었어? 우리말고 다른 사람들한테서.”

항이 물었다.

“능력요? 아뇨. 그건 당신들한테만 나타나요. 그래서 준과 칸트가 골치를 썩고 있죠. 도대체 왜 당신들만 변이를 일으킨 건지. 특히 준은 당신들이 준의 통제에서 벗어난 것 때문에 미치기 직전에 있어요,”

“그렇다면 생각만큼 위협적이진 않겠는데요?”

선우 형이 장 항을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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