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꿈꾸는 늑대 81부
쌍둥이 자매는 요코와 함께 음식준비를 하다 체육관에서 들리는 함성을 듣고 뒤늦게 체육관으로 왔다. 그녀들은 수혼과 사방신이 왜 대결을 펼치고 있으며, 지금까지의 상황에 대해 길식으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요코는 당장이라도 수혼을 말리고 싶었다. 그의 도복은 허리에서부터 붉게 물들어 있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검에 의지해 힘들게 버티고 서 있었다. 그 상태에서 더 이상의 대결은 자살행위 같았다. 요코는 수혼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아 당장 수혼에게 달려가려는데 쌍둥이 자매가 요코를 붙잡았다. 요코는 쌍둥이자매를 보니 그녀들의 얼굴근육들이 심하게 경련하고 있고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우리가 끼어들 문제가 아니야.”
“어.........언니. 말려야 해요. 수혼씨가..........수혼씨가 죽으면...........”
“우리도 알아. 수혼씨 위험해. 그래도 우리가 끼어들면 안돼. 그냥.........수혼씨를 믿어보자.”
“왜 안 된다는 거죠. 왜~”
“수혼씨 사문에 대한 일이야. 수혼씨는 음양도의 전인으로써 이 대결을 펼치고 있어. 우리가 말리면............수혼씨 사문을 욕보이는 거야. 그러니까.........요코도 참아야 해.”
쌍둥이 자매는 링링과 요코를 자리에 앉도록 했다. 링링은 멍하니 수혼과 현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네 명의 여인들 중에 링링이 가장 힘들 것이다. 한쪽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고 한쪽은 자신의 가족 같은 사형이니 누가 승리한들 링링의 가슴은 찢어질 것이다. 이미 세 명의 사형이 사경(死境)을 헤매고 있다. 수혼이 죽는다면, 사형이 죽는다면, 생각만 해도 하늘이 무너질 것 같다. 링링이 바라는 것이 있다면 둘 다 무사히 이 대결이 끝나기만을 빌 뿐이다. 둘 중 하나라도 잘못되면 자신은 죽고 싶을 것이다. 그녀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려고 있었지만 수혼과 현무에게 시선을 피하지 않고 고정하고 있었다.
수혼은 몸에 힘이 빠지고 눈앞에 흐려진다. 옆구리에서는 피가 멈추지 않고 흘려내려 하얀 도복이 붉게 물들었다. 시간을 끌면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지만.........자신이 먼저 공격할 힘은 없었다. 수혼은 상대를 노려보며 검을 지지대 삼아 힘들게 버티고 있었다.
현무는 검을 뽑아 검집을 던져버리고 수혼 앞에 섰다. 청룡이 허망하게 당하고, 백호도 당했다. 믿었던 주작마저 쓰려진 지금 사방신 중에서 자신만 남았다. 처음부터 사방신 중에서 자신이 먼저 나섰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다. 체면을 생각지 않고, 처음부터 수혼을 인정하고 일대 다수로 상대했다면 이런 결과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은 자신들의 사부가 친구로 사귀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사부님의 친구.........사부님은 친구를 함부로 사귀지 않는다...........지금 눈앞에 있는 상대는 사부님이 친구로 인정할 정도로 놀라운 무공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부님은 이 친구에게 하나밖에 없는 양녀(養女)를 맡기고 자신들을 만나 중국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현무는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 하지만 지금은 승부에 집중해야 한다.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고, 자신은 최선을 다해 국선도문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 현무는 잡념(雜念)을 떨쳐버리고 검에 집중했다.
두 사람의 지루한 대치가 계속되었다. 현무도 수혼도 움직임이 없었다. 수혼은 희미한 눈으로 현무를 바라보고 있었고, 현무는 번득이는 눈으로 수혼을 바라본다. 현무가 보기에 수혼은 곧이라도 쓰려질 것처럼 위태롭게 보인다. 하지만 자신이 공격하면 그의 검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현무의 이마에서 땀이 한 방울 떨어져 내린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수혼이 기력을 회복할 것이다. 이젠 결정해야 한다. 현무의 다리가 바닥에 끌리더니 빗살처럼 수혼에게 솟아진다. 현무의 검은 그의 어깨에서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다 수혼의 곁에 와서 번쩍이는 빛을 토해낸다. 빛은 수혼의 몸을 횡으로 그어간다. 변화를 배제하고 간략하고 힘찬 공격이다. 밑으로 쳐져있던 수혼의 검이 반원을 그리며 올려와 현무의 검을 쳐낸다.
“짱~~~”
“음~~~”
수혼은 현무의 힘에 밀려 뒤로 밀려난다. 현무의 검은 멈추지 않고 폭풍처럼 수혼을 밀어붙인다. 현무의 검이 수혼의 목을 놀려고 찔려오고, 수혼은 칠성밟기를 실천한다. 검이 수혼의 목을 쓰치고 지나며 공기의 파공 때문에 수혼의 목에 긴 혈선(血線)을 만든다. 검이 방향을 선회하며 수혼의 허리를 베어오고 수혼의 검은 현무의 검을 막는다.
“쨍~~~~.............찌~이~~~익~~~”
검과 검이 끌리더니 수혼이 뒤뚱거리며 물러나고, 수혼이 물러남과 동시에 현무의 검이 길게 직선으로 검영(劍影)을 만들며 수혼의 중주혈(아랫배에 있는 혈도)을 향해 날아온다. 수혼은 무의식적으로 현무의 검을 상대하고 있었다. 이미 정신은 혼미(昏迷)하고 현무의 모습은 흐리게 보인다. 수혼이 지금까지 현무를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수련(修練)의 결과다. 수혼의 몸을 이루는 세포들이 스스로 위험을 감지하고 수혼의 의식과는 상관없이 그의 몸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수혼의 검이 가슴에서 방글 돌아가며 현무의 검을 쳐내고, 현무의 검은 수혼의 허리를 지나며 도복을 길게 베어버린다.
쌍둥이자매는 손을 땀을 쥐며 수혼을 보고 있었다. 수혼은 곧이라도 쓰려질 것 같았다. 현무의 검이 곧이라도 수혼을 베어버릴 것 같았다. 미희는 몇 번이나 귀에 있는 월아를 잡아본다. 월아는 월아문의 상징이자 사랑하는 임에게 주는 사랑의 정표다. 수혼이 잘못된다면...........현무도 무사하긴 힘들 것이다. 미나의 오른팔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면도가 곧이라도 빛을 뿌릴 것 같다. 요코는 수혼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예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링링은 이제 눈물도 흘리지 않는다. 그녀는 차가운 이성으로 수혼과 현무를 바라본다. 울어봐야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녀는 쌍둥이자매의 표정을 보았다. 수혼이 잘못되면.........현무사형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링링은 수혼이 당하는 것도 현무사형이 당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현무의 검이 좌우로 베어지며 수혼의 가슴을 파고든다. 수혼은 피할 공간이 없자 뒤쪽으로 빠르게 물러난다. 현무의 몸이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더니 수혼에게 떨어져 내리며 수혼의 정수리를 노린다.
“쉬이~~익~~~”
현무의 검은 공기를 찢어버리며 수혼의 정수리로 향한다. 일격필살(一擊必殺)의 한수로 검은 유성처럼 길게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현무의 검은 차가운 빛을 발산하며 떨어지고, 수혼의 허리가 뒤로 휘어지며 수혼의 검이 힘없이 올라간다.
“깡~~~짱~~”
현무의 검에 수혼의 검에 부디 치자 허공에 불꽃이 튀고 수혼의 몸이 뒤쪽으로 밀려난다. 수혼이 밟고 지나간 바닥의 나무들이 부셔져 나가며 파편이 튀어 오른다. 현무는 수혼이 이화접목(梨花椄木)의 수로 힘 다른 곳으로 분출(噴出)해 버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물려나는 수혼을 따라가며 수혼의 목을 노린다. 수혼은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이젠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다. 의식도 흐려지고 있다. 수혼의 몸이 바닥을 구르고 현무의 검은 나무 바닥을 길게 베어버린다.
쌍둥이 자매는 대결을 중지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혼의 상태는 한계점에 다가왔다. 곧이라도 현무의 검이 수혼을 베어버릴 기세다. 쌍둥이 자매는 자리에 앉아있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미희는 손에 월아를 들고 있었다. 월아는 곧이라도 현무의 심장을 향해 날아갈 기세다. 미나의 팔에 감겨있던 면도도 하얀 혓바닥을 드려내고 있었다. 수혼은 그녀들에게 삶의 희망이며 삶의 전부다. 수혼이 죽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 아니 수혼이 죽는다면 사방신을 모두 베어버리고 자신들도 수혼을 따라 갈 것이다. 링링도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탁탁하게 굳어 있었다.
수혼은 바닥을 구르고 힘들게 일어났고, 뒤따라온 현무의 검이 수혼을 향해 날아든다. 현무의 검은 철저하게 수혼의 목만 노리고 있었다. 수혼의 허리가 휘어지고 현무의 검이 수혼의 머리를 스치며 머리카락이 베어진다. 수혼은 허리를 펴고 손에 들린 검이 현무를 향한다. 하지만 검은 힘이 없고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현무는 가볍게 수혼의 검을 피하고 직선으로 수혹의 자궁혈(목에 있는 혈도)를 노리고 파고든다. 수혼은 과다할 출혈(出血)과 심신의 피로(疲勞)로 인해 현무의 검을 피해보지만 검은 수혼의 목에 길게 상처를 남기고 지나간다. 현무는 검을 회수하며 가로로 수혼의 목을 베어간다.
수혼은 목에서 피가 튀며 정신이 맑아진다. 현무의 검이 느리게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현무의 검은 한없이 느리게 보인다. 자신도 손에 들린 검으로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조차 남지 않았다. 그때 멀리서 미희의 손이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그녀는 손에 반짝이는 월아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서 지켜보던 링링이 한 마리 학처럼 공중으로 솟아올라 자신에게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링링이 몸이 날린 것이 조금 더 빠르다. 월아가 미희의 손을 떠나고, 월아는 주위 공기를 휘감아 돌며 현무의 심장을 향해 날아온다. 수혼은 그 모든 상황이 느리게만 느껴진다. 링링은 바로 자신과 현무의 중간으로 떨어진다. 아마도 현무의 검은 자신의 목에 다다르기 전에 링링의 목을 먼저 베어버릴 것이다. 또한 링링을 따라오는 월아는 현무의 심장을 박살낼 것이다. 수혼은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자신이 알고 있는 음양도검법으로는 이 상황을 타계할 방법이 없다. 그때 손에 들린 검이 흐르는 물처럼 앞으로 나가며 현무의 검을 향해 날아간다.
현무도 떨어지는 링링을 느낌으로 알았다. 하지만 이미 출수된 초식을 회수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링링이 자신과 수혼의 사이에 떨어지고 검은 링링의 목을 향해 날아간다. 그때 링링은 중간에 착지하자마자 수혼을 감싸간다. 그때 링링의 가슴을 향해 수혼의 검이 날아오더니 검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링링의 어깨를 지나 현무의 검을 쳐내버린다. 현무는 자신의 검이 거대할 물줄기에 강타당한 것처럼 힘없이 옆으로 쳐지고, 수혼의 검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심장을 향해 날아온다. 수혼을 검을 피할만한 시간도 공간도 없다. 현무는 이것이 끝이라 생각하며 자신의 심장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보고 있었다. 그때 수혼의 검은 다시 자신의 가슴에서 미끄러지듯 날아가고 허공에서 맑은 금속음이 들린다. 링링은 수혼의 목을 감고 쓰려지고, 두개의 월아 중 하나는 현무를 스쳐 지나가고 나머지 하나는 방향을 틀어 링링의 어깨를 향해 날아온다.
“퍽~~~~”
“음~~~~”
월아는 링링의 여린 어깨를 사정없이 파고들고 수혼과 링링은 바닥에 쓰려졌다. 현무의 검은 나무 바닥에 박혀 부르르~ 떨고 있었고 그는 멍하니 수혼과 링링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혼은 링링의 밑에 깔려 기절해 버린 모양이다.
“아저씨........아저씨”
링링은 어깨의 통증도 잊고 수혼을 흔들어보다 그가 반응이 없자 수혼의 가슴에 고개를 숙여 본다. 그때 멀리서 쌍둥이 자매가 수혼에게 달려오고 미나의 면도가 뱀처럼 휘어지며 현무의 목을 감아버린다. 현무는 면도가 자신의 목을 감아도 움직일 줄 모르고 멍하니 있었다. 아마 미나가 조금만 힘을 주어도 현무의 목은 몸통에서 분리될 것이다. 현무도 그걸 알고 있었다.
링링은 수혼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망설임 없이 수혼의 가슴을 몇 번 손으로 자극하더니 수혼의 고개를 젖히고 입술을 맞춘다. 쌍둥이자매는 초조하게 수혼과 링링을 보고 있었다. 링링은 수혼의 몸을 주무르며 인공호흡을 멈추지 않았다.
잠시 후 수혼이 기침을 하며 의식이 돌아왔다. 수혼은 힘들게 눈꺼풀을 들어보니 희미한 인영이 자신의 보고 있었다. 인영의 큰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수혼은 희미하던 얼굴이 뚜렷해지고 그녀가 링링임을 알았다. 수혼은 힘들게 손을 들어 링링의 얼굴을 감싸다.
“괜찮아. 다치지 않았어.”
수혼의 첫마디를 듣던 링링의 눈에서 끝내 눈물이 떨어지며 뺨을 타고 흐른다. 수혼은 깨어나자마자 자신의 안위보다는 자신(링링)을 걱정하지 않는가? 링링은 고개를 끄덕인다. 목이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무님은..................”
링링은 고개를 돌려 현무를 보았다. 현무는 멍하니 자신과 수혼을 보고 있었다. 현무는 마지막 수혼의 한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의 심장에 검을 박았을 것이다. 수혼은 자신을 죽이기는커녕 자신에게 날아오는 월아를 막아 자신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이걸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수혼을 보고 있노라니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진다. 자신을 죽이려한 상대를 용서하고 생명까지 구해주다니............
“괜찮아. 아저씨는 어때.”
“응~.................좀 피곤해. 다들 괜찮다니 다행이다. 링링~ 나 좀 자도 될까?”
“응~ 걱정하지 말고 자. 링링이 곁에서 지켜줄까?”
수혼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더니 링링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았다.
“링링~ 안으로 모시자. 응~”
“예~ 알았어요.”
“우리가 모실께. 링링도 부상이 심하잖아.”
“아니~ 제가 하고 싶어요. 그래도 되죠.”
“휴~ 그래. 그렇게 해~”
“언니............사형들 용서해 주세요. 제가........”
“걱정하지 마. 사방신은 안전할거야.”
“고마워요.”
링링은 수혼을 안고 체육관을 나갔다. 그녀를 따라 길게 피가 방울져 떨어지고 있었다. 수혼의 몸에서 그리고 그녀의 어깨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링링이 체육관을 빠져나가자 미나의 검이 회수되며 팔목에 감긴다.
“아버지 이 사람들 치료해 주고 모두 감금하세요. 혹시라도 수혼씨가 잘못되면 모두 용서치 않겠어요.”
“알았다.”
링링은 수혼을 침대에 눕히고 그의 도복을 벗겼다. 부끄럽다거나 창피하다는 생각도 없다. 오직 수혼을 빨리 치료해야 된다는 일념뿐이다. 수혼의 상의가 벗겨지며 그의 목과 옆구리에 난 상처들이 보인다. 수혼의 목에는 두개의 혈선이 있었고 상처에는 피가 굳어 있었다. 또한 수혼의 옆구리에서는 지금도 소량의 피가 멈추지 않고 분출되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요코가 대아에 물과 수건을 가져왔다. 요코도 링링의 심정을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사형이 수혼을 이렇게 만들었으니 아마도 가슴을 찢어질 것이다. 요코는 물과 수건을 가져다주고 다시 나가더니 약상자를 가져다준다.
“동생..........수혼씨 잘 부탁해.”
“고마워요. 언니~”
“이것 봐~ 아무래도 동생부터 치료해야겠다.”
“아니요. 전 괜찮아요. 먼저 아저씨부터 치료해야죠.”
“휴~ 그래. 수혼씨 치료 끝나면 불러.”
요코는 문을 닦아주고 밖으로 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수혼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손으로 수혼을 치료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쌍둥이 자매도 링링을 말리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지 않는가?
링링은 물수건으로 수혼의 상처를 닦아낸다. 이 사람........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이 사람의 벗은 몸을 본 것이 이번으로 세 번째다. 모두 이 사람이 부상당한 상태였다. 링링은 수혼과 참 이상한 인연이라 생각했다. 링링은 수혼의 상처를 깨끗하게 닦아내고 약을 바른다. 목에 난 상처는 별개 아닌데 옆구리에 난 상체가 깊었다. 링링은 상처에 약을 바리고 붕대로 수혼의 상처를 동여맸다. 링링은 대충 치료가 끝나고 이마에 흘러내린 땀을 닦았다. 수혼은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조금 안심이 된다. 링링은 팽팽한 긴장이 풀리며 침대에 주저 않는다. 그때서야 어깨에서 통증이 전해진다. 링링은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야 하지만 몸이 힘도 없고 너무 힘들어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안에서 인기척이 없자 쌍둥이 자매는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다. 수혼과 링링은 편안하게 누워있는데 둘 다 잠이든 모양이다. 자매는 길게 한숨을 쉬고 길식에게 연락해 의사를 불려왔다. 의사는 수혼의 상처를 치료했다.
“과다한 출혈이 있어. 수혈이 필요할 것 같아요. 혹시 환자분 혈액형 아세요.”
의사의 말에 누구도 대답하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 수혼의 혈액형을 아는 사람이 없다.
“다들 모르세요.........지금 조사할 수도 없고...........휴~ 할 수 없죠. 영양제만 놓아드리고 가겠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아가씨를 치료해야 하는데..........”
“그건 저희들이 할게요. 수고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아가씨도 수혈이 필요할지 모르니 혈액만 체취해서 가겠습니다.”
의사가 나가자 미희가 링링을 흔들어보았다. 링링은 힘들게 깨어난다.
“미안해. 링링이 뛰어드는 바람에 월아가 링링에게 날아갔네.”
“괜찮아요. 아저씨나 현무사형 둘 다 무사하면 됐어요.”
“링링~ 잠깐 옷 좀 벗어볼래. 링링도 치료해야지.”
링링은 옷을 벗었다. 링링의 어깨에는 월아가 막혀 있었다. 아마 수혼이 검으로 쳐내 힘을 잃어서 그리지 정통으로 맞았다면 링링의 월아에 어깨가 관통되었을 것이다. 미희는 링링에게 미안했다. 그나마 링링이 자신을 이해해주니 고마울 뿐이다.
“아파도 잠깐만 참아.”
링링은 고개를 끄덕이고, 미희는 월아를 뽑아내었다. 월아는 붉은 피를 머금고 붉은 광체를 발산하고 있었다. 링링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들리고, 상처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난다. 미희는 상처를 지열하고 상처에 약을 바르고 치료를 끝냈다. 치료가 끝나고 링링을 보니 몸에 땀과 피에 젖어 있었다.
“링링~ 나머지도 벗어. 몸을 닦아내야겠다.”
링링은 잠깐 수혼을 보았다. 수혼은 편히 잠들어 있다. 링링은 수혼이 잠들어있자 안심하고 옷을 벗는다. 링링의 탄탄한 근육질 몸매가 나타나자 쌍둥이 자매와 요코는 잠시 링링의 몸매에 시선을 고정한다. 링링의 몸매는 군살 없이 탄탄하고 시원스럽게 생겼다. 링링은 창피하지 얼굴을 붉히며 침대에 눕고, 미희는 링링의 몸을 닦아주더니 싱긋 웃는다.
“링링~ 수혼씨를 잘 부탁해.”
무슨 의미일까? 링링은 수혼의 간호를 부탁한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쌍둥이자매와 요코는 치료가 끝나자 모두 밖으로 나갔다. 링링은 다시 옷을 입으려 했다. 하지만..............피에 젖은 옷은 끈적거려 다시 입기 곤란했다. 링링은 옷 입는걸 포기하고 침대에 누웠다. 오늘 하루는 자신에게도 무척이나 피곤한 하루였다. 눈을 감자 졸음이 밀려와 깊은 잠에 빠진다.
수혼은 새벽에 목이 말라 깨어나 보니 자신이 침대에 반듯하게 눕혀져 있었다. 영양제는 모두 투여되고 치워진 상태였다. 수혼은 옆구리가 아파 살펴보니 붕대가 감겨 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치료한 모양이다. 수혼은 어두운 실내에서 일어나려 침대에 손을 짚는데 물컹거리는 느낌이 있었다. 자신의 옆자리를 바라보니 희미하게 여인이 속옷차림으로 누워있는 모습이 보였다. 쌍둥이 자매라기보다는 키가 큰 것이 아무래도 요코인 모양이다. 수혼은 요코가 기모노을 입고 있던 모습이 생각났다. 요코의 요염하던 모습이 생각나니 요코가 한없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수혼은 요코의 입술에 키스하려고 입술이 가져가는데............희미한 불빛에 여인의 얼굴의 윤관이 들어온다. 수혼은 다가가던 입술을 멈추고 자세히 보니 요코가 아니라 링링이지 않는가?
수혼은 링링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그녀는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데 무척이나 귀엽게(?)보인다. 수혼은 피식 웃고 만다. 대충 어떻게 돌아간 상황인지 알 것 같다. 수혼은 이불을 들어 링링을 덮어주고 일어나려했다. 그때 링링의 팔이 수혼의 목을 감는다.
“어~~ 어. 링링~ 깨어있었어.”
“방금 깨어났어.”
링링은 큰 눈을 깜박이며 수혼을 바라본다. 그녀의 눈에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수혼은 목에 감긴 링링의 팔을 잡아 당겨보지만 링링은 팔에 힘을 주고 거두지 않는다.
“아저씨. 고마워.”
“허허 이것 참~ 팔 좀 풀고 이야기하면 안 될까?”
“싫어. 아저씨 또 도망가라는 거지.”
“도..........도망은 무슨. .............목 아파서 그래.”
“바보. 이젠 나도 알아.”
“뭐.........뭘~ 안다는 거야.”
“아저씨가 말했지. 사랑하는 남녀간의 행위에 대해................나도 읽었어.”
“그래. 참! 링링은 괜찮아. 상처는~”
“말 돌리지 마. 방금 뽀뽀하려고 했지. 근데 왜 도망가? 아저씨는 링링이 싫어?”
“아니. 링링처럼 아름다운 아가씨를 왜 싫어해.”
“근데 왜 도망가?”
“그게 아니야. 링링에게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 링링은 어려. 앞으로 링링만 사랑하고 링링도 사랑할 수 있는 멋진 왕장님이 나타날 거야. 난 그런 사람이 못돼.”
“다른 사람은 원하지 않아. 이곳에 와서 언니들보고 느낀 점이 많아. 언니들은 사랑 앞에 솔직해. 자신을 숨기려하지도 않고 도망치지도 않아. 사랑하는 사람을 공유할 줄도 알고...............아저씨를 사랑하기 때문에.........자신을 버리고 욕심도 부리지 않아.........아저씨의 작은 사랑에도 만족할 줄 알고.........나도 아저씨 사랑해. 그러니 도망가지 마.”
“잠깐 놓고 이야기하면 안돼. 정말 아파~”
링링은 빙그레 웃더니 수혼의 목을 당겨버린다. 수혼은 버티지 못하고 링링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만다. 링링의 가슴은 무척이나 크다. 수혼은 숨쉬기도 힘들었다. 링링은 수혼의 얼굴이 젖가슴에 닫자 부르르 떨리는 느낌이다. 수혼은 침대에 팔을 기대고 힘들게 일어나고 이번에는 링링도 수혼을 잡지 않았다.
“휴~ 무슨 짓이야.”
“아저씨가 사랑스러워서. 그리고 고마워서. 아까 아저씨 죽는 줄 않았어. 이렇게 살아줘서 정말 고마워. 아저씨가 잘못됐으면 나도 따라죽으려 했어.”
“무슨 말이야. 죽다다니 누가 죽어.”
링링은 상체를 들어 수혼의 품에 안겨온다. 수혼은 링링을 포근히 안아주었다. 수혼은 링링의 등을 다독이다 그녀의 어깨에 동여맨 상처를 보았다.
“링링도 다친 거야.”
“아저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냐.”
“다행이다. 참~ 검이 날아오는데 그 사이로 뛰어들면 어떡해.”
“사형의 검에 아저씨가 죽는 건 두고 볼 수 없었어. 차라리 내게 죽는 게 낮다고 생각했어.”
“그............그래..............................이제 그만 이야기하고 자. 링링도 피곤하겠다.”
“아저씨는 안자.”
“목마라서 물 좀 마시려고 깼어.”
“가만있어. 내가 가져다줄게”
링링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수혼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옆구리를 잡고 다시 눕는다. 옆구리에 난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상처의 통증을 느끼니 사방신과의 대결을 생각난다. 청룡은 쉽게 제압했다. 하지만 백호와 주작은 힘들었다. 아마 국선도문에서 검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주작에게 당했을 것이다. 주작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음양검법의 마지막 초식까지 사용하고서야 제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무와의 대결에서 자신이 어떻게 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자신은 의식이 몽롱한 상태에서 본능만으로 현무를 상대한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한 초식.........그건 수혼 자신도 모르겠다. 절대 절명의 순간.............링링이나 현무를 보호해야 한다는 일념뿐 이였다. 그때 머릿속에 번쩍이는 것이 있었고 검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려가 현무의 검을 쳐내고 월아를 막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했는지 조차 모르겠다. 어떻게 했을까?..............................수혼이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링링이 쟁반에 주전자와 컵을 가져왔다.
수혼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링링을 바라보았고.........링링은 팬티와 부라자 차림으로 수혼에게 걸어왔다. 수혼은 고개를 돌리고 말았고, 그런 수혼의 모습을 보더니 링링은 피식 웃더니 수혼에게 컵을 내민다.
“마셔.”
“응~”
수혼은 컵을 받아들고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아직도 목말라.”
“아니야. 됐어.”
링링은 컵을 받아 쟁반과 함께 한쪽으로 치우고 침대로 올라왔다.
“링링~ 웃은 안 입어.”
“이곳에 옷이 없어. 그리고 아저씨도 벗고 있는데 무슨 상관이야.”
하긴 수혼도 팬티 차림이다.
“아저씨 안자. 피곤하다며”
“자야지. 근데 링링은 방에 가서 자야지.”
“이곳에서 잘 거야. 언니들이 오빠 간호하라고 했어.”
“쩝~ 미희, 미나가 또 수작(?)을 부렸군.”
“무슨 말이야.”
“아니야...................그래 자자.”
수혼은 다시 누웠고, 링링은 기다렸다는 듯이 수혼의 가슴에 팔을 올렸다.
“뭐야~”
“아저씨~ 안아주면 안돼.”
“왜~ 그냥 자지.”
“내가 그동안 얼마나 외롭게 지낸지 알아. 아저씨는 언니들하고만 놀고, 난 쳐다보지 않고 정말 섭섭하고 외로웠어. 그러니까 조그만 지금은 외롭지 않게 안아죠.”
“휴~”
사실이다. 수혼은 한국에 돌아와 링링에게 많은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강철파의 몰락과 형님의 부음(訃音) 소식을 들었고, 지나의 실종, 천랑파의 나아갈 길 등을 모색하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자신의 행동에 자신만 바라보고 머나먼 이곳까지 따라온 링링은 무척 섭섭하고 외로웠을 것이다. 수혼은 링링에게 팔베개를 해주었다. 링링은 수혼의 어깨에 기대에 포근히 안긴다.
수혼은 링링을 안아주며 긴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오늘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좀 전부터 아랫도리가 부풀어져 있는데..........큰일이다.
성민은 초조하게 사방신을 기다렸다. 지금은 사방신을 안내한 녀석까지 연락이 되질 않는다. 녀석과 마지막 통화에서 사방신이 수혼의 집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 후 녀석에게 전화를 해도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메시지만 들려온다. 성민은 밤이 깊어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조직원을 이끌고 수혼의 집으로 쳐들어가고 싶지만, 그곳은 철옹성 같은 곳이니 섣불리 쳐들어갔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것이다. 성민은 답답한 심정으로 뜬눈으로 밤을 지세고 있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성민뿐만 아니었다. 사방신은 골방에 감금되어 있었다. 청룡은 갈비뼈가 바스라지고, 백호도 갈비뼈가 드려날 정도로 깊은 검상을 입었다. 더욱 심한 것은 주작이다. 주작은 가슴이 바둑판처럼 갈려져 버렸다. 다행이 현무는 별다른 부상이 없지만 그가 받은 심리적 충격은 대단했던지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의사가 들어와 다친 부위는 모두 치료하고 갔다. 하지만 그들은 육체적인 상처보다 정신적인 상처가 더 깊었다.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글쎄. 죽기밖에 더하겠어.”
“현무. 이곳에서 링링사저를 보았다며, 링링은 왜 이곳에 있데.”
“사부님이 우리가 성민의 꼬임에 빠져 사부님을 속이고 이곳에 온건 눈치체신 모양이야. 그리고 우리가 대결한 음양도의 전인과 사부님이 친구사이래.”
“무슨 말이야. 음양도 전인이 사부님의 친구라니. 나이차가 얼만데?”
“몇 십 년 동안 사부님을 모시고도 몰라. 사부님이 언제 나이 따지시는 분이니.”
“허허허~ 그럼 우린 사부님의 친구를 죽이려 했다는 거야.”
“그것뿐만 아니야. 사부님은 링링사저를 그 친구에게 맞긴 모양이야. 사부님이 허락했고 링링이 이곳까지 따라나설 정도면...........사부님이 그 친구를 링링의 짝으로 맺어주려 하신 모양이야.”
“참~ 일이 어떻게 된 거야. 우린 앞으로 어떡하지.”
“이곳에서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지나 모르지. 혹시 살아난다면..........음양도 전인에게 사죄하고 중국으로 돌아가야겠지.”
“성민과의 약속은 어떻게 하구.”
“허허허. 다들 몇 달은 요양해야 될 부상을 당했는데 성민 겉에 있다고 우리가 도움이 되겠어. 더구나 이번에도 실패한 우리들을 성민이 받아주려 할 것 같아.”
“하긴............휴~ 고향이 그립다.”
사방신은 한숨을 쉬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ps : 사방신과의 대결은 이것으로 종결합니다. 절단마공을 싫어하는 관계로 링링과의 일은 다음 편으로 연기합니다. 그리고 오타마공을 쓴다는 분들이 많은데........그건 무의식적으로 발휘되는 마공이라 고치려면 무한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고치지 못해도 넓은 아랑으로 이해해 주세요. ^^;; 그리고 전편에 독백을 넣은 것은 80부 기념입니다. 별다른 뜻 없습니다.
제 목: 낭만을 꿈꾸는 늑대 (82부 )링링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