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꿈꾸는 늑대 107부
무석은 먼저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평소 이곳 체육관에는 단전호흡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영의 사부는 남들의 이목(耳目)을 속이기 위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루에 2번씩 단전호흡을 지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이곳이 갈치파의 본거지로 갈치파의 전전대 수장이 살고 있거나 갈치파의 원로원이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무석이 체육관으로 들어서자 아직은 수련시간이 되지 않아서 그런지 한 두 명의 사람들만이 체육관에서 운동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수영의 사부를 모시며 다른 사람들에게 단전호흡을 지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갈치파 화랑 중에서 특별히 이곳의 관리를 전담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체육관에 들어선 무석을 알아보고 무석에게 달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사부님을 찾아오신 겁니까?”
“사부님과 원로님들을 뵙고자 왔습니다.”
“원로원에 찾아오셨다는 말씀입니까?”
“예~ 상의할 문제가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다급한 사안입니까? 바로 연락해야 합니까?”
“부탁합니다. 한시가 급한 문제입니다.”
“알겠습니다. 이곳에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위에 보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화랑이 사무실로 들어가고 10분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이층으로 올라가시죠. 원로님들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겠습니다.”
무석은 화랑에게 인사를 하고 혼자서 원로원이 있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은 겉에서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기원(棋院)에 불과했다. 이층 문을 열자 담배연기가 자욱하고 몇몇 노인들이 바둑에 열중하고 있었다. 무석이 들어서자 젊은 사람 한명이 무석에게 달려왔다. 이 사람은 원로원을 지키며 원로들의 심부름을 하는 화랑이다. 그는 말없이 무석을 한곳으로 안내했다. 무석은 기원에 있는 내실로 통하는 문을 지나 내실로 들어가니 조금은 넓은 회의장이 나타났다. 바로 갈치파의 원로들이 회의하는 장소다. 그곳에는 8명의 노인들이 자리에 앉아 무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석이 먼저 인사를 하자 한명의 노인이 무석을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한다. 무석은 회의장 테이블 중 맨 끝에 자리했다.
“잠시만 기다리게 두 명이 아직 오질 않았네.”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리자 한명의 노파와 한명의 노인이 들어왔다. 나머지 원로들이 모두 자리 일어나고 무석도 일어났다. 바로 수영의 사부와 나머지 한명의 원로가 들어온 것이다. 수영의 사부가 자리에 앉자 나머지 원로들도 자리에 착석했다. 무석은 원로들 중 한명을 보았다. 그는 바로 무석의 할아버지다. 또한 이곳에는 갈치파에서 쫓겨난 강기의 할아버지도 있었다.
“자내가 원로들을 보자고 했나. 그래 무슨 일로 보자고 했지.”
수영사부의 약간은 권태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이미 장내에는 수영사부와 나머지 한명의 원로까지 참석했기 때문에 모든 원로가 집합한 것이다. 원로원의 구석은 7명의 남자들과 3명의 여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수영의 사부가 원로원의 수장으로 있었다. 그녀의 질문에 무석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원로들의 시선이 무석에게 집중되었다.
“제가 원로님들을 뵙고자 한 것은 원예님에 대해 할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예?...........자네가 원예에 대한 무슨 할말이 있다는 거지?”
“일단 들어보시죠.”
무석의 할아버지가 의견을 내자 수영사부는 말한 노인을 한번 쳐다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무석의 할아버지는 수영사부가 입을 다물자 강기하게 고개를 까닥인다.
“계속 이야기하게”
“예~ 저는 최근 우리 갈치파가 위기에 봉착(逢着)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공들어서 검찰과 경찰 등 권력기관에 심어두었던 화랑과 원화들의 조직은 완전히 붕괴(崩壞)되었으며, 심지어는 저희들과 연을 유지하고 있던 권력기관의 인맥(人脈)들도 저희에게 등을 돌린 상태입니다. 다시 말하면 조직의 눈과 귀가 상실되었습니다. 또한 강철파를 무너트리고 서울을 통일하기 위해 연합했던 성민파와 자갈치파는 한쪽은 손발이 묶이고 한쪽은 괴멸상태입니다. 그건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갈치파도 그동안 계속된 전투로 인해 정예 화랑들 중 반 이상이 전력에서 이탈했습니다. 반대로 저희가 상대해야 할 천랑파는 자갈치파의 손발을 묶어버리고 성민파를 격파(擊破)하는 등 최근 무서운 기세로 우리 갈치파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야. 그래서 원예의 무능을 탓하기 위해 우릴 보자고 한건가? 이런 모든 사태가 원예가 조직을 잘못 이끌어 왔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그런 거라면 들을 가치도 없는 이야기야.”
수영사부는 무석의 말에 불편한 심기를 드려냈다. 그건 모두 한 두 명의 원로들을 제외하면 모두 원로들도 같은 생각이다. 원로원의 대부분은 지금까지도 원예를 절대적으로 신임하고 있었다. 무석도 원로들의 반응을 대충은 예상하고 왔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다음 말을 이어갔다.
“우리 갈치파가 위협에 처한 것이 원예님만의 잘못이라고 말씀드리긴 힘들겠죠. 원예님을 보좌하는 저희들의 잘못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걸 말하고자 원로님을 뵙자고 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먼저 우리 갈치파의 현 상황을 말씀드린 것은 조직이 이런 위험에 처해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원예님이.............최근 이상한 행동하고 다니신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왔습니다.”
“이상한 행동? 무슨 말인지 자세히 말해보게. 원예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닌단 말인가?”
“원예님이 최근에 개인적인 일로 외출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누굴 만나려 다니는 시는 건지 평소와는 달리 몸에 치장까지 하고 외출하십니다. 평소에 쓰고 다니시는 모자까지 벗어버리고 눈에 띄게 치장까지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불충(不忠)하게도 원예님의 뒤를 조사했습니다. 그게 죄가 된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원예가 혼자서, 그것도 차장까지 하고 누굴 만나려 다닌다는 말인가? 그걸 자내가 조사 했어. 이게 잘못하면 하극상이 된다는 것을 모르진 않겠지.”
“잠깐만 무석의 말을 계속 들어보시죠. 만일 무석의 원예님을 모함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벌을 받아야겠죠. 하지만 그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하극상을 논하기는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봅시다.”
역시나 무석의 할아버지가 무석을 두둔하고 나선다. 또한 강기의 할아버지도 무석의 편을 들었다. 수영사부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원예가 누굴 만나고 다니는 지는 알아낸 건가?”
“예~ 제가 확인해본 결과..........원예님이 최근에 만나고 다니는 사람은 천랑파의 수장인 천랑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뭐.............뭐야. 천랑~ 수혼이 놈을 만나고 다닌다는 말인가?”
“예~ 맞습니다. 천랑이 누구신지는 원로님들 모두 잘 아실 겁니다. 바로 저희들이 상대해야 할 천랑파의 수장입니다.”
“만나서..........만나서 무슨 짓을 벌인 것인가?”
이번에는 수영사부의 목소리가 커진다. 원예가 천랑을 만나고 다닌다는 말에 그녀도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그건...........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제가 원로님을 뵙고자한 것은 이런 사실을 말씀드리고 저에게 원예님의 뒷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고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웅성웅성”
무석의 말이 끝나자 원로들이 웅성거리다. 자신들이 믿고 있던 원예가 상대방 수장과 만나고 다닌다. 그것도 공식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만나고 다닌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수영의 사부였다. 그녀는 무석의 말을 듣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조용히 하세요. 제가 당장 원예를 만나보겠습니다. 이 무석! 네가 하는 말에 책임질 수 있나. 만일 자네의 말이 거짓이 있다면 용서치 않을 거야.”
“증인들이 있습니다. 제가하는 말에 거짓이 있을 시는 무슨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좋아. 자내는 일단 밖에서 기다리게 원로들이 회의를 거쳐 결정하겠네.”
“알겠습니다.”
무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무석이 나가자 원로들은 모두 수영의 사부의 입을 집중했다. 지금 문제는 수영 사부가 결정해야 될 문제다. 원예는 단순히 갈치파의 수장이 아니다. 그녀는 갈치파의 수장이기 전에 원예도문의 유일한 전승자가 아닌가? 갈치파는 원예도문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모든 결정은 수영사부가 해야 될 문제다.
“이건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맞습니다. 원예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해야 합니다.”
무석의 할아버지와 강기의 할아버지는 원예의 뒷조사를 강력하게 요청했다. 수영사부는 한동안 말이 없더니 끝내는 입을 열었다.
“여러분 중에서 수영과 수혼의 관계를 아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내가 그렇게 만나지 말라 타일렀거늘..............일단 원로님들의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원예는 갈치파의 수장이기 전에 원예문의 유일한 전승자입니다. 아직 원예가 천랑과 무슨 일로 만났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무석의 말만 듣고 원예를 의심할 순 없겠죠. 일단 두 사람이 만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조사하는 것이 순서인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원예가 무슨 일로 천랑을 만난건지 조사하는 것이 순서인 것 같습니다.”
“다른 의견이 있는 분 있습니까?”
“없습니다.”
“좋습니다. 무석에게 두 사람이 만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하세요. 그리고 제가 수영을 만나보겠습니다. 회의는 이것으로 끝내죠.”
원로들은 다시 무석을 불러들여 원예와 천랑이 만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무석은 원로원의 제가를 얻고 바로 추가조사에 착수했다. 수영의 사부는 그날 밤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가 끝내는 수영을 자신의 숙소로 불려들었다.
수혼은 봉황도(鳳凰圖)에 숨겨진 비밀의 실마리를 잡았다. 지나의 등에 문신된 하늘을 날고 있는 봉황을 자세히 보면 봉황의 깃털 곳곳에 점이 찍혀 있었으며 그 점을 선으로 이어보면 하나의 초식이 만들어진다. 그중에서 수혼이 먼저 알아낸 초식은 자신이 알고 있던 양검의 초식이자만 그 양검의 초식들을 연결하는 점들 제외하고도 다른 불규칙한 다른 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양검의 초식에 그 불규칙한 점들을 선으로 연결하면 새로운 초식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점들이 오묘하게 배치되어 있어서 문신을 보는 각도와 문신 된 지나의 움직임에 따라 또 다른 초식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수혼은 지나와의 뜨거운 정사가 끝낸 후 그녀의 문신에서 점들만 골라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늦은 밤, 수혼은 자신의 서재에서 점들이 어지럽게 찍혀있는 그림을 보며 새로운 초식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림을 보며 점들을 연결하여 새로운 초식을 만들어내던 수혼이 들고 있던 팬을 던져버렸다. 몇 개의 새로운 초식을 만들기는 했지만 어지럽게 널려있는 점들만 보고는 더 이상의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혼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섰다. 창밖에 정원이 보인다. 정원 곳곳에는 낙엽들이 떨어져 있었다. 벌써 계절은 완연한 가을이 접어들고 있었다. 수혼은 답답했다. 음검의 완성이 쉽지 않기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서재의 문이 열리며 링링이 들어왔다. 수혼이 고개를 들리자 링링이 수혼의 의자에 앉더니 수혼을 올려본다.
“무슨 일이야?”
“아저씨! 음검의 실마리를 잡았다며. 어때. 음양도의 최후무공이라면 대단하겠지.”
“그게 궁금해서 왔어. 실마리만 잡았을 뿐이야. 아직 연구 중이란 뭐라 말하기 힘들군.”
“연구?.........뭐 문제라도 있어. 실마리를 잡으면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一瀉千里)아닌가?”
“말이 쉽지 간단한 문제가 아냐. 점과 점 사이에 새로운 초식이 숨어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점들을 연결하다보면 말도 안돼는 초식이 만들어 지기도하고 그냥 평범하기 그지없는 초식이 만들어지기도 해.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어.”
“아저씨가 보고 있던 게 이거야.”
링링은 수혼의 책상에 펼쳐진 종이를 보았다. 종이에는 수많은 점들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링링은 종이를 들어 앉아있던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장난치며 그림을 보았다. 수혼은 링링을 내버려 둔다. 자신이 보아도 알지 못하는 것을 링링이 본다고 알겠는가? 수혼은 링링이 조금보다 말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링링은 계속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한동안 그림을 본다.
“링링은 그림을 보니 뭐~ 알겠어.”
“응~ 간단하네. 점과 점을 연결하면 국선도 검법도 모두 만들어지는데. 음~ 이렇게 연결하면 무당파 검법도 만들어 지는 것 같고, 또 이렇게 연결하면 화랑검법도 만들어 지는 것 같은데.”
“뭐야~ 무슨 말이야. 그 점들 속에 그런 많은 유파의 검법이 만들어 진단 말이야.”
“아저씨?..........이 그림으로 뭘 알아내겠다는 거야. 내가 보기엔 이 그림은 쓰레기야. 아무런 뜻도 의미도 없어.”
“뭐........뭐야. 그림이 쓰레기라고? 링링 말이 너무 심하잖아.”
“바보~ 아이들이 어지럽게 찍어놓은 점들을 연결해도 수많은 초식을 만들 수 있어.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초식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거야. 그건 무의식중에 만들어지지. 그렇게 생각 안 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봐~”
“언젠가 사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 ‘나무를 보지 많고 숲을 보라.’ 아저씨........아저씨 사부님이 왜 봉황도를 그렀을까? 그림 속에서 이 점들만 중요하다면 점이나 몇 개 찢어서 그림을 완성하지 힘들게 봉황도를 그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어차피 그림은 아저씨하고 언니만 볼 수 있는데 말이야.”
“링링의 말은 점들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봉황도 전체를 보아야한다. 이 말이지.”
“아주 바보는 아니네. 맞아. 이 점들만 있는 그림은 그냥 쓰레기야. 봉황도 전체가 있어야 해. 그것도 몰랐어.”
“하하하~ 그래 내가 바보다. 맞아. 맞아. 내가 멍청했어.”
“쩝~ 사실 언니하고 아저씨가 계속 같이 있는 것이 짜증나기는 해. 하지만 음검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겠지. 그리고 사부님이 주신 천부경도 잘 살펴봐~ 어차피 모든 무공은 궁극적으로 한곳으로 통해. 음양검법이라고 특별하다고 생각지 안아. 아저씨가 천부경과 천부경 도해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링링~ 고맙다. 이제야 머릿속이 신원해지는 느낌이다.”
“치~ 바보~ 내가 언니 불러줄게. 참~ 언니가 아름다운 것은 인정하겠어. 또 아저씨가 언니를 사랑한다는 것도 인정해. 하지만 언니가 벗고 있다고 딴 짓 좀 그만해. 다들 말을 못해서 그렇지.........다른 사람들도 생각해조.”
“이거 링링에게 한방 먹는 걸. 알았어. 조심하도록 하지.”
“치~ 말로만~ 언니가 벗고 있으면 또 딴 짓 할게 뻔해요. 하여튼 우리가 지나언니 미워하지 않도록 조심해. 아저씨가 계속 이렇게 나오면 지나언니 미워할 거야.”
“알았어. 링링이 삐진 거야.”
“그럼 당연하지. 간다.”
링링은 혀를 내밀고 밖으로 나갔다. 수혼은 링링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피식 웃는다. 잠시 후 지나가 다시 들어왔다. 그녀는 아예 슬립만 입고 있었다. 어차피 벗어야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준비하고 온 모양이다.
“수혼씨. 링링에게 들었어. 좋아. 벗긴 벗는데...........그림만 보는 거야. 약속해.”
“쩝~ 고문이군! 알았어. 지나를 다른 부인들이 미워하면 안 되지. 힘들지만 참도록 할게. 대신 일이 끝나면...........해도 되지.”
“안돼~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더 이상은 안돼. 그게 생각나면 언니들이나 동생들 찾아가. 낮에도 수혼씨에게 시달렸어. 힘들어 죽겠단 말이야.”
“참~ 이거야 원~ 난 지나가 사랑스러워서 그러는 건데.”
“이 남자가! 안된다면 안 되는 거야. 약속 안하면 갈 거야.”
“알았다. 알았어. 약속해.”
지나는 수혼이 약속하자 슬립을 벗고 수혼의 앞에 앉았다. 수혼은 지나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앞으로 넘기고 봉황도를 보았다. 링링의 말이 맞았다. 봉황도에 찍혀있는 점은 그림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 점과 점을 연결하여 하나의 초식이 만들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봉황도의 전체를 보지 않으면 초식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다. 봉황도는 점과 점 사이의 연결에 일정한 규칙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분위기라고 설명해야 할까? 수혼은 봉황도에 집중하며 펜으로 새로운 초식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나는 수혼 앞에서 옷을 벗고 있는 것이 조금은 익숙해졌고, 또한 굳이 정자세를 유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편하게 앉아 있었다.
법암은 아버지이자 사부의 편지를 보고 산을 내려왔다. 사부가 자신을 피하고자 산을 내려갔다면 산에서 기다려야 소용없기 때문이다. 법암은 일단 서울로 향했다. 편지 속에서 사부는 수혼에게 천마월영도와 음양검법을 전했다고 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아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던 독한 놈이다. 자신도 그 나이에 아들과 같은 패기와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수많은 적을 상대로 겁을 먹기는커녕 조금도 물러섬 없어 끝까지 싸웠으며 그 많은 전투를 치루면서도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던 자신이다. 그런 걸 보면 녀석도 자신의 핏줄임이 분명하다. 다만 녀석은 자신이 젊었을 때보다 더욱 뛰어난 무술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그 나이에 그만한 실력을 가진 녀석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아마 자신도 그 나이 때는 수혼보다 못했을 것이다.
법암은 차안에서 눈을 감았다. 사부는 녀석에게 천마월영검을 주었다고 했다. 천마월영검은 원예문의 물건이다. 자신에게는 천마월영검을 원예문에 돌려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다시 녀석을 만나야겠다. 그 녀석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자신이 녀석 앞에 어떻게 아비라고 나설 수 있단 말인가?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아비로써 녀석에게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20년 만에 만난 녀석을 따뜻하게 감싸주기는커녕 녀석을 베어 상처를 입히지 않았는가? 그런 자신이 아비라고 나선다면 녀석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자신의 과거지사를 모두 말해주면 이해할까? 아니다. 녀석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법암은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갑자기 사부에 대한 원망의 감정이 올라온 것이다. 사부는 녀석에게 과거지사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녀석이 과거지사에 대해 들었다면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녀석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사부는 비겁하게 자신과 아들에게 모든 짐을 떠넘기고 숨어버린 것이다.
수영은 밤늦은 시간 사부를 찾아가고 있었다. 자신을 부르는 사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차가웠다. 수영은 사부를 만나려가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진다. 그녀가 체육관으로 들어서자 사부를 모시는 화랑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사부가 기거하는 3층으로 안내했다. 수영은 3층으로 올라가며 약간 긴장했다. 사부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자신을 3층으로 부르지 않는다. 3층은 원예문에 있어서 상징적인 장소이다. 바로 원예문의 무경(武經)들과 사문의 전대 계승자들의 위패가 모셔진 장소이기 때문이다. 화랑은 3층 입구까지 수영을 안내하고 자신은 밑으로 내려갔다. 수영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사부가 넓은 마루에 혼자 앉아 있었다. 전대 계승자들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은 바닥이 나무로 되어 있고, 한쪽 벽에는 각종 책들이 그리고 한쪽에는 위패들이 모셔진 장소가 있었다.
“들어왔으니 앞에 앉아라.”
수영은 차갑고 건조한 사부의 목소리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사부 앞으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차가운 나무 바닥의 기운이 엉덩이를 타고 올라온다. 사부는 차디찬 눈빛으로 수영의 눈을 응시했고, 수영도 사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무슨 일로 널 부른지 아느냐?”
“모릅니다.”
“음~ 그래............좀 전에 무석이가 원로원을 다녀갔다. 그가 너에 대해서 한 가지 보고를 하더구나.”
“사군자 중 매(梅)에 관한 일이라면 들을 가치도 없습니다. 그건 전투 중에 생긴 일입니다.”
“아니다.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수영아. 네가 내게 숨기고 있는 것이 없느냐?”
“예~. 제가 사부님께 무엇을 숨기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정말 아무것도 숨기는 것이 없느냐.”
차가운 사부의 말에 수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무석이 자신에 대해 어떤 보고를 하였기에 사부가 이런 반응을 보인단 말인가? 설마 자신이 수혼을 만난 사실을 무석이 알아낸 것일까? 수영이 말이 없자. 사부 또한 수영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수영은 한참을 망설이더니 끝내 입을 열었다.
“제가 수혼을 만난 사실을 말하던가요?”
“사실이냐?”
“예~ 만났습니다.”
“그래 녀석을 보니 기분이 좋더냐?”
“무슨 말씀인지...........”
“녀석을 보니 무슨 느낌이 들더냐.”
“.........좋았습니다. 마치 가족처럼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만나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래~ 녀석에게 나쁜 감정은 들지 않더냐?”
“예~ 좀 장난스럽고 가벼워 보이는 경향은 있지만 좋은 사람 같았습니다.”
“네 어미를 죽인 원수의 아들인데도 좋게만 보이더냐.”
“예? 무.........무슨 말씀입니까?”
“휴~ 그래~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앞으로도 계속 만날 것이냐?”
“사.........사부님 무슨 말씀입니까? 어머니를 죽인 원수라뇨, 원수의 아들이라니요.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내가 한번 말했지. 법암이란 놈에 대해서 말이야. 밥암이란 놈은 너 어미를 죽인 원수다. 또한 법암의 아들이 바로 수혼이란 놈이다.”
“뭐.........뭐..........라.구....요.”
수영은 사부의 말을 듣고 멍해졌다.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태어나서 한번도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를 죽인 원수가 법암이라고 한다. 법암의 아들이 수혼이라고 한다. 수혼은 원수의 아들이라고 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럼 자신은 원수의 아들을 좋아했단 말인가? 그리고 어머니는 어떻게 죽었단 말인가?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했다.
“사부님........법암이 어머니를 죽었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자세히.......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법암이란 놈은 전대 음양도문의 계승자다. 네 어미는 전대 원예문의 계승자지. 20년이 조금 넘은 이야기다. 그때 두 사람은 사문의 명예를 걸고 대결을 펼쳤고, 그 대결 중에 네 어미가 법암의 검에 죽었다. 그래서 우리 사문의 상징인 천마월영검도 음양도문의 수중에 있는 것이다. 내가 천마월영검에 대해도 설명하지 않았다. 천마월영검은 우리 사문의 상증이다. 바로 장문영부와 같은 것이지. 음양도문과 원예도문의 대결에서 승자가 상대방 사문의 장문영부를 다음 대결까지 소유하게 된다.”
“그.......그럼 정당한 대결에서 어머님이 돌아가신 겁니까?”
“정당한 대결? 흥~ 그게 정당한 대결이라고 할 수 있을까? 휴~ 그 이야기는 하지 말자구나. 하여튼 네 어미는 법암이란 놈과의 대결에서 죽었고 법암이란 놈은 그 길로 송광사에 들어가 중이 되었다. 내가 알기로 그놈이 송광사에 들어가기 전에 수혼이란 놈을 자신의 아버지에게 맡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법암이나 수혼을 만나지 말라고 당부한 것이다.”
“당장 복수해야죠. 왜~ 만나지 말라고 하신 겁니까? 지금이라도 달라가 당장 복수 하겠습니다.”
“누구에게 복수하겠다는 거냐. 법암이란 놈을 찾아가 복수하겠다는 거냐 아니면 그놈의 아들놈을 찾아가 복수하겠다는 거냐.”
“예? 아..........아들이요? 사부님 그.........그건.”
“네가 수혼이란 놈을 죽일 수 있느냐. 지금 당장이라도 놈을 찾아가 죽일 수 있냐 말이다.”
수영은 순간 사부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이 수혼을 죽일 수 있을까? 원수의 아들이란 이유만으로 그를 죽일 수 있을까? 수영의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엉켜버린다. 사부는 수영을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다가 고개를 흔든다.
“모난 놈!.......법암은 너의 상대가 아니다. 놈은 이미 원예무로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강자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수혼이란 놈은 정당한 대결에서 물리쳐야 한다. 그게 바로 사문의 명예를 지키고 음양도문에 복수하는 길이다. 우리가 당했듯이 정정당당한 대결에서 승리해야 한단 말이다.”
“왜~ 지금에서야 말씀해 주시는 겁니까? 미리 말씀해 주셨다면........미리 말씀해 주셨다면 좋았을 것을..........지금 와서 저보고 어쩌라는 겁니까?”
“무슨 말이냐. 설마 놈과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것이냐? 그건 아니지. 안 된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절대 안 되는 일이야. 수영아. 대답해. 녀석과 아무 일 없는 거지. 그치.”
수영은 사부가 흥분하여 자신의 어깨를 붙들고 흥분하자 멍하니 사부를 바라보았다. 사부님이 이렇게 흥분하는 모습은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부님 무슨 말씀입니까? 그런 일이라니요?”
“혹시 놈과..........아니다. 어디까지 건거냐. 무석이놈의 말을 들어보면 화장까지 하고 놈을 만났다고 하더니..........이 사부의 생각이 맞지. 그렇지 그냥 만나기만 한거지.”
“예~ 그.........그냥 친구로 만나고 있습니다. 별다른 일은 없었어요.”
“그렇지. 휴~ ”
사부는 수영의 어깨를 잡은 손을 놓더니 한숨을 쉬었다. 수영은 사부의 반응을 유심히 살펴본다. 사부는 눈을 감고 부르르 떨고 있었다. 수영이 말없니 앉아있지 사부는 한참이 지나 후에 눈을 뜬다. 사부는 다시 냉정을 찾을 듯 보인다.
“지금부터 사부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혹시라도 원수를 갚겠다고 법암을 찾아가는 우(愚)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법암이란 놈은 이 사부도 어쩌지 못할 정도의 고수다. 네가 상대할 만한 상대가 아니야. 그리고 수혼이란 놈은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말도록 해라. 이 사부의 부탁이다. 할 수 있겠느냐.”
“알겠습니다. 법암을 찾아가진 않겠습니다.”
“그놈도 다시 만나지 않겠지.”
“그........그건..........예! 알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다시는 그놈을 만나지 말거라. 난 날 믿는다.”
“사부님........어머니는 그리 돌아가셨고, 아버님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아버님은 누구이며 지금은 어디에 계시는 분입니까.”
“네 아비에 대해서는 나도 모른다.”
“예~ 사부님도 신다구요?”
“그래~ 몰라.”
수영은 사부가 한마디로 잘라서 말하자 더 이상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사부는 알고 있을 것이다. 어머니는 사부님의 제자다. 아니 자신이 생각대로라면 어머니는 사부님의 딸이 맞을 것이다. 또한 자신은 사부님의 외손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외손녀의 아버지를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내말 명심해야 한다. 그만 나가봐~.”
사부는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려버린다. 자신과 더 이상 할말이 없다는 뜻이다. 수영은 한 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마 자신이 물어도 더 이상의 대답은 하시지 않을 것이다.
수혼은 그림 속에서 많은 초식을 만들어낸다. 지나의 움직임과 보는 각도에 따라 봉황도가 움직이며 새로운 초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냥 점들만 보아서는 링링의 말대로 아무것도 아니다. 전체적인 봉황도를 보아야 되는 것이다. 몇 시간 동안 봉황도를 보니 수혼과 지나 모두 상당히 지쳤다. 수혼은 봉황도에서 눈을 돌려 창가를 바라본다. 조금씩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미 새벽이 다가온 모양이다. 수혼은 다시 눈을 돌려 자나을 바라본다. 그녀는 바닥에 편안하게 앉아있는데 조금씩 어깨가 흔들리고 있었다. 수혼이 살며시 일어나 지나를 보자 그녀는 앉아서 졸고 있었다. 수혼은 피식 웃더니 지나를 앉았다.
“아~ 뭐야. 미........미안해. 깜빡 잠들었네.”
“피곤하지. 나 때문에 지나만 힘들게 하네.”
“아니야. 수혼씨를 위한 길인데...........하나도 힘들지 않아. 그런데 다 본거야.”
“대충은.........우리도 자야지. 나도 이젠 피곤하다.”
“그래 수혼씨도 피곤하겠다. 그만 나죠. 내방으로 갈게.”
“우리 같이 자자.”
“아~ 아파. 이 남자가 또. 안하겠다고 약속했잖아.”
“후후후. 지나를 보고 있으면 참을 수 없단 말이야. 아~ 아야~”
지나는 수혼의 가슴을 꼬집으며 그의 품을 벗어난다.
“정말 안돼~. 정~ 생각나면 언니들 방이나 동생들 방으로 가란 말이야.”
그녀는 한마디 톡 쏘아붙이고 수혼이 일어나기 전에 서재에서 도망치듯 나가버린다. 수혼은 쓰게 웃더니 입맛만 다신다. 꼭 어린아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빼앗긴 표정이다. 수혼은 자신이 알아낸 초식들을 한쪽에 치우고 이번에는 천부경을 보았다. 그곳에는 국선도문주가 자신의 평생의 무학을 정리한 유수(流水)의 검(劍)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수혼은 다시 정신을 집중하여 유수의 검을 해독하기 시작했다. 유수의 검은 수혼도 직접 상대해 보았고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해독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또한 국선도 문주가 함께 전해준 국선도 무경을 참고해서 보면 중간에 막히는 부분은 해결되었다.
수혼이 그렇게 계속하여 유수의 검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미나가 들어왔다. 미나는 자신이 들어와도 족자와 책만 보고 있는 수혼의 곁으로 다가갔다. 수혼은 한참 유수의 검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때 조그마한 손 하나가 족자를 가린다. 수혼은 정신을 차리고 손의 주인을 보니 미나인지 미희(?)가 자신을 보며 웃고 있었다. 사실 수혼은 아직도 겉모습만 보고 미나와 미희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녀들이 입을 열면 말투를 듣고 구분할 수 있지만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잘 모르는 것이다.
“무슨 일이야.”
“식사하세요.”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나. 밥보다는 너무 졸린데.”
“식사는 하시고 주무세요.”
“피곤해서 밥 생각도 없어.”
“그럼 먼저 주무세요.”
“미니하고 같이 자면 안 될까? 피곤해서 혼자자기 힘들 것 같아서 말이야.”
“치~ 지나동생이 도망가서 어쩔 수 없는 모양이죠.”
“삐졌어.”
“호호호~ 알았어요. 제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서방님. 침실로 가시죠.”
수혼은 미나와 함께 침실로 걸어가는데 중간에 요코와 마주쳤다.
“서방님께서 피곤해서 밥보다는 먼저 주시겠다고 하시네. 날 보고 수청(?)을 들라하셔 같이 가는 길이야.”
“수청이요? 호호호~ 알았어요. 제가 미희언니도 보내드릴게요.”
“그런 친절(?)은 필요 없는데..........”
“호호호. 서방님을 혼자 어찌 상대하시려고 하세요. 그러시다가 몸이라도 상하시면 큰일 입니다.........제가 지원병을 꼭 보내드리겠습니다.”
“호호호. 알았어. 오랜만에 자매가 서방님을 모시도록 하지 뭐~”
수영은 빈 사무실에 앉아 사부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법암이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원수이며 수혼이 법암의 자식이란다. 그럼 자신은 원수의 자식을 마음에 두었다는 말이다. 수영은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았다. 자신이 살아오면 처음으로 마음에 준 사람이다. 자신을 처음으로 여자라고 느끼게 해준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원수의 아들이란다. 사문의 원수란다. 자신은 어찌해야 하는가? 지금 와서 그를 잊어야 하는 것일까? 그이 가슴에 검을 거누어야 하는 것인가? 사부님을 왜 처음부터 그런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것일까? 사부가 원망스럽다. 지금 와서 자신보고 어쩌란 말인가? 수영은 긴 한숨을 쉬고 창밖을 바라본다. 사부에게 다녀와 이곳 빈 사무실에서 뜬눈으로 밤을 보낸 것이다.
수영은 수화기로 손을 가져갔다. 그에게 묻고 싶다. 그는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자신이 원수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그렇게 대한 것일까? 아니다. 그는 법암의 존재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법암이 전설의 사나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수혼과 법암은 목숨을 걸고 대결했다. 그건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사실이다. 부모와 자식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그런 싸움을 벌일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부자간의 싸움이 아니었다. 혹시 사부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 수영은 한동안 수화기를 잡고 있었다. 마음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끝내 수화기를 들었다. 자신이 고민하기 보다는 그를 만나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전화기를 들고 그의 핸드폰 번호를 놀렸다.
수혼은 막 침실에 들어 미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는 순간이었다. 그때 한쪽에 놓아둔 전화기가 울린다. 수혼은 잠시 망설이다가 막 옷을 벗으려는 미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기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야.”
“응~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잠깐 만날 수 있어.”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오늘 중에 만났으면 좋겠어.”
“알았어. 그럼 오후에 내가 연락하지. 나도 당신을 만나고 싶었어.”
“알았어. 그럼 전화 기다리고 있을게.”
수혼은 전화기를 내리고 다시 침실로 올라왔다.
“누구에요.”
“수영이. 만나자고 하네.”
“예? 갈치파 보스?....... 그녀가 무슨 일로 만나자는 거죠.”
“안 물어봤어. 나도 그녀를 만날 일이 있었으니 잘됐지. 뭐~”
“수혼씨는 무슨 일로 그녀를 만나려는 거죠.”
“천마월영검이 원예문의 물건이라고 했잖아. 무슨 사연으로 천마월영검이 우리 사문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인에게 돌려줘야지.”
“예? 그걸 돌려주겠다는 말씀이세요. 왜요? 그건 원예문의 상징이잖아요. 천마월영검만 있으면 갈치파의 화랑들을 조정할 수도 있어요. 그걸 모르세요.”
“글쎄. 화랑들이 천마월영검의 권위(權威)를 인정할까? 설사 인정하다고 하더라도 그걸 가지고 갈치파를 어떻게 해볼 생각은 없어. 내 물건이 아니니 돌려주는 주어야 하지 않겠어.”
“사부님이 화내지 않겠어요.”
“사부는 내 마음대로 하라고 했어. 주인에게 돌려주었다는데 왜 화를 내.”
“수혼씨! 혹시 수영씨를 마음에 두고 있기 때문 아닌가요?”
“미나도 그렇게 생각해. 섭섭한데. 난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싶어. 그런 물건 하나를 가지고 갈치파를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설사 그 물건으로 화랑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해도 그럴 마음은 추후도 없어.”
“알았어요. 언제 만나실 거죠.”
“그건 천천히 생각해도 돼. 난 지금 미나와 사랑하는 것이 급하단 말이야.”
수혼이 늑대처럼 미나의 몸을 덮쳤다. 미나도 싫지 않은 듯 수혼의 품으로 파고든다. 수혼은 미나의 작은 몸을 가리고 있던 천을 벗겨낸다. 그때 문을 열리며 미희가 들어왔다.
“벌써 시작했어. 그럼 나도 서둘러야겠네.”
미희는 침대에 오르기 전에 옷을 벗어버리고 침대에 뱀처럼 엉켜있는 남녀의 틈으로 파고들었다. 수혼은 미나와 미희와의 정사가 끝난 후 깊은 잠에 빠졌고, 쌍둥이 자매는 잠든 수혼을 겉에서 지켜주었다.
ps : 이제부터 다시 성실연재 하겠습니다. 잠시 방황했습니다.
********** 사과 및 당부의 말씀 ******************
1. 게시판에 연재 중단하겠다고 해서 죄송합니다.
2. 카페에서 순간의 흥분을 참지 못하고 말없이 탈퇴해서 죄송합니다.
3. 이렇게 뻔뻔하게 다시 글을 올려서 죄송합니다.
지금까지 제들을 읽어주시던 많은 분들 정말 죄송합니다.
낭만은 연중하지 않고 계속 게시판에 연재될 것입니다.
한때의 짧은 생각으로 카페에만 연재하겠다고 하여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먼저 읽으신 분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낭만을 꿈꾸는 늑대는 현재 모 출판사와 출판계약을 끝낸 상태입니다. 계약상 낭만을 꿈꾸는 늑대는 게시판에서 삭제해야겠지만 출판시점까지는 낭만~이 삭제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또한 연재중단되는 일도 없을 겁니다.
저가 이곳까지 올수 있도록 힘을 주셨던 많은 분들의 은혜를 잠시 망각한 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당부 드리고 싶은 말................
제발 ..............
돈 때문이라니................
누구누구의 글에 비하면 그것도 글이라느니.........
이런 식의 비판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붉은미르 올림 -
제 목: 낭만을 꿈꾸는 늑대 (108부 )과거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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