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카파로 가자-101화 (101/107)

101화

뿌연 흙먼지가 멀리서부터 벤시몽을 향해 곧장 피어올랐다. 마치 도화선에 불이 붙은 듯한 모양이다. 벤시몽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은준은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서며 외쳤다.

“왔다!”

벤시몽을 향해 다가오는 일단의 차량을 발견한 그는 무척 기대한 듯한 기색이었지만 서두르지 않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잠시후 점처럼 보이던 차들은 점차 크기를 불려가더니 이내 벤시몽으로 차례차례 들어섰다.

줄줄이 이어선 차량은 선두의 안내차량으로 시작하여 스탭들이 탄 버스와 각종 촬영 장비가 실려있는 특수차량, 그리고 식사추진 차량과 숙박을 위한 캠핑카로 끝을 맺었다.

외부에서 손님이 올 것을 은준으로부터 들어 알고 있던 퉁야와 쉬사네는 앞으로 나서 그 차량들을 주차할 공간으로 안내하였고, 마침내 시동이 꺼지고 버스문이 열리자 그 안에 갇혀있던 일단의 무리가 밖으로 쏟아져 내렸다.

“[으아... 찌뿌둥 하군!]”

“[여긴가? 오오, 저기인가본데?]”

“[자자, 일단 인원 체크부터 할테니 모여보라고!]”

“[자, 잠깐! 화장실은 어디로 가야하지? 뭐? 설마 저거 하나밖에 없는거야?]”

화장실이 급했던 한 명은 가이드가 통역해주는 말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간이 화장실을 보며 난감해하기도 했다.

“김 상! 안녕하십니까.”

“예, 카토리 토마씨. 또 뵙네요.”

“하하, 예. 회사 대표로 제가 오게 되었군요. 아! 이분은 이번 촬영의 감독님이신 이마무라 주조님 이십니다. 그리고... 쿠라시나! 이쪽이라고!”

은준이 이마무라 주조 감독과 인사하는 사이 토마는 뒤쪽에서 오래동안 차 안에서 뻣뻣해진 몸을 풀고 있던 쿠라시나 아이를 향해 손짓했다. 그의 부름을 들었는지 팔을 머리 위로 뻗어 허리를 양쪽으로 구부렸다 펴고 있던 소녀 한 명이 힘차게 대답하곤 은준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왔다.

검정색의 널널한 박스티에 반바지 그리고 마찬가지로 검정색 힙합모자를 옆으로 비뚤게 쓰고 있던 쿠라시나 아이는 이어진 토마의 소개에 은준을 향해 손을 모아 꾸벅 인사를 해왔다.

“쿠라시나 아이입니다!”

“예, 예! 김은준입니다. 벤시몽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외국이지만 연예인이었기 때문에 멀찍이서 기웃거리며 구경을 할 생각이었던 은준은 토마가 직접 감독과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쿠라시나 아이를 앞에서 소개시켜주자 내심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횡재한 기분으로 그들을 맞았다.

하지만 은준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촬영 장소를 제공하는 것 이었기 때문에 긴 이야기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잠깐의 만남과 인사였지만, 모니터로만 보았던 모델이자 아이돌 가수인 쿠라시나를 직접 본 은준은 가슴이 쿵덕쿵덕 뛰고 있었다.

벤시몽에 낯선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마을 사람들도 잠시 관심을 비치고는 이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외지인이긴 했지만, 당장도 학교를 세우고 있는 인부들도 있었고, 흔히 볼 수 없는 동양인이라는 점이 호기심을 끌만도 했지만, 이미 은준이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한 번 훑어보고는 이내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 짐들은 어디로 옮겨야죠?]”

“[아! 잠시만요. 이쪽으로요.] 김 상, 얘기 했던 대로 쿠라시나 아이 양의 숙소는...”

“물론입니다. 준비 해놨으니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하지만 역시 공개된 곳이 아니라 제가 살고 있는 집이기 때문에 촬영시간 외에는 다른분들이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물론입니다. 계약서에 적혀 있는대로 지켜질 것입니다.”

은준은 그도 익히 알고있는 쿠라시나 아이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저들이 벤시몽에서 촬영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지만, 그렇다고 낯선 사람들이 제 집을 들락날락거리는 것이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내부 촬영중엔 어쩔수 없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다른 사람들이 저택 안에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것을 내부 조항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다만 주인공인 쿠라시나 아이 만큼은 컨디션 조절등 복합적인 문제로 인해 토마가 은준에게 양해를 구했고, 은준도 쿠라시나 아이와 한 방은 아니지만 한 지붕 아래서 잘 수 있다는 사실에 흔쾌히 허락을하였던 것이다. 물론 끝까지 촬영 감독의 합숙을 막아낸건 은준의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의 고집의 승리였다.

그래도 외지인의 출입을 막무가내로 막을수만은 없었다. 주로 실외촬영이지만 실내 촬영과 수영장 촬영신도 있었기 때문에 미리 스탭들이 내부를 둘러봐야만 했던 것이다. 사전 조율 때 토마가 내부를 꼼꼼히 촬영해가긴 했었으나, 사진으로 보는 것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차이가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지난번 관광객들이 방문했던 때와 달리 이번에는 은준도 쿠라시나 아이 때문에 제법 방문객들에게 살갑게 대했다. 물론 아무래도 일본인인 탓도 있고 은준의 기본적인 성격도 있었기 때문에 그가 직접 사람들에게 다가가 억지로 말을 붙이진 않았으나, 아프리카에서 나는 신선한 과일과 더운 가운데 얼음을 갈아 만든 빙수는 사람들에게 크게 환영받았다.

첫날밤은 금방 찾아왔다. 뉴카파에서 일찍 출발한다고 하였더라도 5시간이이나 차를 타고 오다보면 벤시몽에 도착했을 때에는 어느덧 오후, 다시 벤시몽을 둘러보고 먹고 자는 문제들을 해결하다보면 금방 어둠이 찾아오는 것이다.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저 방이 제 방이니 찾아오세요.”

“[감사합니다!]”

오랜 차량 이동과 낯선 기후로 피곤할만도 하건만 아직은 어리다고 해도 좋을 만한 나이이기 때문인지 여전히 기운차게 대답한 쿠라시나 아이는 함께 온 스탭중 여성 코디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원래는 벤시몽 저택 안에서 자는 것은 쿠라시나 아이 하나만으로 되어있었지만, 낯선 남자와 한 지붕 아래서 잔다는 것이 편하지 않다는 것을 은준도 이해했기 때문에 합의된 예외였다.

“킴, 그럼 저도 이만 가서 잘께요. 손님들도 있으니 내일은 더 일찍 일어나서 준비해야겠어요.”

“준비? 우리가 준비할게 뭐 있어. 낮에 보니까 밥차도 따라왔던데, 아까처럼 알아서들 해 먹겠지. 왜 야가 고생하려고해. 저 사람들이 몇 명인데. 그러지 마. 그리고 왜 갑자기 이상한 소리? 자려면 같이 가서 자야지.”

은준의 입가에 달린 미묘한 미소에 야는 얼굴을 붉히며 혹여 자신들의 말을 손님이 들었을까 복도를 살피며 몸을 꼬았다.

“저, 저 그래도 손님도 계신데 어떡해요. 소리라도 들리면 전 부끄러워서...”

하지만 야의 작은 저항은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은준이 마치 보란 듯이 그녀를 안아들고 방으로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꾹꾹 눌러 참는 듯한, 억눌린 신음소리가 방문을 통해 흘러나왔고, 야는 부끄러움에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아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하지 못하게 두 손목을 모아잡는 은준으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러한 은준의 행동에는 한가지 노림수가 있었다. 그것은 무척 변태적이었으며 망상에 가까운 것이었다.

‘야의 신음소리를 듣고 아이도 흥분하는거지. 일본 애들은 첫경험도 빠르다던데, 설마 처녀겠어? 그리고 원래 일본이 성 쪽으로 개방적이잖아. 몰래 문 앞에서 훔쳐보며 자위를 하다가 이리저리 해서 내가 쿠라시나 아이와...!’

그야말로 망가나 야동에나 나올법한 실현가능성 없는 망상이었지만, 은준은 거기에 한치의 기대를 하고 있었다.

물론 은준도 지금이야 눈 앞의 떡에 입맛을 다시고는 있지만, 상식이 있는 인물이었으니 자신의 망상이 실현가능성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말 그대로 실낱같은 가능성에 기대어 문 밖으로 귀를 쫑긋 세울 뿐이었다.

하지만 망상은 망상이고, 야동은 환타지일 뿐일까? 은준의 기대와는 다르게 밤은 아무런 사건 없이 평소와 다름 없이 지나가고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은준 :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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