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카파로 가자-94화 (94/107)

94화

탕!

총성이 울리자 약 5m 앞에 세워져있던 손바닥만한 철판이 ‘텅!’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그 앞으론 왼손으로 오른손 아래를 감싸쥐듯 권총을 들고 서있는 남성이 있었다.

“흠, 괜찮아 괜찮아.”

은준이다. 그는 손에 들린 HK-45를 이리저리 돌려보다 사막색으로 변형된 그립 부분을 보며 음충맞은 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옆에 내려두었던 FN SCAR-H도 집어들곤 차로 돌아왔다. 존에게 총을 넘겨받고 그것을 연습하기 위해 차를 타고 멀리 나왔던 것이다. 물론 그의 집 근처도 공터는 널려있었지만, 최근 일어났던 사건 때문에 혹여 그가 연습하는 소리에 소란이 일까봐 차를 타고나왔던 것이다.

총으로 무장한 탈영병이 마을에서 사람을 죽인 사건이 있고, 은준은 결국 존을 통해 총을 샀다. 하나는 돌격소총인 FN SCAR-H였고 다른 하나는 권총인 HK-45였다. 물론 은준이 이것을 선택한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군대를 갔다왔긴 했지만, 딱히 총의 종류에 대해 전문가는커녕 FPS게임을 즐기는 초등학생 보다 총의 제원에 대해 잘 모르는 그는 존의 한마디, ‘미군에서도 제식 소총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최신형’이란 말에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게다가 대체 어디서 흘러나온 것인지 그가 군대에서 쓰던 K-2와 달리 색깔도 사막색이라 은준은 더욱 마음에 들어했다. 사막색이 마음에 든 이유는 ‘색감이 부드러워 위화감이 적다’가 이유였다.

마찬가지로 권총인 HK-45역시 손잡이 부분이 일부 사막색으로 변형되어 있었는데, 은준은 그것을 보고 ‘누군가 개조해서 쓰던 것이 아닐까’하고 추측할 뿐이었다.

“어쩌면 어느 용병이 쓰던 것일지도 모르지. 주인은 이미 죽었거나...”

원래는 FN SCAR-L 이란 것도 존이 보여준 리스트에 있었으나, 5.56mm 구경인 탓에 ‘야생동물이 나타날지 모르는데 아무래도 구경이 큰게 좋지 않냐.’하는 은준의 생각에 7.62mm인 FN SCAR-H가 최종 선택되었던 것이다. 다만 각각 3500달러와 1500달러인 가격에 기함하였다.

또한 여기에 탄창과 총일 그리고 몇 가지는 서비스로 준다는 존의 말에 낚여 구입한 각종 커스텀 부품을 합치면 그것만으로도 천 달러에 달해, 이번 총기 구입건에만 거의 중고차 한 대 값을 썼는데 그럼에도 은준의 잔고에는 여전히 많은 돈이 남아있었다.

“실제는 이것보다 좀 더 싸겠지만...”

은준은 속으로 무허가라는 단어를 삼켰다. 즉 나머지 금액은 밀반입 및 각종 브로커에게 건낼 수수료 등이라는걸 그도 아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 무기를 가지게 된 은준은 ‘총은 남자의 장난감’이란 말이 있듯 손이 근질거렸으나, 의미없는 살생을 하고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따금 이렇게 사격 연습겸 야외로 나와 모형에 쏘아보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다만 적외선 센서는 직접 집에서 받기로 했다. 처음에는 뉴카파에 구해보려 했었지만, 시중에 나와있는 물건은 은준이 인터넷 쇼핑몰에서 보았던 것보다 구식이면서 가격은 비싼, 그런 것밖에 없었다.

“수입대행을 할까? 뭐 불법적인거 사는것도 아니고 들여오는데 문제 없잖아? 아니지, 그러면 차라리 집에서 부쳐달라고 할까? 구입하는거야 내가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카드로 결제해도 주소지만 집으로 하면 되잖아. 그 다음에 우체국 택배로 해외 배송 해달라면 되지. 뭐, 벤시몽까지 오지는 않겠지만 대행 해서 그쪽 사무소에서 뉴카파로 보내면 두 번 일일거 같은데.”

실제로 은준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적외선 센서를 한국의 집으로 배달시켜 우체국 택배로 발송한뒤 뉴카파의 우체국에 방문해 그의 사서함 번호로 택배를 수령하는데 약 2주가 걸렸을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은준이 사는 벤시몽에는 다시 봄이 왔다.

슥슥! 삭삭!

벤시몽엔 솔질하는 소리가 한창이다. 물이 없이 텅 비어버린 수영장 아래 들어가 기다란 봉이 달린 솔을 들고 청소를 하고 있는 소리다.

“으으, 팔 떨어진다!”

지켜보는 사람도 없건만 은준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으로 봉의 위치를 바꿔가며 솔질을 했다.

“아 진짜, 매번 힘들어 죽겠네. 수영장이 있는건 좋은데, 청소가 문제란 말이야. 퉁야도 이제는 완전히 집 쪽에선 손 떼게 하고 농사쪽만 신경쓰라고 했는데 이제와서 집까지 봐달랠수도 없고. 그것도 나가서 사는 사람한테. 그렇다고 또 누굴 고용하기엔 그럴만큼 많은 일도 아니고...”

더운 여름에 수영이나 하면서 시원하게 지내가며 수영장을 만든 은준은 수영장 청소 때문에 육수를 뽑아내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도 이제는 영화나 미드에 나오는 수영장 딸린 집을 관리하는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꼭 보면 애들한테 잔디깎는 알바를 시키는 거였어. 못할일은 아닌데 너무 귀찮아!”

그래도 모처럼 만든 수영장을 수초 가득한 연못으로 만들고 싶지 않으면 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은준을 찾아왔다. 퉁야였다.

“보스, 이쪽은 준비가 다 됐습니다. 그래도 올 해 첫 농사인데 와서 보시죠?”

봄이 되고 벤시몽에는 다시 옥수수 농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농지는 여전히 오백 헥타르에 불과했다. 나머지 땅도 개간하기로 하였지만, 기존에 있던 옥수수 농장과 달리 그 외 지역은 잡목들의 처리와 지반을 고르게 다지는 등의 할 일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우선적으로 수로 공사만 끝낸 상태였다.

그 외 작업들은 천천히 시간을 두고 장비와 사람을 구해 할 계획이었으므로, 그 전까지는 전년도와 비슷하게만 운영을 하면 되었다.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은준이 퉁야에게 일임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도 농장의 진짜 주인은 은준, 그렇기 때문에 퉁야가 은준을 찾아온 이유였다.

“아이고야, 그럼 팔도 아픈데 잠깐 돌아볼까?”

사장이 없고 알바만 있는 상점은 오래가지 못한다. 책임감이 없고, 주인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아는 은준은 어차피 수시로 농장을 둘러볼 생각이기도 했지만, 퉁야가 그를 먼저 찾아왔으니 그를 따라 저택을 나섰다.

“오늘 일 하러 나오신 분들은 모두 이쪽에 모이세요. 인원수 확인하고 할 일을 분배하겠습니다!”

은준이 뒷짐 쥐고 서있는 사이 앞으로 나선 퉁야가 트럭 뒤편에 올라서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은준은 기존에 있던 오백 헥타르의 농지에서 옥수수를 재배하고 관리하는 일을 퉁야에게 일임하며 그의 연봉을 올려주며 중간관리자로 임명했다. 앞으로 퉁야는 은준이 별도의 지시를 내리지 않으면 기존에 그가 지시한대로 그의 땅에서 옥수수를 재배할 것이다.

은준은 뒤에서 퉁야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실 이전에도 일꾼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퉁야와 쉬사네의 몫이었기 때문에 은준이 퉁야에게 일임하였다 해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곧 일을 분배받은 사람들은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도구나 종자를 가지고 자리로 향했다. 하지만 사실상 그들이 할 일은 별로 없었다. 옥수수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은 전부 퉁야와 쉬사네가 농기계를 운전해 끝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을 불러모은 것은 전번기와 다르게 올 해 부터는 일부 땅을 돌아가며 다른 작물을 심을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트랙터가 한 번 땅을 뒤엎어 고르고 지나가자 괭이 등을 가지고 골을 내가며 앞으로 나아갔고, 그런 그들의 뒤로 통을 하나씩 든 사람들이 따라가며 무언가를 심기 시작했다.

종자를 심는 이들은 두 부류였다. 그들이 가진 통 속에는 각각 붉은팥과 땅콩의 종자가 들어있었는데, 가장 먼저 옥수수를 심었던 벤시몽 저택 앞의 옥수수밭을 반으로 나눠 한쪽엔 붉은팥을, 다른 한쪽엔 땅콩을 심었다.

이것은 원래 옥수수 농사를 지으며 지기의 회복을 위한 방편으로 땅콩을 심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 겨울 한국에서 빙수 만드는 기계와 각종 팥빙수 재료를 가지고 들어왔던 은준이 직접 팥빙수를 만들어보고는, 깡통팥의 저렴하고 달기만 한 맛에 직접 팥을 삶아 빙수에 얹어 먹기로 하며 변경되었다.

마침 붉은팥이나 땅콩 둘 다 심고 수확하는 시기가 비슷했던 터라 반씩 나눠 50헥타르씩 심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그럴 생각이면 쉽게 팥을 필요한 만큼 사서 해먹는게 간편한 일일 테지만, 이제 지갑이 빵빵해 아쉬울게 없는 은준은 어차피 돈 벌려고 땅콩을 심는게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ㄷㄷ 여러분을 너무 쉽게 보았습니다! 순식간에 50개를 넘겨버리네요;;

성원에 감사드리며, 오늘 깜짝 이벤트는 여기까지입니다.

선추코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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