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꿈꾸는 늑대 36부
병법의 기본은 병사들의 지휘, 통제에 있다. 계략이나 작전 등은 차후의 문제로 병사들의 마음을 하나로 통일해서 지휘관의 손발과 같이 지휘, 통제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기본이다. 100만 대군이 10만의 군대에 패하는 원인은 작전과 계략에 의한 것도 있지만 지휘관이 병사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병사들이 흩어지고, 각자 살기위해 도망치다 전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손자병법을 기술한 손자가 궁녀들을 정예병으로 만들 수 있다고 장담하자 왕은 손자에게 궁녀들을 훈련시키라고 지시한다. 그때 손자가 가장 먼저 한일은 왕의 총애를 믿고 군율을 따르지 않는 와의 애첩 2명의 목을 베어버린 일이다. 그 후 궁녀들은 손자의 말이라면 무조건 복종하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자는 궁녀들을 정예병처럼 만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병법 중에서 가장 대비되는 병법서는 오자와 묵자의 병법이다. 오자와 묵자는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들로써 춘추전국시대를 대표하는 병법가이며 사상가였다. 다만 오자가 전장을 누비며 명장에 반열에 오른 것과는 반대로 묵자는 계략을 만드는 전략가적 측면이 강했다.
오자와 묵자는 인간본성을 이용한 병법을 구사했는데 오자는 성선설을 근거로, 묵자는 성악설을 근거로 했다는 점이 다르다.
오자는 사람의 착한 본성을 이용해 병사들에게 감동을 주고, 지휘관인 오자를 친형이나, 친아버지처럼 믿고 따르게 하여 병사들을 하나로 응집하여 전장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취했다.
오자가 다친 병사의 다리의 고름을 친히 입으로 빨아주자 이것을 본 병사의 어머니가 통곡했다. 어머니는 남편도 오자에 감동하여 전장에서 목숨을 돌보지 않고 싸우다 전사했는데 이제 아들도 오자에 감동하여 전장에서 목숨을 돌보지 않고 싸움에 임해 곧 죽게 될 거라 걱정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와 반대로 묵자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이용했는데..........왕은 들판을 개간하여 논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무수한 돌이 깔린 들판을 개간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었다. 이때 묵자는 들판에 물을 뿌리고 금화 몇 개를 들판 곳곳에 숨겨 두고는 소문을 냈다. 들판에 금화가 숨겨져 있다는 소문을 들은 백성들은 들판으로 달려 나와 금화를 찾기 위해 돌을 치우고 땅을 갈아 업었다. 묵자는 금화 몇 개로 들판을 개간해 버린 것이다. 이건 이익에 눈이 멀어지는 인간의 본성을 이용한 것이다.
병법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은 나도 잘 모르고, 이 이야기와는 크게 상관이 없으니 이것으로 마치고 줄거리 전개나 하자. 병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오자병법, 묵자병법을 읽어보기 바란다. 육도삼략처럼 난해하지도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수혼은 책을 읽으며 병법이란 것이 전장에서 승리하거나 사람 죽이기 위한 계략이나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폭넓게 통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병법이란 인간본성을 연구해서 인간들이 쉽게 지나치기 쉬운 허점을 노리거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난관을 극복해 가는 방법들 이였다.
한참을 책에 빠져 있는데 체육관 문이 열리며 수지가 들어오고 있었다. 수지가 들어와도 책에 빠진 수혼은 수지를 본 척도 하지 않았다.
“야~ 사람이 왔으면 쳐다보기라도 해라.”
“지금 바빠, 책 읽고 있잖아.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조금만 더 읽으면 끝나.”
“머리 자르고 보니까? 남자다워진 것 같다.”
“말시키지 마. 정신 사나워”
수지는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수혼이 섭섭하기 그지없었다. 얼마 전 자신이 고백까지 했는데 이런 차가운 반응이라니........이 남자는 자신의 고백을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가.
수지는 수혼의 손에서 책을 낚아채서 던져버렸다.
“왜 이래”
“너..........내가 우습니. 막대해도 상관없어. 아니면 너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야. 그런 거니. 모르는 사람이 왔어도 이렇게 대하지는 않겠다. 사람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거야.”
“화났어. 책에 정신이 빠져서 그래. 그렇다고 읽고 있는 책을 던져버려.........”
“그깟 책이 중요해...............넌 내가 한말 생각이라도 해본거야.”
수혼은 수지를 바라보다 입술을 씹어버린다. 수지라는 여자..........갑자기 찾아와 대련을 했고, 억지를 부리며 자신의 곁을 맴도는 여자. 선배의 애인이면서도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여자. 자신은 수지라는 여자에 대한 한번도 깊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같이 운동하는 동료 이상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그 여인이 지금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영은이의 상도 끝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수지.........아직 영은이 상도 끝나지 않았어. 지금 나에게 무슨 말을 하라는 거지. 사랑한다고, 생각해 봤냐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할 수 있겠어. 지금 가슴속에, 머릿속에서 영은이가 떠나지도 않았어. 누굴 사랑하고 누굴 배려할 여유가 없어..............나도 힘들어. 어떠하든 마음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러니까.............그러니까 다음에...........다음에 이야기하자.”
수지는 낮게 깔리며 조용한 수혼의 목소리을 듣고 있었다. 그 목소리에는 애절함과 슬픔이 담겨 있었다. 수지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 남자에게 자신이란 존재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인가. 자신은 기쁨도 즐거움도 같이 나누고 아픔까지도 같이 나누고 싶은데 이 남자는 아닌가보다.
“난.........난..........휴~ 그만하자. 기다릴게. 수혼씨가 내 마음을 받아줄 때까지..........”
“기다리지 마. 다시는 사랑 안 해. 더 이상 내 주위를 맴돌지 말고 좋은 남자 찾아.”
“잔인하다........참 대단한 남자야.............좋아. 수혼씨가 얼마나 대단한 남자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호락호락한 여자는 아냐. 누가 이기나 보자고..........그리고 이거 받아.”
수지는 들고 온 종이 백을 수혼에게 내밀었다.
“뭐야.”
“핸드폰. 내가 잘못해서 망가져 버려서 새로 사왔어. 번호는 같아.”
“필요 없어. 이제 연락할 일도, 연락 올 때도 없어.”
“영은이라는 여자하고만 통화했니..........다른 사람과는 통화도 안하고 살았어.........맘대로 해. 필요 없으면 수혼씨가 버려.”
수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혼과 더 같이 있으면 울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수지는 터벅터벅 걸어서 체육관을 나가고 있었다. 수지의 뒤 모습은 쓸쓸하고 고독해 보였다.
수혼은 수지가 나갈 때까지 수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이 짭짭하다. 자신 때문에 한 여자가 아파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쓰리다.
수혼은 고개를 흔든다. 약해지는 마음을 잡아야 한다. 여자에게 더 이상 정을 주지 않기로 하지 않았는가. 마음을 독하게 먹기로 하지 않았는가.
수혼은 바닥에 떨어진 책을 잡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자 호식일행이 돌아왔다. 수혼은 밥도 먹지 않고 책을 읽고 있다 호식일행이 돌아오자 읽던 책을 접었다.
“알아봤어.”
“대충.......어둠의 천사라는 애들(?) 아니 아저씨들 의외로 비밀이 많아. 30대 들이라고 하는데 사용하는 무술이 유술하고 태껸이라고 하더라고.......유도면 유도지 유술은 또 뭐야. 더욱이 두목은 베일이 싸여있어..........두목이 직접 나서서 손을 쓴 경우는 많은데 얼굴 본 사람이 없대.”
“유술, 태껸..........만만한 상대들이 아니군.”
“천랑은 유술이라고 들어봤어. 유도 말고 유술이야.”
“유술에서 위험한 기술을 제거하고 정신적인 측면과 스포츠적인 요소를 접목한 것이 유도야. 유술과 태껸은 조선시대 무술인데 임진왜란 때 포로로 잡혀간 우리나라사람들이 일본에 전한 거야. 도자기 기술자와 한지 기술자들이 일본에 잡혀가 기술을 전한 것처럼 포로로 잡힌 군인들이 유술과 태껸을 사무라이들에게 가르친 거지. 그것이 사무라이들이 백병전에서 사용하기 시작했고, 한참 전란의 시기 즉 전국시대를 맞은 일본에서 화려한 꽃을 피운 거야. 우리나라와 별개로 유술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일본에서도 세월이 흘려 유도로 발전하기도 하고, 다른 무술과 융합하여 합기도로 발전하기도 했지. 현대에 와서는 유술도 많은 유파로 나누어지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그라이지유술’이라고 브라질의 삼보와 유합하여 탄생한 유술이 있어.”
“............................”
“그들이 유술을 익히고 있다면.......우리고유의 유술을 익히고 있을 확률이 높아.”
“참~ 유도야 잡히지만 않음 돼지.”
“말처럼 쉽지 않아. 전통 유술에서는 꺾고, 배틀고, 던지는 기술만 있는 건 아니야. 입식타격기술 또한 다른 무술에 뒤지지 않아. 특히나 유술의 한수 한수는 상대방의 숨통을 단번에 끊어버리는 무시무시한 기술들이야. 단적으로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주무기는 죽도였지. 하지만 죽도에 죽은 놈들보다 유술에 의한 손발에 맞아주는 놈들이 더 많아. 당시 승병들 중에 유술을 익히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어. 유술은 정신수련, 신체단련용 무술이 아니라 살상용 무술이야.”
“많이 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형님 집에 있을 때 무술에 대한 대략적인 책을 읽었어. 태껸은 유술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 무술이야. 유술은 승려나 군인들이 단련한 것과는 다르게 태껸은 주로 민간에서 행해지던 놀이였어. 씨름처럼 마을청년들이 힘자랑을 하는 놀이였는데............넓은 가마니를 깔고 그 안에서 상대방과 거두는 거지. 상대방을 쓰러트리거나 펼쳐진 가마니 밖으로 밀쳐내며 승리하는 놀이었어. 좁은 공간에서 상대방과 대적하다보니 유연성, 순간반응속도, 순간적인 힘의 응집이 필요했고, 그것이 발전하여 태껸이 된 거야. 이 무술도 일본에 전해졌지만 일본에서는 맥이 끊기고 우리나라에만 전해지고 있어. 대신 일본의 공수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고 있어.”
“공수도.......가라데 말하는 거야.”
“맞아~~ 일본말로 가라데라고 하지. 중국 당나라 때 중국무술이 우리나라와 일본에 동시에 전해졌는데 일본에서는 공수도가 되고 우리나라에서는 수박도가 됐어. 또한 수박도는 다른 무술과 융합하여 태권도가 된 거지. 우리나라 국기가 태권도라고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태권도는 짬뽕무술이야.”
작가 주 : 여기에 나오는 유술, 태껸에 대한 부분은 우리나라에서 주장하는 내용이고 일본에서는 다르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 국제 유도경기에서도 한판, 절반, 유효 등 모든 경기용어가 우리나라말로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 입니다. 또한 태권도와 공수도에 대한 부분은 아직도 의견이 부분한 내용으로 정립된 정설은 아닙니다. 다만 공수도와 수박도의 본류가 중국당나라 무술이라는 것에는 의견이 없지만 공수도가 태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과, 태권도의 본류가 수박도로 다른 무술과 융합하여 태권도가 되었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고유무술은 상당히 많은 무술이 계승 발전했지만 조선시대 들어서 억불승유정책과 무을 천시하고 문을 중시하는 풍토 때문에 많은 무술의 대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무술유단자들을 잡아들어 죽이는 바람에 어렵게 전해지던 무술의 대가 끊어진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밖에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고유무술은 선술, 선무도, 수벽치기, 국술 등 많은 무술이 있다고 알려 지고 있습니다.
“그럼 뭐야. 우리 중에 그놈들과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이 천랑하고 나밖에 없다는 거야. 다른 놈들이야. 태권도, 유도, 공수도, 특공무술 등을 익히고 있지만 그놈들이 고수라면 한방에 나가떨어진다는 계산인가.”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철파도 어쩌지 못했다면 개개인의 실력이 상당하고 볼 수 있겠지. 정면대결을 하면 우리들이 힘들겠어. 더욱이 두목(?)의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며........”
“강철파 녀석들도 조사했는데 두목이란 놈에게 당한 놈들도 어떻게 당했는지 조차 모르게 당했다고 하더라고, 잠깐만..........두목에 당한 녀석들은 칼 같은 예리한 것에 심줄이 자린 녀석들이 많아. 팔목이나 다리의 심줄을 예리한 무언가로 자라서 병신을 만들어버린 거지.”
“칼..........검..........어둠의 천사라는 조직..........비밀도 많고 무서운 조직이군.”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그들이 무술고수이라고 가정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면...........정면 돌파해야지 뭐.”
“정면 돌파(?) 그럼 막무가내로 쳐들어가자는 말이야.”
“그건 아니고, 그들이 무술고수라면 자존심이 강할 거야. 일단 그들이 운영하는 한 업소를 선택해서 도전장을 보내도록 해. 언제, 몇 시에, 몇 명이, 업소를 접수하려 간다고 친절하게 써서 보내”
“허~~ 기습공격을 해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는데..........우리가 쳐들은 가는 걸 알려주라고”
“그들도 무도가라면 일대일로 승부하는 걸 마다하지 않을 거야.”
“그럼~ 대방끼리 끝낸다.”
“그때 가서 보면 알겠지. 만일 그들 10명이 모두 모인다면..........힘든 싸움이 될 거야. 하지만 천랑파를 들어보지도 못한 그들 입장에서 우릴 햇병아리라고 생각하겠지. 모두 모이지는 안을 거야. 그걸 노리는 거지.”
“그래도 저번 싸움에서 천랑의 이름이 밤의 세계에서 많이 알려졌어.”
“참.........그들이 내 이름이야 알겠지. 내가 천랑인지 알겠어.........그리고 요즘 성철파는 어때”
“날~리도 아니야. 강철파가 종로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어. 성철파가 견디고는 있지만 얼마가지 못할 거야.”
“강성민은............”
“그 새끼, 성철파가 당하고 있는 대도 코빼기도 안보여, 또 숨어서 흉계나 꾸미고 있겠지. 천랑도 조심해.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놈이니 말이야.”
“강.....성.....민.”
수혼은 그 이름을 조용히 되씹고 있었다. 영은의 죽음과 그가 연관된 것 같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당장 보내. 내가 개강 날짜가 남지 않아서, 되도록 이면 빨리 끝내도록 하자고, 3일 후 저녁 7시에 방문한다고 천랑파의 이름으로 발송해”
“드디어 시작인가............좋아~ 두철아 내가 다녀와라.”
“호식아.......만일을 몰라서 하는 말인데........음양도에서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술을 아이들에게 전수하도 할게. 사실 음양도가 살인무술은 아니지만 당장 써먹어야 한다면 할 수 없지 않겠어. 너도 무영권이나 다른 무술에서 실전에 당장 응용될 수 있는 무술을 아이들에게 전수해.”
“내 무술을 알려주라..........천랑도 알려주는데 좋아. 아까울 것 없지. 새끼들.......좋겠다.”
그날부터 아이들은 수혼과 호식에게 실전무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수지는 다음날 역시나 체육관에 왔다. 수혼도 그녀도 서로 말이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그것을 치켜보는 호식일행은 답답하기만 했다. 특히나 호식은 수지에게 관심이 있는지 그녀의 눈치를 살피는데 정신없었다.
저녁이 되자 수지는 말없이 체육관을 나갔고, 수혼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호식은 답답하지 자신이 수지를 따라 나갔다.
결전의 날.
수지는 저녁이 되어도 집에 가지 않고 체육관에 남아 있었다. 이제 출발해야 함에도 수지가 계속 체육관에 남아 있자 수혼이 호식을 보았다.
“저기~ 내가 이야기 했어. 오늘 청량리를 친다고 말이야.”
“휴~ 우리 일에 수지를 끌어들이고 싶어.”
“조수혼씨. 사적인 일은 접자고........나도 천랑파의 일원이야. 나에게 비밀로 하고 자기들끼리만 가려고 했어.”
“위험한 일이야. 너까지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됐어. 이중에서 수혼씨하고 호식씨 다음으로 내가 강해. 걱정하려면 딴 사람 걱정이나 해”
“바보야. 너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라며, 경찰이라도 알아봐 어떻게 하려고 그래.”
“상관없어. 나 아니라도 국가대표 할 사람은 많아. 그리고 수혼씨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 아냐.”
“치~ 맘대로 해. 대신 일이 잘못 돼도 원망하지 마.”
“원망 안 해.”
“좋아 출발한다. 각자 흩어져서 이동하고 청량리 역에서 6시 30분에 만나기로 한다.”
수혼은 청바지에 흰색남방을 입고 있었다. 수지도 역시 같은 차림으로 두 사람은 같은 전철을 타고 청량이로 향하고 있었다. 수혼은 의식적으로 수지의 시선을 피했다. 지금 싸움터로 향하는 발걸음 속에서도 수혼의 마음속에는 싸움에 대한 걱정보다는 영은의 그림자가 가득했다.
“수혼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는 거야.”
“어~~ 아니야.”
수지는 자신과 나란히 있으면서도 멍청히 망상에 빠져있는 수혼을 보고 있자니 한 숨이 나온다. 이 사람에게 자신은 다가설 수 없는 벽이란 말인가. 이 사람의 마음 한구석도 차지하지 못하는 것인가? 같이 있어도 다른 사람의 망상 속에 빠져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자신이 한없이 처량했다. 죽어버린 영은이란 여인의 존재가 이 남자에게 그렇게 큰 존재였단 말인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영은에 대한 전화를 어떻게 해서든 전했을 것이다.
떨껑거리는 전철 안에서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혼도, 수지도 각자의 깊은 시름에 빠져 있었다.
전철이 청량이에 도착하자 수혼과 수지가 전철에서 내려 광장으로 나갔다. 수혼과 수지가 다른 사람보다 먼저 출발해서 아이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수혼씨. 이것만 물어보자. 오늘 전면전이야. 도전장을 보냈으니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을 텐데, 수혼씨는 아이들에게 무기도 소지하지 말라고 했잖아. 어떻게 하려는 거야.”
“전면전이면 우리가 불리해. 그들의 핵심전력이 비록 10명이지만 현재는 각자 영업장을 운영하며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어. 처음 한두 곳은 우리가 전면전을 벌리면 이길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우리전력의 희생도 감수해야 해. 물량 전으로 가면 숫자에 한계가 있는 우리들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야. 그리고 다 때려 부수고 나면 가계 수리비도 만만치 않아. 돈도 없는 우리가 어떻게 감당해.”
“그럼 어쩌자는 거지.”
“숫자로 위협만 주고, 나머지는 싸움은 대가리끼리 끝내자는 거지.”
“저놈들이 막무가내로 나오면”
“내 예상대로 라면, 그런 짓은 안할 놈들이야.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난 만큼........자존심도 강할 거야. 특히나 무도가라면 더하지............만일 그런 것도 모르는 놈들이라면 상대할 가치도 없어. 그냥 쓸어버리면 돼.”
“그냥 쓸어버려..........누구 맘대로. 저놈들은 가만있대.”
“처음부터 이야기 했지. 전면전을 해도 처음에는 우리가 몇 군대에서는 승리할 수 있다고, 저들은 현제 전력이 분산된 상태야. 이런 경우 구사할 수 있는 작전은 초토화 작전이야. 점령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업소를 쓸어버리는 거지. 우리 어차피 빈손이야 소해를 본다면 우리보단 저쪽 손해가 막심하지. 그러게 몇 번만 하면 손들거나 아니면 강철파에 했던 것처럼 암살 작전으로 나오겠지.”
“그런 경우 대비책은 있어.”
“대비책..........무슨 대비책, 우린 점령하지 않아. 초토화 시키고 바로 청량리에서 살아져 버릴 거야.”
“허~~ 그럼 저들도 못 먹고, 우리도 못 먹고 같이 죽자는 거야.”
“후후후..........저들이 10명이라고 했어. 나머진 떨거지 들이고.........둘 다 못 먹으면 손해 보는 건 저쪽이야. 떨거지들은 먹을 게 없어지면 떨어지게 돼 있어. 그럼 남는 건 10명이야. 암살을 한다면 저들보단 우리가 낮지 않겠어.”
“할 말이 없군. 책보고 연구하게 그거야.”
“글쎄. 생각해 보면 더 좋은 방법도 있겠지. 내분을 유발시키거나, 적의 우두머리를 먼저 잡은 다거나.........하지만 그런 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두고 보자고 저들이 어떻게 나오나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아.”
천천히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7시가 되자 호식과 나머지 20명이 모두 광장에 집합했다. 도전장을 던진 곳은 역에서 가까운 라이트클럽 이였다.
“가자.”
20명이 넘는 인원이 한번에 이동하는 모습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하나같이 산만한 덩치들이라 이들이 걸어가는 길은 사람들이 알아서 비켜주었다. 퇴근시간이라 사람들도 많았지만 감히 이들에게 시비 거는 사람은 없었다.
라이트는 변화가 골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술집에서 나온 호객꾼들도 이들에게는 접근조차하지 않았다. 호객꾼들도 살기가 감도는 이들에게 접근하길 꺼려했다. 라이트 입구에 도착하자 문을 활짝 열려 있고, 웨이터가 문을 지키고 있었다. 라이트 안에서는 음악이 흘려 나오고, 웨이터는 이들을 손님일줄 알고 반갑게 인사한다.
“아~ 두철아. 도전장은 전한 거야.”
“무.......물론 전했어.”
“허허허. 근데 분위기가 왜 이래. 장사하는 분위긴데.........이렇게 된 거야.”
“그만해. 들어가 보면 알겠지.”
수혼의 한마디에 모두들 끽소리 못하고 모두 라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라이트 안은 장사하는 분위기 그것 이었다. 아직 초저녁이라 손님들이 많지 않았지만 웨이터들이 손님을 맞고, DJ가 음악을 틀고, 무대해서 춤을 추는 평소 라이트 모습 그대로다.
수혼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호식아 아무 놈이나 잡고 지배인 나오라고 해라.”
호식은 수혼과는 달리 무척 화가 났는지 당장이라도 때려 부슬 기세였다.
“천랑! 가만있을 거야.”
“흥분하지 마라.”
수혼은 웨이터 한명을 불렸다. 웨이터들도 20명이 넘는 장정들이 들어와 자리에도 앉지 않고 우락부락한 얼굴로 주위를 둘려보고 있자 모두 겁을 먹은 눈치다.
“가서.........지배인님 불려, 조요히 할말이 있다고 말이야.”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웨이터는 조용한 수혼의 음성에 더욱 겁을 먹고 꽁지 빠지게 달려갔다. 잠시 후 40대 후반의 남자가 수혼에게 달려왔다. 남자는 배도 나오고 뚱뚱했다.
“무슨 일이죠.”
“3일전에 배달된 편지 받아보셨어요.”
“무슨 편지.......그 뭐시냐. 도전한다는 장난편지 말하는 거유”
“장난편지라.........재미군........그 장난편지 어디죠.”
“그걸 뭐해. 쓰레기통에 버렸지. 근데 왜 물어보는 거유, 손님들이 천랑파 유.......참 웃겨”
“맞아요. 우리가 도전장을 보낸 천랑파죠. 아저씨~~~ 우리 조용히 해결하고 싶으니까 손님들 내보내고, 여기 관리하는 놈들 나오라고 해요. 알았어요.”
“그........그게 정말 인가?”
“여기 다 때려 부셔버리기 전에 좋은 말할 때 들어요. 우리도 좋게~~해결하고 싶어유~ 알았이유~~”
“자........잠시만 기다리라고 잉~~ 아들아 뭐하나 손님 내보내고 빨랑 연락 하랑께.”
지배인이 겁을 먹고 소리치자 웨이터들이 손님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손님들이라고 해야 얼마 없었고, 손님들도 분위기가 수상하니 모두들 눈치을 보고 밖으로 도망치기 바빴다.
소란스런 장내가 정리되고 음악도 꺼진 무대에 수혼 일행이 앉아 있었다.
“천랑~ 무슨 생각이야.”
“기다려..........야~ 조명은 환하게 밝혀, 분위기 칙칙하잖아.”
조명이 환하게 밝혀지고 잠시 후 입구가 소란스럽게 술렁이더니 10여명의 장정들이 각목과 쇠파이프를 들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무대에 태연히 앉아있는 수혼 일행을 보더니 기가 막힌 지 천천히 무대로 걸어왔다.
“이런 새파란 새끼들이........여기가 어디라고 겁도 없이 쳐들어와. 천랑파~ 참. 그런 파도 있었냐. 너희들 뭐하는 새끼들이야.”
수혼은 자리에 펴 질려 앉아 턱을 괴고 앉아 있다 다가오는 장정들을 바라보았다. 녀석들 역시 한 덩치 하는 녀석들로 팔에 문신하며, 칼자국하며 전형적인 라이트기도였다.
“너희가 여기 책임자야.”
“넌 뭐야 새끼야. 좆만 한 새끼가~~ 네가 피키냐. 새끼 보니까 덩치도 제일 작고 네가 꼬마인 모양이네”
“키키키.........맞아 내가 꼬마야. 근대 어둠의 천사라는 놈들은 왔어. 무슨 도둑 집단도 아니고 이름도 촌스러운 놈들 말이야.”
“미친놈들........그분들이 할일 없어서 너희 같은 양아치들 상대한대........아가들아~ 좋은 말할 때 집에 가라 응~ 요즘 조폭영화보고 흉내 내는 모양인데 그러대 죽는 수가 있다.”
수혼은 피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혼이 일어나자 다른 녀석들도 모두 함께 일어나니 무대가 꽉 차는 것 같았다.
“자자~ 형님들은 그냥 앉아 있어요. 이런 놈들 처리하는데 형님들까지 나서야 되겠습니까?..........10명이라..........시간 관계상 빨리 처리해야 되니까 한분만 도와주세요. 저기 나하게 비슷한 호식이가 도와주면 되겠네.”
아이들은 수혼이 무슨 의도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모두 자리에 앉고 호식만 앞으로 나왔다. 마침 호식도 몸이 근질근질해서 미치겠던 참이라 수혼이 지목하지 좋다고 앞으로 나선다.
“아저씨들 무섭다. 각목이나 쇠파이프는 치우지.........겨우 우리 둘 처리하는데 그런 무기까지..........아저씨들 존심도 없어.”
“허허. 이 새끼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야~ 쳐 버려.”
녀석들도 자존심은 있었던 모양인지 각목과 쇠파이프는 바닥에 내려두고 몇 놈이 수혼과 호식에게 덮쳐왔다.
수혼은 호식에게 손으로 바닥을 가리키고는 자신은 보통걸음으로 상대방에게 접근하여 날아오는 주먹을 고개를 전혀 피하고 깍지주먹(가운데 손가락만 튀어나오게 주먹을 주는 방법)으로 녀석의 인중을 날려버렸다. 인중을 맞은 녀석을 이빨이 뿌려져 나며 날아가고, 다른 녀석이 주먹이 뒤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수혼이 뒷걸음치며 녀석의 주먹을 피하고 뒷도 돌아보지 않고 팔을 날리니 녀석은 팔꿈치에 맞아 코뼈가 부러져 나갔다.
호식도 수혼의 의도를 알고 평범한 무술로 녀석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이미 한 녀석을 호식의 발에 가운데 다리를 맞고 거품을 물고 있었고, 다른 한 녀석은 턱이 날아간 상태였다.
수혼과 호식이 현란한 몸놀림에 녀석들은 하나같이 버티지 못하고 쓰려지고 잠시 후 10명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
“지배인 아저씨.......이놈들은 영 아닌 대요. 딴 놈들 없어요.”
“저~~ 저 잠시만..........”
지배인은 다시금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 형님들 심심하죠. 이놈을 좀 밟아 주세요. 아~ 저희들은 힘들어서........아주 작신작신 밟아 주세요.”
수혼이 명령하자 아이들은 한번에 일어나 바닥에 쓰려져 꿈틀거리고 있는 녀석들을 밟아버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수지는 너무 잔인하여 고개를 돌리고 수혼에게 다가왔다.
“꼭 이래야 돼. 그냥 보내주면 안돼.”
“모르는 소리. 첫인상을 강하게 심어줘야 해. 어설프게 맞으면 또 덤벼. 우린 인원이 많지 않아. 녀석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줘야 떨거지들이 달라붙지 않는단 말이야.”
“그래도 잔인하다.”
잠시 후 바닥에는 흥건한 핏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10명의 기도들은 최소한 몇 달은 병원신세 쳐야 할 만큼 작살이 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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