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꿈꾸는 늑대 53부
삼화대학은 전통적으로 5월에 축제를 했다. 삼화대학 축제 최대의 하이라이트는 올해의 삼화미인대회다. 요즘은 아니지만 한때는 금남의 구역이던 삼화대학에서도 축제기간에는 남학생들의 출입이 하가되었고, 여자들만 있는 삼화대학 최고의 미인을 선발하는 대회는 자연스럽게 삼화대학 축제의 명물이 되었다. 대학교들이 밀접한 신촌에서도 요즘도 삼화대학 미인대회는 단연인기 있는 행사였다. 주변 대학에서도 올해는 어떤 미인이 삼화대학 최고의 미인으로 왕관을 쓰게 될지 관심들이 대단했다.
이 축제에 지나가 출전하게 되었다. 지나는 한사코 사양했지만 삼화대학 법학과 학생회에서 지나를 반강제적으로 등을 떠밀어 어쩔 수 없이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수혼도 지나가 출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삼화대학을 방문하게 되었다. 대회는 강당해서 진행되는데 주변에 있는 학교에서 모두 몰려와 대회장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수혼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강당 한쪽 끝에 자리했다.
식전행사로 인기가수의 축하무대가 있고, 심사위원의 소개가 끝나고 대회가 시작되었다. 참가자들이 한명, 한명 소개될 때 마다 환호성이 터진다.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드레스를 입고 무대로 나와 간단한 자기소개와 사회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10번째 참가자는 법학과 2학년으로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학생회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참가했다고 하네요. 자~ 10번째 참가자 민 지나양을 소개합니다.”
사회자의 소개가 끝나고 지나가 무대로 걸어 나온다. 그녀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흰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녀는 머리를 약간 웨이브 파마를 했고, 오랜만에 진한 화장을 하고 있었다. 큰 키에 시원시원하게 새긴 서구적인 마스크, 날씬하고 매력적인 몸매에 장내가 웅성거리기 시작하더니 엄청난 환호성이 체육관을 가득 메운다. 수혼도 지나의 색다른 모습에 눈길이 간다. 그녀는 아름다운 여인이며 사랑스런 여인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여인...............그 여인이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 있었다.
그녀의 인사가 끝나고, 장내 사회자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참가배경, 추천인은 누구냐, 미스삼화가 되면 어떻게 하겠는가? 등등의 질문..........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남자친구는 있습니까?”
사회자의 질문에 장내가 조용해지며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의 입에 집중되었다.
“예~ 있어요. 친구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하지만 그 사람은 절 거부하죠.”
장내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런 미인의 사랑을 거부하는 놈은 쳐 죽일 놈이라는 소리.......어떤 미친놈이냐는 소리.......그런 놈은 잊어버리고 자신에게 오라는 소리........특히나 남자들이 말이 많다. 수혼은 그 자리에 있기 거북했다. 꼭 사람들이 자신을 욕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수혼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사회자는 지나가 뜻밖에도 너무나 솔직하게 마음속에 있는 말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자 조금은 당황하여 재빨리 지나를 들어 보냈다.
“다음으로 11번 참가자를 소개입니다. 이 분은 좀 특이한 분입니다. 일본에서 교환학생으로 우리나라에 왔다가 미스삼화에 참가한 분입니다. 참가번호 11번 국문과 아마모토 요코씨를 소개합니다.”
수혼은 막 강당을 빠져 나오고 있는데, 여기저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11번 참가자가 사회자의 소개에도 나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혼은 강당을 빠져나와 교내를 걷고 있었다. 마음이 복잡했다. 지나의 말.......그 말이 송곳으로 가슴을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 수혼은 짭짭한 심정으로 삼화대학 정문 쪽으로 가는데, 한 인영이 수혼을 향해 달려오고 있고, 뒤에 2명의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인영이 따라오고 있었다. 인영은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있어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옷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면 여자인 것 같았다.
수혼은 그들을 상관하지 않고 막 지나치려 하는데 달려오던 인영이 수혼의 등 뒤에 딱 달라붙는 것이다. 수혼은 황당해서 돌아서려하는데 인영을 쫒아오던 남자들이 수혼의 앞에 멈춘다.
“넌 누구야 새끼야~ 당장 그분에게 떨어지지 못해”
약간은 억양이 이상한 말투다. 사내들은 수혼을 보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살려주세요. 저 사람들이 절 잡아가려 해요. 흑흑흑~ 제발 살려주세요.”
수혼의 등 뒤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수혼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사내들이 여자를 잡아가려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았다.
“아가씨~ 갑자기 도망치면 어쩌자는 겁니까? 아버님이 아시면 저희들은 죽습니다.”
“흥~ 싫어. 한국에서까지 너희들에게 감시당하면서 살라고.......나도 자유롭게 살고 싶어. 당장 일본으로 돌아가~”
“우린 아가씨를 보호하라는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절대 멋대로 행동하시게 둘 수는 없습니다.”
“좋아~ 마음대로 해~ 나도 꼭 도망치고 말거야.”
수혼은 이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들이 일본어로 지껄이니 일본어를 모르는 수혼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아저씨 저 사람들이 잡아다가 못된 짓 하려고 해요. 도와주세요.”
여자가 다시 수혼에게 우리나라말로 이야기한다. 사내들은 수혼이 도망가지도 않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 귀찮다고 생각했다. 보기에 덩치도 크지 않고, 나이도 어린 것이 그냥 평범한 학생 같은데, 적당히 겁을 주면 도망갈 것으로 생각했다.
“이봐~ 죽고 싶지 않으면 꺼져. 괜히 우리 일에 방해하지 말고 가던 길이나 가라고~”
수혼은 기분이 상했다. 자신과 상관도 없고,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내들이 여자를 억지로 끌고 가려하고, 또한 일본 놈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설치고 다니는 것도 기분 나쁜데.......은근히 협박까지 한다. 지나에 대한 생각 때문에 안 그래도 속이 답답하니 상대방에게 좋은 말이 나가지 않는다.
“뭐야~ 너희들이 꺼져, 어디서 재수 없게 쪽발이 새끼들이.”
“쪽발이?.............이런 개새끼 놈의 새끼”
한 사내가 쪽발이라는 말에 불끈해서 수혼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내의 주먹이 수혼의 얼굴을 향해 날아온다. 수혼은 뒤에 여자가 있기 때문에 피하지 않고, 금나수로 사내의 주먹을 잡아갔다.
사내의 주먹은 강맹한 힘으로 수혼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고, 수혼은 사내의 팔목을 금나수로 잡아 옆으로 당겨버리니 사내는 자신의 힘과 수혼이 끌어당긴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옆으로 스쳐지나 바닥을 구른다.
“이 새끼가...............싸움 좀 하는 놈이네.”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사내는 한마디 하더니 수혼의 향해 날아오른다. 사내의 다리가 공중에서 달리는 것처럼 연속적으로 수혼의 머리를 향해 발을 내지른다. 수혼은 여자를 안아 일자보로 뒤로 쭉 밀려났다. 사내의 발은 허공을 가르고 땅에 떨어지고, 수혼은 여자를 바닥에 내려준다.
“여기 있어요. 일단 저놈들 해치우고, 자세한 사정은 그때 들어봅시다.”
“예~ 해치워요. 저들은 강합니다. 아쿠자입니다. 우리 그냥 도망쳐요.”
“아쿠자(?).................걱정하지 마세요.”
수혼은 여인의 입에서 사내들의 정체를 알게 되지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일본 아쿠자가 감히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활보하고 다니다니.........수혼은 사내들에게 강한 반감이 든다. 그냥 일본놈들도 아니고 일본의 폭력조직인 아쿠자가 대한민국 서울까지 와서 못된 짓을 한다고 생각했다.
“덤벼.........아쿠자 실력 좀 보자.”
“이젠 자존심이 상해서도 그냥 못 보내.”
사내는 상의를 벗어 던지고 넥타이도 풀려버린다. 수혼이 천천히 사내에게 접근하니 사내의 다리가 수혼의 목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온다. 사네의 동작은 태권도와 비슷하지만 약간은 틀리다. 발이 날아오는 각도가 사람의 생명을 노리는 위험한 기술들이다. 지금도 사네는 수혼의 자궁혈이라는 사혈을 노리고 있다. 이건 공수도(일본말 가라데) 중에서도 극진공수의 고수만이 펼치는 일격필사의 기술들이다.
수혼은 삼체보로 사네의 발차기를 피하고 사네의 가슴팍으로 파고들며 사내의 목, 가슴, 배를 향해 음양수를 날린다. 장(손바닥)으로 펼치는 음양수의 그림자가 날아오르고, 사내는 몸을 회전하며 수혼의 음양수를 피하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크게 회전하던 사내의 다리가 수혼의 목을 노리고 날아온다.
선풍각(扇風脚)! 몸을 360도에서 720도까지 크게 회전하며 상대방을 노리는 고급기술이다. 상대방도 무술에 상대한 고수였다. 수혼은 무릎을 굽혀 살짝 피하는데, 반대쪽 다리가 다시금 날아온다.
수혼은 굽혀진 무릎을 피고, 타력을 이용해서 솟아오르며 날아오는 상대방의 독비혈(무릎 아래에 있는 마혈) 차고, 그 타력으로 다시 상대방의 머리 위까지 솟아오른다. 상대방은 독비혈을 맞고 다리가 마비되어 바닥에 착지하다가 휘청거렸고, 공중으로 날아오른 수혼의 다리가 빠르게 움직이며 화려하고 아름다운 음양각이 터진다. 공중에 피어난 수많은 발그림자가 휘청거리는 상대방의 가슴을 향해 날아간다.
“파...파...파...팍~~”
“끙~~~ 윽~~
연속적인 울리는 샌드백 때리는 소리와 상대방의 이를 악무는 신음소리가 터지고, 상대방은 뒤쪽으로 쭉~ 밀려가 바닥에 퍽~하니 쓰려져 버린다.
“이제 보니 상당한 고수로군! 자네 같은 고수를 보면 피가 끊어 올라.”
두 사람의 대결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나머지 한 사내가 상의를 벗더니 품에서 검을 한 자루 뺀다. 검은 일본도로, 짧게 개량된 특수한 검이다.
“사사기쌍~ 안돼요.”
“용서하세요. 아마모토조는 적에게 등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동료가 죽으면 끝까지 복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싸움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죽지도 않았어요. 정당한 대결에서 패한 겁니다. 무기도 없는 상대에게 검까지 들고 대들면 어떻게 하자는 거죠.”
“아가씨도 보셨지 않습니까? 이놈~ 무시 못 할 고수입니다. 사무라이로써 명예롭게 싸우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일본인 사내는 자신의 동료가 수혼에게 허망하게 당하고, 수혼의 실력이 예상외로 강하자 무술을 하는 사내로써의 승부욕에 불타오른다. 저런 고수는 다시찾아보기 힘들다. 고수와 한번쯤 대결하고 싶은 욕심에 아가씨를 보호해야 한다는 본분까지 망각해 버린다.
수혼은 역시나 여자와 남자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했다. 자기들끼리 일본어로 대화하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단지 사내가 검까지 빼들고 자신에게 접근하니 더더욱 열이 받는다. 이것들이 남의 나라에 와서 이젠 칼까지 들고 설친다고 생각하니 용서할 수 없었다.
“젊은이 조심하게. 난 일본검도 중에서도 일도류를 익히고 있네, 혹시 자네도 무기가 있다면 꺼내게나.”
“흥~ 일도류를 쓰던 이도류를 쓰던 상관없으니 덤비기나 해~”
“건방진 자식~~”
작가 주 : 일본은 전국시대를 겪으면서 검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데, 사무라이들도 처음엔 활을 사용했다가 점차 검을 사용하게 되었다. 일본은 사회질서를 무력을 통해 잡았으므로 무기체계 즉 검의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고, 전국시대라는 혼란상황을 통해 살상력이 있는 검술이 발전하였습니다.
일도류는 한 자루 검을 양손에 잡고 검을 쓰는 방식이고, 이도류는 장검과 단검을 양손에 들고 짧은 검으로 수비, 장검으로 공격하는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은 일본검도로 체계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그리고 검술 면에서 보면 한국은 전통적으로 팔방을 중심으로 하여 넓게 사용하면서 동시에 치명타라기보다 베기위주로 전투불능상태로 이어지게끔 하는데 반해, 일본은 전후좌우로서 전진형 검술이다. 또한 일격필살형 베기를 중심으로 한다.
사내는 수혼에게 달려오며 양손으로 잡았던 검에서 한손을 때며 좌우로 크게 베어온다. 일격필살이라기 보다는 상대방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허수 같다. 수혼은 상대방이 전통적인 검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실전에 응용한 동작만을 취한 변칙적인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수혼은 칠성밟기로 상대방의 검을 피하니 역시나 상대방이 다른 손으로 주먹을 주고 수혼의 흔들리는 가슴을 노리고 쳐온다. 상대방의 주먹 주위에 바람이 휘몰아치며 자신의 가슴을 향해 들어오니 수혼은 몸을 회전하며 상대방의 기운을 흘려버리고 음양권으로 검을 잡은 팔의 곡지혈(팔에 있는 마혈)를 노리고 주먹이 날아간다. 수혼의 주먹이 은은한 광음을 내며 상대방에게 날아가니 상대방은 깜짝 놀라서 뒤쪽으로 급히 물려난다.
수혼은 물려나는 상대방을 따라가며 양쪽 주먹을 내지르니, 상대방도 입술을 깨물고 수혼에게 달려들며 검을 머리위에서 밑으로 그어버린다. 일도양단(一刀兩斷)의 일격필살의 기술로 상대방도 한수에 목숨을 걸고 있었다. 수혼은 급히 주먹을 회수하고 순간적으로 달려가던 기세를 멈추고 그 자리에서 솟아올라 다시금 화려한 음양각을 펼친다.
달려들던, 기세를 한순간에 정지하는 상식 밖의 동작에 상대방은 당황하고, 머리를 들어보니 발그림자들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상대방은 황급한 중에도 검을 들어 발그림자의 허점을 노리고 검을 휘두르며 피해보지만 발그림자들은 살아있는 생명체같이 자신의 검을 피해 가슴으로 파고든다.
“파....파....팍~~”
“크~~~음~~”
사내는 역시나 가슴을 부여잡고 뒤쪽으로 몇 발자국 물려나다, 끝내는 피를 토하고는 바닥에 무릎을 굽힌다. 수혼은 땅에 차지하고는 상대방을 돌아보지도 않고 여자에게 다가갔다. 자신의 음양각에 적중당하면 쉽게 일어나기 힘들다.
여자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사내들의 싸움을 겁을 먹은 건지, 그녀는 애처롭게 떨고 있었다. 수혼은 그녀가 무슨 일로 사내들에게 쫒기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잔뜩 겁을 먹고 떨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녀가 가엽게 느껴진다.
요코...........아마모토 요코는 싸움을 보면서 놀람과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미인대회에 참가한다고 하고는 대회장을 몰래 빠져나와 감시자(?)들을 따돌린 요코는 즐겁고 홀가분한 마음에 학교를 빠져나가려 했다. 자유........자신이 꿈꾸던 자유는 저 교문을 빠져나가면 된다. 그런대 교문에도 감시자들이 지키고 있었다. 철저하리만치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지긋지긋한 감시자들..........그녀는 모자를 눌려 쓰고 모르는 척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감시자의 예리한 눈은 피할 수 없었다. 감시자들이 자신을 다시 잡으려하자 그녀는 무조건 도망쳤다.
그녀는 일본도 아니고, 한국에서까지 감시를 받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23살의 꽃다운 나이........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남들처럼 친구들과 만나 수다도 떨고 싶다. 친구들과 어울려 여행도가고, 나이트도 가고 평범하게 살고 싶지만 그녀에게는 이런 생활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향상 감시자들이 붙여 있었고 친구들은 감시자들이 무서워 감히 그녀에게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답답한 생활, 자유가 없는 생활..........그녀는 아버지를 졸라 한국으로 도망쳤다. 그곳이라면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아버지는 한국에까지 감시자를 파견했다.
그녀는 감시자들로부터 도망쳐 자유롭고 싶었고, 그리고 오늘 치밀한 계획을 세워 그들의 눈을 피해 도망칠 수 있었다. 근데 재수 없게도 교문에서 걸린 것이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도망쳤고, 마침 그곳을 지나던 수혼에게 도움을 청했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수혼에게 도움을 청했는데..........사내와 자신의 감시자들이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그녀는 수혼에게 미안했지만, 수혼이 감시자들을 상대하는 사이 도망칠 궁리만하고 있었다. 그런데..........이 사내..........너무 멋지지 않는가? 그가 상대한 사람이 누구인가? 아버지가 고르고 골라서 보낸 실력자들이다. 그런 그들은 너무나 간단하게 처리해 버린다.
더욱이 남자가 필치는 화려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무술.......그것은 아름다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했다. 인간의 몸이 저렇게 유연할 수 있는가? 인간의 몸이 새처럼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가 펼치는 무술은 벚꽃이 바람에 날리듯 화려하고 멋지지 않는가? 그녀는 사내의 모습이 온 몸이 떨떨 떨려오는 충격을 받았다.
지금 자신에게 걸어와 자신을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내.........그의 얼굴도 너무 멋지다. 흔히 보는 일본남자들처럼 조금은 나약하고, 조금은 여성스러운 그런 얼굴이 아니다. 굳게 다문 입술, 맑고 깊은 눈동자, 도도할 정도로 오뚝한 콧날.......요코는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아~~~~ 요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정신이 없어 자세히 살펴보지 않아 몰랐지만.......지금 눈앞에 있는 사내는 자신이 꿈꾸던 이상형의 남자가 않는가. 요코는 심적인 충격에 몸이 떨리고, 다리에 힘이 빠져 휘청거린다.
수혼은 여인이 휘청거리자 그녀의 어깨를 잡아 부축해 주었다. 요코는 갑자기 사내의 향기가 느껴지자 그의 품에 안겨왔다. 23년을 살아오며 남자에게 향기가 난다고 느낀 것은 처음이다. 수혼은 그녀를 부축해 주었다.
“무서워요. 딴 곳으로 가요.”
요코는 남자의 품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이 실종된 것을 알고 다른 감시자들이 걱정되어 하시라도 학교를 벗어나고 싶었다. 수혼은 여인이 애처롭게 이야기하고, 또 상황을 보아 쓰러진 사내들이 다시 일어나면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것 같아 그녀를 대리고 학교를 빠져 나간다.
학교를 벗어나 많은 인파 속에 들어간 그녀는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상쾌했다. 드디어 해방된 것이다. 자신의 주위를 지긋지긋할 정도로 맴도는 감시자들의 눈을 피해 도망친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멋진 남자와 같이 있다는 것이 더욱 기분 좋다.
요코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자신이 감시자의 눈을 피하면 하고 싶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지금..........신촌 거리에 반짝이는 네온사인 간판들을 보고 나이트클럽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 한두 번 갔지만 그때는 감시자들이 자신의 주위에 포진하고 있어 마음 놓고 놀 수 없었다. 인상이 험악한 사내들이 그녀주위를 지키고 있으니 그녀에게 접근하는 사람도 없었다. 무대에 나가도 사람들은 그녀를 피했다. 한마디로 재미 꽝이다.
“저기 나이트클럽 가실래요.”
“예~ 나이트요.”
“꼭 가보고 싶어요.”
“그 사내들은 누구죠. 왜 쫒기고 있었던 거죠.”
“아이~~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저기........저기 가고 싶어요. 예~”
그녀는 나이트클럽간판을 가르치며 수혼의 팔에 매달린다.
웃긴다. 처음 보는 사내에게 생떼를 쓴다. 자신을 구해 주었는데 지금까지 고맙다는 말도 없다. 기분이 상하려고 한다.
“이봐~ 나도 당신이 왜 쫒기고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더 이상 쫒아오는 사람도 없으니까 여기서 헤어지자고.”
“예~ 안돼요. 그냥 버리고 가면 다시 잡혀갈 거예요. 제발 도와주세요.”
“참~ 맘 편하게 나이트가자는 사람이 걱정도 팔자군. 딴 사람에게 도움 청해. 난 바빠~”
요코는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는 사람을 처음 본다. 자신의 주위에서는 향상 많은 사람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한마디면 죽는 시늉까지 한다. 자신이 원하면 세상에 가지지 못할 것이 없었고, 하지 못할 일이 없었다. 근데........이 남자는 자신의 부탁을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거절해 버린다. 그녀는 이런 경우를 처음 당해서 그런지 눈물이 난다. 억울하다. 자신이 억울할 것이 하나 없는데..........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운다.
“흑...........흑.......훌쩍.......훌쩍..........앙~”
그녀는 처음에는 훌쩍거리더니 나중에는 큰 소리로 울어버린다. 수혼은 그녀가 길가에서 큰소리로 울어버리자 황당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어린아이처럼 큰소리로 울고 있다. 수혼은 당황해서 그녀를 달려보려고 했다.
길 가던 사람들이 두 남녀를 지켜본다. 여자가 울고, 남자가 앞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다들 남자 놈이 여자를 울린다고 수혼에게 눈을 흘긴다. 사람들이 두 사람의 주위에 모여들기 시작하고 수혼은 입장이 난처해진다. 자신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수혼에게 머라고 한마디씩 한다.
여자를 울리는 나쁜 놈이라는 소리.........빨리 달려 보라는 이야기........남자 놈이 필히 바람을 피우고 여자를 울린다는 소리........책임질 행동을 하고 도망치려 하는 나쁜 놈이란 소리........
사람들은 상황도 모르고 수혼에게만 욕을 하고 있었다.
수혼은 그 자리에 있기 거북하여 여자의 손을 잡고 다른 곳으로 가려했다.
“앙~ 싫어.”
“왜 이래. 창피하게........그만하고 가자.”
“훌쩍.........훌쩍........그럼 내말 들어주는 거야.”
“알았어. 빨리 가~~”
수혼은 그녀와 인파를 헤치고 도망쳤다. 도대체 이 도깨비 같은 여자의 정체를 알 수가 없다.
막 나이트클럽 정문을 지나치려는데 여자가 수혼의 팔을 잡고 멈춘다.
“여기~~ 들어가요?”
“정말 왜이래~ 나도 이제 몰라. 당신 가고 싶은 데로 가란 말이야.”
“잉~~ 훌쩍...........훌쩍..........또 울어버린다.”
“뭐~”
“앙~~~”
“알았어..........들어가자.”
수혼은 그녀에게 손을 들고 나이트로 들어갔다. 나이트클럽은 하필이면 호식이 관리하는 업소다. 수혼은 약간은 찜찜한 마음으로 들어가니 역시나 자신을 알아보는 녀석이 있다. 수혼은 녀석에게 조용하라고 눈짓하고 테이블에 자리했다. 혹시라도 룸으로 들어가면 호식이 오해할 것 같아 무대 가까이 있는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그녀는 나이트를 구경하기 위해 모자를 벗는다. 수혼은 이 골치 아픈 여자의 정체가 궁금해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그녀는 화려한 조명과 귀를 올리는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언제 울어나 싶게 밝고 명랑한 모습이다. 눈방울이 유난히 크고, 하얀 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얼굴이다. 그녀의 입은 작고 앵두같이 붉게 물들어 있었고, 뺨에는 흥분했는지 약간의 홍조가 있다. 전체적으로 청순하고 귀여운 타입의 미인이다. 또한 모자 속에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어깨를 덮고, 허리까지 내려온다. 검고 윤기 흐르는 긴 생머리.........그녀는 수혼을 보고 씽긋 웃어주었다.
“우리 나가서 춤춰요.”
“자~ 이제 이야기 좀 해 보자고..........당신 정체가 뭐야~, 나에게 왜 이래~”
“피~ 재미없어. 나이트클럽 들어왔으면 놀아야죠. 자~ 나가요.”
그녀는 수혼의 팔을 잡고 무대로 끌고 가려 했다. 수혼은 짜증이 난다. 자신이 왜 이 여자의 요구에 꼼짝 못하고 있는지 한심하다. 수혼은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춤추고 싶으면 당신이나 나가.”
“치~ 알았어요.”
그녀는 혼자서 무대로 올라갔다. 수혼은 골치가 아파 웨이터를 불러 술과 안주를 주문했다. 지나의 말이 귀가에 맴돈다. 그녀는 대중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이 자신이란 걸 안다. 수혼이 눈을 감고 고민에 빠져 있는데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웨이터가 술과 안주를 테이블로 가져오더니 수혼을 바라본다. 수혼은 눈을 감고 있었다. 지금 무대에서 같이 온 여자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
“저기 손님.........손님~”
“무슨 일이야~”
“저기 좀 보세요. 손님과 같이 오신 분이 손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뭐~”
수혼이 무대를 바라보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가 무대, 그것도 초대가수들이 올라가는 무대에 올라가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는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버리고 꽉~끼는 청바지에 타이트한 상의를 입고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그녀의 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입이 벌어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정식으로 춤을 배우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웨이브, 뼈 없는 동물마냥 유연한 동작, 긴 머리를 휘날리며 현란한 춤을 준다. 그녀는 누굴 유혹하는 듯한 눈빛으로 가끔 수혼 쪽을 바라본다.........무대 밑에 있는 사람들은 춤을 멈추고 그녀의 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춤추는 와중에 수혼을 바라보며 나오라는 손짓을 하고 그녀의 손짓에 따라 사람들의 시선도 자연히 수혼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수혼은 웨이터 때문에 벌어진 상황을 보다 얼굴이 붉게 물들고 말았다. 도대체..........저 여자 뭐야~~~~
수혼은 그녀에게서 도망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자신이 왜 도망쳐야 하나라는 오기도 생긴다. 수혼은 웨이터가 가져온 양주를 글라스에 가득 따라 단번에 마셔버린다. 양주가 넘어가며 속에 불길이 솟아오른다. 수혼은 그녀를 두고 볼 수 없었다.
수혼은 성큼성큼 무대로 올라간다. 수많은 시선이 수혼에게 향했다. 수혼은 속에서 올라오는 술기운을 의지하며 애써 사람들의 시선을 외면하고 무대로 올라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수혼이 다가오자 그녀는 수혼의 어깨를 잡더니 보기에도 민만한 야스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수혼은 춤추던 그녀의 팔을 잡고 무대 밑으로 끌어내린다. 그녀는 수혼의 강한 힘에 끌려 무대에서 내려왔다. 주위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수혼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는 의외로 싱글거리며 수혼의 손에 이끌어 테이블로 돌아왔다.
“어~ 양주네. 저도한잔 주세요.”
그래 어디까지 가나보자. 수혼은 그녀의 글라스에 양주를 철철 넘치도록 따라 주었다.
“야호~ 목마른대 잘됐다.”
그녀는 수혼이 따라준 양주를 입으로 가져가더니 벌꺽벌꺽 마시더니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마셔버리고 잔을 머리위에 떨어 보인다.
“다 먹었죠. 딸꾹~ 당신도 한잔하세요.”
그녀는 수혼의 잔에 양주를 따라준다. 수혼은 방금 글라스로 마셔 먹고 싶지 않아 입만 대고 내려놓는다.
“저도 한잔 더 주세요..........딸꾹~”
다시 그녀의 잔이 가득 차고 그녀는 이번에도 모두 마셔버린다.
“야~~ 기분 최고다. 야호~~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야.”
“또 마실래.”
“주세요.”
수혼이 병을 들어보니 양주가 없다. 수혼은 웨이터를 불려 양주를 주문했다. 그녀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녀는 손으로 턱을 받치고 수혼을 바라본다.
“당신........딸꾹~~ 멋있다. 내가 찾던 이상형이야.”
(지랄을 해라~ 으~~그 골치야. 얼마나 마시나 보자~)
수혼은 대답하지도 않고 웨이터가 가져온 양주를 그녀의 잔에 따라 주었다. 그녀는 잔을 들어 장난하듯 가지고 놀더니 입에 가져가 마신다.
양주는 입에 들어가는 양보다 밑으로 흘리는 양이 더 많다.
“어!~~~ 왜 이러지........딸꾹~~”
“꽝~~~~”
그녀는 술잔을 내리면서 테이블에 함께 쓰려져 버리고 만다. 수혼은 그녀가 술을 잘 마시는 줄 알았다. 그러니 그 많은 양의 양주를 숨도 쉬지 않고 단번에 마시지.........근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수혼은 그녀를 흔들어보았다.
정신없음.........의식불명...........
“끙~~~~~”
수혼은 그녀를 내버려 두고 자기 자리에 앉았다. 저 여자.........성질난다.
그때 호식이 테이블로 왔다. 호식은 쓰려진 여자와 수혼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누구야~~”
“몰라~”
“몰라(?)............같이 온 사람을 몰라.”
“길가다 우연히 만난 여자야.”
“예이~~ 아닌 것 같은데........ 혹시 몰래 만나는 여자 아냐.”
“장난하지 마, 그럴 기분 아냐.”
“그래~~ 미인인데..........좀 전에 보니까 춤도 죽이고, 혹시 꽃뱀 아니야.”
“그건 아닌 것 같아. 일본 사람이야.”
“일본인(?)...........음~ 자세히 보니 그런 것도 같다. 이 여자 의식불명인데. 어떻게 할 거야.”
“뭘~~”
“나 잡아 잡수~ 하고 있는데, 그냥 둘 거야.”
“허참!~~~~ 황당하네.”
그때 수혼의 품에서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수혼은 전화를 받아보았다.
“여보세요.”
“수혼씨............어디 있어요.”
“누구세요.”
“저 목소리 기억 못해요. 성희예요. 지나 친구~”
“아예~ 무슨 일이죠.”
“수혼씨~ 어쩌면 그럴 수 있어요.........하여튼 이곳으로 빨리 오세요.”
“예~ ”
“지나하고 같이 있어요. 빨리 오세요. 여기가 어디냐면 삼화대학 교문에서 100M정도 떨어진 ○○주점 이예요. 빨리 오세요.”
성희는 자기 할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 버린다. 지나와 친구들이 주점에 같이 있는 모양이다. 수혼은 잠깐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그들에게 가야 할 것 같았다.
“호식아~ 가봐야 할 곳이 있어. 뒤를 부탁해.”
“천랑~ 그냥 가면 어떻게........이 여자 어떻게 하라고.”
“너 알아서해.”
수혼은 나이트를 빠져나와 지나가 있다는 주점으로 달려갔다.
- 붉은미르 : 약속 때문에 급하게 올림니다. -
제 목: 낭만을 꿈꾸는 늑대 (54부 )지나&수혼의 마음, 성희와의 섹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