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꿈꾸는 늑대 44부
수혼은 승합차에 호식일행과 함께 타고 있었다. 여인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신기하다는 듯이 창밖풍경을 구경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마치 소풍 나온 어린아이마냥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자신이 잡혀 간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처럼 보였다. 수혼은 그녀가 귀엽기 그지없었다. 초등학생 같은 작은 체구에 인형처럼 귀여운 얼굴........그녀는 너무 귀여워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였다. 수혼도 그녀가 자신을 공격한 여인이란 걸 망각할 정도로 그녀의 귀여운 모습에 빠져 있었다.
짧은 교복치마에 타이트한 상의가 그녀를 더욱 귀엽게 보이게 만든다. 큰 눈을 깜박거리며 어리아이처럼 놀란 얼굴로 서울야경을 바라본다. 옆에 험상궂게 앉아있는 호식이나 다른 일행도 그녀의 천진난만한 행동에 기가 막힌 모양이다.
차가 체육관에 도착하자 수혼은 호식에게 여인과 같이 올라가라고 했다.
“호식아~ 저 여자 고수야~ 내가 직접 지키고 있어. 다른 녀석들에게 맞기면 도망갈지도 몰라 알았어.”
수혼은 집으로 돌아가 샤워를 했다. 몸에서 진동하던 악취가 가시자 조금은 살 것 같았다. 수혼은 옷을 갈아입고 면도를 들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에 도착한 수혼의 얼굴이 구겨진다. 호식이 여인을 천장에 매달아 놓고 있었다. 머리가 바닥을 향하도록 반대로 묶여 있었다. 그녀의 작은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짧은 치마가 흘려내려 아름다운 다리와 허벅지까지 모두 드러나고 작은 엉덩이에 걸린 흰색 팬티가 드려나 있었다.
“불어 쌍년아~ 내가 어둠의 천사지........왜 말을 안 해.”
호식의 주먹이 여인의 배를 강타한다.
“퍽~~”
여인의 입에서는 신음소리도 흘러나오지 않고, 표정만 약간 찡그린다.
“뭐하는 짓이야.”
“이년이 대답도 안하잖아. 여기 들어와서 아무리 물어도 한마디도 안하고 있어.”
“그런다고 사람을 이렇게 다루면 어떻게..........내가 심문할게.”
“천랑이 나선다고 달라지겠어. 이년 독종이야. 아무리 맞아도 신음소리하나 없어.”
“잔말하지 말고...........넌 나가서 청량리 업소 주인들이나 몇 명 잡아와”
“뭐하게”
“직접 대질 신문 좀 하게. 업소 주인들이라면 이년에 대해 잘 알겠지.”
“알았어.......자 수갑 열쇄야.”
호식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수혼에게 열쇄를 주고 나가자 수혼은 여자를 내려주고 수갑도 풀어주었다. 여인은 수갑이 풀리자 몸을 몇 번 움직여 본다. 그녀의 뺨이 조금 부어있었다. 호식에게 맞은 모양인데...........수혼은 여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직 확실한 물증도 없는 상태가 아닌가. 그녀가 어둠의 천사라는 증거는 아직 없다.
“보내주시는 건가요.”
“몇 가지 확인해보고 내가 잘못 본 게 확실하면 그때 보내줄게.”
“생각보다 신사적이네.........어둠의 천사에게 암습 당했다고 하더니 말짱한 모양이죠.”
“죽는 줄 알았지. 이런 면도를 다루는 고수가 있을 줄은 몰랐어.”
수혼이 들고 있던 면도를 휘두르자 검이 팔랑거리며 움직인다.
“잘 안되는군. 이런 무기를 수련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신법과 수많은 수련이 필요하겠지.”
“그렇죠. 팔목에 보호대를 차지 않으면 자기 손목 자리기 딱 이죠.”
“맞아. 손목 힘도 대단할 거야. 여자가 수련하기 힘들지.”
“여자라고 깔보는 건가요. 여자도 수련가능해요. 면도는 당신 말대로 절제된 동작과 유연한 신법이 있어야 사용가능하죠. 남자보다는 여자가 수련하기 접합해요.”
“근데 이런 면도를 사용할 정도면 연검(軟劍)을 쓰지 왜 이런 짧은 검을 쓰지. 이건 30센치 정도밖에 안되잖아. 무기는 길수록 유리한데 말이야.”
“자신의 몸에 맞는 무기를 써야죠. 길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죠. 평소에 손목에 감고 다녀 휴대하기도 편하고 여러 가지 좋은 점이 있죠.”
“그래~ 맞는 말이야. 당신........무술에 대해 많이 아는 모양이야.”
“제........제가요..........그냥 주워들은 말이죠.”
여인은 순간 당황하며 고개를 돌려 버린다. 수혼은 피식 웃더니 면도를 휘둘려 본다. 면도가 빛을 토하며 수많은 빛을 토한다. 여인은 검이 빛을 토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수혼을 바라보다 면도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수혼을 보고 놀람을 감추지 못한다.
“역시 힘들군. 생각처럼 되질 않아.”
“그.......그게 뭐죠. 검법 인가요. 체대(여인이 차는 허리띠)무공 같지는 않고 첨보는 무공이네요.”
“음양도 검법 중 하나야. 칼에 힘이 없어서 다루기 싶지 않군. 딴 사람들은 기라도 주입하나.”
“기를 주입할 정도면 검의 달인이죠. 보통은 체대무공을 사용해요. 부드러운 천으로 펼치는 무술이라 면도를 사용하기 적합하죠.”
“오호~...........체대무공~.........그건 옛날 중국에서 건너온 무술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죠. 조선시대 기생들이 하던 기무가 무공이 되었다는 말도 있고........살풀이 춤 보면 체대 같은 긴 천을 사용하죠. 중국에서 건너온 무술과 한국고유 무술이 융합되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은 독자적인 형과 식으로 발전한 상태죠.”
“당신도 면도 사용할 줄 알아.”
“제가 바보예요............당연히 모른다고 하죠. 그리고 사실대로 말해서 전 정말 몰라요.”
“전 정말 몰라요(?)............그 말은 이걸 사용하는 사람은 안다는 뜻 같군.”
“왜요~ 심문이라도 하시게요. 그 남자처럼 매달고 때리고 할게예요. 겁나지도 않으니 맘대로 해봐요.”
수혼은 당차게 나오는 여인이 귀엽게만 느껴진다. 지금도 눈을 치켜뜨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데 그 표정이 너무 귀엽다.
“당신 정말 귀엽다.”
“카~~~악~~~ 당장취소해요.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을........취소 못해요.”
“허~ 귀엽다는데 왜 소리 지르지............그게 그렇게 듣기 싫어.”
“경고했어요. 취소해요!!!!”
“못하겠다면 어쩔 거지.”
여인은 씩씩거리며 수혼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리를 손을 얻고 얼굴을 붉어질 정도로 화를 내는데 수혼은 그 모습이 귀엽게만 느껴진다.
“당신 죽고 싶어요.”
차갑다. 꾀꼬리 같은 음성이 아니다. 딴 사람에게는 모르겠지만 수혼에게 만큼은 입가에 미소까지 머금고 부드럽게 말하던 음성이 아니다. 낮게 깔리며 어름처럼 냉기가 날린다. 수혼은 나긋나긋한 태도로 일관하다 귀엽다는 말에 과잉 반응하는 여자가 이상했다. 귀엽다는 말은 자신의 솔질한 표현이다.
“왜 기분 나빠~...........겁나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 귀엽다는 말 이예요. 마지막 경고예요. 지금이라도 취소해요.”
“못하겠다면.......”
그녀의 손이 금발머리를 쓸어 넘긴다. 그녀는 어깨까지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를 만지작거리더니 수혼을 향해 팔을 휘두른다.
“휘~~이~~익”
무언가 번쩍하는 것이 수혼의 심장을 행해 날아왔다. 수혼은 갑작스런 공격이라 칠성밟기를 실천해 피해보지만 날아오는 물체를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퍽~~~”
날카로운 무언가가 어깨에 깊이 박힌다.
“흥~ 피했단 말이죠.”
“휘~~이~~~익”
다시금 번쩍하는 것이 가슴을 행해 날아온다. 처음 던진 것보다 속도가 더 빠르다. 이번에는 물체가 회전까지 하며 주위공기가 소용돌이친다. 수혼은 뒤로 회전하며 물체를 피했다. 물체는 수혼의 가슴 위를 쓰치고 지나가며 입고 있던 남방을 찢어버린다. 다행이 피부는 상하지 않았지만 배 가죽이 따끔거리는 것이 잘못했으면 꼬치구이가 될 뻔 했다.
“퍽~~”
물체는 체육관 벽에 깊이 박힌다.
“흥~ 대단하군요.”
여인은 수혼을 바라보면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수혼은 여인과 떨어진 곳에 착지하며 어깨를 보았다. 어깨에 무언가가 안쪽 깊숙이 박혀 있었다.
“비도(飛刀)술인가!...........왜 더 공격하지 않지.”
“던질게 떨어졌어요.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내 암기술을 피한 사람은 처음 보는 군요.............하지만 내손에 암기가 더 있었다면 당신은 죽었어요.”
“지금이라도 해보지 그래. 한쪽 팔을 못 쓰니 적수공권으로 상대해도 당신이 이길 것 같은데.”
“싫어요. 내가 어둠의 천사도 아닌데 당신을 죽일 필요는 없죠.”
“이런 무술을 선보이고도.............끝까지 오리발이야.”
“증거 있어요. 제가 어둠의 천사라는 증거라도 있냐고요. 당신을 기습한건 제가 아니 예요.”
“맞아. 당신은 아냐. 이런 비도(飛刀)술을 익히고 있었다면 면도를 사용할 일이 없겠지. 하지만 어둠의 천사는 2명이야. 나머지 한명이 당신이 아닐까?”
“말도 안돼는 소리 마세요. 당신이 계속 억지를 쓴다면 제도 가만있지 않겠어요.”
“어떻게 할 건대.”
여인은 씩씩거리며 수혼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버렸다. 대답하기도 싫은 모양이다.
수혼은 어깨에 박힌 물건을 억지로 빼내 엇다. 어깨가 갈라지며 삼각형의 물체가 나온다. 그녀의 귀에 걸려있던 귀걸이다. 표면 은색여우가 음각되어 있는 삼각형의 귀걸이........
여인은 수혼이 어깨의 상처를 벌리고 귀걸이를 빼내자 표정을 구겨진다. 수혼의 어깨에서 피가 철철 흘려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 사이에 수혼의 흰색남방이 붉게 물들어버린다.
“당신 괜찮아요.”
“아파..........당신 귀에 걸려있던 귀걸이군. 그래서 2개 이상 날리지 못한 건가?”
“이리 와 봐요. 지혈이라도 시켜야죠.”
“또 공격하려고”
“안한다고 했죠. 공격할 생각이면 아까 했죠.”
여자는 수혼에게 다가오더니 수혼의 남방을 벗겼다. 수혼은 몸속 세포들을 팽팽하게 기장시키며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자는 수혼의 남방을 찢어서 길게 만든 다음 상처를 싸매기 시작했다.
“귀엽다는 말 다시는 하지마세요. 꼭 어리아이라고 놀리는 것 같아서 싫어요. 제 나이가 25살이 예요. 당신보다 많아지 않나요?.”
“그런 뜻은 아니야. 기분 나쁘다면 미안하군.........근데 당신 정말 아니야. 내가 잘못 본건가?”
“거짓말 안 해요.............자 됐어요.”
그녀는 상처를 동여매 주고 한발 물려났다.
상처에서는 더 이상 피가 흘려 나오지 않고 있었다.
두 사람사이에 팽팽하던 기장감이 어느 정도 풀렸다. 그녀도 공격할 의사가 없는 것 같고, 수혼도 그녀를 공격할 의사가 없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마주보며 서 있었다. 그녀도 수혼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호식이 업소주인 몇 명을 잡아왔다. 호식은 수혼이 상의를 벗어던지고 또한 어깨를 천으로 감싸고 있자 놀라는 눈치다. 수혼은 호식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잡혀온 업소주인들은 나이가 든 여자들 이였다. 수혼은 호식과 여인을 체육관에 두고 업소주인들을 따로 불려서 여인에 대해 자세히 물어봤다.
업소주인 입에서는 하나같이 여인이 업소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대답뿐이다. 오늘 뿐만 아니라 여인은 업소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수혼이 겁을 주며 물어봐도 역시나 한결같은 답이다.
내가 잘못본건가. 확실히 그녀가 맞는데........... 하지만 면도를 사용하는 여자와 지금 잡혀있는 여자가 사용하는 무술은 틀리다. 한명은 검술을 사용하고 한명은 비도(飛刀)인지, 암기인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검술과는 다른 무술을 사용한다. 습격한 여자가 암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면 면도를 사용하지 않고도 자신을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수혼은 업소주인들을 돌려보내고 체육관으로 올라갔다. 체육관에는 호식과 여인이 팽팽한 긴장감 속에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천랑~ 이년 확실한 것 같아.”
“둘이서 뭐한 거야.”
“방금 대련해 봤는데........장난이 아니야.”
“둘이 싸운 거야.”
“저 새끼가 또 귀엽다고 하잖아~”
“호식아~~ 잠깐 나가 있어. 내가 알아서 할게.”
“천랑 저년 확실하다니까? 어둠의 천사 맞아. 무형각이나 무형수를 너무나 쉽게 피해버려. 무슨 심보지 피하기만 하는데 상당한 고수라고..........”
“알았어. 나도 알아~ 일단 나가.”
호식은 씩씩대며 밖으로 나갔다. 수혼은 바닥에 주저 않았다.
“당신도 앉아봐~ 할 말 있어.”
여인은 수혼의 곁에 와서 앉는다. 여인은 호식과는 다르게 수혼은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
“당신 말이 맞아. 당신은 업소를 떠난 적이 없어........하지만 내가 본건 확실히 당신얼굴이 맞아. 얼굴뿐만 아니라 체형도 같아. 다만 사용하는 무술이 틀리더군.........어떻게 된 거지 모르겠지만 날 습격한 사람과 당신의 얼굴과 체형은 똑 같아. 여기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겠어.”
“제가 왜 설명해야 하죠. 제가 습격한 사람이 아니란 걸 확인했으면 보내주셔야죠. 당신 입으로 했던 말을 지키지 않을 건가요.”
“내가 한말은 지켜..........좋아~ 오늘은 그냥 보내줄게..........하지만 당신이 어둠의 천사와 연관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다음에 만날 때는 이렇게 쉽게 보내주지 않을 거야.”
“저도 한마디 하죠. 일단 당신이 한말에 책임을 진다니 기쁘네요. 다음에 만날 때는 많은 암기를 준비하죠. 당신도 마음 단단히 준비하고 오세요.”
수혼은 여인과 청량리까지 함께 갔다. 호식이 반대했지만 수혼은 자신이 할말을 지키고 싶었다. 그녀가 업소를 떠난 일도 없고, 자신을 암습한 사람은 아니다. 분명 이 여인이 어둠의 천사와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의심이 나지만 물증이 없다.
업소 앞에서 그녀는 떠나는 수혼을 바라보고 있었다. 업소 문이 열리며 노파가 나와 그녀의 옆에 같이 섰다.
“이년아~ 정신 차려”
“엄마~ 저 사내 정말 멋지지 않아. 볼수록 맘에 드는데”
“이년이 정말 미친 건가. 야~ 이년아 남자라면 죽어도 싫다며.”
“엄마~ 서울이란 도시 말이야. 정말 멋있더라. TV에서 보던 모습하고 똑같아. 그 사람하고 같이 보니까 더 아름답게 보이더라고.”
“허~ 큰일이내 이년이 허파에 바람이 들어갔어. 정말 그놈이 마음에 들어.”
“응~ 싸움도 잘하고........딴 남자들처럼 술 취해서 추태 보이지도 않고........자기만 생각하는 남자새끼들하고는 틀리는 것 같아.”
“음~~~ 일단 안에 들어 가봐~ 언니가 심하게 다친 모양이다.”
“면도까지 빼앗길 정도면 심하게 다쳤겠지. 엄마~ 그런데 어떠하지........나도 월아를 빼앗기고 왔어.”
“뭐~ 월아를 빼앗겨...........너 그게 뭐지나 알아.”
“사부가 나에게 준건데........특별한 거야.”
“이년아 그건 문파의 상징이야. 월아문 전인을 상징하는 물건이란 말이야. 그걸 빼앗기고 오면 어쩌자는 거야.”
“그게 중요해.”
“이년아~ 그건............잘 들어. 월아는 월아문의 상징일 뿐 아니라....... 월아문 여인들은 사랑하는 정인에게만 월아를 주는 전통이 있어. 한번 주면 월아를 가진 남자의 여자가 되어야 된단 말이야.”
“뭐~~ 그........그걸 왜 지금까지 이야기 안 했어.”
“남자 싫다며........평생 그런 일 없을지 알았지. 이걸 어째”
“찾아오면 돼지.........내가 찾아올게.”
“맘대로 해............다신 못 찾아오면........내년은 평생 그놈에게 순종해야 해. 시집을 가든지 종이 되던지. 평생 그놈 곁에 머물려야 하다고.”
“종~ 시집(?)...........생각 좀 하자.”
수혼은 집에 돌아가 상처를 치료했다. 산에서 스스로 치료해본 경험이 많기 때문에 익숙한 손놀림으로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바르고 동여맨다. 다행이 팔을 움직이는데 조금 불편할 뿐, 큰 상처는 아니다. 그녀가 처음부터 두 번째 날린 귀걸이처럼 강맹한 힘으로 날렸다면 어쩌면 생명이 왔다 갔다 했을 것이다.
치료를 끝낸 수혼은 한 쌍의 귀걸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삼각형의 쇳덩이. 금빛으로 반짝이는 것이 무척 아름답다. 금도 아니고, 쇠나 구리도 아니다. 무슨 합금 같은 제질 이다. 벽에 박힌 귀걸이가 긁힌 자국 하나 없이 말끔하다. 거기에 은색여우가 음각되어 있다. 살아있는 듯 너무나 정교한 문양이다.
수혼은 귀걸이를 서랍 속에 집어넣었다.
어둠의 천사라는 2명의 여인........두 명의 여인은 동일인이가 아니면 서로 다른 사람인가. 한명은 면도를 사용하는 여인, 한명은 암기를 사용하는 여인.......사용하는 무술은 틀리지만 생김새는 똑 같다.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는다면 분명하다. 혹시 쌍둥이는 아닐까?
다음날 수혼이 학교를 마치고 막 교문을 나서는데 지나가 교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짧은 미니스커트에 나시티를 입고, 청색 점퍼를 허리춤에 묶여두고 있었다. 지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힐긋힐긋 쳐다보는 남학생들이 많았다.
지나는 수혼을 발견하고 총총걸음으로 수혼에게 다가온다.
“누구 만나려 왔어.”
“치~ ........수혼씨.......보고 싶어서 왔지.”
“전화라도 하고 오지.”
“반갑지.......수혼씨 놀래 주려고 했는데........안 놀랬어.”
“너 입고 있는 모습 보고 더 놀란다.”
“왜~ 예쁘잖아.”
“제발 저번 보았던 수수한 차림으로 입고 다녀. 뭐야~ 딴 남자들 힐끔거리는 거 안 보여.”
“수혼씨에게 예쁘게 보이려는 건대.........싫어.”
“지금 모습도 아름답지만.......난 지나의 수수한 차림이 더 좋아.”
“치~~~ 알았어..........밥 먹었어. 이번에는 내가 밥 사줄게.”
“그래..........같이 먹자.”
수혼은 지나와 가까운 음식점으로 가려하는데 차한대가 두 사람 곁으로 다가 왔다. 자나은 수혼에게 살짝 윙크를 한다.
“기사아저씨가 떨어지질 않아. 요즘에 성철파가 날 노린다는 소문이 있데.”
문이 열리며 2명의 사내가 차에서 내렸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는 군요.”
“아~ 죽죽. 안녕하세요...........요즘도 비상인가요. 체육관도 안 오고~”
“한참 전쟁 중이라~~ 사부소식은 잘 듣고 있습니다. 어둠의 천사를 몰아내고 청량리를 접수했다죠.”
“아직 이죠. 588은 평정하지 못했는데요.”
“그것만 해도 어디예요. 우리도 손들어 버린 곳인 대. 우린 어둠의 천사라는 말만 들었지 형체도 못보고 당하기만 했는데요.”
“제 이야기만 하네요. 요즘 형님은 어때요.”
“아직 병원에 계시죠.........종로가 평정되고, 은평구을 밀고 있어요. 조만간에 성철파가 두 손 들겠죠.”
“예이~ 재미없어. 자~ 이제 확인했음 돌아가세요.”
“예~ 아가씨가 우릴 빨리 보내고 싶은 모양이네........우리가 두 분만의 시간을 방해 했네요. 요즘에 성철파가 아가씨를 노린다는 소문이 있어서.......사부가 동행하신다면 저희들도 안심할 수 있죠.”
지나가 죽죽을 밀자. 죽죽은 웃으면서 차로 돌아간다.
“사부 너무 늦지 않게 보내주세요. 강철형님이 걱정합니다.”
“알았어요.”
차가 떠나고 지나와 수혼은 가까운 음식점으로 갔다. 수혼은 요즘 지나를 만나면 즐거워진다. 지나의 밝은 웃음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행동에 편안함을 느낀다.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맹세 했지만 지나을 보면 자꾸만 흔들린다.
두 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가까운 호프집으로 갔다.
지나가 간단하게 한잔 하자고 고집을 피우니 대책이 없다.
술을 마신 지나의 얼굴이 붉어진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입이 쉬지 않고 재잘거린다.
학교이야기, 친구들 이야기.........지나는 자기 주위에 일어나는 일을 재잘거리면 떠든다. 수혼은 그런 지나를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나를 보고 있자니 청량리 일 때문에 팽팽하게 긴장한 근육들이 풀리며 상쾌해 진다.
10시가 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혼은 지나와 집으로 갔다.
오랜만에 오는 지나의 집이다.
“수혼씨. 잠깐 들어가서 차라도 한잔하고 가.”
“가봐야지.”
“아이~ 잠깐만.........수혼씨~~”
지나가 수혼의 팔을 붙잡고 매달린다. 지나가 상처부위를 건드려 피가 터져 버린다. 수혼이 최대한 조심하고 있었는데 지나가 매달리는 바람에 피가 터져 남방에 붉은 핏자국이 번지고 있었다.
“어머~ 수혼씨~ 이게 뭐야~ 다친 거야.”
“조금~ 걱정할 정도는 아냐.”
“왜~ 말도 안했어. 아이~ 정말..........들어가서 치료하고 가. 아빠 방에 상비약 있으니까 내가 치료해 줄게.”
“괜찮아. 집에 가서 내가 하면 돼.”
“화낸다. 빨리 들어가.”
수혼은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들어갔다. 집안에는 일하는 아줌마들만 있었다. 양지댁은 수혼이 집을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지금 보이는 아줌마들은 새로운 얼굴들 이였다.
강철이 아직 퇴원하지 못하고, 은양도 간호 때문에 병원에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안이 설렁하다. 지나는 수혼이 쓰던 방으로 안내한 다음 자신은 밑으로 내려갔다.
혼자 남은 수혼은 방안을 둘려보았다. 자신이 떠났어도 방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수혼은 침대에 앉아 상의를 벗었다. 상처에 감싼 붕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지나는 약상자를 가지고 방으로 들어오다 수혼의 벗은 상의를 보고 얼굴을 붉힌다. 수혼의 상의를 벗은 몸은 조각같이 아름답다. 군살이라고는 하나 없이 세세한 근육들까지 적당히 발달해서 옷 입고 있을 때는 모르지만 벗은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남자의 몸도 이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녀는 침대에 약상자를 내려두고 수혼의 상처를 유심히 살펴본다.
“어떻게 된 거야. 싸우다 다친 거야.”
“조금~ ”
“내가 조심하라고 했지. 일단 소독부터 해야겠네.”
지나는 소독약을 솜에 묻히고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상처를 깨끗하게 소독하고, 약을 바르고 붕대로 감싸준다. 치료를 끝난 지나가 약상자를 정리한다.
수혼은 사랑스런 지나의 모습에 약상자를 정리하던 지나의 손을 잡아본다.
따뜻하다. 술기운 때문인지 열기 때문인지 지나의 손은 무척 따뜻했다. 손을 잡힌 지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여버린다. 그녀는 다른 손으로 수혼의 손을 잡아 살며시 잡힌 손을 빼낸다.
“수혼씨........”
지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늦은 시간........둘만 있는 공간이다. 집안에 어른들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둘만의 공간........가슴이 쿵쾅거리다. 적당히 마신 술 때문에 붉어진 얼굴이 더욱 붉어진다. 수혼이 손만 잡을 뿐인데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지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많다. 요즘 와서는 많이 변했지만 옛날 왈가닥의 모습을 상상하고 지금의 모습을 보면 선득 이해되지 않을 정도다. 수혼은 지나의 흘려 내린 머리카락을 살며시 잡아 보았다. 부드럽다.
지나는 수혼이 자신의 머리칼을 잡고 장난하다 살며시 올라와 자신의 뜨거운 뺨을 부드럽게 만져주자 부끄러움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지나의 마음속에서는 두개의 마음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수혼에게 안기고 싶다는 본능적인 감성과 이러면 안 된다는 이성이 교차하는 것이다. 수혼의 손은 자신의 뺨을 부드럽게 만지더니 턱을 잡아 들어올린다. 부끄럽고 김장되어 눈을 감아버린다.
조금씩 떨고 있는 지나의 눈썹.........붉게 달아오른 지나의 뺨..........입술은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어떤 기대감에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지나의 붉은 입술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수혼의 입술이 다가간다. 수혼의 입술도 떨리고 있었다. 여인과 처음 키스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긴장되긴 처음이다.
뜨겁다. 멍해진다. 아무생각도 안 든다. 몸속에 알 수 없는 열기가 올라올라와 온몸이 뜨거워진다. 입술에서 전해오는 짜릿한 느낌에........그 작은 느낌에 몸에서 힘이 빠져버린다.
부드러운 무언가가 입술을 빨아주다 입술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잇몸을 자극한다.
파르르 떨리는 지나의 입술은 달콤하다. 그녀의 입술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촉촉한 입술에 자신의 입술이 포개지며 입술을 빨아본다. 그녀의 얼굴 근육이 심하게 떨린다. 살며시 어깨라인을 만지다 등을 쓸어본다. 그녀의 몸을 움찔거리며 팔로 가슴을 가린다. 수혼은 지나를 따뜻하게 안고 싶었지만 중간에 그녀의 팔이 가로막아 더 이상의 접근은 힘들다.
잇몸을 자극해도 입술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숨이 턱까지 차는 것 같다. 심장이 진정하지 못하고 꿍꽝거린다. 등을 쓸어주는 수혼에의 손에 온몸이 짜릿한 감흥이 밀려온다. 자시도 모르게 가슴을 가린다. 부끄럽다. 이젠 숨을 참을 수 없다. 숨을 쉬기 위해 입을 조금 열린다. 부드러운 무언가가 입속으로 거침없이 들어와 입안에서 움직인다. 깜짝 놀라 수혼의 가슴을 멀어버린다.
“헉.......헉.......하이......하이......하이”
지나는 자신을 밀어 버리고 침대에 쓰려져 버린다. 그녀는 해파리처럼 늘어져 눈도 뜨지 못하고 가쁜 숨만 몰아쉬고 있다. 머리칼이 그녀의 얼굴을 덮고 있었다. 수혼은 지나의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지나의 붉게 물든 얼굴이 나타났다.
“미안해.......하이.......하이”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수혼은 지나의 뺨에 살짝 키스해 주며 지나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지나는 힘없이 수혼의 가슴에 기대왔다.
남자에게도 향기가 있을까? 지나는 수혼에게 남자의 진한 향기를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품은 따뜻하고 포근하다. 꿈속에서도 안겨보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이 한없이 행복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용기가 나지 않는다.
수혼은 지나의 등을 토닥거리며 그녀의 숨이 편안해 질 때까지 안아주었다. 그녀는 유리그릇 같았다. 조그만 거칠게 다루면 깨져버릴 것같이 불안하다. 그녀의 숨이 자자들자 지나의 어깨를 잡고 얼굴을 마주보았다. 지나는 부끄러움에 지금도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수혼은 다시금 지나의 붉은 입술에 키스를 했다. 역시나 파르르 떨기만 할뿐 입술이 열리지 않는다.
짧게 입맞춤을 하고 물려난다. 부드럽게 다시 입술을 맞춘다. 그녀의 입술을 한번 빨아주며 다시금 입술을 때어 버린다.
지나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수혼의 달콤한 입술이 다가오자 어떤 기대감에 들떠 있었지만 입술은 야속하게도 금세 떨어져 버린다. 다시금 다가온 입술, 이번에는 입술을 부드러운 무언가가 빨아주더니 역시나 기대감만 주고 떨어져 버린다. 몸속에 피어오르는 열기 때문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불타를 육체를 달래고 싶었다. 몸속에서 아우성치는 세포들이 무언가를 바라고 있었다. 그 무언가를.......
수혼의 입술이 다시금 다가간다. 그녀의 입술이 조금 열리며 뜨거운 입김이 얼굴을 때린다. 수혼의 혀가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이번에는 거부하지 않는다. 지나의 팔이 자신의 목을 감는다. 혀가 입속에 들어가 잇몸을 자극하고, 여기저기 찾아보아도 지나의 혀는 나타나지 않는다.
지나는 목이 타는 득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수혼의 입술이 다가오자 무슨 힘이 있었는지 수혼의 목을 감아버렸다. 그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그에게 매달리고 싶었다.
수혼의 혀가 입속에 들어와 자극하고 있었다. 무섭다. 자신의 불타는 육체가 무섭다. 그에게 향하는 마음이 무섭다. 이대로 무너져 버릴 것 같다. 자꾸만 안으로 들어온다. 아무리 도망쳐 보아도 이젠 도망갈 공간이 없다. 부드러운 것이 자신의 혀를 건드린다. 부르르 떨려온다. 숨이 막힌다. 모르겠다. 혀가 엉킨다.
지나의 혀를 꼭꼭 치른다. 지나의 혀가 힘없이 내밀어 진다. 혀가 서로 엉키며 입안에 침이 가득해 진다. 그녀의 혀는 움직이지 않는다. 살며시 손을 들어 지나의 가슴을 만져본다.
꽉~~ 자나의 팔에 힘이 들어가며 숨이 막힌다.
지나는 수혼의 손이 젖가슴에 다가오자 팔에 힘이 들어가 버린다.
“윽~~~”
수혼이 지나의 젖가슴을 살며시 잡아보자 지나의 팔이 내려와 상처를 건드려 버린다. 순간적으로 밀려온 통증에 수혼의 입술이 떨어져 버린다.
수혼의 짧은 신음소리에 지나도 화들짝 놀라 급히 수혼의 가슴을 밀어버린다.
“하이......하이......수혼씨......하이.....하이......하이.”
“휴~”
수혼은 한숨을 쉬었다. 상처의 아픔은 잠깐이지만 분위기가 깨져 더욱 아쉽다. 수혼도 정신을 차린다. 분위기에 때문에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 모양이다.
“가봐야겠다.”
“하이......하이.........미안해~”
“아냐~ 괜찮아. 늦었는데.........가야지.”
“응~~~”
수혼이 남방을 걸치고 일어나자 지나는 힘없이 침대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지나는 수혼을 잡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금 수혼을 잡으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한없이 무너질 것이다. 마음속에서 간절히 바라지만.......아직은 무섭다. 수혼이 문으로 걸어가지 살며시 일어나 본다. 다리에 힘이 없어 쓰려질 것만 같다.
수혼이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지나는 힘을 내고 수혼의 뒤를 따라갔다.
현관 앞에서 수혼은 지나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떠났다. 지나는 멀어지는 수혼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이 순간.........수많은 생각이.............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생각해보니 네일이 휴일이군요.
네일 오늘 쓴 글까지 합쳐서 2편을 올리려 했는데........생각해 보니 내일은 쉬는 날이네.
연휴기간 즐거운 시간 되세요.
- 붉은미르 -
제 목: 낭만을 꿈꾸는 늑대 (45부 )미희와의 대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