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을 꿈꾸는 늑대-102화 (102/128)

낭만을 꿈꾸는 늑대 102부

지나를 태운 택시가 올림픽 도로를 벗어나 자유로 초입에 들어서고 있었다. 지나는 조금 전에 지나친 사람이 혹시 수혼이 아닐까하는 막연한 상상을 하다가 피식 웃고 만다. 지나는 창문 넘어 풍경을 구경하고 있는데 반대편 차선에서 5대의 버스가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미 자정이 넘어 밤 1시가 넘은 시간에 무슨 급할 일이 있어 저리 급하게 달릴까? 한동안 산골에서 생활했던 지나는 급하게 달려가는 버스들을 보고 자신이 도시에 나온 것을 실감했다. 택시는 어느덧 자유로를 지나 일산의 초입으로 들어서더니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나타난다.

“아가씨!........ 지금부터는 저도 길을 모르니 아가씨가 안내해 주세요.”

택시기사의 말에 지나는 사부에게 들었던 길을 안내하니 택시는 복잡한 사내를 빠져나와 한적한 길로 접어들었다. 그 길은 시내와는 달리 가로등도 없고 한적한 시골길 같았다. 택시는 높은 비탈길을 올라 올라가더니 다시 밑으로 내려간다. 지니가 다시 창가를 바라보니 택시는 분지 같은 곳을 달리고 있었다.

“아가씨 이런 곳에 집이 있기는 있는 겁니까?”

“조금만 더 가시면 돼요.”

지나가 사부에게 듣기로 수혼이 살고 있다는 저택은 옛날 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한 곳이라고 했다. 택시가 고개를 넘자 앞에 넓은 벌판이 나타나고 벌판의 한 가운데 저택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나의 가슴을 심하게 요동친다. 이제 수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인가? 택시는 저택의 정문에서 멈추고 지나는 떨리는 심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택시는 지나에게 요금을 받더니 다시 먼지를 일으키며 살아진다. 그때 저택의 정문을 지키던 경비가 밖으로 나와 지나에게 다가왔다.

“저........누굴 찾아오셨습니까?”

“예~ 조 수혼씨를 찾아왔어요.”

“조. 수. 혼.............잠깐만요. 이곳에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일일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일단 이곳에서 기다리세요. 제가 안에 연락해보겠습니다.”

정문을 지키던 남자는 20대 초반으로 천랑파에 가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수혼이란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사실 천랑파 조직원 중에서도 수혼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천랑파 조직원 대부분은 수혼의 본명보다는 천랑(天狼)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을 뿐이다.

길식은 기동대를 급하게 집합시켜 수혼에게 출발시켰다. 그는 무전을 통해 수혼과 별동대의 위치를 파악하고 기동대를 수혼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그때 정문에서 호출이 오니 조금은 짜증나는 투로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예~ 조 수혼씨를 찾는다는 아가씨가 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뭐~ 수혼님을............이름은 물어봤어. 아니다.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어 내가 나간다.”

이 늦은 시간 수혼을 찾아왔다는 아가씨는 누굴까? 길식은 일단 정문으로 달려가 그녀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이 시간에 수혼을 찾아왔다면 수혼과 보통 사이는 아닐 것이다. 길식이 건물을 나와 정문으로 달려가니 정문에 한 아가씨가 긴 보자기를 들고 서성이고 있었다. 여자는 허리까지 오는 길 생머리에 원피스 차림을 하고 있지만 거리가 멀어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다. 길식은 일단 그녀의 정체를 파악해 보기로 했다.

지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할 수 없어 정문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때 정문이 열리며 50대 중반의 남자가 나오자 지나는 약간은 실망하며 길식을 보았다. 지나는 수혼이 당장 달려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뜻밖에 중년의 남자가 나오자 실망한 것이다.

“천랑을 찾아왔다고 하셨습니까?”

“아~ 예~ 수혼씨가 이곳에서는 천랑이라 불리죠. 맞아요. 전 민지나라고 합니다.”

“민.지.나.....................그럼 혹시 민강철의 딸..............맞습니까?”

길식은 한번도 지나를 본적이 없기 때문에 지나을 보고도 그녀가 지나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예~ 맞아요. 수혼씨는 자는 모양이죠?”

“아~ 반갑습니다. 우리가 아가씨를 찾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는데...........이렇게 제 발로 나타나다니..........자~ 일단 안으로 들어오세요.”

“예~ 수혼씨는 안에 있어요.”

“지금 천랑은..............일단 들어오세요. 요코님이나 요키에님은 계시니까 먼저 두 분을 만나보세요.”

수혼은 자꾸만 희미해지는 의식의 끈을 힘들게 붙잡고 있었다. 법암이 성민을 데리고 살아지자 긴장을 풀어지며 맥이 빠진 것이다. 또한 법암에게 당한 옆구리의 상처와 성민에게 당한 어깨에서 다량의 피가 솟아져 점점 의식이 흐려지는 것이다. 그때 수혼의 겉으로 미희가 다가와 수혼을 부축했다. 미희는 대부분의 비도를 소비하고 향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20자루 비도만 남은 상태였다. 그녀가 수혼을 부축하니 수혼은 미희를 알아보고 바닥에 주저앉는다.

“수혼씨.........수혼씨 정신 차례요. 어머 이 상처.........아이 정말”

수혼의 옆구리에는 미나가 감싸준 천이 감겨 있지만 이미 천은 붉게 물들어 있고, 천에서 피가 방울져 떨어지고 있었고 어깨에서도 피가 멈추지 않고 솟아나고 있었다. 미희는 자신의 옷을 찢어서 수혼의 상처를 감싸준다. 수혼은 상처에서 통증을 느끼니 조금 정신이 맑아져 주위를 살펴보았다. 성민의 공격명령으로 시작된 싸움은 어느덧 20분 이상이 지났다. 지금까지 주위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갈치파 화랑들과 천랑파 별동대뿐이다. 이미 대부분의 성민파는 바닥에 쓰려진 상태였다. 수혼이 자세히 살펴보니 화랑들과 별동대의 실력차는 크지 않아 보인다. 개개인의 무공만 본다면 화랑들이 뛰어날 것이다. 하지만 별동대는 강철파의 친위대 시절부터 수많은 실전경험을 갖고 있어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순간순간의 기지(奇智)는 화랑보다 뛰어나 그들을 상대함에 부족함이 없었다. 싸움을 지켜보던 수혼의 눈에 화랑의 다리를 베어버리는 미나가 들어왔다. 그녀의 면도는 평소와 달리 무척 거칠었다. 평소대로라면 상대방의 심줄을 끊어버리는 정도지만 지금은 팔다리를 베어버리고 있었다. 아마도 몹시 흥분한 모양이다. 그녀의 옆에는 링링도 있었다. 링링의 검은 이미 붉은 피를 머금고 있었다. 그녀의 검이 번쩍이면 한명의 화랑이 쓰려진다. 깨끗하고 정확한 초식이다. 수혼은 다시 눈을 돌려 사군자와 수영을 찾아본다. 수영은 사군자 중 두 명과 협공으로 별동대를 베어버리고 있었다. 다만 사군자 중 한명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고, 호식과 란(수지)은 쫒고 쫒기며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호식이 도망치면 란이 따라가는 형국이다. 수혼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희는 수혼의 어깨를 잡아 다시 앉게 만들었다.

“지금 움직이면 다시 상처가 터져요. 조금만 쉬세요.”

“아니야. 조직원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수장이라는 놈이 쉬고 있을 순 없지.”

“수혼씨........수혼씨는 할 만큼 했어요. 제발 말 좀 들어요. 이러다 정말 쓰려져요.”

“저기 수영을 막아야해. 그녀에게 너무 많은 별동대가 당하고 있어.”

“그 몸으로 어떻게 수영씨를 상대한다는 거죠. 차라리 제가 할게요. 수혼씨는 여기서 쉬고 계세요.”

“아니야. 나도 싸워야지. 같이 가자.”

수혼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수영에게 다가갔다. 수영은 한참 별동대를 상대하다가 수혼과 미희가 화랑들을 베어버리며 자신에게 접근하자 잠시 검을 멈추고 수혼의 상태를 살펴본다. 그의 상태는 말이 아니다. 옆구리와 어깨에서는 지금도 피가 흐르고 있었고, 걷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저렇게 다치고도 쓰려지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다.

수혼과 미희가 접근하자 국(菊)과 죽(竹)의 검이 수혼을 향해 날아온다. 수혼은 봉화검으로 국과 죽의 검을 막으며 뒤쪽으로 물러난다. 이미 기력(氣力)이 쇠약해진 수혼이라 국과 죽의 힘에 밀린 것이다. 그때 미희의 손이 번쩍임과 동시에 두 자루 비도가 국과 죽의 가슴을 향해 날아온다. 서로의 거리가 가까고 순식간의 일이라 국과 죽이 비도를 보고 당황하는데 어디선가 검이 날아와 비도를 쳐낸다. 수영이 앞으로 나서며 비도를 쳐낸 것이다. 그녀는 비틀거리는 수혼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수혼도 수영이 앞으로 나서자 몸을 바로 하고 수영과 마주한다.

“다시 만났군. 자~ 우리도 한판 해야지.”

“안돼~ 그런 몸으로는 내 상대가 안돼.”

“무슨 소리야. 아직 쓰려지지 않아. 서로 최선을 다하기로 했잖아. 지금이 좋은 기회 아니야.”

“맞아. 지금이라면 힘들이지 않고 수혼씨를 제압할 수 있겠지. 그런데 옆에 지키고 있는 미희씨의 비도가 가만있겠어.”

“후후~ 미희가 무섭다는 말이군. 그래 거야.”

“또 사실 수혼씨가 쉽게 당할 상대도 아니잖아.”

그때 국과 죽이 앞으로 나서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원예님 미희는 저희가 상대하겠습니다. 이 기회에 천랑을 끝내버리세요.”

수영은 난감했다. 자신의 손으로 수혼을 어떻게 하라 말인가? 그를 죽이기라도 하란 말인가? 수영은 차마 수혼에게 검(劍)을 겨두지 못하고 자리를 피해버린다. 수영이 다른 곳으로 살아지자 국과 매도 수영을 따라 물러난다. 수혼은 수영이 자신을 피하자 그녀를 따라가려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제자리에 멈춘다.

“수혼씨.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우리 버스로 들어가요. 이러다 정말 쓰려져요.”

수혼은 말할 힘도 없어서 미희의 부축을 받으며 버스로 이동했다. 간간이 수혼의 앞을 막아서는 화랑들이 있었지만 미희의 비도는 길을 막아서는 화랑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수혼은 전장을 떠나 길가에 세워둔 버스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수혼은 버스에 도착하자 전화기를 찾았다. 미희가 수혼의 전화기를 찾아 전해주자 수혼은 길식에게 전화를 했다. 이제 싸움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230명의 별동대와 300명의 화랑들 중 현재까지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300여명이 넘지 않았다. 이미 성민파는 전멸(全滅)했고, 별동대와 화랑들 다수(多數)도 이미 쓰려진 상태다. 양쪽의 피해 상황을 보면 갈치파가 조금 심하다 그건 전적으로 미나와 링링 그리고 미희 때문이다. 미희가 준비한 비도에 최소한 100명 이상의 화랑들이 당했다. 그리고 미나의 면도와 링링의 검에 쓰려진 화랑의 숫자도 엄청났다. 거기에 비해 사군자와 수영에게 쓰려진 별동대의 수가 적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보세요. 천랑입니까?”

“기동대는 어떻게 됐죠.”

“현재 성산대교를 지나고 있다고 합니다. 5분 내에 현장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알았어요. 기동대에게 연락해서 현장으로 바로 밀고 들어오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참 그리고,..................”

“예~ 말씀하세요.”

“아닙니다. 돌아오시면 말씀드리죠.”

수혼은 전화를 끊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다시 일어나죠.”

“곧 기동대가 도착할거야. 나가봐야지.”

“그러다 정말 쓰려져요. 수혼씨 제발~”

“싸우겠다는 것이 아니야. 이제 싸움을 멈추게 해야 돼. 시간도 늦었고, 조금 있으면 경찰이 충동할 거야. 벌써 40분 정도 지났으니 누군가 신고했을 확률이 높아.”

“정말 싸우지 않는 거죠.”

“응~ 지휘만 할거야.”

수혼은 다시 싸움이 한창인 현장으로 이동했다. 이제 싸움도 서서히 끝날 때가 된 모양이다. 이 상태에서 기동대로 나머지 화랑들을 상대한다면 오늘 충동한 화랑들을 모두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약간 찔리는 것이 있었다. 호텔에서 수영이 물어봤을 때 자신은 별동대만 출동한다고 했다. 수영은 그 말을 믿고 300명의 화랑들만 충동시킨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몰라 기동대까지 출동시켰다. 아무리 계략(計略)과 음모(陰謀)가 판치는 세상이자만 그녀를 속인 것 같아 미안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자신과 천랑파를 위해 싸우고 있는 조직원들을 생각한다면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을 앞세울 수만은 없지 않는가? 수혼은 갈등하고 있었다. 마침 그때 기동대가 도착했다. 기동대를 태운 버스들은 한강에 도착하자 한번에 솟아져 나오더니 수혼이 신호를 보내자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수영은 갑자기 5대의 버스들이 도착하더니 천랑파의 기동대가 솟아져 나오자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자신들과 화랑들은 계속된 싸움으로 지친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천랑파의 기동대까지 싸움에 참여한다면 전멸(全滅)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기동대는 싸움에 참여하지 않고 한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수영이 보니 그곳에 수혼과 미희가 있었다. 수혼은 기동대를 한쪽으로 집합시키고 별동대에게 후퇴명령을 내렸다. 이미 많은 시간을 싸우느라 지쳐있던 천랑파의 별동대들도 수혼의 명령에 후퇴하자 화랑들도 분분히 뒤쪽으로 물러났다.

화랑들과 별동대가 물러난 자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쓰려져 있었고, 핏물이 자욱하게 번져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사람의 팔다리가 굴러다니고, 여기저기 신음하며 구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수혼은 전장을 살펴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수혼은 현장을 살펴보다가 오늘 싸움을 여기서 멈추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앞으로 나오니 상대편에서도 수영이 앞으로 나섰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이대로 물러나겠다는 거야.”

“더 이상의 싸움은 무리야. 어쩌면 지금 경찰들이 출동했을지 몰라. 이제 그만하기로 하자.”

“수혼씨는 우릴 전멸시킬 생각으로 기동대까지 충동시킨 모양인데..........왜~ 갑자기 마음이 변한 거지.”

그녀의 목소리에는 약간 떨리고 있었다. 아마도 수혼을 의심하는 모양이다. 현재 화랑들은 모두 지친상태다. 이 상황에서 기동대와 별동대의 공격을 받는다면 정말 전멸(全滅)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녀는 이번에도 수혼에게 속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천이 일산보다 멀다는 점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허점을 찌른 것이다. 별동대가 먼저 화랑과 싸우고, 나중에 기동대가 기습을 한다. 수혼은 혹시 이런 생각으로 자신에게 정보를 흘린 것은 아닐까?

“기동대는 만일의 사태에 준비하기 위해 출동시켰어. 그리고 오늘만 날이 아니잖아. 경찰이 충동했다면 우리 모두가 위험해.”

“정말 우릴 보내주겠다는 거야?”

“우린 오늘 성민파를 잡기위해 출동했고, 성민을 잡는데 성공했어. 물론 갈치파 화랑들까지 잡을 수 있다면 좋겠지. 하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고, 또............화랑들도 순순히 당하지만은 않겠지.............쩝~ 좀 전에 비슷한 말을 들을 것도 같은데..........하여튼 싸움을 이것으로 끝내”

“그 말이 진심이라면 우리도 물러나겠어.”

“좋아..................별동대는 버스에 탑승하고, 기동대는 장내를 정리해.”

수혼의 명령이 떨어지자 싸움에 지쳐있던 별동대는 버스로 이동하고 기동대는 장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수영은 정말 수혼이 후퇴를 명령하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졌다. 그는 정말 자신들을 놓아주는 것일까? 이런 기회가 흔하지 않지 않는가? 하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다. 이미 별동대는 후퇴했고, 기동대는 싸움은커녕 수혼의 명령대로 사상자(死傷者)를 수습(收拾)하고 있지 않는가? 수영도 화랑들에게 명령해 자파의 사상자를 수습하도록 명령했다. 어느 정도 장내가 정리되자 수혼은 수영을 보고 인사를 했다.

“갈께. 다음에 또 만나.”

“수........수혼씨.”

“왜~”

“..............많이 다친 것 같은데.............몸조리 잘해.”

“고마워~”

수혼은 수영을 뒤로하고 기동대 버스에 올랐다. 수영은 수혼의 뒷모습을 살펴보다가 수혼이 버스에 오르자 정신을 한숨을 쉬고는 서둘러 화랑들을 버스에 태우고 인천으로 출발했다.

천랑파와 갈치파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혼의 말대로 경찰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은 우연히 천랑파와 갈치파의 싸움을 목격한 사람들의 제보(提報)를 받고 출동했지만 이미 천랑파와 갈치파가 떠난 자리에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다만 일대에 진동하는 피비린내와 간간이 보이는 핏물자국만이 이곳에서 싸움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수혼은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미희의 품속에서 쓰려져 버렸다. 이미 한계상황에 왔던 수혼인지라 기장이 풀리며 기절해버린 것이다. 미희는 수혼을 편하게 눕혀주고 그의 상처을 지열시켜 주었다.

이렇게 제2차 3파 전쟁은 성민파의 몰락으로 일단락되었다. 이제 서울의 패권은 갈치파와 천랑파의 격돌(激突)에서 살아남는 자의 것이 될 것이다.

지나는 초조하게 수혼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나는 요코와 요키에 그리고 길식과 함께 있었다. 그녀는 요코와 길식을 통해 그동안 수혼의 행적(行蹟)에 대해 들었다. 지금까지 수혼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그리고 천랑파의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다. 지금도 그는 성민파와 갈치파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조금 전에 수혼에게 연락이 왔었다. 하지만 길식은 지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한참 싸움에 집중해야할 수혼에게 지나의 소식을 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나는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심정이었다. 요코는 그런 지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수혼씨는 무사히 돌아오세요.”

“예~..........미안해요. 저만 걱정하는 게 아니데. 그냥 우리가 현장으로 가면 안돼요.”

요코는 고개를 흔들었다. 지나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자신도 지금이라도 당장 수혼에게 달려가고 싶다. 하지만.........수혼을 믿기 때문에 그를 기다린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수혼을 그리워했던 지나의 심정은 다를 것이다. 그때 정문에서 연락이 왔다. 기동대와 별동대가 도착했다는 보고다. 지나는 누구보다 먼저 밖으로 달려갔다. 수혼을 빨리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택에 도착한 버스는 먼저 사상자(死傷者)들을 내려 임시로 만들어진 병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지나와 지나의 뒤를 따라온 부인들은 수혼을 찾았다. 하지만 수혼의 모습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때 한 버스에서 미희가 내리더니 길식을 찾았다. 길식이 미희에게 달려가 잠깐 이야기를 듣더니 길식이 버스 안으로 들어가 수혼을 안고 나왔다. 한번 정신을 잃은 수혼은 버스가 저택에 도착해도 깨어날 줄 몰랐고, 미희는 혼자 힘으로 수혼을 들 수 없자 길식을 찾은 것이다. 길식은 수혼을 안고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지나와 요코도 수혼을 발견하고 달려왔다.

길식은 일단 수혼을 5층으로 안고 갔고, 수혼을 따라 부인들도 모두 5층으로 올라갔다. 길식은 수혼을 침대에 눕히고 바로 의사를 불렸다. 뒤늦게 지나를 발견한 미희와 미나가 지나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지나씨..........지나씨 맞죠.”

“예~ 어떻게 된 거죠. 수혼씨 많이 다쳤어요.”

“다친 것 보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탈진(脫盡)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어디 있었어요. 우리들이 그동안 얼마나 찾았는지 아세요?”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죠. 수혼씨 정신 좀 차례보세요.”

“자니씨. 일단 치료부터 하고 수혼씨가 깨어날 때까지 우리 기다려요.”

“수혼씨 잘못되는 건 아니죠?”

“걱정하지 마세요. 지나씨도 왔으니 곧 깨어날 겁니다.”

수혼은 아침에 되어도 깨어날 줄 몰랐다. 수혼을 진찰한 의사는 특별한 내상은 없다고 했고, 상처만 치료하고 돌아갔다. 지나는 수혼의 곁을 지키기로 했다. 쌍둥이 자매와 요코는 지나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수혼의 곁을 지키도록 배려해 준 것이다. 그리고 자나에 대해 모르는 링링과 요키에에게 자나가 어떤 사람인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요키에는 자매의 설명을 듣고 아무 말도 없었지만 링링은 심통을 부렸다.

수혼이 눈을 뜬 것은 다음날 밤이 깊어서였다. 희미하게 눈을 뜬 수혼은 심한 갈증을 느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상처에서 전해오는 통증에 다시 침대에 쓰려진다. 그때 누군가 자신의 손을 잡아준다. 수혼은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미희의 품속에서 기절하기 전까지다.

“미희씨 물 좀........”

수혼은 상대방을 미희로 알았다. 자세히 만져보면 미희보다 손이 작다는 걸 알 수 있지만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수혼은 그걸 느낄 수 없었다. 상대방은 자신의 목에 손을 집어넣어 일으켜 세운다. 옆구리와 어깨에서 통증이 있었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다. 상대방은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물 컵을 들고 있었다. 배속에 시원한 물이 들어가니 정신이 조금 들었다.

“수혼씨 정신이 좀 들어.”

수혼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미희의 목소리는 아니다. 수혼은 물 컵을 치우고 상대를 바라본다. 서서히 눈에 초점이 잡히며 상대방의 얼굴이 또렷해진다. 오뚝한 콧날, 시원한 이목구비, 크고 맑게 빛나는 눈동자.............수혼은 고개를 흔들어보고 다시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수혼은 자신이 꿈을 꾼다고 생각했다. 꿈속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지나가 나타난 것으로 생각했다. 수혼은 손을 들어 지나의 뺨을 만져본다. 지나는 금세 눈이 촉촉해지며 눈물을 흘린다. 수혼은 자니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지나...........보고 싶었어. 이렇게 꿈속에서라도 만나니 좋다.”

“바보~...........꿈이 아니야. 만져보고도 몰라.”

“정말...............정말 꿈이 아니야.”

“그래 바보야. 잘 봐~”

수혼은 양손을 들어 지나의 얼굴을 감싸본다. 그녀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수혼의 눈동자도 흔들리더니 ‘와락’ 그녀를 안아본다. 지나는 수혼의 품에 안겨 그을 감싸준다.

“지나야. 보고 싶었어. 어디 있었던 거야. 그동안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나도 수혼씨 보고 싶었어. 수혼씨 사랑해”

“사랑해 지나야. 어디 보자”

수혼은 다시 지나를 때어내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다시 봐도 지나가 확실하다. 수혼은 지나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준다. 그녀가 계속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울지 마. 왜 울어 바보야.”

“미안.........자꾸 눈물이 나네..................수혼씨 배고프겠다. 잠깐만........내가 나가서 준비할게”

“참~ 여긴 어디지.”

“바보~ 수혼씨 집이야. 하나도 기억 안나.”

“글쎄. 미희씨와 같은 버스에 탄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수혼씨 20시간이상 잠만 자다가 지금 깨어난 거야. 배고프지 내가 미음이라도 준비해 올게.”

지나가 밖으로 나가려하자 수혼은 지나의 손을 잡았다. 지나는 손이 잡히자 수혼을 돌아보는데 수혼이 힘을 주고 잡아당기니 그의 품속으로 쓰려진다. 수혼은 품에 안긴 지나의 얼굴을 들더니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한다. 지나는 수혼의 공격(?)이 싫지 않은 듯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매달린다. 수혼의 혀가 지나의 입술을 비집고 들어가자 지나도 그의 혀를 받아들이고............두 사람의 혀가 엉키며 키스가 이어진다.

그때 문이 열리며 요코가 들어오고 있었다. 지나는 깜짝 놀라 수혼의 가슴을 밀어버리니 수혼은 힘없이 뒤로 넘어간다. 지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입술을 닦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요코는 “킥킥”거리며 웃는다.

“수혼씨 깨어났어요. 제가 두 분의 재회를 방해한 모양이네요?”

“아니에요. 다른 분들은 일어났어요?”

“예, 미나, 미희 언니는 오전에 일어났고, 링링는 아침부터 일어나서 체육관에서 운동하고 있어요.”

“아이고 아파라. 병자를 이렇게 험하게 다르면 어떻게............”

수혼이 엄살을 피우며 자리에서 일어나니 지나와 요코가 수혼에게 달려온다.

“아니야. 괜찮아. 요코 나 배고파.”

“호호호~ 알았어요. 식사는 제가 준비하죠. 두 분이서 못다 한(?) 재회의 시간을 보내세요.”

요코가 밖으로 나가자 수혼은 다시 지나의 손을 잡고 끌어당기니 지나는 못이기는 척하며 수혼의 옆에 앉는다. 수혼은 지나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머리칼을 만져본다. 수혼은 여자들의 머리칼을 만지면 장난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떻게 된 거야. 그동안 아무리 찾아도 없더니...............어디 있었던 거야?”

“사부님과 강원도에 있었어.”

“사부님? 지나가 언제 사문이 있었던가?”

“바보~ 수혼씨 사부님하고 수혼씨가 살던 집을 말하는 거야.”

“무슨 소리야. 사부님과 내가 살던 집이라니?”

“이야기가 길어. 우리 밥부터 먹고 이야기해. 나도 수혼씨 때문에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 먹고 있었어.”

“뭐야~ 지나도 지금까지 굶었단 말이야.”

“응~ 수혼씨가 걱정돼서............”

수혼은 와락 지나를 안아준다. 지나는 수혼의 품에서 빠져나온다.

“우리 나가.”

수혼과 지나는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와 식당으로 가니 요코와 요키에가 식사준비를 마치고 수혼과 지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나와 수혼은 다정하게 앉아 식사를 했다. 수혼은 옆구리와 어깨를 다쳤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상처가 큰 건 아니다. 다만 과다한 출혈로 인해 장시간 기절했던 것이다.

법암은 성민을 안고 성철을 찾아갔다. 성철은 두 다리가 잘린 성민의 모습을 보고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 한쪽 팔이 자리고, 양쪽 다리가 잘려 이젠 몸뚱이와 한 팔만 남은 성민은 인간 같지 않았다. 그나마 법암이 급하게 지혈(止血)을 했기에 생명에는 지장 없었다. 만일 시간이 조금만 지났어도 성민은 죽었을 것이다.

“어떻게 된 거죠. 성민이가 어쩌다가?”

“혼전(混戰) 중에 상대방에게 당한 모양입니다. 그나마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이게...........스님께 부탁하지 않았습니까? 성민을 지켜달라고...........성민아~, 성민아~”

“지금은 과다할 출혈과 충격으로 기절한 상태입니다. 깨우지 마세요.”

성철은 불구가 되어 돌아온 성민을 안고 통곡(慟哭)을 했다. 자신의 두 아들중 하나는 죽고 이제 마지막 남은 성민마저 불구가 되었으니 어찌 서럽지 않겠는가? 자신이 성민을 말려야 했다. 성민이 다시 밤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말려야 했다. 그를 아끼고 사랑했다면 그를 말려야 했다. 성철은 성민이 이렇게 된 것이 꼭 자신의 책임만 같았다. 자신이 성민을 바른길로 인도하지 못해 성민이 이렇게 된 것 같았다. 법암은 성철부자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하고 산을 내려왔지만 자신의 감정에 빠져 성민을 지켜주지 못했다. 한참을 서럽게 울던 성철이 조금은 진정이 되는지 울음을 멈추었다. 주름진 성철의 얼굴이 한없이 처량해 보인다.

“그나마 스님이 계셨기에 성민이 살아서 돌아왔겠죠.”

“성민을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스님도 최선을 다하셨겠죠. 휴~...........스님 저희들 같은 놈들도 불가(佛家)에 귀의(歸依)할 수 있는지요?”

“..................누구나 가능합니다. 저 같은 놈도 불가에 의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요........................그럼 떠나야겠군요.”

“어디로 가시려 하십니까?”

“조용한 곳으로 가서 여생(餘生)이나마 이놈을 위해 보내려 합니다.”

성철은 합장을 하자 성철도 합장을 하고 성민을 안고 일어난다.

“참~ 이제 스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희들의 인연(人煙)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다시 송광사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저도 아직 속세의 연을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속세에 남겨두고 온 번뇌(煩惱)를 씻어내려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성불(成佛)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다음에 다시 연이 있으면 만나 뵙죠.”

성철은 성민을 안고 서울을 떠났다. 과거의 영광도 모두 잊고, 원한(怨恨)도 모두 버렸다. 이제 여생(餘生)이나마 불구가 된 성민과 불가(佛家)에 귀의(歸依)하여 성민을 보살피며 살려한다. 법암은 떠나가는 부자(夫子)를 바라보다 자신도 길을 나선다.

수혼과 지나가 식사를 마치자 부인들이 모두 수혼의 방으로 모여들었다. 지나는 들어온 여인들을 하나하나와 인사를 했다. 수혼은 지나의 표정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지나가 실종되기 전 쌍둥이 자매와 요코는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링링과 요키에까지 있지 않았는가? 모두 서로 인사가 끝나자 수혼을 중심으로 자리에 앉는다. 미나, 미희, 요코, 요키에, 링링 그리고 지나까지 도합 여섯 명의 여인이다.

“수혼씨 어떻게 이럴 수 있죠............내가 원할 때는 죽어도 싫다고 하더니..........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보시죠. 조 수혼씨”

지나가 따지듯 물어오자 수혼은 안절부절 못한다. 자신이 지은 죄가 있어 할말이 없는 것이다. 지나는 힘들게 하고, 다른 여자들은 덥석덥석(?) 받아들였으니 자나에게 혼나는 것은 당연했다.

“호호호~ 너무 몰아붙이지 마세요. 수혼씨에게도 그만한 사정이 있었어요.”

“흥~ 사정? 무슨 사정 있죠. 요키에씨나 링링씨도 수혼씨가 없으면 죽겠다고 했나보죠?”

“그........그게 말이야. 하~ 이걸 어떻게 이야기해야 해~”

“킥킥킥~ 아저씨도 꼼짝 못하는 사람이 있구나. 지나언니 파이팅~ 아저씨 좀 혼내주세요.”

“야~ 링링~ 내가 혼나는 이유 중에 너도 끼여 있어. 허유~ 이걸 뭐라고 해야 해~”

링링은 혀를 내밀더니 고개를 돌려버린다. 수혼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쌍둥이자매을 향해 불쌍한 표정으로 있자 쌍둥이자매는 피식 웃는다. 미희는 수혼의 탁한 사정을 생각해서 화제를 딴 곳으로 돌렸다.

“그동안 어디 있었어요. 우리가 지나씨 찾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요?”

“옛날에 수혼씨가 살던 곳에서 사부님과 함께 있었어요?”

“사부님?............지나씨도 무슨 문파가 있었던가요?”

“예~ 음양도문의 제자가 됐어요. 수혼씨의 사매가 된 거죠.”

“이제 이야기 좀 해봐~ 그래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말해죠?”

수혼도 궁금했던 점이라 지나에게 물어본다. 지나는 자신이 집에서 사방신에게 납치당하는 것을 사부님이 우연히 발견하고 구해준 이야기, 수혼이 살던 집에서 도착해서 사부님의 제자가 된 이야기, 그곳에서 음양검법의 음검을 익힌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마지막 부탁에 대해 말해주었다. 수혼을 포함한 부인들은 지나의 이야기에 빠져 한참을 듣고 있었다. 수혼은 지나로부터 사부님이 살아계시고, 지나에게 음검을 전수(傳受)했다는 말에 작은 충격을 받았지만 나중에 법암이 자신의 친아버지라는 말을 듣고는 기절할 지경 이였다.

“뭐야.........그.......그분이 나의 아버지?”

“응~ 사부님이 말씀하셨어. 그분은 음양도의 전대 전승자로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사문에서 파문당하고 불가(佛家)에 귀의(歸依)하셨다고 했어.”

“허~ 말도 안돼. 그분이 아버지라니...............”

“수혼씨는 벌써 그분을 만났어.”

수혼이 말을 하지 못하자고 멍하니 있자, 현장에 있었던 미희가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지나는 수혼을 다치게 한 사람이 법암(수혼의 아버지)임을 알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 이였다. 지나뿐만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법암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친아들과 사생결단 식으로 대결할 수 있단 말인가? 만일 잘못했으면 수혼은 죽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이럴 진데 당사자인 수혼의 심정은 오죽하겠는가? 수혼은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라는 존재를 받아들이기도 힘들지만 더욱이 그가 자신과 생사(生死)를 걸고 싸우던 상대라는 데는 할말을 잃고 말았다.

“수혼씨.........아버님도 무슨 사연이 있었을 거야. 그런데 사부님도 끝내 무슨 사연인지는 말씀해주지 않으셨어. 아마 수혼씨가 스스로 밝혀내길 바라고 계신 모양이야...........그리고 아직 못한 이야기가 있는데..........잠시만 기다려.”

지나는 밖으로 나가더니 잠시 후 손에 보자기를 들고 들어왔다. 그녀는 보자기를 수혼에게 내밀었다. 수혼은 생각에 빠져 있다가 지나가 내미는 보자기를 받았다.

“이게 뭐야.”

“천마월영검(天馬月影劍)이라고 불리는 검이야. 사부님 말씀으로는 원예문의 상징이라고 하셨어.”

“월예문의 상징............”

수혼은 지나가 내민 보자기를 풀어보니 그곳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검이 나왔다. 검집에는 천마(天馬)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형상이 양각되어 있었고 손잡이나 다른 부분도 아름답게 장식된 명검(名劍)이였다. 수혼은 천마월영(天馬月影)검을 보자 법암이 자신에게 남긴 검이 생각났다.

“미희씨 혹시 내가 지니고 있던 검 못 봤어.”

“아~ 잠시만 기다리세요.”

미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더니 한 자루 검을 가져왔다. 바로 법암이 수혼에게 남긴 봉황(鳳凰)검이다. 두 자루 검이 탁자위에 올려진다. 봉황(鳳凰)검은 천마월영검처럼 검집에 화려한 봉황이 양각되어 있었다. 수혼은 봉황검이 자신에게 들어온 경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수혼씨 혹시 이검이 봉황(鳳凰)검이 아닐까?”

“봉황검(鳳凰劍)? 그게 뭐지.”

“사부님이 말씀하셨어. 수혼씨 아버님이 파문당할 때 사문의 상징인 봉황검을 지니고 가셨다고 했어...........혹시 이번에 아버님이 일부러 수혼씨에게 남긴 것은 아닐까?”

“봉황(鳳凰)검이 음양도문의 상징이라고.........그걸 아버님이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원예문의 상징인 천마월영(天馬月影)검 사부님이 지니고 있었다? 천마월영검은 어떻게 사부님의 수중에 들어간 거지. 그리고 왜 이걸 내게 전해주는 거야.”

“그건 전대.......그러니까 아버님이 전대 원예도 계승자와의 대결에서 승리해서 사부님이 지니고 계셨다고 하셨어. 나도 잘 모르겠지만 원예도문과 음양도문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문파가 다음 대결까지 상대방 문파의 상징을 소유하는 것 같아. 그리고 사부님이 왜 천마월영검을 수혼씨에게 전한건지 나도 모르겠어. 사부님은 그냥 수혼씨에게 전해주라고만 하셨어.”

“막말로 내가 이걸로 엿을 바꿔 먹어도 상관없다는 말이야.”

“설마 정말로 엿 바꿔 먹겠다는 소리는 아니지. 하여튼 봉황검과 천마월영검이 모두 수혼씨의 수중으로 들어왔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그걸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참~ 하나는 원예문의 상징이고, 하나는 음양문의 상징이라........이게 동시에 내가 들어왔다. 참~ 이걸 날보고 어쩌라는 거야. 난 아버지라는 존재를 생각하는 것만도 머리가 터져버릴 지경이야.”

“사부님이나 아버님도 생각이 있으니 수혼씨게 전했겠지. 그건 그렇고.........”

“또 할말이 있어.”

“음~~ 그게...........휴~ 이걸 어떻게 말해야하지. 그러니까 사부님이 내가 음양검법의 음검(陰劍)을 익히지 못한 관계로 수혼씨에게 특별한 방법으로 음검을 전하셨어.”

“빌어먹을 사부..........그냥 나타나서 알려주면 되지 특별한 방법은 무슨.........”

수혼은 지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짜증을 낸다. 사부나 아버지라는 범암이나 자신에게만 짐을 지우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나의 말이 사실이라면 사부는 지금까지 자신을 우롱(愚弄)하고 있는 것이다. 표현이 과격하지만 사실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음검도 자신이 나타나 알려주면 그만이다. 그런데 무슨 특별한 방법으로 알려주었단 말인가? 수혼은 머릿속이 복잡하고 짜증이 나니 옛날 말투가 나온다.

“수혼씨! 사부님 욕하지 마.........사부님은 수혼씨의 할아버지가 되시잖아.”

“뭐~ 사부가 할아버지?............이놈의 영감탱이 정말~ ”

수혼은 사부 생각나서 옛날 말투가 나오는 건지, 아니면 마음이 격해져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사부을 향해 막말을 했다. 사실 수혼은 지금까지 사부가 자신의 할아버지란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사부는 그동안 자신에게 한마디 말도 없다가 이제야 지나를 통해 그런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도대체 사부의 숨은 뜻을 모르겠다.

“하여튼 만나기만 해봐~ 수염을 몽땅 뽑아버리지 않음 내가 사람이 아니다.”

“수.......수혼씨. 갑자기 말투가 옛날로 돌아간 것 같다.”

“성질이 나서 그래. 그건 그렇고 어떤 방법으로 남긴 거야. 뭐~ 그림이라도 한 장 가져왔어.”

“응~ 비.......슷해. 어떻게 알았어.”

“휴~ 특별한 방법이라고 하니까 생각난 거야. 그래 뭔데 시원하게 말해봐~”

“무........문신을 하셨어. 음양검법은 음양도문의 비전(秘傳)이기 때문에 밖으로 유출되면 안 된다고 하셨거든.”

수혼은 지나의 말뜻을 대충 알아들었다. 사부는 아마 그녀의 몸에 문신을 한 모양이다.

“꽝~~~~”

수혼의 주먹이 앞에 있던 탁자를 내리쳤다. 지나를 비롯한 부인들은 수혼의 반응에 깜짝 놀란다. 수혼은 씩씩거리더니 지나를 노려본다. 지나는 자신이 지은 죄도 없는데 수혼의 태도에 주눅이 들었다.

“수혼씨 갑자기 왜 그래.”

“그래서.........그래서 사부가 지나 몸에 문신을 했단 말이야. 어디 봐~ 도대체 어디에 무슨 문신을 한거야. 이런 쌍~”

수혼은 사부가 사랑하는 지나의 몸에 문신을 했다는 사실에 엄청 열이 받는다. 그냥 그림으로 전해주면 될 것을 지나 몸에 문신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지나는 수혼이 당장 보자고하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사부는 자신의 등에 문신을 했고,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옷을 벗어야하지 않는가? 지나는 곧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변한다.

“수혼씨.......그게.........여기서는 좀 곤란해.”

“허허~ 참~ 고악한 늙탱이.........도대체 어디에 문신을 한 거야.”

“드..........등에 했어. 그리고 사부님이 수혼씨에게만 보여주라고 했단 말이야. 참~ 이게 문신이 아니라 퍼머넌트라고 했어 사부님 말씀으로는 5~6년 지나면 자연스럽게 지워진데.”

“뭐~ 퍼머넌트?.........그게 뭐야~”

그때 요코가 문신과 퍼머넌트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수혼은 요코의 설명은 듣고서도 분이 안 풀리는 모양이다. 수혼이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는 아무리 음양검법의 음검이 음양도문의 비전이라 하더라도 그에겐 지나가 더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몸에 문신을 하다니........지나가 얼마나 아파겠는가? 그걸 생각하니 화가 나는 것이다. 사실 수혼도 사부가 지나 몸에 문신을 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음양검법의 완성된 모습은 음양합벽이다. 양검을 익힌 남자와 음검을 익힌 여자가 음양합벽을 해야 전정한 위력이 발휘된다. 그리고 완벽한 음양합벽이 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전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사부는 자신에게 지나를 취하라는 말을 그런 방식으로 한 것이리라.

“연병~ 내가 꼭두각시야. 시키지 않아도 해. 빌어먹을 사부.......으~아~ 성절이네 정말~”

“수........수혼씨 무슨 말이야.”

“휴~ 흥분하니까 별소리가 다 나오네. 하여튼 할아버지라는 사부나, 아버지라는 스님이나.........도대체 날보고 어쩌라는 거야. 천마월영검이나 봉황검을 던져주면 내가 고마워 할줄 아나 보지. 음검을 던져 주면 좋아라~ 날뛸지 알았나 보지.”

수혼의 반응에 모두들 말이 없었다. 사부가 친할아버지였다는 사실, 자신을 공격했던 법암이 친아버지라는 사실, 원예도문의 상징이라는 천마월영검과 음양문도의 상징인 봉황검, 지나가 익힌 음검의 진실. 이 모든 일들이 엉키며 수혼이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미희가 안 되겠다 싶은지 수혼을 달린다.

“수혼씨. 차분히 생각하세요.”

“그래.........하나하나 풀어보면 알겠지.”

그때 지나가 다시 사부 이야기를 했다.

“사부님은 수혼씨를 믿는다고 했어.”

“믿긴 뭘 믿어? 무슨 단서라도 있어야 해결하지. 그래 법암이 너 아버지다. 이검이 원예문의 상징이다. 지나에게 음검을 남겼다. 이걸 가지고 날보고 어쩌라는 거야. 아버지라는 사람도 그래. 봉황검을 내게 준걸 보면 내가 아들이란 걸 알고 있다는 건데. 날 못 죽어서 안달이고.................이게 무슨 콩가루 집안도 아니고 말이야. 정말 그 사람이 아버지가 맞기는 맞는 거야...........빌어먹을~..............20년 넘게 할아버지, 아버지란 존재 없이도 잘만 살았어. 그리고 말이야. 말을 해주려면 끝까지 해주던지...........아버지는 그 사람이고, 어머니는 또 누구야. 그리고 부모라는 인간들은 왜 날 버리고 사부가 날 키운 거야. 이런 모든 문제를 날보고 해결하라고........우씨~ 정말~...................와~ 미치겠다. 정말~”

“수혼씨..........미안해. 내가 괜히 왔나봐~”

“....................넌 또 무슨 말이야.”

“내가 와서 수혼씨가 복잡해졌잖아. 그냥 모르고 있었으면 편했을 걸”

“네게 화내는 게 아니야.......... 휴~ 미안해. 그래 정신 좀 차리자.”

수혼은 말이 끝나자 눈을 감았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해보기 위해서다. 부인들도 지나의 말을 들었다. 그녀들도 수혼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갑자기 아버지라는 존재가 나타났다. 이것만 가지고도 혼란스러운데 수혼의 앞에 놓인 문제는 그것뿐만 아니지 않는가? 한참을 생각하던 수혼은 다시 눈을 뜬다.

“일단 개인적인 일은 나중에 처리하자. 당장은 어제 대결에 대해 정리하고 성민파를 완전히 끝내야 해. 그리고 갈치파............그리고 보니 갈치파는 원예도문의 다른 모습 아닌가? 내게 원예도문의 상징을 가지고 있으니까 어떻게 되는 거야. 와~ 또 복잡해 지내. 그래........그래 천마월영검은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했지. 이건 주인에게 돌려주면 되겠군. 그리고 음검은 익히면 되겠고............음검을 익히려면 문신을 봐야하는데.............모두 무슨 생각들 없어. 나 혼자 정리하려니 잘 안된다.”

그때 요키에가 요코의 귀에 뭐라고 했다. 요키에는 요즘 들어서 대충 한국어를 알아들을 정도는 된다.

“저기 요키에가 그러는데요. 일단 음양검법을 완성하시래요. 요키에 생각에는 수혼씨 아버님도 음양검법에 대해 다그치듯 물으셨고..........사부님이 지나씨를 급하게 보낸 것만 보아도 수혼씨에게 음양검법을 완성하라는 의미 같다고 하네요.......그러니까 음양검법을 완성하는 것이 순서인 것 같다는 말이죠.”

“음양검법을 완성해라. 음양합벽인 음양검법을 혼자 익혀라. 그만큼 음양검법의 완성이 중요하다. 휴~ ..........그래. 좋아. 머리 복잡하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그래요. 수혼씨........지금 밤이니까 일단 주무시고 내일 다시 생각해요. 참~ 음양검법의 완성을 위해서는 그림을 봐야죠. 쩝~ 음양검법이 음양도문의 비전이라고 하니 다른 사람이 볼 수도 없고........한동안은 두 분이서 주무셔야겠네요.”

요코의 말에 지나의 얼굴을 붉게 달아올랐다. 쌍둥이 자매는 빙그레 웃는다. 그들은 수혼과 지나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다. 그들이 드디어 합쳐지는 모양이다.

ps : 많이 복잡하시죠. 저도 복잡하네요. 다음 이야기는 지나와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어쩌면 길게 서술될지 몰라요. 지나는 주인공이니 한 20장 정도를 할애에도 아깝지 않겠죠. 쩝~................단지........제 필력으로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군요.

제  목: 낭만을 꿈꾸는 늑대 (103부 )음검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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