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키다, 가르치다. 평소엔 실수하지 않는 건데... 수정했습니다~ 97화
“강당 같은 건물이 있으면 좋습니다. 학교도 의외로 행사가 많더군요.”
“아, 강당. 실내체육관 같은 건가요?”
“아뇨, 아뇨. 전혀 다릅니다. 이런 작은 분교는 실내체육관까지는 없어도 되요.”
“혹시 샘플 사진이 있습니까?”
“물론이죠. 참고할게 꽤 있습니다. 다른 건물들도 보시고요.”
마이클은 가져온 서류가방에서 두툼한 파일철 하나를 꺼내 견출지가 붙어있는 페이지를 더듬어 은준이 쉽게 볼 수 있게 펼쳤다.
“오?”
은준은 사진에 나와있는 의외로 세련된 건물들의 모습에 놀랐다. 비록 색깔은 남아공 지역에서 다니는 사업자라서 그런지 짙은 녹색이 곳곳에 섞여있긴 했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주로 보았던 장면은 티비에 나오는 모습들이었기 때문에 태풍에 날아간 지붕 없는 학교, 오래된 버려진 교회 건물같은 검은 그을음 천지의 횡 한 교실 등의 인식이 머리에 들어있었는데, 사진에 나와있는 모습은 말끔한 외벽, 단층의 지붕, 중앙문이 있는 교사 등으로 은준을 크게 만족시켰다.
“이건 오히려 내가 다녔던 학교들보다 더 낫잖아?”
은준은 샘플 사진을 보며 감탄했다. 샘플이라고 하지만 CG로 만든 이미지는 아니었고, 기존에 지은 건물을 사진으로 찍어 현상하여 들고다니는 듯 했는데, 네모 반듯한 건물에 장식이라곤 유리창이 전부인 한국의 학교보다, 단층에 교실도 몇 개 안되는 학교였지만 유럽의 영향을 받은 듯 원형의 기둥 장식도 있고, 창문은 커다래서 옛날 창호지 바른 문을 보는 듯 석재로 문양을 만들어 장식한 것들이 겉모습까지 은준의 마음에 들었다.
“계약하죠!”
은준과 마이클 사이에 계약서가 작성되고 지폐 뭉치가 오가자 며칠후부터 벤시몽으로 각종 건설기계가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창고나 수로 건설로 벌써 몇 차례 보아온 광경이었지만, 보고 또 봐도 구경거리가 남았는지 마을에서 우르르 몰려나와 근처 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커다란 기계가 쿵! 쿵! 거리며 지면을 고르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러는사이 은준도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물론 그도 학교 건축 의뢰인으로서 수시로 공사 현장을 방문하여 감시 감독에 참여했지만, 그에게 할 일이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또 좋은 구경도 한두번이지 하루 종일 먼지 날리는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도 고역이었다.
대신 그는 자신이 준비한 말뚝같은 것들을 트럭에 실어 날랐다. 트럭에 실린 나무 말뚝을 내려놓은 곳은 다름 아닌 바오밥나무 군락지였다.
-궁! 궁!
직접 잘라 만든 울타리용 말뚝을 거꾸로 세워 평평한 쪽을 묵직하고 머리가 큰 나무 망치로 두들겼다. 처음엔 살짝, 그리고 뿌리가 어느정도 깊이 들어갔다 싶으면 점점 세게. 그리곤 손으로 살짝 그것을 흔들어보아 흔들림이 없으면 또 다른 말뚝을 집어들고 옆으로가서 동일한 동작을 반복했다.
끝과 끝을 일정한 간격으로 표시한 줄로 연결해 두었기 때문에 말뚝을 박는 선이 비뚤어질 일도 없었고, 말뚝간의 간격도 항상 동일했다. 겨우 2~3cm남짓한 두께의 폭 10cm의 하얀색 페인트로 색칠한 나무말뚝은 무척 약해보였다. 작업중에 차량이 부딪히거나 야생 가젤이 달려와 부딪히기만 해도 그 흔적이 남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차피 은준은 이 울타리로 무언가를 막으려 한 것이 아니었다.
“음, 그래. 색이 확 표가 나네.”
은준의 말대로 하얀색으로 칠한 울타리는 꽤 멀리서도 눈에 잘 띄었다. 높은 자리에 올라앉아 기계를 몰 때라면 더욱 잘 보일터였다. 다만 자신의 머리만큼이나 커다란 나무 망치를 내려치며 망치질을 계속해야했던 은준은 겨우 열 개의 말뚝을 박고서는 손을 놓고 말았다.
“으아, 이거 운동 되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팔뚝 장난 아니겠어. 예전에 봤던 ‘파이팅’이란 권투 만화에서 타이어에 대고 망치질 하면서 단련을 하던데, 나도 여기에 전부 울타리를 세우고 나면 등근육이 장난 아니게 되는거 몰라?”
은준은 트럭 뒷칸에 걸터앉아 물을 마시며 혼잣말을 늘어놓았으나, 만화에서는 머리 뒤로까지 높이 들었다가 내려치는 것이었고, 현재 그는 가장 높이 올려치는 것이 겨우 어깨 높이니 그의 등근육이 생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의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좁고 얇은 말뚝을 곧게 땅에 박기 위해서 처음엔 약하게 시작하여 점점 세 개 내리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 * *
한편 은준이 아프리카의 벤시몽에서 한창 일에 전념하고 있을 때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는 뜻밖에도 벤시몽이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소스의 원천은 다름 아닌 한 블로그였다. 유명한 블로그도 아니었고, 게시물도 그리 많지 않은데다가 찾는 사람도 별로 없었던 그 블로그에 몇 장의 사진이 올라온 것은 작년의 일이었다.
부부동반으로 아프리카로 여행을 갔었던 블로그의 주인은 평소 회원이나 친구들과 산행 혹은 해외 여행을 다닐 때마다 여행 사진을 찍어 그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었다.
블로그 주인인 이선화 여사는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도 틈틈이 사진을 찍기 바빴는데, 그런 그녀가 아프리카 오지에서 유럽풍의 아담한 저택을 발견하였으니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리 없듯이 그녀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당연히 저택 사진은 물론 함께온 여사들과 단체사진을 여러장 찍고는 자신의 블로그에 그 사진을 올리며 자신도 남편이 은퇴하면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다고 한 말씀 적어놓기에 이르렀다.
처음엔 아무런 일도 없었다. 여행 사진을 올리는 등의 블로그 활동을 하고는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앨범 대신 이따금 자신이 보기 위함이었고, 가끔 친구들이 방문하는 정도가 이선화 여사의 블로그 방문자의 전부였다. 평소에는 일일 방문자수가 1명이 나오면 많이 나오는 것이니 말 다했다.
하지만 이 사진에 관심을 가진 것은 뜻밖에도 한국이 아니었다. 최초 블로그 게재는 이선화 여사였지만, 이미지 검색을 통해 사진을 발견한 사용자 몇 명이 사진을 긁어갔고 그와 동시에 연관 검색어 키워드도 늘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한국에서 바다를 건너 일본에 있는 신주쿠에 위치한 샤이닝윌Shiningwill 이란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토마의 레이더망에 벤시몽의 사진이 걸려들었다.
“어어이, 쇼! 이것좀 봐!”
“무슨 일인데, 토마?”
쇼의 불음에 옆자리에 안자있던 토마라는 남성은 의자를 끌어 쇼의 옆으로 갔다. 둘은 샤이닝윌의 직원으로, 샤이닝윌은 흔히 말하는 연예기획사였다.
“이 사진좀 보라고. 어때, 이번 컨셉에 적용하기에 괜찮을 것 같지 않아?”
“글세? 이건 어디에 있는 곳이지? 우리가 찾는 곳은 일본이나 유럽이 아니라고. 이번엔 바닷가나 수영장이 아닌 아프리카 초원에서의 건강한 아이's 컨셉이라는걸 잊은건 아니겠지?”
남자 여섯, 여자 한 명이 전부인 샤이닝윌 사무실 직원중 동기인 쇼와 토마는 동갑인 나이에다가 동기간인 덕분에 직원들 사이에서도 유독 친밀했다. 때문에 서로 이름을 불러가며 말을 튼 둘은 직원 전체 회의 외에도 서로간에 의견을 주고 받는일이 잦았다.
“물론! 자, 다음 사진들도 보라고.”
“어? 이 왼쪽에 나온 집들은 뭐지? 창고나 가건물 같은건가?”
“다시 한번 봐바! 여기 사람들도 나왔다고.”
“...정말 아프리카인가보군! 원주민 마을이잖아? 아니, 어떻게 원주민 마을 바로 옆에 이런 곳이 있을 수 있지?”
“후후! 그건 나도 모르지만 이곳이 아프리카라는 것은 확실해. 어때, 괜찮지 않아?”
“과연... 하지만 좀 더 알아보자고. 어쩌면 위험한 곳일수도 있잖아? 귀중한 보석이 다치면 안된다고.”
“물론이지. 나도 그런걸 바라진 않아. 좋았어! 내가 자세히 알아볼테니 확인해보고 건의를 해보자고.”
“오케이!”
샤이닝윌 사社에서 그런 일이 있은후, 근육통에 시달리며 야의 안마 시중을 받고 있던 은준은 전화 한통을 받게 된다.
============================ 작품 후기 ============================
1. 혹시나 하시는 분께. 절대 쥔공이 연예계로 진출한다거나 하는 스토리 아닙니다.
2. 암호 : 연. 리.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