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들-12화 (1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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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지명이 정인에게 물었다.

정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숨을 쉬는 것도 괴로운듯 두 손을 가슴 위에 올려 놓은 채 몸을 굽혔다.

“정인아!!”

정인은 입을 벌리고 거친 숨을 토해냈다.

그렇게 열려진 입에서 피가 토해져 나왔다.

그냥 피가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토사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그만한 양의 핏덩어리가 쏟아져 나왔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 앉으며 정인이 미래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피가 토해지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정인씨……!!”

미래는 제가 정인에게 다가가도 되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정인의 얼굴에서는 쉴 새 없이 식은 땀이 났다.

“누나, 사이크 좀 불러줘요.”

지명이 말했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사이크!!”

스마트폰을 들고 그를 부르는 미래의 목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렸다.

미래는 울먹이는 소리로 사이크에게 와 달라고 소리쳤다.

몇 분이 흘렀을 때 정인은 서서히 제 호흡을 되찾았다.

미래와 지명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아직 힘이 들어서 말을 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지명에게 기대서 안정을 되찾다가 정인이 미래에게 말했다.

“엉망으로 만들어서……. 죄송해요…….”

“그런 말 말아요.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해요!!”

미래는 울면서 정인을 부둥켜안았다.

미래는 제 뒷목에 따뜻한 손이 닿는 것을 느꼈다.

정인의 손이었다.

화들짝 놀라 미래가 몸을 떼려고 했지만 정인은 고개를 저었다.

다시 또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미래가 달아나려 했지만 정인은 완강하게 고집을 부렸다.

“제가 알아내야 돼요.”

미래는 울컥, 다시 울음을 쏟아냈다.

정인이 안심하며 손을 뗐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아무 일도요. 언니는 붉은 번개의 틈과는 이어져 있지 않아요.”

정인이 말했다.

“그럼 타투는? 그리고 너는 아까 왜 그랬던 거야?”

지명이 묻자 정인은 지친 얼굴을 흔들었다.

“어떤 남자의 얼굴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나를 노려봤어요. 내가 진실을 아는 걸 원하지 않았나 봐요. 그건, 내가 그걸 알아내야 한다는 뜻이잖아요.”

정인이 말했다.

“타투는, 완전히 관계없는 사람이 한 짓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타투를 새긴 사람은 ‘붉은 번개의 팀’ 일원이에요. 언니가 졸업파티에서 정신을 잃었을 때 그런 짓을 했어요. 언니가 정신을 잃도록 그 사람이 언니의 술잔에 약을 탔어요. 그리고 호텔로 데려갔고 거기에서 그걸 새겨 넣었어요. 성적인 접촉은 없었어요. 그 사람은 언니가 이 타투에 대해서 알게 됐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서 스스로 달아나야 한다고 결심 하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언니가 고립이 되기를.”

지명은 놀란 눈으로 정인을 바라보았다.

정인이 그렇게까지 깊게 알아낼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래는 안심이 된다는 표정으로 정인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 말 믿어도 되는 거죠?”

미래는 거듭 거듭 확인을 하고 싶어했고 정인은 그런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타투를 새겼다는 사람이랑, 네 눈 앞에 갑자기 튀어나온 남자가 같았어?”

지명이 물었다.

“아뇨.”

“그 남자는 누구지?”

“그 사람은……. 정말 잘 생겼어요.”

아직 준 맥브라이언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정인은 그렇게밖에 그의 모습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문이 열리고 사이크가 들어왔다.

숨이 턱까지 차 올랐지만 어떤 상황인지 알지 못하는 그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미래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바닥에 잔뜩 쏟아진 피를 보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아니에요.”

미래가 말했다.

“정이……인!!”

사이크가 놀란 얼굴로 이번에는 정인에게 다가왔다.

“괜찮아. 이젠 멈췄어.”

지명이 말했다.

“멈췄다고 괜찮은 거라니.”

사이크는 정인의 바이탈 사인을 체크했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요?”

사이크의 질문에 정인은 고개를 저었다.

“정인이 각성했어.”

지명이 허둥대는 사이크에게 속삭였다.

사이크는 지명을 바라보더니, ‘그것 참 요란한 각성이군.’ 이라고 말했다.

“너는 나한테 빚졌어.”

지명의 말에 사이크가 미래를 바라보았다.

“미래 누나가 그 일과 관련이 없다는 걸 정인이가 알아냈어.”

지명이 말하자 미래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크는 거칠 것도 없이 미래에게 다가가 미래를 끌어 안았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이별 통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사이크는 서러움을 폭발시켰다.

“고마워요. 나도 다시는 헤어지자고 안 할 거예요.”

미래가 말했다.

정인은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면서 스르르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느라고 눈을 부릅떴다.

“가자. 정인아.”

지명이 정인을 부축해 일으키자 미래가 다가왔다.

“우선 객실에서 쉬어. 손님들한테 주지 않는 방이 있어. 깨끗하고 쉴만할 거야. 지금 정인씨 상태로 집까지 가는 건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미래가 말하자 지명도 거절하지 않았다.

“그래도 되는 거예요?”

자신 없는 목소리로 정인이 말했다.

“당연하죠. 정인씨는 영혼없이 떠돌던 나한테 영혼을 되찾아 준 거나 마찬가진데요.”

미래가 다시 정인을 와락 끌어 안았다.

“이렇게 사이 좋은 전 여친과 현 여친을 둔 사람은 지구에 나밖에 없을 것 같아.”

지명이 말했다.

“미래한테 감히 네 전 여친이라는 말을 쓰지 마. 미래는 영원히 내 여자니까.”

사이크가 응수하자 지명이 콧방귀를 뀌었다.

“뭔가 감동을 주려고 시도한 것 같긴 한데 구리다.”

사이크가 울그락 불그락해졌지만 미래가 웃으면서 두 사람을 말렸다.

“싸우려거든 정인씨를 쉴 수 있게 해 준 다음에 해요. 여자처럼 말로 쟁쟁거리지 말고 남자답게 주먹이라도 휘두르면서 제대로 싸워보고요.”

“아니. 뭐, 그렇게까지는. 누나,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거든요.”

지명이 실실 웃으면서 내뺐다.

미래가 정인에게 열쇠를 건네주었다.

“정말 고마웠어요, 정인씨. 푹 쉬어요. 체크 아웃할 필요도 없으니까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까지 있어도 상관 없어요.”

미래의 말에 지명이 또 짓궂게 웃었다.

“그럼 정말 영원히 가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정말 그래도 돼.”

미래도 두 사람을 그대로 보내는 게 아쉽기는 했지만 정인은 이제 서 있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빨리 데려가서 쉬게 해 줘.”

미래가 지명을 밀었다.

정인은 복도를 걷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면서도 내내 하품을 했고 미래가 준비해 준 스위트룸에 이르자마자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기선이 현관문마다 두드리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지명이 금속체 종족이라고 명명한 일군의 사람들을 불러냈다.

일찍 집에 돌아와서 쉬고 있던 사람들이 고개만 내밀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일단 우리 집으로 좀 와 봐. 다른 사람들도 부르고.”

기선은 지명의 현관문도 한참이나 두드렸지만 결국 대답이 없는 것을 보고는 전화를 걸었다.

지명은 정인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얘기해 주면서 정인이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깨울 수 있으면 깨워서 같이 오면 좋겠어. 위험한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위험한 일이라뇨?”

“희영이가 뭔가를 봤어. 강력한 메시지야.”

“……! 알았어요. 정인이를 데려갈게요.”

소명은 이번에도 오지 못하겠다고 말했지만 기선의 말투가 다른 때와 다르게 강경한 것을 알고는 겨우겨우 나타났다.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소명은, 이제 막 부상에서 회복하는 중이라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선우 형은 고객과 미팅중이라서 늦을 거라고 말을 했다가 장 항으로부터 엄청나게 꾸중을 듣고 들어왔다.

결국 꾸역 꾸역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작지 않은 아파트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꾹꾹 들어차기는 처음이었다.

기선은 희영과 정인의 상태를 챙기랴, 사람들에게 다과를 내랴 정신이 없었다.

“왜 여자들만 이렇게 힘이 없는 거지?”

소명이 말했다.

“그러게요. 누나는 어쩌다 그런 거예요?”

연우가 물었다.

“아. 이거. 신경 쓰지 마.”

“동종업계 종사자가 다치고 왔는데 신경 안 쓸 수가 없잖아요. 미리 알려 주셔야 우리도 불의타에 대비를 하죠.”

연우의 말이 비꼬는 건지, 진심으로 걱정을 하는 건지 애매하게 들려서 소명은 화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을 하지 못했다.

“네?”

연우가 대답을 재촉했다.

“법률 사무소 사무장 따위한테 생길 일은 아니니까 신경 끄라고. 변호사한테도 물론이고.”

소명이 이를 갈면서 말하자 연우가 상처받았다는 듯이 징징거렸다.

“동종업계 종사자를 이렇게 막 대해도 되는 거예요, 누나?”

“그래! 실언했다. 실언했어. 동종업계 아니야. 너하고는 동종업계 안 해. 정말 지겨운 애야.”

“에에?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하세요?”

연우의 말에 소명이 작심을 하고 말했다.

“어이, 사무장. 나한테 이런 말 들은 거 가지고 어디에서 그런 소리 못할 걸? 심하다는 게 뭔지 제대로 알고 싶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입 다물고 있어. 파리 날아 다니는 것 같은 소리 좀 그만 내고!”

정인이 그런 소명을 보고 웃었다.

소명은 연우에게 분풀이를 하고 고개를 돌리다가 자기를 보고 웃는 정인을 보고 움찔했다.

정인에게 어떤 능력이 각성되었는지를 알게 된 후로 정인을 볼 때마다 사람들이 나타내는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왜……, 왜?”

정인은 조용히 웃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야! 너……! 너……. 뭔가를 안다는 듯이 혼자 그렇게 웃지 말라고!!”

“네.”

그러면서도 정인은 웃음을 쉽게 거두지는 못했다.

그런 상황이 소명의 등에 식은 땀을 나게 만들었다.

이윽고 기선이 사람들에게 주목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이크도 와 줬다면 좋았을 텐데.”

“사이크도 오고 있어요, 형. 헤어졌던 연인들이 다시 만나서 시간이 조금 필요한 모양이에요.”

지명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열리며 사이크가 들어왔다.

이리저리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에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사이크는 재빨리 손으로 머리 모양을 다듬었다.

“지퍼 열렸어.”

지명이 말하자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서는 지퍼를 확인하던 사이크가 지명의 장난에 넘어간 걸 알고 또 울그락 불그락하며 화를 냈다.

“우선은 집중해 줘.”

장난꾸러기들을 다독이는 유치원 교사처럼 기선이 다시 목청을 가다듬고 소릴 질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붉은 번개의 틈’ 2대 교주 준 맥브라이언. 그 사람이 우리한테 금속체를 심어 놓고 미래신문을 보내고 그 일들에 관여를 해 왔던 것 같아요. 그동안은 우리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아니. 꼭 그렇다고 할 수만은 없죠. 맥브라이언은 우리한테 나쁜 실험들을 했어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이라고 명령한 것도 나는 준 맥브라이언 짓이라고 생각해요. 장 항 형이나, 희영이한테 시도했던 것들 같은. 하지만 우리는 그 명령을 거부했고 지금 다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장 항 형이 했던 것처럼 우리 생체에 직접 명령하는 걸 시도하고 성공을 거둬가고 있고. 우리한테서는 전에 사이크가 말했던 그런 능력들이 나타나요. 그리고 그때 희영에게서 드러나지 않았던 게 이제 나타나고 있어요. 정인씨랑 이시영 변호사님한테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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