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꿈꾸는 늑대 28부
강성민은 호식일행에 대한 보고를 받고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호식의 배신 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지금까지 계획하고 있던 강철기습공격에 중대한 차질이 생긴 것에 더욱 화가 치미는 것이다. 호식 일행은 강철기습공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될 놈들이었다. 그놈들이 빠짐으로써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세워야 할 것 같았다.
“그놈이 배신을 했다.”
“자기 말로는 배신이 아니고 본래 주인을 찾아갔다고 하더군요.”
“본래 주인이라니 무슨 말이야.”
“호식이 놈이 우리 파에 들어오기 전에 수혼이란 녀석과 대련을 한 모양입니다. 그 대련에서 패하는 놈이 부하가 되기로 했는데 그때 호식이 패했다고 합니다.”
“호식이가 녀석에게 졌다. 참..........알 수 없는 녀석이군. 갈치파가 녀석을 주목하는 것도 그렇고, 호식도 그렇고, 녀석에게 특별한 점이라도 있어.”
“호식에게 물어보니 익히고 있는 무술이 대단하다고 하더군요. 또 저번에 싸움에 임했던 녀석들의 말을 들어보면 일당백의 용사 같습니다. 익힌 무술이 음양도(?)라고 하던데........사부님께 들어본 적도 있는 거 같기도 하고........하여튼 그런 녀석입니다.”
“강철파에 있는 녀석들에 의하면 가르치는 건 별거 없다면서, 그냥 평범한 보법이나 가르치고 신법이나 가르친다고 했잖아.”
“뭐~~ 보법과 신법은 무술의 기본이니 연습해서 나쁠 건 없죠. 다만 그 녀석이 직접 음양도라는 무술을 시현한 적이 있는데 다들 놀랐다고 하더군요.”
“왜(?)”“체육관에 샌드백을 늘어놓고 시현했는데 육안으로 움직임을 알아볼 수 없고 샌드백을 찢어버린 정도의 위력 이였다고 합니다.”
“흠~~ 알 수 없는 놈이군. 그놈이 우리 계획에 변수가 될 수도 있겠어. 어렵게 마련한 계획이 한 놈 때문에 엉망이 되는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호식 일행의 전력이탈, 새로운 변수가 된 놈의 등장이란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도 계획대로 실행합니까?”
“3년간 이를 갈며 준비한 거야. 그런 것 때문에 지금 와서 포기할 순 없어. 일단 수혼이란 녀석과 호식일행의 발을 묶어 버리고 강철의 처리는 계획대로 시행한다.”
“놈을 발을 묶을 비책이 있습니까?”
“찾아..............호식이 놈의 성격상 나와의 의리 때문에 강철파와 융합할 녀석은 아냐. 지가 모신 수혼이란 놈이 움직이지 않는 이상 그 녀석도 움직이지 않아. 수혼이란 녀석을 잡아둘 방법을 찾아봐. 그리고 호식 일행을 대처할 놈들이 필요한데.........저번싸움에서 돌아온 녀석들 아주 독종으로 만들어. 눈깔에 독기만 남게 만들면 호식일행을 대처할 수 있을 거야. 본래 계획은 성북동과 강철을 동시에 노린 계획이지만 성북동은 포기한다. 대신 강철을 잡은데 모든 전력을 집중한다.”
“알겠습니다. 일단 수혼이란 녀석의 실력을 직접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술 좀 한다니 손이 근질거리는 모양인데...............하긴 무술 하는 사람이야 고수를 보면 한번쯤 손을 섞어보고 싶지. 그 마음 이해는 하는데”
“우리 정체가 탈로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조심해. 그리고 지시한 것 잊지 말고”
수혼은 영은에게 전화를 했다. 역시나 받지 않는다. 어떻게 충고라도 들어볼 심산으로 호식이나 지나에게 물어봐도 헤이지라는 대답뿐이다. 전화벨은 외롭게 울리더니 역시나 음성메세지로 넘어간다.
영은이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마음이 급했다. 수혼은 영은의 아파트에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다. 핸드폰은 받지 않는다. 집에 전화를 하려다가 그만둔다. 음성으로 아파트 입구에 있으니 만나 나오라는 말을 전했다.
영은은 아파트 창가에서 수혼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수혼의 품에 안기고 싶다. 그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고 싶다. 그의 맑은 눈동자를 보며 그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싶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에게 자신 외에 다른 여인이 있다면........
그가 다른 여인을 만난다면 자신을 버릴 것만 같았다. 향상 그렇다. 학교에서도 따돌림 당한 자신이다. 만일 수혼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다면 그녀에게 수혼을 지킬 자신이 없었다.
수혼은 한 마리 나비처럼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꽃을 찾아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이젠 그걸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수혼이 떠나간다면 자신은 어찌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수혼은 자신에게 하나의 희망이고 빛 이였다. 처음으로 사랑을 알게 해준 사람이다. 자신의 전부를 받쳐 사랑한 사람이다. 그 사람이 떠나간다면 자신에게는 빈껍데기만 남을 것이다. 정신과 혼이 빠져나간 몸뚱이만을 가지고 살아간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게 무섭다. 정말 무섭다. 그를 사랑하지만...............
차라리 그렇게 되기 전에 자신이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사랑을 지킬 용기도, 능력도 없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다. 지나가 수혼을 사랑하고 있는 줄 안다. 어쩌면 아파트에 있었던 여인도 수혼을 사랑하는 건 아닐까? 그녀들에게 수혼을 지킬 수 있을까?
수혼도 그녀들의 유혹을 언제까지 뿌리치진 못할 것이다. 자신이 없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저기 사랑하는 임이 있어도 다가설 용기조차 없는 자신이 미웠다. 핸드폰이 울린다. 수혼의 전화................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단추만 하나 누르면 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이내 포기하고 만다. 전화기를 소파에 던져버리고 아파트 베란다에 쭈그리고 앉아 버린다. 자꾸만 눈물이 난다.
한참을 울다 다시 내려다본다. 그가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다. 멀리서 알 수 없지만 여자인 것 같았다.
‘아~~ 언니’ 맞다. 저 옷은 언니가 아침에 입고 간 옷이다.
둘이서 무슨 대화를 하는 것일까?
잠깐 얘기를 하던 언니가 수혼과 헤이지고 아파트로 들어서고 있었다. 수혼은 다시 아파트 베란다를 올려 본다. 수혼의 눈을 피해 거실로 들어온다.
“띵~동”
언니가 들어온 모양이다. 현관문을 열어주고 다시 베란다로 달려와 밑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영은아~ 영은아”
언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귀가에 ‘웅웅’ 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언니가 어깨를 잡고 흔들자 그제 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수혼씨. 많이 기다린 것 같던데.......왜 안 만나.”
“언니~~ 무서워.”
“뭐가(?). 너도 수혼씨 사랑하잖아. 뭘 무서워해.”
“수혼씨가...........수혼씨가 날 버릴 것만 같아서............그게........그게 무서워”
“바보야. 수혼씨도 널 사랑해. 방금 이야기하고 왔는데........너 걱정만 하더라.”
“그게..........수혼씨 주위에 여자들이 너무 많아..............나 자신 없어.”
“왜~ 우리 영은이가 어때서. 자신을 가져. 사랑은 쟁취하는 거야. 수혼씨도 널 사랑하는 마음 변함없데. 무슨 말이진 모르겠지만 오해라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전해 달라고 하더라.”
“언니..........나 바보 같지........어떻게 해야 돼.”
“수혼씨 사랑하니”
“응~ 내 모든 걸 주고서라도 사랑하고 싶어.”
“그럼. 용기를 내. 떠나보낼 자신이 없음...........그에게 모든 걸 맞기고 매달려 봐.”
“혹시...........수혼씨가 다른 여자 만나면 어떻게..........다른 여자 만나서 나 버리면 어떻게”
“왜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걱정해. 넌 사랑을 지킬 용기도, 배짱도 없어.”
“언니 나 알잖아. 겁쟁이에, 왕따에............그런 내 자신을 아는데..........모르겠어.”
“이리와~”
영경은 영은을 안아 주었다. 영은은 언니의 품에 안겨 다시금 울먹인다.
“영은아~ 사랑은 말이야........때로는 맹목적인 거야. 그를 사랑하는 너의 마음이 변치 않는다면 그를 믿고 사랑하는 거야.”
“언니.........흐흑........”
“불쌍한 것...........어린 나이에 사랑의 열병을.........휴~~”
영경은 동생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동생의 모습에서 자신의 옛날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자신도 영은이 처렴 사랑의 열병 때문에 힘들어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자신도 그 사랑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도망치듯 사랑하는 이를 떠나야 했다.
영경은 동생만큼은 자신의 전처를 받지 않기 기도한다.
수혼은 영은의 언니인 영경을 만나고 마음이 더 심란해져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영은은 집에 있다고 했다. 자신의 전화도 받지 않고, 자신이 찾아온걸 보고서도 그녀는 끝내 만나주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만 영은의 태도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최소한 전화라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자신에게 변명하고 만회할 기회라도 주어야 하지 않는가?
“휘~~이~~익”
등 뒤에서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한기가 느껴진다. 산에서 생활할 때부터 동물적인 감각이 발달한 자신으로서도 느끼기 힘든 공격이다. 수혼은 급히 허리를 숙인다. 등 뒤에서 날아온 예기는 공중에서 멈추더니 등으로 내리 꽂힌다. 급하다. 이대로 있음 당한다. 수혼은 땅바닥에 몸을 굴려 예기를 피하고........“쿵”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린다.
수혼이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보았다. 상대방이 밟고 있는 보도블록이 가뭄철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상대방은 얼굴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마스크를 하고 있어 얼굴은 알아볼 수 없고 검은색 정작을 입고 있었다.
“누구야.”
상대방은 수혼의 물음에 대답대신 달려오며 주먹을 날린다. “쇠아~악” 주먹이 다가오기 전에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수혼의 몸이 술 취한 사람마냥 흔들린다. 상대방의 주먹은 귀가를 스쳐 지나가고, 수혼은 다가온 상대방의 아랫배, 단전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
“탁.........붕”
날린 주먹이 중간에서 막히고 상대방의 팔꿈치가 턱을 향해 날아온다. 주먹을 막고 팔꿈치를 날리는 동작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상대방은 근접박투에 상당한 자신이 있는지 수혼의 몸에 바짝 붙여 있었다. 수혼은 고개를 돌려 피한다음 손가락을 굽혀 독수리 발톱처럼 날카롭게 해서 상대방의 팔목을 잡아간다. 수혼이 금나수로 팔목을 잡아오자 상대방의 다른 주먹이 수혼의 목을 노리고 날아온다. 수혼은 금나수로 상대방의 팔목을 잡을 순 있겠지만 자신도 상대방의 주먹에 가격당할 위기라 급히 금나수를 회수하며 날아오는 주먹을 쳐내고 뒤로 몰려난다. 상대방은 수혼이 뒤로 밀려나자 자신도 따라오며 인중과 대추혈(목덜이 아래) 노리고 쳐낸다. 수혼도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고 주먹을 쥐더니 상대방을 향해 날린다. 수혼의 화려한 음양수처럼 주먹의 그림자가 펴지며 상대방에게 날아간다. 음양권의 연환공격으로 쉼 없이 터지는 연환공격은 허상과 실제를 구분하기 힘들어 상대방은 피를 토하고 쓰려지기 마련이다. 상대방이 쓰려지거나 최소한 물려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주먹의 사정권으로 파고들며 날린 주먹을 회수하지 않는다.
“파··········파·········박”
“퍽~~~”
“쿵........쿵............쿵”
상대방의 몸은 달려올 때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뒤로 밀려났다. 수혼 또한 어깨를 잡고 한 발짝 물려났다. 상대방을 내지른 주먹이 얼얼하다. 꼭 샌드백을 친 느낌이다.
상대방은 몇 걸음 물려서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아마도 수혼의 주먹에 가슴과 배 등을 가격 당했을 것이다. 녀석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수혼이 내지른 음양권의 사정권으로 들어와 끝내 수혼에게 주먹을 날렸다. 수혼은 급히 칠성밟기로 피했지만 어깨를 가격당하고 말았다. 어깨가 시근한 하다.
“당신 정체가 뭐야. 다짜고짜 사람을 공격하는 걸로 봐서는 좋은 의도로 접근한 것 같지는 않고.........성철파에서 보낸 건가.?”
상대방은 대답하지 않고 굽힌 허리를 핀다. 그녀석의 흰색 마스크에 붉은 물이 들어있었다. 녀석은 주먹을 다시 쥐더니 다리를 반쯤 굽히고 주먹을 앞으로 내민다. 그러더니 손가락을 펴서 수혼에게 가닥 거린다.
(피~식) 수혼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스치고, 가로등 불빛이 한 마리 학처럼 날아오는 수혼를 비췬다. 수혼 몸은 춤을 추듯 허공을 거닐고, 공중에서 회전하던 몸이 상대방의 머리위 멈추고 벚꽃이 바람이 날리듯 발그림자가 허공에 날아다닌다. 화려한 발그림자는 어느 순간 상대방에서 날아가고 상대방의 주먹 또한 발그림자 사이의 빈 공간을 찾아 찔려온다.
수혼은 발그림자는 공중에서 다시 변화를 일으키며 회오리바람에 낙엽이 날리듯 상대방의 주먹을 비켜 가슴을 향해 날아간다. “퍽!!!!!!” 상대방으로 몸이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가 바닥에 둔탁하게 떨어졌다.
“크~~~윽”
수혼이 바닥에 사분이 착지하며 상대방을 바라보니 상대방은 바닥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일어서고 있었다.
“참~ 대단한 놈이군. 음양각에 당하고도 일어난다 말이지. 어떤 놈인지 얼굴이나 보고 싶군”
수혼의 몸이 일직선으로 상대방을 향해 나아가자 상대방은 비틀거리는 몸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축지법을 익힌 수혼의 손을 벗어날 수 없었다. 수혼이 금나수로 상대방의 뒷덜미를 잡아 던져 버리자. 상대방의 몸은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더니 몸을 돌려 수혼에게 주먹을 날린다.
수혼은 급히 음양수로 벽을 쳐서 주먹을 막고 날아오른 상대방을 향해 금나수을 내지른다.
“픽~~ 픽~~ 찌이익”
“금선탈각. 기가 막히는 군”
상대방은 이미 저만치 도망치고 있고, 허공에는 녀석이 벗어던진 상의만 나풀거리며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수혼이 자신의 손가락을 보자 손톱에 피가 묻어 있었다. 아마도 마지막에 내지른 금나수가 녀석의 얼굴에 상처가 만들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녀석의 마스크를 벗기기 위해 내지른 금나수니 말이다.
강철파의 회의실에 한참 회의가 진행 중이였다.
“성철파에서 우리들의 보상요구에 좀 기다려 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기다려 달라. 누가 보냈어.”
“강성철이 직접 전화로 요청한 사항입니다. 비록 자신들의 소행은 아니지만 아들놈의 무례에 용서를 구하는 차원에서 우리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늙은이 겁먹었군. 이 기회에 밀어 벌려”
“형님~ 성철파와 우리가 싸우면 득 보는 건 갈치파 뿐입니다. 전면적으로 비화되면 갈치파가 가만있겠습니까?”
“갈치파.........갈치파..........그것들이 눈에 가시야. 요즘 갈치파는 어때”
“쥐 죽은 듯이 조용합니다.”
“하 참~~~~~. 성철이 아들놈의 움직임은 감지됐어.”
“아직은............저번 공격이후 잠잠합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경계를 강화해서 몸을 사리는 건 아닐까요.”
“모르지...........어쩌면 또 다른 계획을 준비하고 있을지 몰라. 경계를 풀지 마라.”
“형님, 아이들 좀 쉬게 하면.............근 3주째 집에도 못가고 있으니 불만들이 많습니다. 아이들도 조금씩 지쳐가는 기색도 보이고..........”
“성철파에서 요구금액 도착하면 모두 풀어준다고 해. 그때 까지만 참아.”
“알겠습니다.”
인천의 어느 건물............밑에는 생선회집이 즐비하고 밑으로 노래방이, 그리고 2층에는 당구장이 있는 평범한 5층짜리 상가 건물이다. 하지만 누군가 2층을 거쳐 3층으로 올라가려 하면 어디선가 나타난 덩치들이 계단을 막아선다.
건물 5층에 아담한 사무실이 있었다. 책상 하나와 응접용 소파, 그리고 벽에 세워진 책장이 가구의 전부였다. 다만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사무실이 포근한 느낌을 준다.
이 사무실에 5명의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가운데 앉은 여자는 창이 넓고 쳐진 모자를 쓰고 있어 얼굴을 잘 볼 수 없고, 나머지 4명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옷차림의 여자들이다. 그 4명의 여자 중에 마수지가 끼어 있었다.
“란(蘭). 수혼이란 남자는 요즘도 그렇게 지내고 있나요.”
모자를 쓴 여자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사무실에 울린다. 듣기에 따라 탁하게 들리기까지 한 갈라지는 음성이다. 여인의 물음에 수지가 대답한다.
“예~ 아직 특별한 움직임은 없습니다. 조직은 결성했지만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겠습니다.”
“음~~~ 음양도의 후계자가 조직을 결성했다. 웃기는 일이네요.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옆에서 지켜본 결론은 수혼이란 사람.........심성이 바른 사람입니다. 최소한 악독한 강철파에 투신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글쎄요. 강철이 수혼이란 분과 의형제라고 했죠. 그것 때문에 강철파에 투신하는 경우는 없을 까요?”
“강철도 수혼이 조직에 들어오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모르죠. 흐르는 강물을 막을 수 없듯 수혼이란 분이 강철과 연을 맺었다면 강철과 합류하도록 운명지어 졌는지도.......운명이란 때로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려가기 마련이죠.”
“강성민이 모종의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곧 있음 강철파와 한판 벌릴 것 같은데........어떻게 하죠.”
“그냥 지켜보세요. 이 싸움은 쉽게 끝날 싸움이 아닙니다.”
“저희가 성민을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요.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성민의 뒤에는 든든한 언덕이 있어요. 성민이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모르지만 성공하기 힘들 거여요.”
“원예께서는 무엇 때문에 그리 당정하시죠. 성민의 곁에서 지켜본 제가 보기에 전혀 승산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수지에 옆에 앉은 여인이 나서면 말했다. 여인은 짧은 단발머리에 몸에 달라붙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국(菊). 성민은 너무 성급해요. 원한에 눈이 멀어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요. 강철파는 쉽게 무너질 조직이 아닙니다. 강철이 비록 덕(德)장은 아니지만 용(勇)장에 지(智)장입니다. 조직을 장악하는 힘도 있어요. 또한 부하들도 하나같이 강철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 조직이 쉽게 깨지겠습니까?”
“원예님. 제가 성민을 보기에 성민도 대단한 인물입니다.”
“성민도 용(勇)장 이죠. 하지만 강철과 비교하면.......강철이 용이라면 성민은 이무기 정도 입니다.”
“..............”
“하여튼! 성민이 강철에게 칼을 겨누었다면 보통일은 아니죠. 일단 란께서는 계속 수혼을 지켜보시고, 국께서도 성민을 지켜보세요. 그리고 매(梅)와 죽(竹)께서는 조직을 단단히 단속하세요. 두 세력이 무슨 짓을 하 든 우린 관망만 합니다. 전 원예도를 익히는데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참!!!!!! 란님. 성기와는 요즘 만나지 않습니까? 성기는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입니다. 좀 신경 좀 쓰세요.”
수지는 입술을 깨물고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갈치파에서 원예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그녀의 명령에도 수지는 망설이고 있었다.
“설마 수혼이란 분을................란님. 왜 대답이 없죠.”
“죄송합니다. 성기와는 정리하고 싶습니다.”
“휴~~~ 수지씨. 원예는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없어요. 저도 그렇고.......여러분 사군자도 마찬가지예요. 우린 모든 화랑들의 여인이 되어야 해요. 수지씨도 아시잖아요.”
수지는 원예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이름까지 부르며 설득하자 마음이 흔들렸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음~~~~ 수혼이란 분. 한번 만나야겠군요. 수지씨 같은 분을 사랑에 빠지게 하다니..........”
“원예님이 직접 만나시겠다는 말씀 입니까?”
“놀라지들 말아요. 갈치파의 보스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한 여자로 만날 겁니다.”
“하지만.............”
“원예도와 음양도의 계승자끼리는 언젠가는 만나야 해요. 이건 숙명입니다. 저의 원예도가 완성되지 않아 만날 시기는 아니지만.............수지씨를 보니 보고 싶어져요.”
“원예님.”
“수지씨..........수지씨를 책망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수지씨도 원예의 한 사람이란 걸 잊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제가 수혼이란 분을 만나는 건..........언젠가는 만나야 할 사람이기에 먼저 만나보고 싶어서 그래요.”
원예는 수지의 손을 잡아 주었다. 원예의 손은 따뜻했다.
하지만 수지의 마음에 심란했다.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모르겠다.
수혼은 답답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의 습격, 그리고 영은에 대한 답답한 심경 때문에 정처 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수혼은 자신이 학교에 들어서고 있다는 걸을 알았다.
학교.........자신이 포기하려 했던 곳이다. 화선의 마지막 부탁만 아니라면 아마 포기했을 것이다. 방학을 맞은 학교는 설렁했다. 더구나 늦은 밤이라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혼은 자신이 강의를 듣는 강의실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곳에 오면 영은보다는 떠나간 화선의 기억이 자신을 지배한다. 수혼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바보~~ 불 꺼진 강의실에 왜 올라가니) 스스로를 책망하며 다시 내려온다.
건물을 빠져나온 수혼은 한동안 교내를 걸었다. 밤이라 쌀쌀한 기온이 느껴진다.
앞에 주차장이 보였다. 주차된 차도 얼마 되지 않았다. 무심히 차 사이를 쓰치고 지나간다.
어느 한순간 심하게 요동치고 있는 차가 보인다.
무슨 일인가? 궁금증이 밀려온다. 살며시 다가가 본다. 차의 유리창은 뿌연 습기를 머금고 있어 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냥 갈까? 살며시 앉으며 차안을 살펴본다. 뿌연 습기 사이로 남녀가 엉켜있는 모습이 보인다.
카섹스............학교 주차장에서..............대담한 커플이다.
그 대담한 커플이 궁금하다.
남자는 조수석에 앉은 여자의 상의를 풀어 헤치고 젖가슴을 빨고 있었다. 하체가 움직이는 걸로 봐서는 한참 섹스에 열중하고 있는 모양이다. 남자는 30대 후반 같았다. 그리 잘 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작은 잔주름이 어울리는 호감이 가는 얼굴이다. 단지 한참 섹스에 열중한 달뜬 표정이라 정확한 인상은 알 수 없었다. 여자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뿌연 습기가 창문 위로 형성되어 여자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헉........헉.........여보........엎드려 봐”
“아~잉........하이........하이.......빨리 끝내요.......어서”
“헉.......헉.........엎드려 보라니까?”
“하이.........하이........정말”
여자는 남자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여자는 운전석 쪽으로 허리를 굽히더니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엎드린다. 남자가 여자의 스커트를 밀어 올리니 여자의 하얀 엉덩이가 드려난다. 남자는 여자의 가랑이 사이에 손을 집어넣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앙.......소.......손장난 그만하고.........어서 해요.”
여자의 채근에 남자는 씩 웃으며 손을 빼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지를 여자의 엉덩이 사이로 집어넣는다.
“헉........헉.........당신 보지는 언제 먹어도 좋아.”
“하이.......아아앙.......몰라........빨리 해요........앙.”
남자가 움직일 때 마다 여자의 하안 엉덩이가 요동을 친다. 남자는 여자의 엉덩이를 주무르며 열심히 떡을 치고 있었다.
수혼은 자신이 한심하고 생각했다. 남의 섹스 장면이나 훔쳐보고..........방금 전까지 고민했던 놈인가 싶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은 때론 이성까지도 무기력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머릿속으로는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남자는 절정이 다가온 모양인지 힘차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철썩..........철썩”
살과 살이 부디 치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린다.
“헉........헉........여보...........싼다..........아.....아”
“아아아앙.........싸요........여보.........어서”
“아.....으........윽”
남자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여자 등에 쓰려진다. 여자는 남자가 사정을 하자 얼른 일어나 휴지를 찾아 자신의 구멍을 막는다.
(이..........이런..........교수님이)
여자가 휴지를 찾기 위해 몸을 굽히자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여자의 얼굴은 오정숙교수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화선과 쌍둥이처럼 닮은 여인..........오정숙이 늦은 밤 교내 주차장에서 섹스를 하고 있었다. 수혼은 너무 놀라 뒤로 물려났다. 혹시나 그녀가 자신을 볼까 두려운 마음이 밀려왔다.
멀리서 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차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잠시 후 남자가 차에서 내린다. 오정숙 교수도 차문을 열고 내렸다. 남자는 오교수를 안고 깊은 키스를 한다. 키스가 끝나고 남자는 한쪽에 세워진 차에 올라 떠나 버린다. 오교수는 멀어지는 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혼은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를 아는 척 해야 하나.
“저 교수님”
“누.......누구.”
“저 조수혼입니다.”
“아니 수혼학생이 이 시간에 여긴 무슨 일이죠. 참 지금은 방학 중인데”
“그러는 교수님은요.”
“아~ 난 연구실에서 하던 작업이 있어서 왔어요. 이런 시간이 이렇게 됐나.”
“아까 그분..........누구예요.”
“봤.......어....요.”
순간 오교수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저기서 보니까 남자분하고 키스를 하시는 것 같던데”
“키........키스........그럼 다른 건 보거 없어요.”
“예~~~ 뭐요.”
“아~~ 아니 예요. 남편 이예요. 남편이 네일 출장 가는데 얼굴이나 보자고 학교로 찾아온 거죠.”
“남편.............그렇군요.”
“근데 수혼학생은..........이 시간에 무슨 일로........”
“그냥 왔어요. 답답해서.”
“뭐~~ 고민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녀가 저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어요. 만나주지도 않고.....”
“사.........사랑하는 사람. 화선씨라는 분이 돌아왔어요.”
“아니요. 다른 여자예요.”
“그........그래요. 하긴 그게 몇 개월 전이니까? 그래 무슨 일로 오해 했는데요.”
“다음에 이야기하죠. 시간도 늦었는데.”
“그러지 말고 이야기 해 봐요.”
“좀 길어요.”
“그럼 우리 밖으로 나가서 차라도 한잔 하며 이야기해요.”
“집에 안 가셔도 돼요.”
“딸은 친정집에 맞기고 왔고, 남편이야 출장 갔으니 늦게 들어가도 돼요.”
“그래도........미안해서”
“자 타요. 내가 잘 아는 찻집이 있어요.”
수혼은 망설이다 그녀의 차에 올랐다. 오교수도 운전석에 타더니 방향제를 뿌린다.
“차에서 냄새가 좀 나죠.”
“아니요.”
차가 출발했다. 수혼은 코끝에 밤꽃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방금 전까지 남편과 오교수가 질펀한 섹스를 나누던 곳에 자신이 앉아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제 목: 낭만을 꿈꾸는 늑대 (29부 )교수님과의 섹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