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들-22화 (2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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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의 뇌는 천장에 나란히 매달렸다.

두 사람은 마주 서서 대뇌피질의 상태 변화에 대해 간단한 토론을 하고 거기에 관여한 화학성분을 찾아내기 위해 어떤 접근 방법을 쓰는 게 좋겠는지 의견을 주고받았다.

모든 대화가 최소한에서 그쳤다.

죄수를 수감한 방에 때를 맞춰 식사가 들어오듯이 정인이 매번 들어와서 먹을 것이 가득 담긴 쟁반을 두고 나갔다.

잠깐이라도 지명을 보고 싶어서 들어오는 것이지만 지명과 눈을 맞추기도 힘들었다.

그는 이미 아주 먼 차원의 세계로 떠나 있어서 거기에서부터 현실까지 건너오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리고 현실로 넘어와서 정인과 잠시 눈을 맞춘다고 해도 그가 넘어온 그 오랜 차원의 시간을 넘어가기 위해 그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정인도 지명이 지금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명에게 그들 모두의 생명이 달린 것일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지명과 사이크는 그렇게 공급되는 식사 덕에 겨우 죽지는 않고 버텼다.

아침부터 햇살이 좋았던 어느 날, 여느때처럼 쟁반을 들고 그들의 실험실 문을 열고 들어간 정인은 두 사람이 소파 하나씩을 차지하고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

정인은 그들을 깨우지도 못하고 이불을 챙겨다가 두 사람을 덮어주었다.

목까지 이불을 덮어주고 베개를 받쳐주려니 지명이 살며시 눈을 떴다.

정인은 감격스러워서 웃음을 지었다.

지명도 웃었다.

“기분은 어때요?”

정인이 물었다.

“묻지 않고 그냥 믿어줘서 고마워.”

정인은 온갖 불필요한 말들을 모두 목구멍으로 삼켰다.

그가 무엇을 알게 됐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저 지명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차가워진 입술에 입을 맞추고 정인은 지명이 다시 잠들 때까지 그 곁에 있어 주었다.

“잠들고 깨어나도 여기에 있어줄래?”

“그럴게요.”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정인은 무거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제후를 죽인 것 같아.”

정인은 이번에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지명씨의 기억이 왜곡된 거예요. 지명씨가 그런 게 아니에요.”

연우가 옆에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명이 웃었다.

“너는 언제까지나 내 편이 돼 줄 거야.”

정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자요. 옆에 있을게요. 자고 일어나서 말해요. 피곤하잖아요.”

지명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한 잠을 이루었다.

정인은 기도하듯이 두 손을 모으고 그 사이에 지명의 손을 꼭 잡았다.

자기가 언제까지나 그의 편이 돼 줄 거라고 결심한 걸 어떻게 알았는지, 지명이 일어나면 그것부터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이크는 정인이 지명의 곁에서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조용히 가운을 벗고 그곳을 떠났다.

지명이 스스로 만든 봉인을 열었다는 것을 사이크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할 수가 없어서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사이크는 소명이라도 불러야 하는 건가 하고 잠시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지명은 잠잠했다.

그들의 생각은 단단하게 연결된 것처럼 같은 속도로 진행하고 있었기에 사이크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행동이 방향성을 잃었다는 것만 가지고도 지명은 사이크가 불안해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말하지 그랬어.”

지명이 말했다.

“말했잖아.”

“네가?”

지명이 사이크를 바라보았다.

“언제?”

“커크랜드 하우스로 가는 너를 봤었다고 말했었잖아.”

“그렇지. 그랬었군.”

“넌 아니라고 했고.”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겠다.”

“아니.”

“그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세상의 전부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어?”

“평행 우주에 대해 말할 거라면 집어치워. 그게 아니라도 충분히 머리가 복잡해.”

“그래? 그럼 확률 알고리즘은 어때?”

사이크의 말에 지명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몰라. 넌 알 수도 있겠지만 모를 수도 있지. 그리고 이제 와서 네가 뭔가를 기억해 낸 것 같다고 하더라도 과거에 네 기억이 왜곡됐던 것처럼 이번의 기억도 왜곡됐을 수 있어. 내가 그때 본, 커크랜드 하우스로 돌아가는 너도 너와 완벽하게 닮은 타인일 수도 있겠지. 그 상황을 설명할 간단한 이야기가 있겠지만 간단하게 설명된다고 해서 그 이야기를 믿지는 않을 거야. 아주 복잡해지거나 아니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해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너를 중심으로 그 일을 이해할 거야. 잘 이해되는 이야기? 그런 건 애당초 관심도 없어. 선지명이 진짜로 했을만한 일. 거기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야.”

“왜?”

“내가 지금까지 형편없는 인간을 내 인생의 가장 훌륭한 벗이라고 믿어왔던 거라고 생각해 봐. 그럼 네 배 뿐만 아니라 내 배까지 침몰하는 거야.”

“이기적인 자식.”

“그래. 난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지명이 사이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사이크는 지명이 자기를 끌어안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감동을 준 건 아닌가 하고 슬그머니 걱정을 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또 이걸 누가 알아?”

지명이 물었다.

“누가 알 것 같아?”

“정인이?”

“정인은 다른 사람의 역사를 읽지. 접촉하면 그 강도가 더 세지고. 두 사람 사이에선 무수한 접촉이 일어났을 것 같은데 정인이 너의 역사를 읽지 못했다면 그게 이상하지 않겠어?”

“왜 정인인 나한테 그 일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았지?”

“이미 답을 찾아서였겠지.”

“어떤 답?”

“정인도 마찬가지야. 세상 위에 너를 올려놓지 않고 너를 중심으로 세상을 재구성하기로, 그녀도 마음먹은 것 같거든.”

“바보들이군. 전부 다 내 추종자들이 되기로 결심이라도 한 거야?”

“너따위를 누가 추종을 해?”

사이크가 큰 소리로 웃었다.

“너한테는 잃어버린 능력이 있는 것 같아. 그게 우리 생각이야. 나랑 정인. 그리고 연우 형.”

“그래. 연우 형이 거기에 있어야 말이 되는 거지.”

“그걸 네가 회복해야 돼. 그게 뭐였든 간에, 준 맥브라이언한테 위협이 되는 능력이었을 거야. 그래서 너한테서 금속체를 빼내고 그 능력을 영원히 봉인해 버리려고 한 것 같아.”

“나를 죽이는 게 더 쉽지 않았을까?”

“너. 죽지 않는 몸인 것 아니야?”

사이크가 말했다.

지명은 웃었다.

사이크도 곧 따라 웃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자식이 웃질 않았다.

“개새끼. 네가 생각한 게 옳았는지 알아보고 싶었다고 하면서 나를 죽이려고 하기만 해 봐.”

지명이 말했다.

“그래. 역시 그건 안 되는 거겠지?”

사이크는 아쉽게 됐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준 맥브라이언은 도전을 즐기는 인간이야. 우리한테 미래신문을 보낸 걸 봐. 우리가 강해지고 어느 정도 힘을 얻게 될 때까지 기다렸어. NBA선수가 아이를 상대로 전력을 다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지명이 말했다.

“도전이라. 너를 살려둔 게 도전을 즐겨서라는 거지. 너와의 게임이 기대돼서.”

사이크가 말했다.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사이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명이 옆에 굴러다니던 작은 구슬을 집어들었다.

재민이가 가지고 놀다가 두고 간 구슬이었다.

지명은 별 생각없이 평평한 책상 위에서 구슬을 밀어 굴렸다.

구슬은 힘을 받고 앞으로 전력으로 달려가다가 벽면에 튕겨 돌아왔다.

하지만 지명의 손에 이르지는 못했다.

구를 힘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멈춘 구슬을 보면서 두 사람은 또 동시에 생각의 출발선에 섰다.

“기숙사의 내 방에서 얘기했던 거 생각 나?”

지명이 물었다.

“그래. 그때 제후도 같이 있었지.”

사이크가 말했다.

“분자가 어떤 때는 뉴턴의 고전 역학법칙에 따라서 당구공처럼 움직이지만 어떤 때는 광파처럼 작용하면서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간다는 말을 했었고 제 후가 제발 나가서 떠들라면서 우리를 몰아냈었어.”

“그래. 밖이 너무 추워서 우리는 방안에서 입 다물고 있는 쪽을 선택했고.”

지명과 사이크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너는 내 영혼을 거의 나눠가졌구나.”

지명이 말했다.

“그런 소리 마. 내 영혼의 반쪽은 미래한테 있으니까.”

“아하.”

이제는 에너지 음료를 마시는 걸로 버티는 데도 한계가 와서 두 사람은 누가 먼저 드러누웠는지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어 버렸다.

그게 정인이 오기 직전, 새벽에 있었던 일이었다.

미래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가 정말 자기가 아는 사이크가 맞나 생각했다.

“세상에. 제대로 잠을 잔 게 언제에요, 사이크?”

미래가 곧장 일어서서 사이크에게 다가오자 사이크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기억이 안 나요.”

“그래도 표정은 별로 나빠 보이지 않는데. 일이 잘 됐군요. 그렇죠?”

“그런 것 같아요. 성과가 있었어요.”

“그럴 줄 알았어요. 그래도 몸 좀 돌봐가면서 하지.”

“보고 싶었어요. 당장 미래씨를 보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었고 그리고, 사랑하고 싶었어요.”

“나도 정말 그러고 싶지만 그러다가 사이크가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 안 좋아보여요, 사이크.”

“설마요. 죽진 않을 거예요.”

그러면서 사이크는 좀비처럼 걸어 소파에 주저앉았고 잠시만 머리를 기대고 있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잠에 빠져 들었다.

미래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사이크에게 다가와 사이크의 고개를 제 어깨에 기대게 했다.

“내가 미래씨를 사랑한다고 말했던가요?”

사이크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네. 오래 전에 들은 거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그거 거짓말이었어요.”

“네에?”

미래가 웃었다.

“생각해보니까 그때 그 말에 담았던 의미로는 부족해요. 그래서 지금 다시 말하려고요.”

미래는 기대를 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사랑해요, 라는 말이 나올 차롄데.

그의 숨소리는 점점 더 깊은 평온으로 들어갔다.

미래가 웃음을 터뜨렸다.

“사랑해요. 사이크. 사랑해요.”

사이크의 이마에 입술을 가져다 댄 채로 미래가 속삭였다.

사이크는 꿈결에 들은 그 소리가, 자기가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정인까지 여행을 포기하고 한국에 남아 있기로 결정을 하자 소명과 장 항은 자기들 둘 중 한 사람은 한국에 남아있어야 한다고 합의를 보았다.

만약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들이 가림막이 되어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오빠가 가요. 내가 여기에 있을게요.”

애초에 여행을 준비한 것이 장 항을 위로하고자 하는 거였기에 소명이 재빠르게 말했다.

“우리끼리 신나게 놀아요. 얼마나 재미있게 놀았는지 알려주고 배 아파서 뒹굴게 만들어 주자고요.”

희영이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희영이야말로 심란해서 당장 어딘가로 떠나서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 시급했다.

버섯구름. 섬광.

조각 조각 찢어져 튀어 부딪치는 살점들.

누군가의 팔, 누군가의 다리.

눈을 감거나 뜨거나 상관없이 그런 영상들이 희영을 후려치듯 눈 앞에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이제는 거의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 뒤에서 웃고 있는 어린 녀석이야말로 희영의 심기를 건들었다.

그런 짓을 꾸미는 녀석이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새파란 어린 녀석이라는 사실이 희영을 화나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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