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카파로 가자-100화 (100/107)

100화

쉬사네는 미리 그와 같은 대상을 선별해두었는지 은준의 지시가 하달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섯 명의 사내를 그의 앞에 대령했다.

“쿤타입니다.”

“잉가란입니다.”

“이사이입니다.”

“터바렉입니다.”

“모비시입니다.”

“히브루즈입니다.”

색 바랜 티셔츠에 긴 면바지 혹은 반바지 그리고 슬리퍼나 낡은 운동화 차림의 사내들은 무척이나 젊어보여 아직은 얼굴만 봐서는 나이를 추측하기 어려워하는 은준이 보기에도 십대 정도로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가장 나이가 많은 쿤타가 19살에 막내인 히브루즈는 겨우 16살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은준은 그들을 미성년자라고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국에 있을때의 방식. 이곳에서 1년 넘게 지켜봐온 그는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저들도 그동안 자신의 농장에서 다른 일들을 해왔을 것이고, 또 집안에서도 한 명의 노동력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들일 터였다. 그런데 이제와서 은준 혼자 한국식으로 미성년자라고 자신의 농장에서 일을 하지 못하게 한다해도 일이라는게 옥수수 농장에서의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니 의미 없는 일이었다.

“좋아. 쿤타, 잉가란, 이사이, 터바렉, 모비시, 히브루즈. 어... 히브루즈는 히브리어로 지은 이름인가?”

아프리카는 오랜 세월 유럽의 식민 통치를 받았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은 이름이 많았다. 다만 히브리어 즉 헤브라이어는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언어이기도 했지만,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셈어 계통이기 때문에 꼭 식민 통치 시대의 영향이라고만은 보기도 어려웠다.

“히브리서라는 뜻입니다!”

“신약성서의 히브리서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은준이 히브리서가 무엇인지 모르는 눈치자 옆에서 쉬사네가 거들었다. 무교인지라 종교에 대해 잘 모르던 은준도 신약성서가 무엇인지 정도는 알았기 때문에 그제서야 ‘아...’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소개가 끝나자 은준은 상의를 통해 마을에 남을 사람과 도시에 나가 전문적으로 정비 기술을 배워올 사람을 나눴고, 그 결과 18살 동갑인 잉가란과 이사이가 그 역할을 맡기로 하였다.

“교습비와 체류비 등은 내가 책임지도록 하지.”

또 연봉에 관해서도 협의를 했는데, 막내인 16살 히브루즈도 흑인답게 건장해서 충분히 한 명의 몫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모두 연봉 6000랜드를 주기로 했는데, 이것은 매달 500랜드로, 기존에 일당을 받고 일하던 때에는 하루에 10랜드로 한달 내내 일을 해도 300랜드밖에 벌지 못하고 그나마도 파종때와 수확시기가 아니면 일이 매일 있는게 아니었기 때문에 이들은 무척이나 기뻐했다.

기뻐하는 여섯 명을 보던 은준은 잉가란과 이사이가 언제부터 교습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며 그들을 돌려보낸뒤 쉬사네로 하여금 다시 퉁야를 불러오도록 하였다.

“특별한 일은 없지?”

“물론입니다. 옥수수도 순조롭게 자라고 있고 계속해서 돌아가며 지키고 있기 때문에 야생동물들이 순을 뜯으러 오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음... 오늘 이렇게 부른 것은 말이야...”

애초에 퉁야와 계약할 당시 그의 역할은 옥수수농장의 관리와 벤시몽 저택의 관리였다. 하지만 후에 벤시몽의 관리 일에선 손을 떼었지만 갈수록 농장이 커지면서 할 일이 늘어났고 현재도 기존 옥수수밭을 관리하랴 새로 밭을 만들랴 할 일이 산더미 같았다.

‘일이 많아지면 그만큼 보상을 해줘야지.’

은준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 한 만큼 확실한 보상을 주고싶어했다. 그것은 과거 그의 직장생활에서의 기억 때문이었다.

그는 한국을 떠나기전 다녔던 회계사무소. 연말정산 시기면 주말도 없이 반복되는 새벽3시 퇴근과 정시 출근. 하지만 노력에 비하면 쥐꼬리 같던 월급. 차라리 그 시간만큼 아르바이트를 여러개 했다면 그게 더 돈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합리적이지 않다!

일을 시켰으면 그만큼의 노동의 대가를 달라. 회사도 남는게 없다고? 그러니 직원들이 이해하라고? 왜 직원만 이해를 해야하는가. 이해해야하는 것은 왜 직원들뿐인가? 은준이 유별나게 반골 기질을 가진 이도 아니었고, 오히려 그 반대였다. 항상 사회 시스템에 순응해 물처럼 살아온 그였다. 하지만 사회에서 겪은 일들은 불합리한 것 투성이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데 신경쓸 필요 없지. 이제는 내가 갑인걸? 적어도 내 영역에서 만큼은 내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 것은 있을 자리가 없다! ...그래봤자 벤시몽에서 뿐이지만.’

물론 은준이 이 세계의 최고의 갑은 아닐 것이다. 당장 옥수수 수매를 오는 공무원에게도 갑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은준의 생각은 이랬다.

‘굳이 갑과 을의 관계에 얽매일 필요가 있을까? 그런거야 이익과 욕심 때문에 사람들이 손에 쥔 것을 놓지 못해, 미련 때문에 얽혀있는 것이지. 나야 뭐, 지금 번 돈만 있어도 평생 먹고 살 수 있는데 누가 내게 갑질 하려고 하면 떠나버리면 그만이라고.’

갑도 을도 서로 필요한게 있을 때에야 이루어지는 관계다. 서로 주고받을게 없다면 갑도 을도 존재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더 욕심낼 필요 없는 은준으로서는 언제든 갑과 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면 지금 계속 늘려가는 농장은 뭐냐고? 그것은 돈이 필요해 옥수수 농장을 운영하는게 아니라, 옥수수 농장을 운영하다보니 돈이 들어온다는 개념이다. 둘은 같아보이지만, 전혀 다른 문제다.

특히 지난해 옥수수 농사로 이미 수십억을 보유하게 된 은준은 그것이 돈이라기 보다는 그저 숫자로만 보일 뿐이었다. 평생 중산층에 소시민으로 살아왔던 그에겐 오히려 그 큰 돈이 현실성 없이 다가왔던 것이다.

은준은 퉁야와 쉬사네의 연봉을 각각 50%씩 상향 조정하기로 결정했다. 즉, 15,000랜드인 셈이다. 처음 한국을 떠나왔을때라면 조금 고민했을 금액이지만, 이제 30,000랜드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투자할 재력이 있었다.

또한 앞으로 퉁야와 쉬사네가 농장을 관리하고 사람들을 부리며 돈을 벌어올 것을 생각하면 그정도는 정말이지 푼돈에 불과했다.

“어, 그럼 야도 연봉을 올려줘야 하나?”

지금은 둘의 관계가 야가 뭔가 필요하다면 야가 돈을 쓸 필요도 없이 은준이 대신 사줄 정도의 관계가 되어버렸다. 물론 야가 은준에게 무언가 사달라고 한 적은 없지만 말이다. 오히려 누구들처럼 옷 사달라 가방 사달라 바라는 것 없이 거안제미(擧案齊眉) 깍듯이 공경해 남편 모시듯 하니 은준도 야에게 항상 무언가 해주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것은 야가 연봉을 받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지금 관계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 야가 자기 집안일 하듯 한다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애초에 야는 연봉 계약을 하고 가정부로 들어온 상황이었다. 아무리 둘의 관계가 가까워져서 네 돈 내 돈의 구분이 없다 하여도 줄 돈은 줘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같은 시기에 계약한 퉁야나 쉬사네는 연봉이 올랐는데 야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은준의 고민인 것이다. 하지만 결론은 금방 나왔다.

“그런데 야가 하는 일은 특별히 더 많아지거나 하지 않았잖아? 그런데 무턱대고 아무 사유 없이 올려줄 수는 없지. 주자면 더 줄 수도 있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않겠어? 뭐, 필요한게 있다고하면 고용주와 고용인 관계가 아니고서도 해주면 될 일이니까.”

그렇게해서 50%씩 연봉이 상승한 퉁야와 쉬사네와 달리 야의 연봉은 동결되었다. 물론 이들 세 사람은 서로가 얼마나 받는지는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연봉 계약엔 자신의 연봉에 대해 비밀을 유지할 것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서로가 자의로 말해줄 수는 있겠지만, 거기까지는 은준이 관여할 문제는 아니었다.

새로운 직원의 채용과 연봉 협상이 있고, 퉁야와 쉬사네에게 새로운 직원들이 농기계 다루는 방법에 대해 교육을 받으며 일당을 받고 일하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새로운 옥수수밭을 개척하는 사이, 벤시몽에는 새로운 손님이 방문하였다.

그의 이름은 카토리 토마. 멀리 일보에서부터 날아온 손님이었다. 그가 벤시몽까지 온 이유는 쿠라시나 아이의 새로운 그라비아 영상인 [아프리카 초원에서의 건강한 아이‘s] 촬영지 섭외를 위한 사전 조사와 계약이었으며, 그가 다시 돌아왔을땐 촬영팀과 주인공인 쿠라시나 아이가 함께였다.

============================ 작품 후기 ============================

1.100화 ㅊㅋㅊㅋ 자축합니다 ㅋ2 99화 댓글수가 마음에 차지는 않지만, 제가 나가봐야해서 올립니다 ㅜㅜ 댓글을 더 우렸어야 했는데!! ㅋㅋ

3. 댄디를 아시는분도, 모르시는 분도 계시군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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