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꿈꾸는 늑대 59부
성민의 행방은 찾을 길이 없었다. 강철은 경찰과 검찰에 막대한 로비자금을 뿌리며 성민을 전국에 지명수배하고 또한 일산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성철파 잔당을 공격했다. 일산에 도착한 강철파는 성철파를 파죽지세로 쓸어버리고 단3일만에 성철파를 밤의 세계에서 지워버렸다. 다만 성민처럼 강성철의 행방도 끝내는 찾지 못했다.
수혼은 집에 돌아와 천랑파 전원을 소집하여 요코의 행방을 찾도록 지시했다. 요코가 자신의 의지로 떠난 것이라면 그녀를 보내주겠지만 만일 타의에 의해, 그것도 그녀의 말대로 일본 아쿠자에 의해 납치된 것이라면 그녀를 위해서 꼭 찾아야 했다. 수혼은 자신의 여인들이 더 이상 불행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강철은 성철파가 정리되자 수혼에게 종로와 신촌 뿐만 아니라 성철파가 지배하고 있던 모든 지역을 수혼의 천랑파에 위탁했고, 천랑파는 성철파의 잔당들을 흡수하며 무서운 신흥조직으로 급성장하게 되었다. 강철은 천랑파가 무섭게 성장하는 것이 내키진 않았지만 성민을 처리하는데 가장 많은 공을 세운 천랑파에게 적절한 보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부하들조차도 수혼을 믿고 따르는 마당에 수혼과 천랑파를 무시할 수 없었고, 또한 수혼과 천랑파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 줌으로써 자신의 위상을 세우고, 천랑파와 강철파의 협력관계도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포석 이였다.
성민은 야산을 빠져나와 그길로 일산으로 도피하여 자신의 아버지와 가장 측근 세력들만 이끌고 부산으로 도피했다. 부산에 있던 자갈치파의 보스인 수창은 영도파 구역을 정리하고 성민이 보낸 아이들을 훈련시켜 영도파가 자치하고 있던 구역과 세력을 완벽한 성민파로 재구성하고 있었다. 부산에 도착한 성민부자는 영도파 잔당들을 흡수하고 새로운 조직원들을 받아들여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성민이 비록 서울에서 강철파에게 습격을 받아 핵심전력 손실하는 피해를 입었지만 부산에서 이미 훈련받고 있던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성민의 타격은 그리 큰 게 아니었다. 다만..........자신의 손발인 심복부하 3명의 손실은 만회하기 힘든 손실 이였다. 성민은 이번 싸움을 치루며 싸움은 머릿수도 중요하지만 적을 압도할 수 있는 실력자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부산에서 자금과 세력을 키우며 수혼에게 대항할 실력자를 찾기 위해 자신의 사문인 만주(연해주 조선인자치구)를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요코를 납치한 아쿠자들은 신촌과 종로는 물론이고 요코가 다니는 삼화대학까지 천랑파의 감시가 계속되자 요코를 서울시내 모처의 호텔에 감금하고, 본국과 연력을 취하고 있었다.
아쿠자들은 자신들이 신분세탁을 하고 한국에서 활동 중이라 당당하게 한국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을뿐더러 일본대사관도 이들의 신분을 알고 있기에 가급적이면 개입하지 않으려 했다. 일본대사관 입장에서도 한국에서 활동하는 아쿠자를 돕다 이 사실이 한국정부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입장이 난처해 질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외교문제로까지 확대될 수 있어 이들을 도와줄 수 없는 입장이 아니었다.
일본에 있던 요코의 아버지는 요코가 실종되자 한국으로 바로 달려오고 싶은 심정이 간절했지만 자신이 2차대전 전범으로 국제적으로 감시를 받고 있는 형편이라 마음만 졸이고 있다 한국에 파견한 아이들로부터 요코를 다시 찾았다는 전갈을 받았다.
“요코를 다시 찾았어.............지금 옆에 있느냐.”
“예~ 옆에 모시고 있습니다.”
“휴~~ 다행이구나. 그래 다친대는 없고.......아니다 요코에게 전화 받을라고 해라”
사내들은 잠시 망설인다. 요코의 성격상 자신의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말할 것이 자명하고, 만일 요코가 한국남자와 정을 통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자신들은 감시소홀로 처벌받을 것이 자명하다. 요코의 아버지는 요코가 한국학을 전공한다는 것도 싫어했고, 더욱이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간다고 했을 때 불같이 노하며 반대했던 사람이다. 요코의 끈질긴 설득에 할 수 없이 한국에 보내기는 했지만........불안한 마음에 무리수를 두면서도 자신들을 한국에 파견하여 요코를 보호하며 혹시나 그녀가 딴 짓(?)을 못하게 할 정도였다. 그에게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이며 한국인들은 벌레보다 못한 미천한 존재일 뿐 이였다. 인간은 한번 머릿속에 고정된 이미지를 바꾸기란 무척 힘든 법이다.
그런 그가 요코와 한국남자가 정을 통했다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
“아가씨. 아버님 성격아시죠. 아가씨가 사실대로 말하면.......그놈도 무사하기 힘들어요. 아버님 성격에 당장 죽이라고 명령하실 겁니다. 그놈의 안전을 위해서도 그리고 저희들을 보아서라도 그놈과의 일은 비밀로 하세요.”
사내가 전화를 주기 전에 요코에게 부탁하자, 요코는 사내들을 찌려보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예보세요.”
“요코냐.........이놈~ 이 애비가 얼마나 걱정했는데.......그래 다친대는 없지.”
“없어요. 아빠~ 이들보고 절 보내달라고 말씀해 주세요. 요코 돌아가야 해요.”
“돌아가다니 본국에 오고 싶으냐. 그런 거야. 내 당장 조치하마.”
“그게 아니라 수혼상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제발 보내주세요.”
“수혼(?). 그놈이 누군데.......”
“요코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아빠의 부하들이 요코를 그분의 곁에서 납치했어요. 제발 보내주세요.”
“그.........그럼 그동안 그놈과 함께 있었던 거야. 더러운 조센징 놈과 함께 있었다고.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뭐~ 사랑..........당장 본국으로 돌아와~”
“싫어요. 본국에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어요. 절대 못가요.”
“그.........그걸 말이라고 해. 이런.................당장 옆에 있는 놈 바꿔~”
“아빠 제발 부탁입니다. 보내 주세요.”
“당장 바꿔~”
요코가 전화기를 주자 한 사내가 부르르 떨면 전화기를 받았다. 요코에게 신신당부했지만, 이 철없는 아가씨가 사고를 치고 말았다. 이제 사태가 심각해진 것이다.
“이 개새끼들 요코를 철저하게 감시하라고 했더니........이게 무슨 소리야. 너희가 설명해봐~”
“저.........그게. 아가씨가 한 남자와 함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남자를 좋아하시는 눈치입니다.”
“뭐야~ 조센징을 사랑해. 당장 그 새끼 죽어버려. 그리고 요코 당장 본국으로 대려와~”
“그게.........그놈은 천랑파라는 조직을 이끌고 있는 녀석인데, 무서운 실력자입니다.”
“뭐 조직?, 실력자?..........너희들 실력으로 안돼.”
“무서운 고수입니다. 지금도 그놈의 조직인 천랑파가 저희들을 찾고 있습니다.”
“조선에 그런 실력자가 있다니........당장 사사기를 보내도록 하겠다. 요코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어. 절대 놈을 만나게 하면 안돼.”
“알겠습니다.”
갈치파에 성민의 소식이 전해졌다. 갈치파는 성철파의 몰락과 신흥세력으로 무섭게 성장하는 천랑파가 갈치파에 미칠 영향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강철파와 천랑파가 연합하여 서울 대부분을 장악한 상태에서 이제 남은 것은 자신들 밖에 없었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리며 사태를 지켜볼 입장이 아닌 것이다. 서울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인천에 안주 하느냐 아니면 강철파와 대결하느냐에 대한 양자택일을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원예님. 성철파까지 정리된 마당에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무석과 영기는 어떻게 됐죠?”
“현재 사법연수원 졸업하고 무석은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원 강력계 강력1부 담당검사로 발령받았고, 영기는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원 마약게 담당검사로 발령받았습니다.”
“수고했어요.”
“그들 때문에 로비자금으로 막대한 자금이 들어갔습니다.”
“그들에게 지시해서 강철파에 대해서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하세요. 특히 강철파의 로비자금과 부정축제에 대해 조사하려고 하세요. 국세청에 근무하는 화랑과 연계하면 강철파가 벌이고 있는 사업체에 대한 정보를 많이 수집할 수 있을 겁니다.”
“일이 너무 확대되는 되지 않습니까? 정부와 정치권에까지 파급효과가 갈 수 있는데........”
“강철파가 기대고 있는 권력과 돈줄부터 부셔버려야 해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어쩔 수 없어요.”
“강철파에 뇌물을 먹은 먹통들이 가만있진 않을 것인데........”
“올해 선거가 있죠. 이번 선거에서 정치권이 물갈이 될 확률이 높아요. 정치권이 물갈이 되면 자연적으로 행정부도 물갈이 되요. 그리고 이번 선거는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요. 아마 이번에 엄청난 돈들이 각 당의 로비자금으로 흘려들어 가겠죠. 지금까지 강철이 기대고 있던 세력은 여당의원들 입니다. 이번에 강철도 선거판세를 읽고 여야를 가리고 않고 막대한 로비자금을 뿌리겠죠. 아무리 철두철미한 강철이라도 그 많은 돈을 구하려면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어요.”
“그럼 이번선거를 기점으로..........검찰, 경찰, 행정부는 어떻게 합니까?”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면 장관도 바뀌고, 각 부처도 물갈이되기 마련이죠. 잠깐 동안 각 부처 및 경찰, 검찰 등 행정부가 흔들려요. 그때 터트리는 겁니다. 강철이 운영하는 회사의 자금흐름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여러분들은 화랑과 조직원들의 훈련에 박차를 가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천랑파는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제가 조수혼을 만나보겠습니다. 그를 만나서 설득해 봐야죠.”
“수혼이 강철을 배신하진 못할 건데........무슨 복안이라도 있습니까?”
“지금은 없어요. 만나보면 방법이 생길지도 모르죠. 천랑파와 연계할 수 없다면.......성민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어요.”
“성민이요. 완전히 망하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부산에서 웅크리고 있죠. 아마도 그가 먼저 우리에게 손을 내밀 게예요. 또한 그는 아직 두개의 카드를 숨기고 있어요.”
“두개의 카드라뇨?”
“보면 알겠죠. 자 이번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고, 란(蘭)님은 잠깐 저와 이야기 좀 해요.”
다른 원화들이 모두 나가고 수지와 원예만이 자리를 같이했다.
“둘만 있으니 편하게 이야기 하죠.........수지씨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말씀하세요.”
“허 강기와 다시 시작해시면 안돼요. 그가 요즘 많이 흔들리고 있어요. 수지씨가 곁에서 잡아주었으면 해요.”
“명령이라면 따르겠습니다.”
“탁탁하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처음부터 부탁이라고 말씀드렸어요. 강기가 수혼이란 사람에게 앙심을 품고 큰 것을 보지 못하고 개인적인 복수에 매달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우리가 상대할 적은 강철파인데 쓸데없이 천랑파와 수혼을 조사하고 있어요. 그가 천랑파를 건드려서 우리에게 득이 될게 없어요. 수지씨가 잘 타일러서 우리 일에만 매진할 수 있게 해주세요.”
“이미 마음이 떠난 사람인데........제가 말한다고 들어줄까요?”
“수지씨 때문에 생긴 병입니다. 수지씨만이 그를 잡아줄 수 있어요.”
“알겠습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저........”
“말씀하세요. 저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라도 있나요.”
“저기 수혼씨를 만나실 작정입니까?”
“예~ ”
“왜 그를 만나려하는지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음~..........제가 몇 번 그 사람을 만나려고 해죠. 그때마디 만나지 못한 이유는 사부님 때문입니다. 사부님이 계속 그 사람과 만나는 것을 반대하고 있죠. 전 사부님이 반대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요. 처음 그 사람에 대해 보고했을 때부터 사부님의 반응이 이상했어요. 사부님이 왜 그렇게 반대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요.”
“그럼 원예님도 사부님이 반대하는 이유를 모르세요.”
“자세히는 저도 몰라요. 다만 의심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를 만나보면 확실히 알겠죠.”
“원예도와 음양도 전인들 사이에 모종의 비밀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사부님이 자세한 말씀을 안 하시니 알 수가 없죠? 자 우리도 일어나요.”
지나는 수혼의 집에서 요코를 만나고 충격을 받았다. 수혼이 쌍둥이 자매 외에 다른 여자를 만나다니.......상상조치 못했던 일이 눈앞에 벌어진 것이다. 그 충격은 대단했다. 자신을 사랑하다면서도 자신의 사랑을 거부하던 수혼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알량한 핑계로 자신을 거부하던 놈이.........자신 이외는 여자는 너무나 쉽게 받아들었다. 아무리 여자가 원해도 거부해야 했다. 쌍둥이 자매를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그래야 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혼의 행동...................
“사랑은 좌우를 살피지 않아야 해요. 자신의 감성에 충실해야죠. 전 그래요. 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내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해요. 그게 사랑 아닌가요?”
수혼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더불어 요코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비수가 되어 가슴을 헤집어 버린다. 요코라는 여인........영은이와 비슷하다. 영은이도 자신의 사랑을 위해 모든 걸 걸었었다. 그 정성에 수혼이 흔들려 영은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요코도 그런 것일까? 지금.......자신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아버지 때문에.........다른 여자들 때문에........그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가 맵다. 자신이 죽도록 사랑하지만 그가 미워죽겠다. 자신의 사랑을 알면서도........자신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가까이 다가서면 도망치는 그가 맵다. 자신의 사랑이 부족한 것일까? 자신...........자신을 생각해 본다. 자신은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사랑하는가? 스스로의 질문에 대답할 자신이 없다.
수혼은 성민과의 대결을 끝내고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강철파로부터 인수한 은평과 일산에 병력을 분산배치하고, 넓어진 구역을 관리하기 위해서 성철파의 잔당과 새로운 조직원을 받아들었다. 조직에 관한 대부분의 일은 호식과 유준상(수혼의 장인)이 알아서 하지만 중요한 결정은 수혼이 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행방불명된 요코의 행방을 찾기 위해 조직원을 독려하고, 자신도 요코의 행방을 찾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요코의 행방불명에 가장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은 수혼이 아니라 쌍둥이 자매였다. 비록 잠깐이지만 요코에게 정이 많은 든 모양이다.
수혼은 혹시나 싶어 매일처럼 출입국관리실에 연락했고, 출입국관리실은 강철의 부탁이 있어서 수혼에게 성실하게 답변해 주었다. 어느 날 출입국관리소에서 수혼에게 이상한 소식을 알려주었다. 일본에서 아마시다 이노우예라는 사람이 입국했는데........신분상 오파상으로 위장하고 들어왔지만 아무래도 아쿠자 같다는 것이다. 그의 세관신고품목에 보면 일본도가 2자루 있었다는 것이다. 서류상에는 한국에 있는 골동품상에 납품하는 것으로 되어 있단다. 수혼은 연락을 받은 즉시 아이들에게 지시해서 녀석을 철저하게 감시하게 했다.
요코가 잡혀있던 호텔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40대의 남자로 눈매가 날카로운 일본인이 들어와 호텔에 한달이 넘게 장시간 투숙하고 있는 손님들의 옆방을 달라고 했다. 그의 손에는 긴 상자가 들려있었다. 체크인을 하고 연쇄를 받은 일본인에게 직원이 달려와 가방을 달라고 하자 일본인을 서비스를 사양하고 자신이 가방을 들고 방으로 올라갔다.
밤이 깊어진 시간, 출입문에 노크소리가 들린다. 일본인이 문을 열어주자 2명의 사내가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먼 한국까지 저희들을 위해 먼 길을 달려오신 사사기님 감사합니다.”
“병신새끼들........아가씨는?”
“옆방에 계십니다.”
“일단 아가씨부터 만나 뵙고 이야기하자.”
사내들은 옆방으로 이동했다. 옆방 침대에 요코가 앉아있었다. 그녀는 웃음기 없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고 몸도 마르고, 눈에 흐르던 총기도 없다. 그녀는 멍하니 침대에 앉아있다. 새로 들어온 사내는 요코를 보자마자 요코에게 달려왔다. 요코는 사내가 들어와도 멍하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삶의 의욕이 없는 듯........그녀는 짧은 시간 무척이나 수척해 졌다.
“아가씨........사사기입니다. 알아보시겠습니까?”
요코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새로 들어온 사내를 바라보다.........얼굴에 약간의 표정이 나타난다.
“사부님.......사사기 사부님........맞아요.”
“예~ 사사기 입니다.”
사내의 목소리에 조금씩 정신을 차린 요코의 눈에 조금씩 생기가 돈다.
“사부님.......흐...흑....흑.......아아아앙~~~”
“아.......아가씨. 왜 우세요........이런 개새끼들 아가씨께 어떻게 한거야. 왜 아가씨가 울어 새끼들아.”
“저.......그게.........계속 도망치려하시는 걸 저희가 붙잡고 있었더니 식사도 안하시고.”
“뭐~ 식사도 안하셔. 저희들 할복이라도 하고 싶어. 이런 쌍~ 아가씨를 이렇게 모시다니.......”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아가씨가 고집을 부리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휴~ 일단 너희들 모두 밖으로 나가.”
사내들은 사사기의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모두 밖으로 나갔다. 사사기는 아마모토조에서도 서열 10위안에 드는 간부급이며, 요코의 검도 사부이기도 했다.
“자~ 이제 말씀해 보세요. 식사도 안하시고 울기만 하신건가요?”
“응~ 나쁜 놈들이 밖에도 못나가게 했어. 답답해 죽을 것 같았어.”
“저놈들이 왜 못나가게 하는 거죠. 아버님의 말씀으로 어떤 놈이 아가씨를 노리고 있다고 하던데............그것 때문입니까?”
“무슨 소리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난 그에게 돌아가야 해. 사부가 좀 도와죠.”
“그게..........아가씨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건가요?”
“응~”
“하.........한국인. 그것도 조직의 두목? 맞습니까? 아버님께 대충은 들었습니다.”
“응~.......멋있는 사람이야. 요코가 꿈꾸던 왕자님이야. 이미 요코의 모든 걸 주고, 목숨처럼 사랑하는 사람이란 말이야.”
“예~ 몸까지 허락하셨단 말씀입니까?”
“당연하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데.......뭐가 아까워.”
“휴~~~ 아버님이 이 사실을 아시면 아가씨까지 죽이려 드실 겁니다. 어쩌자고 그런 일을 버린 겁니까?”
“사부 도와죠. 요코 정말 그 사람 사랑해. 제발 그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게 해죠. 응~”
“그 남자.........그렇게 대단한 사람입니까? 아가씨가 첫눈에 반할정도 입니까?”
“사부도 만나봐~ 정말 멋진 사람이야.”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정말이야. 그럼 나도 같이 가? 응 사부~”
“일단 제가 만나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사기.......그는 일본검도의 달인이다. 수혼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말을 듣고 요코의 아버지가 특별히 서울로 파견한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요코에게 검술을 가르친 사람으로 요코를 친딸이상으로 사랑한다. 그는 요코아버지의 말을 듣고 요코가 걱정되어 자신의 일을 팽개치고 한국으로 달려온 사람이다. 그에게 요코는 아끼는 재자로........친딸이상으로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 이였다.
사사기를 감사하던 수혼의 부하는 사사기뿐만 아니라 호텔에 투숙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조사했다. 그 조사과정에서 한 달 이상 장기간 투숙하며 밖으로 한번도 외출하지 않는 이상한 사람들을 발견했다. 이들을 수상하게 여긴 부하는 호텔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만나 일본인들이 한 여자를 감금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수혼이 부하의 보고를 받은 것은 다음날 이였다. 수혼은 당장이라도 호텔로 달려가려했고, 함께 있던 쌍둥이 자매가 수혼을 붙잡았다.
“무턱대고 쳐들어가며 요코가 다치는 수가 있어요. 흥분하지 말고 차분히 생각해 보세요.”
“미.......미안 내가 흥분해서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군. 어떻게 하지.”
“일단 요코가 확실하지 조사부터 해보세요. 요코가 확실하면.......그때 요코가 다치지 않게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죠.”
“알았어. 내 얼굴은 녀석들이 알고 있으니 아이들 풀어서 조사해 보라고 해야겠네. 휴~~”
“긴장하지 마세요. 요코~ 무사히 돌아올 게예요.”
수혼의 곁에 있던 미나는 수혼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수혼은 성민과의 대결이후 말이 없어졌다. 성민을 노친 것이 마음속의 짐이 된다. 영은이의 복수를 해야 하는데 성민을 노친 것이 가슴속에 한이 된다. 요코가 실종된 것도 자신의 탓만 같았다. 요코가 같이 가자고 했을 때 같이 갔다면 요코가 납치되는 일 따위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코가 영은이처럼 된다면.........수혼은 생각만 해도 무섭다. 자신 때문에 상처받는 여자는 화선과 영은이로 충분했다. 말없이 떠난 요코라는 존재가 수혼을 압박하고 있었다.
사사기는 자신이 들고 온 상자를 열었다. 그곳에는 두 자루 일본 검이 있었다. 사무라이 가문인 자신의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지는 가보다. 일본 전국시대에 당시 명장으로 소문난 장인(匠人)이 심혈을 기울려 만든 유서 깊은 검이다. 한 자루 긴 장검과 짧은 장검이다. 사사기는 장검을 빼어 검을 닦는 비단으로 정성스럽게 닦는다. 검에서 밝은 빛이 솟아지며 방안을 환하게 비춘다. 검을 깨끗하게 닦고 손가락으로 퉁겨본다.
“윙이이이잉~”
검에서 청명한 소리가 울린다. 사사기는 검을 갈무리하고 다시 짧은 검을 빼낸다. 이번에도 정성스럽게 검을 닦는다. 사사기는 수혼을 만나보기로 했다. 자신의 아가씨를 사랑에 빠지게 만든 남자. 아마모토조의 실력자들을 간단하게 처리하는 무술의 고수........사사기의 피가 뜨겁게 끓어오른다. 무사로써 고수를 만난다는 설렘과 그와 대결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온몸의 세포들이 팽팽한 긴장감에 요동친다.
수혼은 쌍둥이 자매와 몇몇 부하들을 이끌고 호텔로 들어섰다. 일단 의심 가는 투숙객이 요코인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투숙객 명단을 확인하기 위해 안내 데스크로 갔다.
“여기 장기간 투숙하는 일본인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제가 볼 수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호텔 규정상 투숙객의 신상에 대해서는 비밀입니다.”
“쩝~ 안돼는 건가? 그럼 우리가 직접 확인할 수밖에.........애들아 올라가자.”
“저........저기 잠시만 어떻게 하시려고........”
“일일이 확인해야지. 한방 한반 확인하다보면 우리가 찾는 사람이 나오겠지.”
“그건 안돼요. 영업방해로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당장 멈추세요.”
“신고해. 그거 겁나면 말도 꺼내지 않았어.”
수혼이 억지를 부리자 호텔직원의 표정이 구겨져 버린다. 보기에는 호리호리하고 아직 나이어린 사내 같은데, 좌우에 아름다운 여인들을........그리고 뒤에 덩치가 산만한 사내들을 이끌고 있다. 뭐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요구를 받아주지 않으면 사고라도 칠 기세다.
“알겠습니다. 궁금한 게 뭐죠.”
“진작 그렇게 나와야지. 여기 투숙객 중에 한 달 이상 장기간 투숙하는 일본인들이 있다고 들었어. 그 사람들 몇 호 실에 있지.”
“방을 두개 사용하고 있어요. 504호, 505호에 있습니다.”
“좋아. 조금만 더 협조해 주면 좋겠어. 우리 식구들 중에 한명이 잠시 그 방들을 염탐할 수 있을까?”
“그건 곤란합니다.”
“방금도 말했지만 협조하지 않음. 그냥 밀고 들어 갈 거야. 호텔입장에서도 소란을 떠는 것보다는 조용히 해결하고 싶지 않아.”
호텔직원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자신이 결정할 수 없다고 안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좀 나이가 지긋한 지배인이 나타났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말씀부터 해주세요.”
“내 부인이 이곳에 잡혀있는 것 같아. 우리가 확인해 보고 아니면 조용히 갈 거야. 나도 소란 떨기 싫어.”
“이렇게 하죠. 손님께서 찾는다는 분의 사진이나 인상착의를 알려주시면 우리가 들어가서 확인하고 알려드리겠습니다.”
“그게 말처럼 쉬우면 벌써 우리가 했어. 그녀의 사진이 없어. 또.......우리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곤란하군요.”
수혼과 호텔직원들이 실랑이를 하고 있는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요코와 5명의 사내, 그리고 사사기가 카운터로 오고 있었다. 사사기는 요코의 건강과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밖으로 외출시켜주려고 모시고 오는데.........요코는 수혼과 쌍둥이 자매를 알아보고 앞으로 뛰어나온다. 사내들이 말릴 사이도 없이 요코는 앞으로 달려, 한참 지배인과 이야기하고 있던 수혼에게 달려든다.
수혼은 지배인과의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다가 누군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자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날리려다 달려오는 상대가 요코라는 것을 알고 주먹을 멈춘다. 요코는 수혼의 목에 매달리고, 수혼은 요코를 안아주었다.
“수혼씨..........수혼씨.......흐....흐....흐. 너무 보고 싶었어요.”
“요코...........어디보자.......요코 맞지.”
“예~ 요코예요. 수혼씨가 직접........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요코.........얼굴이.......살도 빠지고........미안해 그동안 고생했지.”
“아닙니다. 제가 죄송해요. 말도 없이 당신의 곁을 떠나고........”
“그만........만났으면 됐어. 이제 안심해 다시는 요코 보내지 않을 거야.”
“흐~~흐~~흑~ 사랑합니다.”
일본인들은 수혼을 알아보고 사사기에게 수혼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저 어린놈이 고수란 말이야.”
“예~ 두 명이 저놈에게 당했습니다.”
“음~ 보긴 허점투성이 같은 놈인데........나이도 어리고.”
“저희도 그렇게 생각하고 덤비다가 무참하게 박살났습니다.”
요코는 수혼의 품에 안겨 울고 있었다. 수혼은 그녀가 진정하도록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고 있었다. 그때 일단의 일본인들이 자신들에게 다가왔다. 수혼의 눈동자가 날카로워지며 그들을 바라본다.
“요코 진정해.........내가 있으니 안심하고 일단 잠시 떨어져.”
요코도 수혼의 말에 조금은 진정이 되는지 수혼의 품에서 떨어진다. 수혼은 요코를 등 뒤로 보내고 일본인으로 바라본다. 두 세력간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자네가 수혼인가?”
사사기가 뭐라고 하는데 수혼과 일행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사사기는 한국어를 할줄 모른다. 물론 수혼일행 중에서도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
“맞아요. 제가 이야기하던 요코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사기 사부님........이분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사부님이 도와주세요.”
아무도 말하는 이가 없자 요코가 앞으로 나서며 사사기에게 이야기한다.
“전 아버님께 아가씨를 본국으로 모셔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사부님~ 꼭 절 본국으로 데려가셔야 해요. 요코는 이분 곁을 떠나서는 살아갈 자신이 없어요. 본국으로 돌아가면.........아버님이 얼굴도 모르는 남자랑 정략결혼을 시키려고 할 건데........이분을 떠나서 그런..........차라리 죽어버리겠어요.”
“아가씨의 행복을 위해서 입니다.”
“사부님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조직을 위해 자신의 딸을 희생시키려는 것이지, 제 행복을 위해서 인가요? 전 사랑하는 이분과 이곳에 있는 것이 행복해요.”
“아가씨~ 아버님도 아가씨를 사랑하세요. 아가씨가 잘 이야기하면 들어주실 겁니다. 하지만 이건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 하셔도 돌아가지 않아요. 전 이분을 떠나서는 한시도 살수 없어요. 이분과 떨어져 있는 동안 제가 얼마나 이분을 사랑하는지 알았어요. 전 목숨보다 이분을 더 사랑해요.”
“휴~~ 정녕 아버님의 뜻을 거역하겠다는 겁니까?”
“죄송해요.”
사사기는 요코의 말을 듣고 자신이 아무리 설득해도 요코가 듣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요코는 어려서부터 귀하게 자라 한번 고집을 부리면 누구도 말리지 못하는 외골수다. 사사기는 요코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요코의 말마따나 요코가 일본으로 돌아가면 요코의 아버지는 요코를 바로 결혼시키려 할 것이다. 요코가 진정 저 남자를 사랑한다면..........이대로 요코를 보내주고 싶다. 요코를 친딸이상으로 생각하는 사사기라 더욱 그런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조직의 생리상 명령은 절대적이다.
그렇다면............
“저 친구에게 내말을 한국어로 전해주세요.”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요코~ 나 믿지. 사부는 요코를 친딸이상으로 사랑해. 요코에게 해가 되진 않을 거야.”
요코도 사사기의 말을 믿는다. 그는 자신의 사부이며, 어려서부터 자신을 끔찍하게 사랑해주던 분이다. 요코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네. 요코를 지켜줄 수 있나.”
요코가 사사기의 말을 그대로 번역해서 수혼에게 전달하자, 수혼은 처음에는 사사기가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요코가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인다.
“자네를 믿고 요코님을 보내주기에는 내가 불안해. 그래서 하는 말인데........나와 일대일 대결을 요청하네. 만일 자네가 이긴다면 요코님을 자네에게 보내주겠네.”
사사기의 말에 요코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사사기........그는 일본에서도 몇 명되지 않는 검의 달인이다. 진정한 일본 일도류의 전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검사다. 그런 그가 수혼에게 일대일 대결을 신청하고 있는 것이다.
“사부님.......이분과 대결하시겠다는 겁니까? 그.......그건”
“아가씨도 생각해 보세요. 제가 이대로 돌아가면 아버님께 제가 죽어요. 저도 핑계거리가 있어야 해요. 또한 비록 제가 물려갔다고 해도 또 다른 고수를 파견할 분이 아버님입니다. 저도 이기지 못하는 약한 놈이라면 일찌감치 아가씨를 포기해야죠. 그게 저 사람을 위해서도 현명한 판단입니다.”
“정말 대결하셔야 해요. 그럼 목검으로 하시면.......”
“생사결(生死決)의 대결입니다. 당연히 진검승부로 해야죠. 그게 겁난다면 아가씨를 차지할 자격도 없는 놈입니다.”
요코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수혼에게 사사기의 말을 전했다. 요코의 말을 들은 수혼은 피식 웃어버린다. 일본 검도의 달인.........수혼의 음양도..........그 대결이 이루어지는 순간 이였다.
제 목: 낭만을 꿈꾸는 늑대 (60부 )사사기와 대결, 요코-섹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