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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카파로 가자-105화 (105/107)

105화

결국 은준은 다시 한 번 한국으로 귀국했다. 다만 어머니의 뜻대로 선을 보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는 어머니의 생각에 회의적이었던 것이다. 단지 집에 간지 오래됐던 터라 가족들 친구들 얼굴이나 볼 겸 겸사겸사 다녀오자는 생각이었던 것 뿐이다.

‘선 보는 것 자체야 어려울 건 없지만, 누가 날 따라서 아프리카 까지 올까? 정말 죽고 못 살 정도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닌 다음에야, 가족도 친구도 없는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그 먼 곳까지 누가 따라오겠어. 하물며 선 봐서 결혼하는 여자중에서라면 말 다 했지.’

옛날 그의 부모님 세대에서는 물론 연애 결혼도 있었지만, 선을 봐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과 다른 점은, 당시엔 결혼 적령기의 남녀가 선을 봤었던 반면, 지금은 노총각 노처녀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선을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노총각 노처녀들은 왜 그때까지 결혼을 하지 못했을까? 먼저 선남선녀 커플은 젊었을때부터 서로 눈이 맞아서 일찍 결혼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게 아니어도 오래 사귀다 늦게 결혼하는 경우도 있고. 어쨌건 짝이 있으니 선을 볼 필요가 없다. 끼리끼리 만난 케이스다.

그 다음에 한쪽이 능력있는 경우로, 그 능력이라는 것이 경제적 능력이든 뭐든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니 남들보다 공부를 더 오래했든 뭘 했든 지간에 결혼에 눈을 돌릴 때 쯤 되면 어느샌가 나이가 들어있는 것이다.

원래 능력있는 것들은 선택권이 있기 마련이다. 돈도 많은 사람이 더 좋은 상품을 사지 않던가. 게다가 능력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먼저 접근하는 사람도 생기고, 중매인도 접근하기 시작한다. 이 경우엔 젊고 예쁘고 영악한 애들이 일찌감치 채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명 능력자들의 결혼을 보면 나이차가 많이 나는 연상연하 커플이 많은 것이다. 요즘은 연하남과 결혼하는 것도 대세니 진짜 능력있는 여자는 연하남과 결혼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보니 마지막으로 남는 이들은 조금 세게 말해서 결국 쭉정이다. 여기에 포함되는 사람중에 자신은 쭉정이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능력자가 될 만큼 한눈 안팔고 노력한 것도 아니면서 대체 그 나이까지 뭘 했길래 결혼할 상대 한 명 없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결국 이도저도 아닌 셈이다.

속상할 수도 있다. 하긴 요즘 세상이 얼마나 팍팍한가. 능력자가 아니라서 오히려 더 주변 돌아보지 못하고 일만 하다가 이성을 만나지 못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세분화하여 들어가면 특별한 케이스가 나온다. 자칭 골드미스다. 그것도 자의로 골드미스가 된 경우가 아니라 어떻게 하다보니 결혼 못한 노처녀가 되어버려 ‘그럼 나도 골드미스?’ 라고 자위하게 되는 이들 말이다. 사실은 진짜 골드미스는 두 번째 경우의 여자가 결혼하기 전이 진짜 골드미스일 뿐이다.

이 경우가 여자 본인이나 상대편으로 나온 남자나 힘들어지게 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골드미스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인 것이다.

자칭 골드미스가 탄생하는 비화는 이렇다. 처음엔 어느 왕자님 같은 남자가 자신을 대려갈 줄 알고 주변의 보통 남자들에게 눈을 주지 않는다. 현실을 봐야 하는데 순정만화, 드라마 따위에 혹해서 자신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줄 아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시간은 흐른다. 나이를 먹으니 조금씩 현실을 보기 시작한다. 그런데 너무 자기 중심의 현실이다. 집, 차, 돈 조건이 붙는다. 그리고 어느정도 외모도 포기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첫 번째 두 번째 경우에서 그러 남자들은 전부 짝을 찾았기 때문에 더 이상 남아있지가 않다. 그들도 자신이 능력이 있는데 굳이 나이 많은 여자를 고를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결국 점점 나이만 먹고 스스로 경제적 능력은 있지만 결혼은 못한, 스스로를 ‘자칭’ 골드미스라 부르는 부류가 탄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남자쪽을 살펴보면, 마찬가지로 젊고 잘나가는 여자는 일찌감치 끼리끼리 뭉쳤거나 더 능력있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 외에서 상대를 찾아보려 해도 그들은 저 위를 쳐다보고 있지 자신을 봐주질 않다보니 결국 이들도 나이만 먹고 손가락만 빨다가 노총각이 되어버린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은준도 바로 이 부류에 속해있었다. 젊어서 여자를 사귀었지만 어느샌가 다 어디로 갔는지 혼자 남아있었고, 아등바등 살아가다보니 현실에 치여 나이만 먹고 이룬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안좋게 말하면 쭉정이고, 좋게 말해도 길에 채이는 보통 남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얼마전 그 쥐구멍에 쨍 하고 볕이 들어왔다. 쭉정이가 능력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능력자는 능력자인데 먼 나라 능력자인 것이다. 그 능력자를 잡으려면 자기가 가진 것을 죄다 버리고 따라가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물론 그래도 좋다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뭐 어때? 한국에서 구질구질하게 사는 것보다 돈 많은 남자 만나 저택에서 여왕처럼 살면 되지. 일년중 반은 유럽으로 여행도 다니고 돈 쓰는 재미로, 그정도면 내가 참아주지. 이런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까?

‘돈 보고 결혼하려는 그런 여자랑 결혼할거면 차라리 혼자서 살지! 아니면 지금처럼 야나 데리고 살던가. 어리기로 따지면 야랑 얌이 더 어릴걸? 요리 잘하지 집안일도 알아서 척척 잘 하지, 순진하기까지! 욕심많고 되바라진 요즘 애들보다 훨씬 낫다!’

‘내가 뭐가 아쉬워서 나이도 많은 여자랑 선을 봐서 결혼을 해? 꼭 한국 여자랑 결혼할 필요도 없잖아? 노총각들이 국제결혼도 많이 한다고 하던데, 나도 국제결혼 했다고 치지 뭐. ...나쁘지 않은데?’

은준도 야를 보며 ‘현지처’ 라는 단어를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고국에 아내와 가정이 있지만, 멀리 외국으로 장기 출장 혹은 발령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 가족들 모르게 현지에 새로운 젊은 처를 맞아들여 그곳에선 부부처럼 사는 이들. 그 아내가 바로 현지처다.

어떻게 보면 야와 은준의 관계도 이미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실제로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누군들 결혼하고 데리고 살던가? 그냥 데리고 살다보니 어느새 부부같은 관계가 되어있는 것이지. 은준도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었다.

* * *

은준은 아버지 어머니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늦지 않은 저녁, 저녁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그간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과 달리 특별한 주제가 정해져있었다. 은준의 결혼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진짜 선 보는건 좀 아닌거 같아요.”

“왜, 나이가 많아서? 그건 걱정 마라. 네가 뭐가 아쉬워서 나이 많은 여자랑 선을 보니?”

“네? 그럼요?”

은준은 생각지도 않은 어머니의 대답에 순간 되묻고 말았다. 은준은 이 시간이 올 때까지 어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경우 선을 봐서 결혼할 경우의 좋지 않은 점들에 대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준비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방금 그의 어머니가 말 한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역으로 선수를 당해버린 것이다.

“엄한 집안에서 자란 처자가 있다더라. 아직 대학교 다니고 있다는데 그게 문제될건 없겠지. 어차피 선 본다고 당장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알아가다가 졸업 하고 결혼해도 되고, 아니면 둘만 좋다면 먼저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마치 벌써 성사된듯한 어머니의 말씀.

“하, 하지만 그런 여자가 뭐가 좋다고 저랑 선을 보겠어요. 말이 나와서 말이지, 솔직히 선을 본다고 해도 제가 얼마를 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안하고 싶어요. 그런 이야기 해봤자 돈 보고 결혼하는지 누가 알아요? 그런 여자는 제가 싫어요.”

은준은 준비한 두 번째 방법을 사용했다. ‘돈 보고 오는 여자는 싫어요!’

“그런 며느리는 나도 싫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농장은 비밀로 하고, 한국에서 네 개인 사업을 하나 열면 어떻겠니? 지금까지 모은 것이면 작은 사업이나 가게 하나 못 열겠니.”

“보여주기로 사업을 하라고요? 무슨 사업을 그렇게 시작해요? 그러나 생 돈만 날리지. 사업도 하려면 사전 조사도 엄청 해야하고 하는데, 선 보자고 사업을 시작하는게 말이나 되요? 선 보고 나선 다시 팔아버리고요? 에이, 그건 아니죠. 무슨 렌트카 빌리는 것도 아니고.”

은준은 아무래도 이번 만큼은 어머니가 무리수를 뒀다며 이야기가 잘 풀릴 것 같아 농담이냐는 듯 가볍게 웃어 넘기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더 큰 한방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왜 되팔아? 당연히 쭉 네가 맡아 해야지.”

“네? 무슨 소리세요. 사업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사장이 붙어있지 않으면 망해요.”

“그래, 그러니까 네가 잘 관리해 운영을 해야지.”

“네, 네?”

“그럼 계속 아프리카에서 살려고? 한국에 와서 네가 할 일을 찾아서 해야지. 사내가 자기 사업을 할 수 있으면 하는 것도 괜찮다.”

“무슨소리세요! 저보고 한국에서 살라고요? 그럼 벤시몽에 있는 농장은요.”

“그건 대신 누구더라 관리하라고 해야지. 지금도 밑에 사람을 두고 일을 시키고 있다면서? 그럴거면 꼭 네가 거기 있을 필요가 있겠니? 때 되면 심고 거두면 되는거, 거긴 사람 시켜서 관리하게 두고, 너는 한국에서 네 일을 하면 되지.”

은준은 생각지도 못했던 반격에 순간 머리가 텅 비어버리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크리스마스가 일주일도 안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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