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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카파로 가자-104화 (104/107)

104화

하지만 야에게 닥쳐올 시련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은준이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시련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일본에서 촬영팀이 왔다간 뒤로 또 시간은 금방 그렇게 흘러갔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 답게 벤시몽 역시 별다른 사건 없이 또 한 번의 수확을 거뒀고, 새로운 농장의 개척도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꾸준하게 면적을 넓혀갔다.

돈 걱정, 먹고 입고 자는 걱정이 전혀 없는 은준은 야, 때론 얌과 함께 굴곡 없는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다. 하나 모자란 것이 없으니 급할 것도 없고, 원래 성격 자체가 오지에 있다고 답답해하거나 하는 성격도 아니니 현재의 생활에 딱히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심심하면 영화와 게임을 즐기다보면 그런 감정도 어느새 잊어버리고 몰두하기 일쑤였다.

이런 은준의 상황을 아는 은준의 아버지는 전화기에 대고 한말씀 하셨지만, 본인이 아무렇지 않다는데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한국과 벤시몽이 옆집 거리도 아니니 쫓아와 엉덩이로 걷어찰 수도 없었고.

“젊은놈이 답답하지도 않느냐?”

“네? 아뇨. 답답할게 뭐가 있대요.”

“그래도 도시 살다가 그런 구석진데 처박혀 있으면 불편한것도 많을 텐데.”

“괜찮아요. 여기도 인터넷도 되고 될건 다 되요. 차 타고 나가면 도시도 있고요.”

“다섯 시간씩 걸린다면서? 장 한번 보려면 이박 삼일 걸리겠다?”

진취적인 생각과 활기참이 젊은이의 특권이라 생각하는 자신의 생각과 달리 느긋한 아들의 대답에 답답해진 은준의 아버지가 비꼬듯 툭 던졌지만, 아는지 모르는지 은준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유들거리며 대답했다.

“에이, 그건 아니죠. 무슨 이박 삼일이나... 아침에 일찍 나가면 하루면 다녀와요. 아버지 오버도 참. 그리고 아버지가 모르셔서 그렇지 땅 넓은 동네는 이 비슷비슷하다고 하더라구요. 저기 미국도 시내 말고 좀 외곽에 집 있는 사람들은 마트 가려면 차타고 두 시간쯤 간다던데요. 미국도 그런데 아프리카는 원래 미국보다 더 큰데니 더 걸릴 수도 있죠 뭐.”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사실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수화기 저편으로 조용하다 다시 말이 들려왔다.

“...네가 그렇다는데 내가 뭐라고 더 하겠냐. 잠깐 기다려봐라, 네 엄마가 바꿔달란다.”

그러더니 잠시 소리가 멀이졌다가 다시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아들?”

“네, 아들이에요. 식사는 하셨어요?”

“그래. 네 아버지랑 먹었다. 너도 밥 잘 챙겨먹고? 뭐 먹었어?”

항상 똑같은, 식사 메뉴로부터 시작된 안부 인사는 그로부터도 한참 동안 항시 하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이날은 딱 한가지 평소와 다른 것이 있었다.

“...네, 전 걱정 마세요.”

“하이고, 난 네가 참 걱정이다. 회사에서도 그래 적응을 못해가지고 나오더니 아프리카 까지 가서 그 고생을 하고 있으니...”

“아이고, 엄마! 저 고생 하나도 안하거든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고생같은거 안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회사 그만둔게 왜 그게 적응을 못해서에요. 먼저데는 이직하느라 그만 둔거고, 하나는 내부 직원들 다툼에 저까지 당한거지. 거기 저 가기 전부터 그런 판이었어요.”

“그래도 네가 남자고 막내니까 중심을 딱 잡고, 나이가 적어도 선배들한테 잘 대접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다른 직원들이 서로 사이가 안 좋아도 사장이 널 못 내보내지 않겠니.”

은준의 전 직장 이야기만 나오면 항상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탓에 은준은 거의 듣는둥 마는둥 수화기를 귀에서 멀찍이 떼어놓았다가 중간중간 듣고있다는 대답만 해보였다.

‘그게 그렇게 될 거였으면 애초에 그렇게 되지도 않았겠죠. 몇 명 안되는 여직원들은 둘 씩 짝지어서 편 가르고, 팀장은 자기 밥그릇 지킨다고 그러고, 그 라인에 둘은 팀장이 그러니까 자기들까지 날 못잡아먹어서 안달이고. 나는 뭐 아무것도 안해본줄 아세요? 맨날 가장 먼저 출근해서 준비하고, 잔일 힘쓰는일은 죄다 내가 나서서 하고, 그래도 어떻게든 잘 해보겠다고 웃는 낯으로 상대해도 막내인 내가 무슨 용 빼는 재주로 작정하고 덤비는걸...’

드라마나 영화 혹은 소설에 나오는 신입사원이 승승장구해서 높은 직위로 올라가 자기를 괄시하던 선배들을 밑에 두어 마침내 그들을 한데 묶는 그런 이야기는 말 그대로 이야기에나 나올뿐, 평범한 지방대 출신의 은준은 시작부터 싹이 밟혀 짖이겨진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자기 변호도 하고 싶었지만, 그간의 흐름을 봐서는 자신이 반론을 하면 또 그대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며 이야기가 더 길어지고, 그럴수록 어머니의 답답한 속도 더 딱딱하게 굳는다는걸 알고있는 은준은 그저 가만히 듣고 ‘예, 예’ 하는 것이 빨리 끝내려 했다.

“... 네가 직장을 잡고 일을 하고 있어야 집도 사고 결혼도 하고 할텐데 큰일이다. 그러지말고 돌아와서 적게 주는데라도 들어가는건 어떻겠니? 처음엔 다 그래도 오래 다니다보면 월급은 오르는거다. 요즘같은 시대에는 많이 주는데만 찾아다니다가는 아무것도 안돼. ...”

결국 똑같은 레파토리대로 은준 어머니의 이야기는 아프리카처럼 멀고 험한데서 농사짓지 말고 한국에 돌아와 살자는 이야기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은준의 아버지는 은준이 벤시몽에서 어떻게 얼마나 벌고 있는지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터라 엄한 소리를 한다며 타박 놓는게 은준이 들고있는 수화기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그런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며 은준도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갑작스럽게 너무 큰 돈을 벌어들이게 되고, 그럼으로서 주변에 똥파리가 껴 안좋은 일들이 일어날까 싶어 아버지께만 말씀드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여느 작은 회사의 월급쟁이 정도 벌고 있다는 정도로만 소개한 참이었다. 그 덕분인지 주변에 엉뚱한 일들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반대로 그의 어머니의 속만 타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어머니를 속 썩이다니, 내가 잘못 생각한건가. 비밀로 할 사람이 따로있지 무슨 대단한거라고 저리 속 썩이면서까지 비밀로 했을까!’

순간 자신의 걱정 때문에 한국에서 마음 졸이며 밥이자 제대로 넘기고 계실지 모를 어머니의 생각에 은준은 자신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저 나이만 먹었을뿐 난 여전히 엄마 아빠 사이에 있는 아이였나.’

은준의 부모님도 예순을 넘긴 나이.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정말로 모두가 100세를 사는 것은 아니어도 확실히 과거에 비하면 수명이 늘어났다. 하지만 자기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오륙십대에 직장을 관두고 제 2의 인생을 사는 것이 현재의 세태다. 그러한 현실대로라면 그의 부모님도 이미 제 2의 인생을 살아가야 할 나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아들 걱정 때문에 속을 썩이고 있으니 부모님께 걱정거리 안겨주는 자식이 어찌 성인이라 할 수 있겠나.

“어머니! 어머니!”

수화기 너머로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입으로 투닥거리는 것을 듣고 있던 은준은 이쪽에 신경쓰지 못하고 계실 어머니를 향해 크게 불렀다. 그 소리에 건너편의 소리도 잦아들더니 이내 대답이 들려왔다.

“그래, 얘기 해봐라.”

“사실은 어머니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이날 은준은 그동안 속여왔던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서 자세히 들려드렸다. 오로지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은준에게 일어난 일이 평범한 일은 아니었고, 듣는 사람도 쉽게 ‘어, 그래.’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일은 아니었다. 특히 평생을 소시민으로 살아온 그의 어머니에겐 말이다. 결국 그의 어머니는 남편인 은준의 어버지에게 사실 확인을 듣고서야 아들의 말이 전부 진실임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 그동안 비밀로 해서 죄송해요. 진짜 죄송해요.”

“....”

“저, 어머니...?”

대답이 없자 은준은 혹여 너무 깜짝 놀란 나머지 안좋은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화들짝 놀라 연달아 어머니를 불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가 생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는지, 잠시후 침묵을 깨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듣고 있다.”

“죄송해요.”

은준에게 그 말 말고 더 할 말이 있을까.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진 말은 이번엔 은준을 깜짝 놀라게했다.

“그렇다면 어쨌거나 잘 됐다. 그럼 더 미룰 필요가 없겠구나. 한국에 언제 들어올거니? 아니, 시간 내서 조만간에 한 번 보자.”

“네? 왜,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너! ...선 보자!”

============================ 작품 후기 ============================

야 :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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