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파종이 끝나자 퉁야와 쉬사네의 일거리도 크게 줄었다. 농기계를 다룰만한 인력이 부족한 관계로 그 두 사람에게 대부분의 일거리가 몰리곤 했지만, 그때만 지나면 그 외의 것들은 마을의 사람을 고용해 관리하도록 하는 정도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좀 어때? 불안해하거나 하지는 않아?”
“괜찮습니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잖습니까. 또 처음 겪는 일도 아니고.”
“그래도 익숙해질만한 일은 아니지.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걱정 되기도 할테고.”
“전혀 걱정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지금 사는 집은 문도 튼튼하고 해서 아내도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인데.”
은준과 퉁야는 함께 옥수수밭을 따라 거닐면서 발아 상태를 확인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주제는 전에 있었던 삼인의 강도 사건에 관해서였다.
“마을 사람들은 어떤거 같아? 겉보기엔 그다지 달라진 것 같지 않은데.”
“제가 보기에도 특별히 변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 걱정되거나 하지도 않나? 퉁야네 가족들이 사는 집은 새로 지은 집이니 그렇다쳐도, 마을에 있는 집들은 변변한 문도 없어서 내가 보기엔 좀 허술해보이던데. 그러니 전의 그런 일도 있었던거 아니겠어.”
실제로 마을에 들어왔던 강도들은 집 안에 들어가는데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었다. 문이라고 해봤자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은 싸리문처럼 나뭇가지를 엮어서 만든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보스는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겁니다. 도시에서야 다들 창문에 현관문을 달아서 꼭꼭 닫고 살지만, 저들이야 그렇습니까?”
은준은 퉁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문화에 따른 상대적인 모습인 것이었다. 은준이 생각하기엔 저들이 사는 집이 허술해보이고 불안하게 보일지 몰라도, 거꾸로 보면 그들 입장에선 은준이 사방의 문을 꼭꼭 닫고 사는 것이 오히려 답답해보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도 참 대단하네. 나같았으면 그런 일이 있으면 당장 집을 옮기던가 함부로 못 들어오게 문부터 튼튼하게 해 달았을 것 같은데.”
“하하하! 제 집은 문을 튼튼하게 지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뭐야, 뭐가 웃긴데? 정말로 내가 생각하기엔 조금 이상하다고.”
그의 말에 퉁야는 궁금해진 것인지 아니면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는 것인지 슬쩍 고개를 돌려 은준을 향해 물었다.
“뭐가 그리 이상하십니까?”
“그렇잖아. 집이야 뭐 나라마다 다 가옥 양식이 다르니 문화의 상대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금새 아무일 없었다는 듯 이전과 똑같이 사는 것을 보면. 나 같았으면, 아니 나는 벌써 집에 문마다 감지기를 달아서 누가 침입하면 소리가 울리게 해놨다고.
뭐, 영화처럼 24시간 CCTV를 감시하는 직원이 있어서 미리 침입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이렌이 울리면 자고 있던 중간이라도 깨서 대비는 할 수 있잖아. 그런데 저정도 규모 마을이면 자체적으로 경비를 번갈아가며 선다거나 할수도 있는거 아냐?”
은준은 평소 궁금했던 것을 퉁야에게 물어봤지만, 퉁야라고 자세한 마을 사정까지 전부 꿰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글쎄요... 저들은 그것도 삶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는건 아닐까요?”
그렇게 대답하는 퉁야에게선 일종의 체념의 기색이 옅보였다.
‘내전과 부족간 갈등이 오래 계속되면서 익숙해져버린것일까?’
은준도 퉁야의 반응에 더는 깊이 물어보지 않았다.
“아참, 그러고보니 석세스도 학교에 다닐 나이가 아닌가?”
석세스는 퉁야의 아들이었다. 퉁야는 아들이 성공하라는 의미로 그런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은준의 말대로 어느덧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어있었다.
“전에 있던 곳에선 어딜 다니거나 하진 않았고?”
“아직 어려서 학교에 보내진 않았었습니다. 아내와 아들만 있기도 했었고, 작은 마을이라 가까이에 다닐 학교도 없었지요.”
“음... 그건 여기도 마찬가지인데. 가까운 학교라고 해봤자 뉴카파에나 가봐야 학교가 있을까. 그래도 성공(석세스)하려면 학교를 다니는게 좋은데...”
은준이야 한국에서 나서 자랐고 가정환경도 평범하여 나이가 차면 학교에 다니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자라긴 했지만, 배운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학교가 글을 익히고 셈하는 법이나 자연의 이치와 같은 과학 등을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학교라는 곳 자체로 작은 사회로서 그 안에서 소통하고 관계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실제로 은준이 한국에 있을 때 취업을 위해 이곳저곳에 면접을 보러다니던 시기에 들은 이야기기도 했다. 왜 회사에서는 고졸 사원보다 대졸 사원을 선호하는 것일까? 단지 대학교에서 4년을 더 공부하였기 때문에? 하지만 작금의 대학교에서 얼마나 실용적인 지식을 가르치고 배워 나온다고 볼 수 있을까. 은준이 전공한 경상계열의 경우엔 오히려 실업고를 갖 졸업한 직원이 실무엔 더 능숙했던 사실을 기억했다.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미래를 위한 투자? 당장의 실무 능력 보다는 이후 더 전문적인 업무에 있어서 대학교에서 배운 학문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일까? 물론 그럴수도 있지만, 정말로 필요하다면 고졸 직원도 방송통신대나 자기개발을 통해 능력을 갖출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원했던 것은 사회성이었다는 것을 훗날 은준은 알게 되었다. 물론 그도 처음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때는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학교를 다니면 사회성이 더 좋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별별 인간군상들을 지켜보았던 은준이다. 또한 대학교가 그렇게 사회성을 높여준다면 사회에 나와있는 변태 싸이코 같은 인간들은 무엇인가? 그런 사람들은 전부 고졸들인가? 그렇다면 대학 진학률 80%인 한국에서 그들은 전부 사회성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는 전부 납득할 수는 없었지만, 스스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긴 해야 했다.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 사람조차도 그가 인사담당자로 있으면서 경험한 개인의 생각이지 어떠한 확실한 논리나 조사 결과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은준은 이 문제에 대해 아주 간단한 답을 내렸다. 대체적으로 중딩보다는 고딩이 개념이 좀 더 있듯이, 자신보다 더 오래 살고 많이 보고 들은 사람들이 보기엔 고딩과 대딩 사이에도 뭔가 다른게 보이는가 보더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은준이 무조건적으로 대학을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부류는 또 아니었다. 최근의 경향은 고졸 직원도 많이 채용하는 쪽으로 가고 있었고, 일부 업종의 경우에는 노조 자체에서 대졸자를 배제하는 경우까지도 생겨났던 것이다.
은준이 아프리카로 오기 전 직접 겪은 일로, 흔히 말하는 ‘공장 라인’에 들어가려던 때도 있었다. 대학교를 나와도 이모양이니 기술이라도 배워 먹고살겠다는 의지였다. 말은 쉽지만, 4년 등록금을 부어가며 공부했던 그로서는 쉽게 결정한 일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자신의 삶에서 4년은 의미가 없었던 것이라고 부정한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면접은커녕 서류전형도 통과할 수 없었다. 같은 이유로 대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생산직은 할 수 없다는 노조의 방침 때문이었다.
‘덕분에 이렇게 아프리카로 와서 기회를 잡을 수 있었지만, 그게 모두에게 공평히 주어진 기회가 아닌 내게만 일어난 특별한 일이라는게 사실이지.’
은준은 갑자기 떠오른 기억 때문에 생각이 길어졌지만, 한국과 이곳 아프리카의 사정이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또 아니었다. 한국도 과거엔 대학교에 다녔다고 하면 엘리트라 하여 등용문으로 생각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학력 인플레이션 때문에 문제가 된 것 뿐이다.
‘지금도 학교에 다닐 나이대의 아이들이 많아. 또 앞으로도 더 늘어나겠지.’
두 마을이 합쳐지고 어른들이 은준에게 고용되어 돈을 받고 일을 하게 되면서 그들의 삶은 예전보다 더 풍족해졌다. 옥수수농장에서 생산되는 주식인 옥수수 뿐만 아니라, 노동의 대가로 받은 돈으로 은준의 잡화점에서 생활에 편리한 여러 제품을 구입할 수도 있게 되었다.
풍족한 식량과 삶의 편리 이후에는 당연하리만큼 인구 증가가 따라오게 되어 있다. 그 말은 마을에 지금보다 아이들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얌에게 학교를 지어주고 싶었는데...’
하지만 얌이 그녀가 원한대로 교사로서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았고 가야할 길이 멀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그녀를 기다리며 방학에 며칠씩 가르치는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그런식으로는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질 수 없었다. 얌이 교사 자격을 취득할때까지 기다린다면 지금의 아이들은 그때쯤이면 벌써 한 사람 몫을 하는 성인이 되어있을 터였다. 한 세대를 흘려보내는 셈이었다.
============================ 작품 후기 ============================
과연 연참이 걸리니 댓글수가 엄청나네요;; 생각이상이라 깜짝놀랐습니다.
수영장 청소기... 이건 일반 청소기처럼 사람이 끄는 것도 있고, 자동로봇청소기도 있습니다. 댓글에 잘 적어주셨더군요~ ㄳㄳ 근데 역시 가격이 쎄네요. 하지만 돈은 많지만 소비 레벨은 소시민인 쥔공!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까요!(라지만, 결정은 제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